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90화 (990/1,303)

990화 교수님 냄새나요 (5)

‘아……. 씨……. 선 넘네…….’

강서의 3차 병원.

당직 레지던트 의사는 연락을 받자마자 쌍욕부터 내뱉었다.

물론 상대가 태화 의료원 사람일 수는 없었다.

거기는 어려운 환자 있으면 받아가 주시는 갑 중의 갑이신데 어찌 욕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아시잖아요. 저희 내과랑 응급실이 태화 신세 엄청 지고 있습니다.

응급실 레지던트의 말이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요즘 들어 엄청나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들었다.

막말로 레지던트 중에 자기 가족이 만약 괴질에 걸렸다고 판단이 되면, 태화로 보낼 생각 없는 친구들이 오히려 더 적을 터였다.

사람이 많이 몰라도 보면 아무래도 두 걸출한 교수가 직접 보는 경우가 줄어들 테고 그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딨더라?”

아무튼, 그러한 연고로 인해 병리과 당직의는 수술방 동결절편 검사실에서 나와 검체 보관실로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주말에 검체를 퀵으로 보내 달라고 하는 놈들이 이해가 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해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전설의 수혁 십자가 사진이 떠올랐다.

태화의 병리과 교수가 국제 학회의 한 강의실에서 열리는 병리 사진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었는데…….

솔직히 그 병리 사진 전시회라는 게 별게 아니지 않았나?

인체 조직에서 유래한 사진 가지고 이게 구름 같지 않습니까, 이게 사람 얼굴 같지 않습니까 뭐 이딴 소리나 해 대는 모임 아닌 모임이었다.

‘그건……. 확실히 몰타 십자가였지.’

허나 그 사진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자애로운 미소로 괴질을 진단해 내린 수혁과 그 뒤로 보이는 몰타 십자가는 무신론자 아니라 유물론자에게도 혹 세상엔 신이라는 존재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 한 사진이었다.

실제로 그 병리과 교수는 수혁교인지 나발인지 하는 종교에 투신했다고도 하고.

“아, 여깄네.”

하여간, 당직의는 이리저리 살피고 다니다가 이내 검체를 찾아냈다.

라벨을 보니 확실히 SLE로 진단했던 그 환자가 맞았다.

‘이걸……. 왜 이 시간에 달라고 하는 거지……?’

꽤 어려웠던 환자이기는 했다.

나이나 이런 것들이 SLE의 전형적인 증세와는 딱 맞아떨어지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다학제를 열었었고, 당시 들어왔던 내과나 영상의학과의 의견을 들었다.

‘SLE 같던데……?’

그 결과, SLE로 진단이 되었다.

뭐, 이 병원이 태화 의료원만큼 커다란 병원이 아닌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의 수준이 그렇게 떨어질까?

그럴 수는 없었다.

애초에 학회라는 게 그런 격차를 줄이라고 열리는 것이기도 하니까.

일단 3차 병원의 대학 교수쯤 되면 다들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재 소리는 들을 만한 사람들이고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랬다.

‘이건 좀 지켜봐야겠네.’

예전 같았으면 X발 X발 하고 욕만 했겠지만, 이제는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의 위력을 알아도 너무 잘 알기에 병리과 당직의는 의문만 담아 둔 채 검체를 보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에, 선생님. 걱정 마십쇼.”

퀵 기사가 검체를 담고도 떠날 때쯤, 태화 측 사람도 집을 나서고 있었다.

“아니, 뭔 금요일 밤에 다시 나오래?”

뒤에 서 있던, 이제 애들 다 자니까 좋은 시간 보내자고 했던 아내가 짜증이 그득한 얼굴로 말했다.

교수도 짜증이 나기는 매한가지였다.

애들이란 안 잤으면 하는 순간에는 자고, 잤으면 하는 순간에는 두 눈 말똥말똥 뜨고 있는 존재 아닌가.

오늘만은 예외로 두겠다는 듯 일찍부터 잠이 들어 와인 한잔 기울이며 분위기 잡고 있었는데 그만 전화가 와 버렸다.

-너무 급한 건인데, 좀 와 줘.

