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8화 교수님 냄새나요 (3)
“어어, 수혁아!“
조태진은 누누이 말하지만 수혁의 이런 꼴을 생전 처음 보는 형편이었다.
늘 깔끔하다거나, 빈틈이 없다거나 한 애는 아니긴 했다.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지.
일단 입고 있는 옷부터가…….
‘뭐야, 이거. 부직포야?’
돈도 많은 애가 정장은 이런 걸 대체 왜 입었을까?
아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워, 누워. 너 그러다 넘어진다.”
“환자…… 얘기하는 거 아니었어…… 끅. 요?”
“어……. 근데 지금은 네가 환자 같거든? 어후.”
술 냄새가…….
아까 거기 있던 애들한테 들어 보니까, 많이 먹긴 했는데…….
그 많이 먹었다는 게 맥주 석 잔이지 않았나?
그것도 나름 교수한테 배려한답시고 500cc가 아니라 330cc로 먹였다고 했으니 1리터였다.
그거 마시고 변기통에 앉았으니, 벌써 1시간도 더 지났단 얘긴데.
‘양조장인가?’
혹시 효모가 같이 들어가서 그동안 마신 물도 발효시키고 있나?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진한 냄새가 마구 풍겨 오고 있었다.
“일단 교수님. 수액 더 맞으시고…….”
안대훈은 이게 두 번째이긴 했다.
그때도 만만치 않게 만취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단을 해내는 걸 보기도 했고.
하지만…….
‘어우…….’
‘냄새…….’
사실상 수혁교의 핵심 멤버이자, 단둘뿐인 진정한 의미의 홈마는 눈빛을 교환하고는 자꾸 끄끄거리다 의미 있는 말 같은 걸 내뱉은 수혁을 누였다.
“으음. 꿈인가……?”
다행히 수혁도 제정신이 아닌 데다가, 주사가 지랄 맞은 편은 아니어서 대체로 잘 수습이 되었다.
물론 바로 옆에 누운 환자와 보호자의 눈에서 존경심 또는 기대감 같은 것이 바사삭거리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하여간…….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할까요?”
“어디까지 했더라. 아, 하도 술 냄새가 나니까 나도 취하는 거 같아.”
“그러니까요. 근데 원래 좀 저러시긴 합니다.”
“술 먹지 말라고 하자. 귀엽긴 했는데, 저래서 저거 잘되겠어?”
“그렇죠. 그건 그래요. 아무튼…… 아까……. 아, 그래. 약을 쓰는데 악화되고 있다, 이런 얘기 중이었습니다.”
“그렇지.”
둘은 간신히 수혁의 눈을 감겨 놓고는, 환자가 잘 보이는 지점에 있는 컴퓨터 앞에 서서 얘기를 이어 나갔다.
확실히 이렇게만 보면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서 SLE가 아니냐? 라고 단언을 하기엔…….
아직 쓸 수 있는 약들이 좀 있었다.
“아까 네 말대로……. 단기간에 면역 글로불린과 메틸프레드니솔론 펄스 치료를 해 볼 수 있긴 하지.”
“1000mg 때리자고요?”
“3일만.”
“흐음……. 근데 그 정도 때리면……. 단기적으로는 다른 질환이 원인이었어도 호전을 보일 거 같은데……. 추론에 오류를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조태진은 대화를 하다 말고 잠시 안대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진짜 펠로우랑 대화하는 게 맞나 싶어서 그랬다.
건방져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그냥…….
추론의 깊이나 범위가 차원이 달랐다.
‘얘도……. 수혁이랑 또라이 짓거리에 가려져서 그렇지, 확실히 천재는 천재야.’
확실히…….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었으면 모를까, 우리는 염두에 두고 있잖아. 게다가……. 환자 상태를 봐. 당장 어떻게 될 건 아니겠지만. 만약에 림프종이 맞다면 앞으로 해야 할 치료가 만만한 게 아니라고. 지금보다는 어떻게든 컨디션을 끌어 올려야 해.”
“그렇긴 하죠. 하긴 그 약을 써서 단기적으로 호전을 일으키고, 그 시간 동안 확진을 할 수 있다면…….”
“그렇지.”
