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87화 (987/1,303)

987화 교수님 냄새나요 (2)

인턴은 안대훈과 좀 더 같이, 그러니까 진료 과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간절하다고 해서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지던가?

특히 인턴에게는 그럴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긴 생머리조차 감지 못해 질끈 묶은 상황에 어디 밖에서 노닥거리나.

환자 이송 끝났으면 돌아가야지.

부우우웅.

그나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앰뷸런스 타고 돌아갈 수 있으니까.

뒷자리에 누워서 잘 수 있을 테니까.

“흐으음.”

“저희 어머니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렇게 응급실에는 이제 안대훈, 조태진 그리고 취한 상태의 이수혁이 남았다.

‘진짜 신기할 정도로 완전히 골로 가 버렸네?’

조태진은 합류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그저 환자 옆자리에 누운 수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었다.

이게 뭐 좀 희귀한 일이어야지.

“일단…… 좀 보죠. 저희 측에서 전달받은 자료도 아직 완전히 취합이 되진 않았습니다.”

해서 안대훈은 홀로 환자를 보고 있었다.

괜찮았다.

훈련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받고 있었으니.

“아…… 네에. 근데 그…….”

“저희 센터에 오신 이상 이수혁, 이현종 교수님 진료는 무조건 보시게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물론 환자들 생각은 다를 수 있었고, 그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도 했다.

맨날 듣는 말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안대훈의 말에 환자 보호자는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수혁만을 믿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SLE, 그러니까 루푸스에서 이런 식의 경과를 보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좀 빠르지 않나?

‘혈액 검사상으로는 범혈구 감소증이 있었지. 하지만…….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고……. 그에 반해 간 수치도 살짝 올라 있고, CPR도 상승해 있었어. 단백뇨도 나오고……. 흐음.’

3차 병원 검사 결과니만큼 그걸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만, 일단 다시 한번 볼 필요는 있을 거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혈액 검사는 그 추이가 중요하지 않던가.

초깃값이 너무 결정적이라면야 그것만 토대로 추론을 해도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혈액 검사 나가 주세요. 지금 제가 처방 쭉 내놨습니다.”

“아, 네. 수액 라인 교체하면서 나갈까요?”

“아뇨. 검사는 반대편에서. 결과 흔들릴 가능성이 있어서요.”

“네, 선생님.”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안대훈의 손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처방이 쭉쭉 나가 있다, 이 말이었다.

동시에 환자에 대한 시진 및 검진도 쉬지 않고 진행 중이었다.

확실히 밝은 빛 아래서 확인한 환자는 급성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아- 해 보시겠어요?”

처방을 받은 간호사들이 라인도 갈고, 피도 뽑고 하는 사이, 안대훈은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네. 아…….”

“음. 여기……. 아프진 않으세요?”

“네? 어디요?”

“여기.”

안에를 들여다보니 구강경구개, 즉 입천장 앞쪽에 궤양이 하나 있었다.

대략 1cm가 넘는 궤양이었는데 이쯤 되면 아파야 정상이었다.

식사량을 줄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허나 환자는 설압자로 궤양을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무통성 궤양이라……?’

특이한 소견이라 할 수 있었다.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워낙에 다양한 임상 양상을 보일 수 있다지만, 그럼에도 통증이 없는 궤양은 좀 이상했다.

거기에 더해 편측의 안면 마비도 있고 하다 보니, 환자의 얼굴이 좀 기이해 보일 지경이었다.

‘약간 끄르륵거리는 게……. 물이 찼나?’

청진을 했더니 양측 폐 아래쪽에서 끄륵끄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호흡음이 지저분하다 이건데…….

이것 또한 그리 좋은 소견은 아니었다.

배는 그럼 정상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여기 아프진 않아요?”

“조금…….”

“흐음.”

비장이 커져 있었다.

그것도 두 손가락 정도나 더.

이만하면 확연한 비장 비대가 있다고 판단해도 좋을 터였다.

‘범혈구 감소증에……. 비장 비대라……?’

석연치 않았다.

정말로, 석연치가 않았다.

-범혈구 감소증이 있어 시행한 골수 검사에서 조직구 증가 및 혈구 탐식의 양상이 관찰되었음. 적혈구계 세포 및 거대 핵 세포 수는 적절, 골수계 세포의 수와 성숙도도 적절.

전원 보내온 병원에서는 이러한 소견을 동봉했다.

이 중에서 그들이 집중했던 건 혈구 탐식 양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발열과 비장 종대 및 범혈구 감소증 그리고 항핵 항제, 루푸스 항응고인자 양성을 보였다는 것을 이유로 SLE 즉 전신 홍반 루푸스로 진단했다.

“엑스레이 가실게요.”

지금까지 안대훈이 찾아낸 바와 거의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실 그게 맞기는 했다.

3차 병원 교수라고 하면…….

그게 어디 쉽게 갈 수 있는 자리라던가?

더럽게 공부를 많이 해야 했으며 또, 가서도 공부를 지속해야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 네.”

허나 안대훈은 이제 막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환자를 보면서, 뭔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통합진료센터에 일한다는 자부심 또는 수혁을 닮고 싶다는 열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즉 명의병으로 인한 불안 증세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왜. 이상해?”

그제야 술 취해 꽐라가 된 수혁에게서 벗어난 조태진이 안대훈에게 다가왔다.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이제 둘도 하루 이틀 된 사이가 아니고 거기에 더해 상당히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보니 척하면 척이었다.

“SLE라고 진단을 해서…… 프레드니솔론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으로 치료를 하고 있는데……. 일단 경과도 그렇고요. 또 진단도 석연치가 않아서요.”

“흐음……. 이번에 SLE로 진단을 받은 건가?”

“네.”

“근거는?”

“이거요.”

