982화 차세대 치료제 (2)
“면역 세포……. 그중에서도 T-CELL이 그 역할을 해 주죠. 가령 이런 겁니다. 순찰 돌다가 맛이 가 버린 세포를 확인하면……. 현실에서는 주의나 훈방을 주고 말겠지만, 우리 몸에서는 그냥 죽여 버리죠.”
피피티에 뜬 화면에서 암세포가 파괴되는 짤막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래, 저게 맞았다.
사실 알려진 지는 꽤 오래된 일이고.
바로 저러한 이유로 면역 억제자에서 암이 더 쉽게 발현하는 것이지 않나.
같은 이유로……. 기존의 암 환자에게서 아예 다른 종류의 암이 더 잘 발생하기도 했다.
“허나 이 암세포가 회피 기전을 획득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아무리 순찰을 다녀도 발견이 되지 않고, 암세포는 그대로 자라나 우리가 소위 ‘암’이라 부르는 질환을 일으키게 되죠.”
정상 면역을 가진 이에게서 발생하는 암은 모두 이 기전을 따른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저 세포 자체가 발생하게 되는 기전이야 다 다를 것이고 보건 의학적으로는 오히려 그 기전을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암 자체에만 집중했습니다. 1세대, 2세대 항암제 모두 그렇죠. 정작 우리 몸에서 가장 활발히 암세포를 죽이고 있는 티 세포는 무시되었던 것이죠.”
무시하고 싶어서 무시했던 것은 아닐 터였다.
그냥 현실적으로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을 뿐.
조형우 교수의 얼굴이 조금씩 상기되기 시작했다.
“우리 임상 의사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용법과 용량 그리고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같이 쓸 수 있는 약을 쓰면서 암과의 싸움을 지속해 나가는 사이에, 세포학, 유전학 등의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거기서 나온 결과물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세포 유전학인데…….”
드디어 화면에 CAR T-CELL이라는 이름이 떴다.
‘뽕 찬다…….’
[그러니까요. 앞으로 저 방식의 약이 대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까요?]
‘알 수 없지……. 무궁무진할 거야.’
[그렇죠.]
불치의 영역에 있던 병들조차 치료가 가능한 영역으로 이끌어 올 것이 확실했다.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예측 가능한 미래였다.
“자, 우리의 티 세포는 암을 죽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동시에 원래 우리 몸에 있는 면역 세포이니만큼 부작용도 적죠. 저 세포유전학의 비약적인 발전 덕에 이제 드디어 이 티 세포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암 환자의 티 세포를 채취합니다.”
화면에 있던 영상이 천천히 재생되었다.
조형우 교수의 말대로 티 세포를 채취하고, 분리해 낸 뒤 유전자를 조작하는 장면이 나왔다.
“유전자를 변형해서, 해당 환자의 암 환자의 암을 추적할 수 있는……. 쉽게 말하면 레이더를 탑재한 티 세포를 만들어 줍니다.”
공상 과학의 영역인가 싶은 말일 터였다.
실제로 이 자리에 있는 몇몇은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이 돼? 와 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아니……. 정말인가?”
우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실험의 영역에 저 개념이 등장한 건 벌써 4, 5년이 되었음에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 자기 영역이 아닌 이상 모든 걸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수혁 정도의 괴물이 의학에 미쳐 날뛰지 않는 이상에야 무리가 아니겠나.
“네, 정말이에요. 들어 봐요, 교수님. 아마 놀라실걸요.”
“벌써 놀랐는데…….”
우창윤은 슬며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상상의 여지를 주는 그런 약이었으니.
“이 티 세포를 그대로 넣어 주면 너무 수가 적기 때문에 따로 배양해서 증식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레이더를 탑재한 다량의 티 세포를 다시 환자에게 넣어 주게 되죠.”
“허.”
“허어.”
모르고 있던 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딱 봐도 무언가 벌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애초에 암이라고 해 봐야 회피 기전을 획득해서 간신히 생존한 것들 아닌가?
눈에만 보이면 감히 티 세포에 대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터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것이 치료 결과입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기존의 항암 치료 없이 바로 이 카 티 세포 치료를 진행한 사례는 없습니다. 모든 케이스는 1차 또는 2차 항암 치료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케이스입니다. 그 이후 카 티 세포 치료를 진행한 것이죠.”
1차 항암 치료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항암 치료였다.
물론 이것도 림프종의 특성상 항암제를 때려 박는 느낌이긴 한데…….
그럼에도 1차는 실패한다고 해서 바로 희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2차가 있었으니.
“2차 항암 치료는…… 골수 이식을 위해 이루어지죠. 즉 항암제로 융단 폭격을 가해 암은 물론, 원래 있던 자신의 세포를 모조리 다 죽여 버리게 됩니다. 아주 독한 치료인데…… 카 티 세포 치료라는 게 환자의 티 세포를 추출해서 사용하는 치료다 보니, 환자의 티 세포 상태가 중요합니다. 근데 이 점에서 좀 불리해지죠. 그럼에도 보십쇼. 결과가……. 어떻습니까?”
현재 카 티 세포가 주로 쓰이는 질환은 비 호지킨 림프종, 그중에서도 광범위 B형 대세포 림프종이었다.
생존율은 대략 60%.
