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86화 (986/1,303)

986화 교수님 냄새나요 (1)

부우웅

대리 기사는 말없이 속도를 높였다.

‘뭐지? 의사들인가? 그런……. 그런가 보다. 저분은 누가 봐도 교수님……. 높으신 분…….’

안대훈도 그렇지만 사실 조태진도 자꾸 이상한 짓을 해 놔서 그렇지, 겉으로만 보면 지극히 멀쩡한 의사 그 자체이지 않나.

건장한 체격에 건실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고리타분해 보이기까지 한 머리 스타일까지.

가운 입히고 대학 병원에 갖다 놓으면 그냥 교수였다.

‘근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환자다……. 환자.’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이었다.

다들 가슴 한구석에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품어 보지 않던가.

첩보 영화처럼 긴박한 상황에 놓여 보고 싶다!

물론 진짜 놓이게 된다면 달달 떨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공산이 크긴 하겠지만…….

하여간 대리 기사는 어떤 거대한 응급 상황에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액셀을 밟았다.

“어어. 왜 이렇게 빨리 가요?”

“차가 좋아서 그런가. 막 나가네.”

“교수님 차는 벤츠 아니에요?”

“어? 어. 벤츠지. 근데 벤츠는 이렇게 밟는 용도가 아니에요.”

“아…… 네에. 아무튼, 왜 이렇게 서둘러요?”

안대훈은 자칫하면 넘어질 듯한 수혁을 가까스로 부축한 채로 물었다.

그러자 대리 기사는 듬직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환자……있으신 거 아닙니까?”

“아…… 네. 들으셨구나.”

“네. 최대한 빨리 모시겠습니다. 법규를 위반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시고요.”

“네에, 그럼 부탁드립니다.”

듬직한 미소고 나발이고 간에 법규 위반은 안 될 일이었다.

안대훈이 준법정신이 특출나서가 아니라 차가 수혁 차라 그랬다.

이쪽으로 범칙금이라고 날라온다면…….

그 자리에 안대훈이 있었는데 말리지 못한 이유로 수혁이 단 몇만 원이라도 손해를 보게 된다면…….

‘으어어어.’

안대훈은 또다시 옷을 찢고 회개해야 할 터였다.

그러한 연고로 애초에 싼 옷만 산다는 걸 알고 있는 조태진은 가만히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남들이 볼 때는 다 같은 홈마고, 따라서 다 같은 또라이지만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돌은 자끼리도 한 바퀴냐 두 바퀴냐 아니면 서너 바퀴냐에 따라 우열이 있는 법이었다.

‘넌……. 진짜다.’

조태진이 소리 없이 절규하는 안대훈을 위로하는 사이, 차는 계속 달렸다.

북에서 남으로.

이것만 달리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서에서 동으로 달리는 차량도 하나 있었다.

“괜찮은 거죠?”

“네? 아……. 저는.”

아까 전화로 전원 요청했던 환자를 싣고 앰뷸런스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안에는 보호자, 그러니까 아들과 영문도 모르고 끌려 나온 인턴도 하나 타 있었다.

‘모른다고 하면 안 되겠지.’

평일 전원이면 얘기가 좀 달랐을 터였다.

아니, 학회만 아니었어도…….

하지만 오늘은 학회고, 금요일 밤이었다.

최소한의 당직자만 남기고 모두가 병원을 나가 있었다.

“일단 태화로 가고 있으니까요.”

아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인턴은 태화 의료원 내과를 꿈꾸고 있었으니까.

그럴 거면 왜 모교에 남았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땐 꿈이 피부과였더랬다.

허나 우연히 따라갔던 학회에서 마주친 수혁의 위엄에 그만 끌려 버리고 말았다.

1등 졸업자가 내과를, 그것도 다른 병원 내과를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기함했지만 뭐 어쩌겠나.

마음이 끌리는데.

“거기 이수혁 교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아…… 네. 저도 그 교수님께 보려고…….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머니 얼굴 좀 보세요.”

“네에.”

그건 그거고 인턴은 인턴이었다.