이현종이었다.

-저, 교수님. 오늘은 제가 아내랑 시간 보내기로…….

-나도 아내 있어!

-네?

말이 잘 안 통했다.

미친 사람 아냐, 이거? 싶었던 순간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 미안합니다.

신현태였다.

그래, 원장님은 그나마 얘기가 통하지.

암, 그렇지.

하고 있는데 이 인간도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딱 잘난 척하기……. 아니, 아니지. 어려운 환자 진단해 내기 직전이거든? 빨리 와서 그 순간에 동참해 주면 좋겠는데?

요새 좀 이상해졌다는 얘기가 되게 많기는 했다.

노망이 났다는 소리도 있고…….

감히 원장님에게 그게 무슨 망발이냐는 의견에 동참하는 축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현종 억제기였던 신현태가 박살이 났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어쩌겠어……. 전임 원장, 현직 원장님이 오라는데…….”

“원장이면 사람은 밤 열 시에 불러도 돼?”

“환자 얘기래…….”

“거참……. 거기 의사가 당신 하나뿐이야?”

“림프종 의심될 때 의지할 만한 의사는 나뿐이긴 하지.”

“음……. 섹시한데?”

“어. 얼른 갔다가 올게. 기다리고 있어.”

“응.”

교수는 진짜 나는 듯이 갔다 올 요량으로 차도 아니고 택시에 타서 달렸다.

주차할 시간도 아까웠다.

“어 왔어? 마침 잘됐네. 여기.”

“이건……. 아, 이게 그 병원에서 보낸…….”

“응. 이거야. CD 20을 염색해 봐.”

“네? 아니……. 뭐 의심된다고 하면 저희가 거기에 맞춰서 염색을 해 드리는 게 보통인데요.”

“아니, 우리가 정했으니까 해 봐. 검체 많잖아. 어휴, 많이도 뺐네.”

“그…….”

병리과 교수는 기대와 조금 다른 반응에 놀라긴 했지만, 하여간 사람이 많기도 하고 서둘러야 하기도 해서 부리나케 움직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은 병리과 사무실에 내과 의사만 지금 넷이 와 있었다.

‘이상하네? 이럴 때 이수혁 교수가 빠지다니. 몸이 안 좋나?’

의외로 수혁이 없는 게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분부하신 대로 움직였다.

검체도 충분한데 뭐 어렵겠나.

“음.”

“으으음.”

“으으으으음.”

예전 같았으면 병리과에서 하는 일은 그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볼 수 없었을 터였다.

허나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른 이들도 대강 다 볼 수가 있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알아볼 수 있다는 얘긴 아니었지만.

‘이수혁이 있었다면……. 알아봤겠지.’

병리과 교수는 좀 아쉽단 생각과 함께 작업을 이어 나갔다.

작업이라고 해 봐야 처음에만 좀 바쁘지, 시약 다 넣고 나면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머리카락 염색만 해도 시간이 걸리는데 세포 염색이야 오죽하겠나.

“자, 이렇게 두고……. 좀 기다리면 됩니다.”

“어어. 근데 어디가.”

“아니, 이제 저는 할 거 다 했어요.”

“같이 기다리지, 왜.”

미쳤나, 싶었다.

이 사람들은 가정이 없나 싶기도 했고.

‘아니……. 이현종 교수님 따지고 보면 신혼 아닌가……?’

신현태도 금실 좋기로 유명하잖아?

저러다 늦둥이 생기겠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조태진?

이 새끼야 뭐…….

‘얘는 이수혁 바라기이긴 해.’

아무튼.

“그냥 기다리세요! 혹시 뭐 궁금하시면 당직의 부르시고. 이제부터는 레지던트 혼자서도 되니까!“

병리과 교수는 도망쳐 나왔다.

마음이 급해서 보통 나다니는 길이 아니라 응급실을 통해서 나왔는데, 웬 양복 입은 진상이 주사를 부리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태화의료원쯤 되는 응급실로는 119나 경찰들도 단순 주취자를 끌고 오진 않아서 그랬다.