열 명 중에 무려 4명이 사망한다.
“치료가 실패한 것으로 분류되는 환자 10명 중 최대 5명, 또는 4명이 이 카 티 세포 치료를 통해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2차 항암 치료 실패 이후에 시도한 환자에게서 발생했다는 걸 감안한다면……. 앞으로는 치료 효과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사망할 환자의 대략 절반이 생환한다.
이것만 봐도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텐데…….
카 티 세포 치료제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정도이지 않나?
앞으로 좋아질 일밖에 남지 않았고, 더군다나 그 적응증 또한 점차 넓혀 나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거의 말 타고 다니다 내연 기관차가 나온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다만……. 가격이 일차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환자마다 다 따로 티 세포를 추출해서 유전자 조작을 해야 하지 않나.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그렇다 보니, 이게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5억이라고?”
“미국에서는 그렇고……. 우리나라는 일단 3억 6천일걸요. 보험 적용이 되어서 적응증에 해당하는 환자는 본인 부담금이 천만 원이 안 될 거고요.”
“아니……. 그럼 이거……. 재정 부담이…….”
“그렇긴 해요. 지금 다른 분야 의사들은 치료 효과도 효관데, 자기 분야 신의료 기술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죠.”
“들어오길 잘하긴 했구만그래.”
5억.
거의 집값이지 않나?
물론 서울 집값이 많이 올라서 5억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최근에 벌어진 일일 뿐이었다.
이 큰돈을 치료로 써야 한다니.
그나마 대한민국은 어마어마한 협상 능력을 발휘해 3억 6천으로 줄이긴 했다지만…….
“아니, 우리 쪽도 좋은 약 지금 보험 안 되는 게 수두룩한데……. 이렇게 큰 약을. 그리고……. 이거……. 환자 수가 아주 적은 건 아니지 않나……?”
“환자 수가 적지 않기는 하지만……. 지금 적응증은 2차 항암 치료에 실패했을 경우에 한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요.”
“허.”
돈 얘기만 나왔는데도 장내는 한없이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사실 돈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거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어차피 저 돈은 전부 제약 회사로 넘어갈 테고, 정작 병원에서 받는 건 그냥 항암 치료에 대한 수가가 전부이지 않나.
그보다는 한정된 자원, 즉 건강보험료가 문제였다.
아무래도 의사도 사람인지라 자기가 주로 보는 환자들에게 감정 이입이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각기 질환에 따른 치료제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휴…….’
조형우 또한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던지라, 그냥 그대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카 티 세포 치료의 한계점에 대한 것들이었다.
가령 환자의 현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 조작과 배양에 4주에서 8주가 걸려, 그사이에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등등.
“아니, 근데 그러면…… 치료 효과는 떨어지는 거 아닌가?”
물론 그건 조형우 사정이고, 다른 과 교수들은 강의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르르 몰려나와 이런저런 난상 토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우창윤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겠죠. 아무래도……. 이게 환자 상태가 중요한데, 2차 항암 치료에 실패했다는 건 상당히 상태가 나빠졌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그 돈 쓰고 기대하던 치료 효과도 거두지 못한다면……. 그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무턱대고 적응증을 늘리면……. 보험 재정 진짜 다 박살 날걸요.”
“그건 알지. 나름대로……. 타협을 했다 이건데……. 거참…….”
우창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혁이라고 해서 할 말이 딱히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않나?
전문 분야가 아닌데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다만, 그 돈이 쓰이는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니만큼 이런저런 걱정을 보탤 수는 있었다.
“들어 보니……. 확실히 저 약에 미래가 있어.”
“네, 그렇죠.”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부터 의학의 미래는 개별화된 치료에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터였다.
벌써 미국에서는 항암 치료 도중 기대했던 반응이 없다면, 그것이 1차 도중이라고 해도 카 티 세포 치료로 전환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지 않나?
치료 효과도 더 좋은데 부작용도 적다면…….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카 티 세포 치료를 바랄 터였다.
“저거 레이더만 갈아 끼우면 다른 암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수혁 교수 의견은 어때.”
“그렇죠. 제 생각에는…….”
수혁은 암만 아니고 다른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직 사례가 있지는 않지만, 이번 겨울 학회에서 인연을 맺었던 메사추세츠 병원 연구실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확실히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 와. 정말…… 가슴 뛰는 약이 나왔는데…….”
“저도……. 이거 제가 레지던트 때만 해도 상상의 약이었죠.”
“그렇지. 근데 그게 나왔어. 그럼 마냥 기뻐해야 할 텐데……. 돈이 발목을 잡네.”
“그렇긴 해요. 너무 비싸죠. 근데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닙니다, 이거.”
“그래……. 개발 기술에도 돈이 들어갔겠지만, 애초에 제조 단가가……. 말이 안 되게 높겠지.”
비싸다.
비싸지만 이걸 안 쓸 건가?
써야 할 터였다.
“앞으로 점점 더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된다면……. 결국, 보험 재정을 늘려야 할 텐데.”
“아……. 그런 얘기는 저는 잘 모르는데…….”
“그래, 그렇지. 근데 그거 아나?”
우창윤은 눈을 빛내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스파이더맨의 대사를 떠올리면서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수혁 정도 되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아마 아들 바보 새끼 이현종도 부정하지 못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