같은 의사지만. 업무가 아예 달랐다.

환자를 보는 게 아니라 남들 환자 보는 데 필요한 잡일을 해야만 했다.

해서 환자에 대해서는 아예 몰랐고, 덕분에 지금 처음 봤다.

‘아.’

환자는 의식이 멀쩡했다.

열이 많이 나기는 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열 말고는 다른 증상이 없어서 그랬다.

사실 그래서 인턴 하나 덜렁 달고 가는 것도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일단 주말은 병원에서 보내고, 평일에 레지던트 딸려서 보냈을 터였다.

“어머니 얼굴이……. 저게 그냥 열난다고 저렇게 되나요?”

“보통은 그렇지 않죠.”

“그러니까요. 근데 자꾸 무슨……. 항생제만 쓰고.”

“흐음.”

뭔가 더 아는 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인턴은 딱히 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아는 게 있어야 뭐라도 떠들지.

해서 인턴은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 떠들기로 작정했다.

방향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보호자나 환자도 듣고 싶어 하는 주제일 듯했다.

“아무튼,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가 진짜 최고예요. 거기 케이스 발표되는 수준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저는 그냥 잘 본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잘 보죠. 거기 갔는데도 해결이 안 되면 그건 그냥 현대 의학의 문제라는 말도 있어요. 의사들끼리 하는 말이니까 확실하죠.”

“그럼 선생님도 혹시……. 이런 말이 다른 병원 선생님께 실례되는 말이긴 할 텐데……. 혹 부모님께서 아프시면……?”

“아유, 당연하죠! 무조건 태화로! 아, 저기 비밀로…….”

인턴은 신나서 떠들다가, 이게 병원 소속 구급차라는 걸 깨닫고는 앞자리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구조사가 허허 웃었다.

“저도 그럴 텐데요. 저희끼리도 통하는 말이 있어요. 외상 쪽은……. 다 비슷할 수 있어도 내과는 무조건 태화다.”

“그, 그렇죠?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안심이 되네요.”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된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상으로야 서에서 동으로 오는 게 더 멀지만 이건 앰뷸런스지 않나.

예전에야 사이렌을 울리건 말건 앞에서 심술부리는 차량들이 꽤 있었다지만, 대한민국의 인식도 많이 개선된 참이다 보니 막힘없이 쭉쭉 내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서울은 버스 전용 차로가 따로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끼이익.

끼이익.

그러한 연고로 수혁의 차와 앰뷸런스는 그야말로 동시에 도착했다.

늘 그러하듯 태화 의료원의 응급실 앞은 엉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금요일 밤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어어. 거기!“

그렇다고 앰뷸런스를 막겠나?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연락하고 온 건데?

시큐리티가 나선 이유는 수혁의 차량 때문이었다.

“아, 저 통합진료센터 펠로우 안대훈입니다.”

“아. 안대훈 선생님?”

허나 안대훈이 딱 내리자마자 얘기가 달라졌다.

앞서 떠든 통합진료센터도 임팩트가 있었다.

이 인간들이 응급실에서 행한 이적이 대체 몇이던가.

“일단 교수님은 우리 이수혁 교수님 좀…….”

“어어. 그래. 내가 업을게. 아니, 얘는 아까보다 더 정신이 나간 거 같은데?”

“너무 빨리 달려서 그런 거 같아요.”

“아.”

하긴 덜컹덜컹했지.

그다지 술도 안 마신 자신도 약간 속이 메슥거리는데…….

가뜩이나 술도 약한 수혁이 술 먹고 변기통에 앉아 있다가 이런 차에 탔으면 정신이 나가도 벌써 나갔겠다 싶었다.

[야. 병원 왔어.]

‘…….’

[병원……. 하아, 이 새끼 이거.]

그저 예측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바루다가 혀를 쯔쯔 차는 순간에도 수혁은 조태진의 등에 업힌 채 침만 질질 흘려 대고 있었다.

찝찝했지만, 조태진은 감내하기로 했다.

