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89화 (989/1,303)

989화 교수님 냄새나요 (4)

“아유. 이 새끼 이거.”

“아들이래 놓고 새끼래.”

“내 새끼지, 뭐.”

“하여간……. 이상한 소리 하다가 또 자네.”

이현종과 신현태는 CD 20이라는 단어 하나만 달랑 남기고 다시 뻗어 버린 수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맛탱이가 가 있었다.

의사씩이나 되어 가지고 이따위 말이나 하고 있는 게 어이가 없긴 했지만…….

“아무튼, 자식새끼 소원이 CD 20장이라는데……. 안 들어줄 수는 없지.”

“그럼 형 10장, 나 10장 해. 근데 대체 그룹 이름이 뭐지?”

“SES? 핑클?”

“하아……. 형…….”

신현태는 그분들 이제 활동 안 한다는 얘기를 해 주었고, 이현종은 잠시 충격에 빠졌다.

“정말이야?”

“아니, 뭐 이런 걸 지금 설명해 줘야 해? 그럼 뭐 아이돌이 천년만년 하냐?”

“아이돌이 우상인데 그럼 우상 숭배를 적어도 100년 정도는 해 줘야지.”

“그런…… 그런 관점으로 보면 또……. 그럴싸하긴 한데…….”

신현태는 확실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던 거 같기도 했다.

몇 안 되는 아이돌 그룹이 대한민국 전체를 갈라 먹고 있던 시절.

하지만 지금은…….

‘우리 애들만 해도 어? 의리가 없잖아.’

어느 날은 이 오빠가 좋다고 했다가 이제는 이 오빠가 좋다고 하다가…….

“하여간, 누가 인기가 있나?”

“소녀시대 정도 아닌가……?”

하여간,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간호사 하나가 도무지 참아 줄 수가 없다는 얼굴로 다가왔다.

생긴 건 소도둑놈처럼 생겨 가지고 나름 섬세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이였다.

그에 더해 환자 불편 접수도 맡아 주고 있어서 응급실 내의 입지가 상당했다.

덕분에 잠시 시간 내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다.

“저기, 교수님들.”

“아, 깜짝이야.”

“경찰서인 줄 알았네.”

“상처받습니다……. 저…….”

“근데, 왜.”

“그러니까 왜 그래, 갑자기.”

거기에 더해 이 두 괴짜 교수도 수혁이 때문에 응급실에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소녀시대라뇨……. 그분들도 요새 활동 안 해요.”

“그, 그래?”

“네. 요새 아이돌 춘추 전국 시대인데요. 장난 아닙니다.”

“그렇게 많나……?”

“네.”

“그럼 우리 수혁이가 좋아하는 그룹을 어찌 알지.”

이현종과 신현태는 가뜩이나 준엄하게 생긴 데다가 학회 때문에 정장을 풀로 장착한 주제에 걸 그룹 때문에 심각해졌다.

끼어든 간호사도 얼굴이 꽤 심각하게 생겼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그저 환자 얘기나 하고 있는 줄 알 터였다.

애초에 신현태나 이현종 모두 응급실 사람들에게 쉬운 사람일 수가 없어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런 오해가 중첩되는 와중에,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봤을 때 교수님은 살짝……. 뉴진스 스타일입니다.”

“뉴진스……?”

“그게 뭐야.”

“뭐냐뇨. 요새 제일 핫한 그룹인데.”

“얼굴 붉히면서 말하지 말게……. 속 메슥거려.”

“이거 순 지 취향 고백하는 거 아닌가? 나 진짜 처음 들어 보는데. 나는 나름 고등학생 학부형이라고?”

“아닙니다! 진짜로. 아, 교수님 폰을 보시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걸 그룹으로 배경을 해 놨을 거 같은데.”

이것 봐라……?

수혁이 폰을 몰래 본다고?

둘은 솔깃한 얼굴로, 수혁을 내려다보았다.

“으어어…….”

아까 일어나 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지경이면 깨어나 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 거 같았다.

꽐라 그 자체.

술 취함의 형상화가 그들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뭐……. 좋은 뜻으로 보는 거니까…….”

