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3화 차세대 치료제 (3)
우창윤이 스파이더맨 삼촌 빙의해서 수혁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고 있을 때쯤, 그러니까 지금의 수혁은 전혀 관심 없는 분야라 지루함을 참고 견디고 있을 때쯤, 조형우 교수 또한 여러 사람에게 붙잡혀 있었다.
“잠깐 저랑 좀. 하하.”
말이 여러 사람이지 진짜로 적극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조태진.
이유는 간단했다.
카 티 세포 치료가 좋은 건 다 알지만 실제로 실행에 나설 수 있는 병원은 아직 국내에 많지 않았기에 그랬다.
“아……. 네네.”
조태진이 이수혁 패밀리 안에서야 막내 취급을 받고 있지만, 밖에 나가면 나름 시니어이지 않나.
아직 전임 받은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못한 조형우에게는 거의 웃어른이었다.
심지어 조태진은 아선 병원의 기조실장 우창윤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나름 회식 때 얼굴도 비추고 있어서 더더욱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뭐 이상한 얘기할 건 아니고요.”
“네에.”
더욱이 조태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소문이 참 많았다.
‘미친놈이라던데…….’
그중에서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진 소문이 있다면 바로 미친놈이라는…….
암만 남의 병원 교수라지만, 그럼에도 입에 담기 힘든 소문이 있었다.
문제는 이게 단지 소문만으로 습득한 정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에……. 그거……. 그 카메라는 대체 뭐였을까?’
조형우는 자신 앞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조태진을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확실히 그때 그건 조태진이었다.
미사일 발사대 같은 그걸 들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더랬다.
앞에 보이는 건 별거 없었는데……. 아마 그 카메라로 보면 뭐라도 보이긴 했을 터였다.
제발 불미스러운 대상이 아니었길 바라면서, 조형우는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 어쩐 일이신지요?”
사람 좋기로 소문난 사람답게 이런 상황에서조차 조형우는 애써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조태진이 이상한 얘기를 한다면 바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조태진이 이상한 사람인 것은 맞는데, 조형우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저희도 카 티 세포 센터 준비 중인데요.”
“아……. 그러셨어요?”
“네네. 근데 이게……. 기안서를 올리려면 제가 뭔가…… 아는 게 있어야 하는데, 특히 재정적으로나 인력이나 이런 게 잘…….”
“아직 카 티 세포 치료를 시행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네? 아, 네. 아직은 아선에서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 그건 그렇긴 하죠. 임상 시험부터 저희가 총대 메고 하기는 했는데, 흠.”
조형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윗선에서는…… 태화하고는……. 딱히 좋기만 한 사이는 아니지…….’
당장 회의만 들어가도 이런 분위기가 팽배한 마당이었다.
태화에서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아선에서는 타도 태화를 열심히 천명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칠성은 좀 밑으로 까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칠성이랑은 오히려 더 사이가 안 좋았다.
‘하지만……. 뭐…… 카 티 세포 치료로 우리가 돈 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센터만 돌아가서는 환자들 다 죽어 나갈걸.’
당연하지만, 그건 윗선 그러니까 경영진 입장이었다.
아무래도 아래쪽에서는 그저 같은 의사라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림프종과 같이 경과가 다소 급할 수 있는 질환을 다루는 이들 사이에는 일종의 전우애가 싹트기 마련이었다.
조형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세포를 추출하고 골라내서 보관할 수 있는 인력입니다.”
“아……. 골라요?”
“네. 건강한 T-CELL을 골라내야죠. 이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기존의 약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기술 이전을 받는다고 해도 아무 데서나 만들 수 없는 것이죠?”
“네. 전문 인력이나 설비가 어마어마하게 소모되는 약입니다. 이 때문에 가격이…… 아마 한동안은 그렇게까지 떨어지진 않을 겁니다. 이 점은 저희 박사님한테 자료 받아서 드릴게요. 사실 저도 전문적으로는 모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센터라는 게 그냥 오늘부터 센터다 하면 열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통합진료센터처럼 구성원의 역량을 믿고 작게 여는 게 아니라, 기존에 없던 어떤 기술 때문에 열리는 센터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아닌 전문 인력들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림프종이라는 게 결국에 암이지 않은가.
치료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병리학과가 필요하고 또 중간중간 필요에 따른 다른 처치를 하기 위해서는 방사선종양학과까지 필요했다.
메인이야 혈액종양내과가 맡아 주겠지만, 하여간 이 센터가 돌아가려면 이만큼의 인원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허어…….”
듣고 있던 조태진이 살짝 기가 질렸다는 표정이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그런 조태진의 어깨를 조형우가 교수가 살짝 두드려 주었다.
“저희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치료가 앞으로 적어도 림프종의 치료에서 대세가 되지 않겠습니까? 밀어붙이셔야 합니다. 아마 다른 과에서도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야……. 하긴, 그렇죠. 이건 해야지.”
“네. 게다가…… 더 발달하게 되면 고형암에 대해서도 치료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티 세포가 고형암에서는 기를 못 펴지 않나요?”
“그야 그렇지만…… 외과 술기와 결합해서 사용하게 된다면……. 무리도 아닐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외과 술기와 항암제라……. 그럴 수 있겠네요. 확실히……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건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두 교수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맨날 지기만 하던 싸움을 하다가 전가의 보도라 해도 좋을 만한 무기를 쥐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 네네.”