‘와…… 수혁아. 아내 말고는 네가 처음이다. 내 등판에 침 묻힌 사람…….’

수혁이 알게 되면, 수혁도 찝찝하게 될 만한 이유를 달고서였다.

하여간, 안대훈은 그로서는 놀랍게도 수혁을 조태진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곧장 아까 통화했던 응급실 레지던트를 마주할 수 있었다.

뭔가 분주해 보여서 일 끝나면 말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자코 있으려니 오히려 그쪽에서 달려왔다.

“선생님! 환자 방금 왔습니다!“

“어? 아, 이 환자분?”

“네네.”

“좌측 안면 마비가 있으신데?”

“어……. 그걸 어떻게?”

말이 잠자코 있는 것이지, 수혁의 수제자답게 다 보고 있었다.

응급실 레지던트와 환자가 대화하는 것부터 해서 전부 다.

그 결과 환자의 좌측 안면에 grade 3에서 4 사이의 안면 마비가 있다는 것도 파악한 지 오래였다.

“보면 알죠. 그럼 여기서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아, 네! 바로 센터로……? 아니면 여기서……?”

“음.”

안대훈은 그 말에 곧장 답하는 대신 베드 상황을 살폈다.

바로 얼마 전에 또다시 확장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여전히 붐볐다.

그럼에도 두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것도 붙어서.

“저기서 봐도 되려나?”

보통 이렇게 나오면 짜증이 나야 정상이었다.

왜냐?

지금이야 아직 늦은 저녁 수준이지 않나.

앞으로 더 시간이 가면 베드가 비어서 의자와 바닥까지 환자가 들어찰 것이 뻔했다.

억측이 아니라 매주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예측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 네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통합진료센터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이 인간들은 진료에 미친 인간들이라 검사 내놓고 결과 나올 때까지 쉬는 대신, 이곳에 상주하면서 다른 환자들을 마구잡이로 진단해 주지 않나.

베드 하나를 내주지만 그로 인해 열 개 이상을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였다.

특히 이수혁.

그 인간이 있다면…….

‘어……. 근데 어디 갔어?’

같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레지던트가 불안해져서 물었다.

“저, 근데 선생님. 혹시 이수혁 교수님은…….”

“아, 이수혁 교수님은 저기 옆자리로.”

“네에?”

“저기 오시네.”

“네?”

뒤를 돌아보니, 과연 오고 있기는 했다.

조태진 등에 업혀서.

“허.”

“걱정 마. 우리 이수혁 교수님은 술 취해도 명의야.”

“저건 취한 게 아니라 만취잖아요…….”

“그때도 그랬지.”

“그때……요?”

그래. 그때.

안대훈은 아련한 얼굴이 되어 겨울을 떠올렸다.

만취한 수혁을 데리고 여기 왔고, 이현종과 더불어 진료하다가 결국 도움을 받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이수혁 교수님 만취 때마다 내가 있군……. 이것은…… 운명. 아니, 계시……!’

조태진은 말없이 수혁을 환자 옆자리에 내려놓다가,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있는 안대훈을 발견하고는 헛기침을 해 댔다.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좋지 못한 생각일 것만은 확실했지만.

“아무튼, 제가 일단 보죠.”

“아…….”

안대훈이 좋은 의사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수혁을 기대하고 있다가 안대훈을 만나게 된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전원이 되었으니 머지않은 시일 내에 보게 되기야 하겠지만…….

해서 응급실 레지던트와 환자 보호자 모두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허나 인턴은 좀 달랐다.

‘저 대머리…….’

안대훈을 알아보았다.

“설마 안대훈 선생님?”

“아, 네.”

“저……. 팬입니다! 이수혁 교수님의 진정한 수제자……!“

“아……. 하하. 과찬의 말씀을……. 그저 그분의 발자취를 최대한 따라가 보고자 노력하는 필부일 뿐이지요.”

호들갑에 보호자의 안색이 조금 변했고.

범상치 않아 보이는 안대훈의 인상과 말투에 점점 신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첫 단추는 잘 끼워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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