게다가 조태진은 기본적으로 안대훈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 새끼…….

생긴 거랑 평소 하는 짓만 보면 그냥 미친놈이지만 의사로서의 능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지 않나.

해서 들여다보니까 확실히 왜 이러는지는 알 것도 같았다.

“음……. 이게 결국, 단순 SLE도 아니고, SLE에 동반된 2차성 혈구 포식성 림프 조직구증으로 진단을 내린 거네?”

“네. 이 나이에 SLE가 오는 것도 드문 일인데요. 거기에 더해 2차성으로 혈구 포식성 림프 조직구증이 오는 것 또한 드문 일이죠.”

“그래. 극히 드물다고 해도 무방하겠어. 게다가……. 여기 지금 진단 기준으로 쓴 근거가 1997년 ACR 기준이잖아.”

“네. 한계가 많죠. 물론 아직까지 이걸 완전히 대체할 만한 기준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부분부분 보완할 만한 근거들은 엄청 많이 나왔지.”

SLE.

전신 홍반 루푸스.

류마티스 질환, 즉 자가면역질환의 대표주자인데…….

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게 이게 참 망할 놈의 질환군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주로 보는 림프종하고도 비슷하지, 뭐.’

조태진은 림프종을 떠올렸다.

옛날엔, 너무 옛날이긴 하지만 림프종 하면 딱 하나였다.

호지킨이라는 의사가 발견한 호지킨 림프종.

그러다 어? 아닌 것도 있네 해서 비호지킨 림프종이라는 개념이 나왔는데…….

지금은 분류가 거의 100개가 넘었다.

하도 빨리 변하다 보니 2, 3개월만 정신 놓으면 퇴물 되는 게 이 바닥이었다.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해서 다른가?

맨날 바뀌었다.

그 말은 곧 지금 당장은 아는 게 없다는 얘기였다.

“SLE가 아닐 수도 있겠구만.”

“네. 저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럼 림프종일 가능성이 있는데……. 별로 좋은 일은 아닌데.”

“그렇죠. 좋은 일은 아니죠.”

림프종.

말이 종이라 헷갈리겠지만, 쉽게 말하면 그냥 암이었다.

림프에 생기는 암.

혈액암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위암이나, 고형암처럼 어디에 고정되어 자라는 암이 아니다 보니 임상 양상이 일반적인 암하고는 굉장히 달랐다.

오히려 자가면역질환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아니니만큼, 무조건 확인은 해야 해.”

“네.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면 너무 위험할 테니까요.”

“그렇지. 이 환자……. 골수 검사를 했다고 했지?”

“네.”

“거기서 혈구 포식성 림프 조직구증 소견이 보였다는 건데……. 이거 사실 림프종에 의해서도 아주 잘 나타나는 양상이잖아.”

“그렇죠. 아, 저기 오네요. 잠시만.”

“어어. 나도 생각 좀 정리하고 있을게.”

이수혁의 홈마, 두 또라이는 이제 완연한 의사 두 명이 되어 부리나케 움직이고 있었다.

“검사는 안 힘드셨어요?”

“아, 네. 덕분에.”

“사실 몇 가지 검사는……. 중복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이걸 또 왜 하나 싶으실 수 있는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할 수 있거든요. 특히 지금 환자분은 벌써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꽤 세게 들어간 게 있어서 이 치료를 받으면서 경과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네. 물론이죠.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환자 입장에서만 보면 사실 수혁이나 이현종보다 더 좋은 면도 있었다.

둘 다 사근사근한 면모가 아무래도 두 부자보다는 낫지 않던가.

애초에 수혁이 그런 게 좀 부족하기도 하고.

안대훈은 그러한 면을 보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인 만큼, 더더욱 사근사근해져만 가고 있었다.

“양측 폐에 역시나 흉수가 차 있군요.”

“꽤 많은데……? 거기에서는 그런 거 언급이 없었어?”

“네.”

“진행했다?”

“네.”

“흐음. 혈액 검사는?”

“곧 나올 겁니다. 일단 나올 때까지 저거나 빼 주죠. 환자분이 그렇지 않아도 누었을 때 숨 차 하는 게 이거 때문인 거 같아요.”

“어어. 네가?”

“네, 저 이런 거 잘합니다.”

거기에 더해 지식만 아니라 술기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가. 전천후 고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안대훈은 급히 환자와 보호자에게 현재 상황을 말해 준 후, 환자를 일으켜 앉혀서 바늘을 푹 하고 찔렀다.

“으음.”

“좀 뻐근합니다.”

안대훈은 초음파로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면서, 물을 쭉 뺐다.

“이거 검사도 나갈 거니까, 결과가 나오면 아무래도 진단에 도움이 될 겁니다.”

“네네. 으음.”

말이 바늘이지 거의 뭐 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굵은 것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대화를 잘 이어 나가고 있었다.

환자가 대단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안대훈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귀신같이 찔렀으니까 환자가 그나마 편안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야, 결과 나왔어.”

“아, 네. 잠시만.”

안대훈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흉수를 제거한 후, 조태진의 부름에 응했다.

결과가 나왔다곤 하지만 다 나온 건 아니었다.

빨리 나올 수 있는 것만 나왔다.

“음. 이거……. 더 심해졌는데요?”

“그래? 범혈구 증상이 심해졌어?”

“네.”

“치료를 하고 있는데 이렇다, 이거지?”

“네. 뭐……. 면역 글로불린을 추가해 볼 수도 있겠지만…….”

“SLE가 확실하다면 말이지. 하지만 좀 이상해. 열도 하나도 안 내리고, 증상은 심해지고……. 소견도 악화되고.”

“끄으으으.”

“이거 환자냐?”

“아닌데요?”

“누구…… 아.”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수혁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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