그사이 우창윤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수혁과 입씨름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말이 입씨름이지 주로 떠들어 대는 건 우창윤이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이 많았나……?’
[나이 좀 있는 교수치고 말 없는 사람이 있던가요?]
‘근데 우리 앞에서는 말이 없었잖아?’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겠죠. 솔직히 이현종 앞에서 막 떠들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경찰 앞에서는 말이 없어지긴 하지만……. 그래, 학회에서는 거의 없다고 봐야지.’
이상하게 죄지은 것도 없는 양반이 경찰과 같은 공권력 앞에서 약해지는데…….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현종은 그야말로 깡패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케이스를 해결하고 난 이후의 이현종은 더더욱 그랬다.
어쩌다 보니 우창윤을 본 게 늘 그런 상황이었던 거 같았다.
‘그때가 좋았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요. 말이 지나치게 많네요…….]
그때는 좀 불쌍하단 생각도 했었는데.
쉬지 않고 입 놀리는 것을 보니까 이건 이것대로 짜증이 났다.
“그러니까 자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해.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에도 연줄이 있지 않나?”
“아……. 네.”
“돈. 돈이 정말 중요하다고. 우리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 아니라! 건보 재정이 중요하다 이 말이야!“
“아……. 네.”
“지금까지는 우리끼리 박 터지게 싸웠어! 안에서 파이 갈라 먹는다고. 근데 이젠 아냐!“
“아……. 네.”
“파이를 늘려야 해! 그러자면 보험료를 올려야 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것도 자네뿐일세.”
“아……. 네?”
그래서 그냥 건성으로 듣고 있다 보니 이상한 말이 나왔다.
국민……?
국민이라니?
수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창윤을 바라보았다.
보통 정신으로 하기는 좀 어려운 소리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깔이 살짝 돌아가 있었다.
“잘 생각해 보게! 대승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이게 마지막일 거 같나? 앞으로 의학의 미래는 여기에 있어. 그 말은 곧 종류별로 줄줄이 튀어나올 거란 얘긴데……. 싸진 않겠지. 그거 다 감당하려면 결국엔 돈을 올려 받아야 하고, 다시 말해 국민을 설득해야 해. 내……. 내가 사실 자네를 눈여겨본 지 오래됐어.”
네- 하기가 좀 애매했다.
아니, 무섭다고나 할까.
하여간 그래서 잠자코 있었다.
괜찮았다.
이제 우창윤은 어떤 대답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맺힌 무언가를 털어 내기 위해 떠들고 있었으니.
“자……. 보게.”
우창윤은 손을 뻗어 주변에 모여든 이들을 가리켰다.
사인 받으려고 온 레지던트들과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이만큼 사람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의사 중에 있을 거 같나? 자네는…… 자네는 정치를 해야 해.”
“네?”
정치라니.
돌았나, 싶었다.
수혁의 눈이 더 동그랗게 모였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겁니까?]
‘모르겠네. 사람 묻으려고 이러는 거 같은데.’
[정치라는 게 의사 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겁니까?]
‘잘 모르긴 하는데……. 못하지 않나? 원장만 돼도 진료가 줄어드는데……. 국회의원 하면서…… 진료를 한다……? 못할 거 같지 않아?’
[이 미친놈이 이거.]
욕을 하고 싶은데, 나이가 워낙 위다 보니 그럴 수도…….
“억! 누가……. 누가 감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감히? 이 미친놈이 누구 앞에서 약을 팔어! 정치? 저엉치? 너나 해 이 새꺄!“
이현종.
불세출의 기인.
다들 또라이로만 알고 있지만, 의외로 정신 똑바로 박힌 양반이었다.
“왜, 왜요!“
그와 동시에 월드 스타에 원로급 교수이기에 평소의 우창윤이라면 곧장 깨갱 했어야 정상인데, 지금은 그도 만만치 않게 눈이 돌아가 있었다.
“왜요?”
“딱 보세요. 사실 다리가 불편한데도 이만한 성취를 이뤄 냈다……. 이거 스토리 나오잖아요. 요새 정치는 스토리예요! 스토리!”
“뒤질래? 얜 진료할 사람이야. 사람 살려야지.”
“정치해도 사람 살릴 수 있어요.”
“그딴 개소리는 거울 보고 하시고. 너 이 새끼 이거……. 눈알 돌아가는 게……. 수상해? 사실은 네가 하고 싶은 거 아냐?”
“네?”
그리고 이현종은 그런 사람 고치는 데 꽤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냥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은 것과 같은 상황이긴 한데…….
‘이 새끼, 진짜네?’
이현종은 본인이 원할 때는 또 눈치가 비상해지는 사람 아닌가.
그래서 그대로 우겼다.
“그래, 그렇지. 너……. 우리 학회에서 일하는 것만 봐도 딱 알겠어. 잘해. 진료도 잘하는데, 자네야말로 정치를 해야 할 위인이야.”
“네에……?”
“막말로 이 나이에 기조실장이라니? 이게 될 말인가? 잡음도 없고. 태화에서 자네 때문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아? 그런 인재가 국회로 가서…… 신의료 기술 도입을 위해 싸워 준다……? 든든하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 와.”
“어……. 그런가?”
“그래. 그렇지. 이거보다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고.”
“어……. 네.”
우창윤은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