“근데 만약 림프종이라면 어떤 걸 의심하시는 거예요?”
안대훈의 말에 조태진은 끄응 하고 신음부터 흘렸다.
하도 종류가 많다 보니…….
당장 뭐가 막 떠오르진 않아서 그랬다.
뭐, 그렇다고 영영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건 또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조태진도 수재고, 또 지금껏 쉬지 않고 진료를 해 온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논 호지킨 림포마 중 하나겠지. 그중에서도 아마……. 이런 식의 증상을, 그러니까 전신 증상을 동반한다면 B 세포와 연관이 있을 거야.”
“그럼 결국, 제일 흔한 건 미만성 거대 B 세포 림포마(DLBCL)겠군요.”
“그렇지. 근데 그것도 몇 가지로 나뉘긴 해. 하지만 딱 노려서 검사를 해 볼 수 있지.”
조태진의 말에 안대훈의 눈이 환자를 향해 돌아갔다.
조태진이야 애초에 그쪽을 보고 있었으니 둘 다 그쪽을 보고 있다, 이 말이었다.
“제가 만져 봤을 때 비장 종대가 있었습니다. 압통이 아주 전형적이지는 않았지만 있었어요.”
“있었지. 그리고 이제 범혈구 감소증 중에 혈소판은 수혈이 필요할 수 있어 보일 정도로 악화가 됐어.”
“그럼 치료를 시작하면서……. CT를 찍어 볼까요.”
“좋지.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여. 만약 림프종이라면 몇 개월 정도 지체되는 것도 위험한 일이야.”
“그렇죠. 그거 감안하면 CT 정도는……. 기회비용으로 지불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림프종.
혈액암.
항암제에 참 잘 듣는 암이긴 한데, 때를 놓치면 진짜로 위험해지기 마련이었다.
진행이 워낙에 빨라서 그랬다.
대개의 경우 발견 당시에 이미 전이가 있는 게 보통일 정도였다.
“환자분, 일단 입원하시고요. 오늘 밤에라도 시간이 되면 검사를 좀 더 진행해 보겠습니다. 자다가 깨실 수 있는데, 괜찮을까요?”
“아, 네.”
“네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공격적으로 나가도 된다, 이 말이었다.
해서 안대훈은 그런 말을 한 후,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수혁은 끅끅 소리도 없이 완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잘 시간이 아닌데 알코올에 의해 잠이 든 것인 만큼 선잠이긴 하겠지만…….
감히 깨울 수가 있겠나?
깨워서 뭐…….
“야, 우리 수혁이 어디 갔어. 난 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안 오나 했네.”
그때 이현종이 응급실에 들어섰다.
하는 짓만 보면 영락없는 응급실 진상 아저씨지만, 알고 보면 전임 원장이다 보니 막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그러다 갑자기 응급실이라고 해서 아오……. 진짜 놀랬네.”
뒤에는 현직 원장이 서 있었다.
그것도 평소와는 달리 눈에 핏발이 선 채였다.
“네가 연락 안 드렸어?”
“저는 교수님이 드린 줄…….”
“아.”
“아.”
조태진과 안대훈은 눈을 마주한 후,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환자 침대를 끌고서였다.
지금 마주쳐서 좋을 게 없지 않겠나.
응급실이 넓어 봐야 거기서 거기인 만큼 들키는 게 정상이겠지만, 저 둘이 상대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형!“
“왜.”
“저기!“
“아이고, 왜 혼자!“
수혁이만 보일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둘은 수혁이를 향해 내달리고는, ‘어찌 이런 일이!’만 외쳐 대고 있었다.
이렇게 잘생기고 술도 못 마셔서 귀엽기까지 한 애를 혼자…….
조태진과 안대훈이 불충하다느니.
반골의 상이라느니.
그따위 소리를 하고 있었다.
드르륵
그사이 빠져나온 안대훈과 조태진은 마침 걸려 온 연락에 검사실로 바로 향할 수 있었다.
풀로 돌아가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료센터라고 하니까 사정을 봐준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쪽에서 워낙에 성과가 좋다 보니, 병원 차원에서 말이 없어도 밀어줄 판인데 원장단도 싸고돌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 환자분. 음. 의식이 있으시네요?”