“잠깐 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두 분 교수님들……. 얼굴 붉히지 마십쇼…….”

간호사는 아까 이 양반들이 느꼈을 감정을 느끼며 명치께를 어루만졌다.

나이도 육십 넘은 양반들이 다른 교수 폰을 넘보면서 얼굴이 붉어지다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가운데, 이미 폰은 둘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있어 봐.”

“가만있자……. 비번이…… 비번이 없네?”

“비번이 없어요? 아니, 이 교수님 큰일 날 사람이네.”

“배경이…… 배경이……. 아이고, 우리 수혁이.”

“왜. 아…….”

“두 분 교수님, 울지 마세요.”

수혁의 배경 화면은 기본 화면이 아니었다.

대개의 대학 병원 교수들이란 삭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니만큼. 배경도 기본이기 마련인데 수혁은 아니었다.

사진이 떠 있었다.

딱히 보기 좋은 사진도 아니었다.

언젠가 병원 뒷골목 호프집에 가서 찍은, 다들 얼굴이 불콰해진 채 찍은 단체 사진.

심지어 수혁은 눈도 감아서 가뜩이나 모자라 보이는 얼굴이 진짜 모자라게 나왔다.

“근데 이런 사람이 걸 그룹을 좋아하나……?”

유튜브 구독 목록이나 시청 기록을 보면 백발백중이라는 의견하에 틀어 봤더니, 나오는 게 기껏해야 시청자랑 잡담하며 토크한다거나, 남자 혼자 여행 다니는…….

뭐랄까?

연애하는 데 도움이라곤 절대로 안 될 거 같은 것들만 있었다.

“침국지는 뭐야?”

“나도 모르지……. 5시간이 넘네. 좋아요 눌러 놨어, 근데.”

“아무리 봐도 걸 그룹이라고는 1도 모를 거 같은데요?”

“근데 그럼 CD 20은 뭔데?”

“그러니까. CD 20장이 아니란……. 아니, 잠깐만. 얘는 수혁이잖아.”

“어……. 왜 그러세요?”

연애가 아니라, 그냥 딱히 여자에 관심도 없어 보였다.

아니면 상대측에서 너무 관심을 안 보이니까 이쪽으로 취향도 틀었거나.

하여간…….

간호사의 결론에 힘입어 이현종, 신현태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추론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이건 수혁이지 않나.

평범한 30대 초반의 건강한 남성이 아니라…….

의학에 미쳐 버린 인간이었다.

“CD 20이……. 의학적으로도 쓰이는 용어지.”

“애가 저렇게 맛탱이가 간 상태에서조차 의학 용어를 얘기한다고?”

“술에 취한 건 전두엽 억제 작용이 풀린다는 걸 의미하지, 그렇지?”

“으음. 의학적으로 보면 그렇긴 하지.”

물론 여기 둘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미친 사람들이었다.

‘제정신들이 아니구만.’

해서 간호사는 흥미를 잃고서 뒤로 빠졌다.

꽤 덩치 큰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럼 평소 본능이 강해진다고.”

“그렇지. 그래서 술 먹고 이상한 짓을…….”

“수혁이의 본능은 어떨까. 우리 수혁이가 자나 깨나 생각하는 게 뭘까.”

“진료……. 아니면 의학이겠지……?”

살짝 슬퍼지긴 한데…….

신현태는 아무리 노력해도 방금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반박할 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확실히 수혁은 명의병 중증에 걸려 버린 사람이지 않나.

모르긴 해도 자기 인생보다 의학을 더 중시하고 있을 게 뻔했다.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대개의 대학 병원 교수들이 젊을 땐 그러니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수혁이 그중에 정점에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놈이 말하는 CD 20이라는 건……. 면역 화학 염색일걸.”

“누굴 염색하는데…….”

“그게 문제네. 대체 누굴 염색해? 이놈이 보고 있는 환자가…… 이상하네? 이런 식으로 염색할 환자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형 환자도 아닌데.”

“수혁이 환자야 다 알지. 서로서로 다 알아, 우리 센터는.”