원래 다니던 암 환자를 비롯한 중증 환자들만 해도 차고 넘치는 병원이니…….

“CD 20! IVLBCL!“

어휴 소리가 절로 나왔다.

미련한 사람들이 왜 시큐리티를 안 부르고 직접 대응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고.

[수혁.]

[수혁?]

[마음은 알겠는데…….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얼굴이 그 모양인데 누가 듣겠어.]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레지던트도 참 곤란했다.

단지 교수라서가 아니라, 이 인간이 도움을 많이 주지 않았나.

사람이라면 몇 번은 참아야 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참아야 하나 싶기도 한데…….

“교수님. 뭔 소리예요, 대체.”

“아까 환자.”

“환자요? 교수님이 환잔데……. 어후, 냄새. 할돌이라도 찌를까?”

레지던트는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옆에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간호사만 동의를 해 주면 안정제를 주겠단 기세였는데, 아쉽게도 간호사는 수혁교인이었다.

“무슨 무엄한 말씀입니까.”

“아니, 무엄하다니. 환자들이 다 보는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옮기죠.”

“어디……. 어디로요?”

“센터로.”

“우리 사람 부족……. 왜 가요. 어디가. 아니 나는 왜…….”

“받은 은혜가 몇인데 이렇게 사람을 버려요. 술 좀 먹었……. 아우, 많이 드시긴 했네. 무슨 양조장 냄새가 나.”

“아니, 그러니까…….”

간호사는 급기야 수혁을 끌고 나왔다.

수혁은 술도 취한 데다가, 원래도 좀 팔랑거리는 종이 인간이라 혼자서도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나름 덩치 좋은 사람들에게만 가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된 응급실 레지던트까지 합세하자 수혁은 그야말로 유모차 탄 아기처럼 질질 끌려가야만 했다.

“어휴, 저게 또 무슨 일이래.”

“쯔쯔.”

“의사들이 고생이라니까…….”

약간의 오해를 동반한 채 이동하던 그들은, 센터에 가기 전 암초를 만났다.

“이놈들! 감히 이게 무슨 무례란 말인가!“

어차피 병리과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게 생긴 마당이다 보니 간밤에 씹을 주전부리나 사 오라는 명에 편의점에 다녀오던 안대훈과 마주쳤다.

“그,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오라’는 무슨 ‘아니오라’예요! 조선 시대야?”

“어느 안전이라고 눈을 바락바락 뜨고!“

“제, 제가 업고 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이…….”

“이 사람? 우리 나름 친한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라니.”

“어허!“

한바탕 난리가 있었고, 안대훈이 수혁을 업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그렇게 수혁은 응급실에서 병리과 사무실로 옮겨졌다.

시간이 꽤 소요되었는데…….

염색이 어느 정도 진행될 만큼이나 시간이 지나갔다.

“으음.”

“으으음.”

“으으으음.”

“이거……. 아무래도 좀…….”

아까랑 확실히 달라진 거 같았다.

달라진 거 같긴 한데…….

이렇게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야, 태진아. 네가 봐도 모르겠어?”

“네? 저는 보통 레포트를 보지…… 사진을 보진 않죠.”

“헛공부하네, 이놈?”

“네? 아니…… 막말로 영상도 아니고 병리과 사진을 제가 어떻게 봐요.”

“그럼 이거 누구한테 물어봐?”

“병리과 교수한테 물어봐야죠.”

“아, 그렇지. 그놈 아까 얼굴이 벌건 게 좀……. 아내랑 보낸다는 시간이…….”

이현종도 이기자랑 신혼을 보내고 있지 않나.

특별한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이 말인데…….

아무리 이현종이 깡패라지만 그것까지 뭐라고 하기는 좀 그랬다.

“에이. 간 지 벌써 1시간도 지났는데요? 끝났지, 뭐.”

“끝나?”

“변강쇠도 아니고. 끝났죠. 집도 안 멀어요.”

“그런가……? 그래, 그럼. 전화해 보자.”

“영상 통화 해야죠. 그래야 이걸 보지.”

“혹시 못 볼 꼴 보면 어쩌나 싶어서 그랬지.”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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