“네. 열이 좀 있긴 한데……. 바이털이 막 흔들리고 있진 않습니다.”
“네네.”
분당 호흡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긴 했는데, 그것도 안대훈이 아까 흉수를 뽑아 놓은 덕에 호전된 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괜찮다는 말을 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여긴 태화였다.
진짜로 숨넘어가는 게 아니라면 대강 괜찮다고 칠 수 있었다.
그런 환자가 워낙에 많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아…….”
“볼까요.”
“그래.”
“으음.”
곧 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말마따나 환자 의식이 멀쩡하다 보니 검사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범위가 가슴부터 해서 복부 그리고 골반까지이다 보니 전체적인 시간이 늘기는 했는데, CT라는 게 MRI랑은 다르지 않나.
조영제 넣기 전 영상은 빠르게 휙휙 넘어오고 있었다.
“으음.”
“잘 모르겠네.”
조영제가 없어서 그렇겠지……?
라는 말을 하면서 둘은 넘어오는 영상을 살폈다.
보고 또 봐도 잘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이상하네…….’
암만 림프종이 혈액암이고, 혈액 세포에서 기원하는 암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만한 수준의 증상을 일으킬 정도라면 어디에라도 자리를 잡아서 자라고 있어야 했다.
“SLE인가……?”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차라리 잘된 거 아닐까요?”
“잘되긴. SLE도 골 때려 이거. 괜히 B 세포 림프종이랑 헷갈리겠어? B 세포가 맛탱이 간 병이라……. 질환 경과도 환자마다 너무 다르고…….”
“하긴. 이걸로 돌아가시는 분도 있죠. 그래도 림프종보다는……. 낫지 않나요?”
“아, 그건 그렇지. 우리 과가 괜히 고생하겠냐.”
“아, 약 들어가네요.”
슈우욱 소리와 함께 조영제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차츰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버려 두고 있던 둘의 눈이 다시금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
조영제는 좀 다르지 않나?
영상 해상도 높이라고 위험을 감수하고 주는 약이니만큼 기대하는 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넘어온다.”
“가슴 쪽은……. 그냥 머……. 물이 찼던 흔적 정도 있네요.”
“그렇지. 음……. 어……?”
“이거…….”
“비장 쪽!“
비장의 비대가 있지 않았나?
이에 대한 언급은 이전 병원에서도 하긴 했더랬다.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의 비대가 있다고.
허나 지금은 더 커진 상황이었다.
범혈구 감소증이 더 진행했으니만큼 비장이 커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급하다고 판단이 되었다.
해서 안을 보고 싶기는 했는데……
“파열……?”
“파열이라니. 종괴의 흔적은……. 제 눈으로는 안 보이는 거 같은데요.”
“그보다는 이쪽. 침윤이 있어. 미만성으로!”
“이거……. 이건 SLE가 아니잖아요!”
“그래. 그렇지. 이건……. 이건…….”
종괴를 이루지 않고 이딴 식으로 침윤을 일으키는 놈.
림프종에서도 예후가 극악을 달린다 해도 좋을 만한 놈이었다.
항암제에 반응을 잘 보이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잘 보이긴 하는데…….
이따위로 번지니 일단 진단이 너무 어려웠다.
이번에도 CT 또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진단을 했겠나.
“이건……. Intravascular LBCL이야. IVLBCL이라고 하는데…….”
“공부만 했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이런 양상이구나.”
“확실하진 않아. 검사를 더 해 봐야지. 하지만 맞는 거 같아. 나도 실제로 보는 건 두 번째야. 만약 이게 맞다면. 야, 너 잘 불렀다. 오늘 안 보고 계속 SLE 치료받았으면……. 이 환자 몇 개월 뒤에는 정말 손도 못 써 볼 수준이었을 거야.”
“다행이군요.”
둘이 이렇게 환희에 찬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수혁이 눈을 떴다.
그러곤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현종, 신현태에게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눈을 감았다.
“CD 20…….”
“뭐야.”
“CD 20장……?”
“누구 CD. 요새 CD 듣는 사람이 있어?”
“아이돌 팬들은 20장씩 사던데요?”
“야, 수혁아. 누구? 내가 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