“약간 소름이 돋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띄워 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CD 20장보다는 면역 화학 염색의 CD 20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서 환자를 띄운 둘은, 오늘 입원한 환자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응급실 통해 입원한 환잔데, 공교롭게도 수혁과 입실 시간이 거의 같았다.

“이잉…….”

“옆에 있던 환자가 입원한 건가……?”

둘은 그제야 환자 침대가 비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옆에서 환자에 대해 듣고 CD 20 염색을 떠올린 건가?

에이, 말이 되나?

그런 생각들이 둘의 머릿속 이쪽저쪽을 오갔다.

거의 망상에 가까운 추론이었지만, 역시나 상대가 문제였다.

이수혁…….

“환자 어떤 환자인지 함 보자.”

“어, 형. 아니……. 이놈이 이게 대체 어찌 된 놈이야?”

신현태는 나름 수혁이 연애도 하고 장가도 가는 미래를 제일 진지하게 바라고 있던 사람으로서,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술 취해서도 이따위 생각만 하는 놈을 무슨 수로 연애하게 만든단 말인가.

‘그때 눈은 왜 초롱초롱 빛냈어!’

이건 그냥 이현종 업그레이드 버전이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를 띄운 둘은, 안대훈이 작성한 기록을 면밀히 살폈다.

이현종, 이수혁의 제자답게 검진 및 과거력 등을 아주 상세하게 파악하는 안대훈이 쓴 기록이기에 둘은 그냥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파악이 가능했다.

“저쪽에선 SLE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쪽에서는 림프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네.”

“조태진이 끼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확실히 이 기록을 보니까 추론이 그쪽으로 튀네.”

“무엇보다 CD 20. 이거 림프종 종류 분류하는 데 쓰이는 염색 아냐?”

“그렇지.”

“그럼 지금 당장 골수를 뽑자, 이건가?”

“전에 뽑았다잖아. 뭐하러 또 뽑아. 그거 달래서 염색하면 되지.”

“으으음.”

궁금해졌다.

궁금해서 죽을 거 같아졌다.

서로가 서로를 넌 의학에 미친 사람이야 라고 매도하고 있지만, 몸은 솔직하다 보니 벌써부터 입이 바짝바짝 말라 가는 느낌만 들었다.

이현종만 그런 게 아니라 신현태도 그랬다.

‘이거 지금 전화해서 염색해 보라고 하면…….’

‘둘이 어떤 얼굴이 될까……?’

거기에 더해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이 부쩍 기를 펴고 일어서고 있었다.

“너…….”

“형…….”

“역시?”

“그렇지.”

이심전심이랄까?

둘이 어떻게 지금껏 우정을 유지해 올 수 있겠나.

결국, 똑같은 놈들이라서 그랬다.

둘은 합심한 채, 안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대훈, 조태진이 마침 조영제 쓰고 넘어오는 영상을 지켜보면서 경악에 빠지고 있을 때였다.

“아, 네. 센터장님.”

“어어. 지금 환자 하나 보고 있나?”

“어……. 네.”

수혁이 무단으로 데리고 온 거로 난리 법석을 피우려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옆에 있던 조태진도 의외란 얼굴이 된 채 귀를 기울였다.

“그 환자……. 골수 달라고 해서 CD 20 염색해 보지.”

“네에?”

“어어?”

안대훈도 뭔가를 떠올리긴 했지만, 아주 구체적인 무언가를 떠올리진 못했다.

하지만 노상 이쪽 질환만 파던 조태진은 좀 달랐다.

‘뭐야. 설마…… IVLBCL 을 떠올리고 있는 건가……? 대체 어떻게……? 기록만……. 보고?’

이현종.

역시 괴물인가?

“나랑 현태랑 보니까 그게 꼭 필요할 거 같아서. 지금 당장 병원 전화해서 퀵으로 쏘라고 해.”

“어……. 퀵으로요? 주말 지나고…….”

“갈! 림프종이면 시간이 없어! 네가 그러고도 대 통합진료센터의 펠로우냐!“

“어……. 네네. 알겠습니다. 퀵…… 퀵으로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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