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화 교수님 냄새나요 (6)
“왜요.”
“왜 밖이지?”
“네?”
“아냐.”
이현종은 분위기 좋다더니 왜 밖일까?
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위대한 진료 현장을 보여 줘야만 했다.
새벽이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치가 않았다.
“이거 봐.”
“응……? 아까 그거예요?”
“응.”
“어……. 됐네?”
병리과 교수도 별로 할 게 없었다.
분위기는 잡았는데…….
아니 끝까지 가긴 했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이 남을까.
잠은 안 오고 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됐다고?”
“네. 뭐……. 확실한 건 더 기다려 봐야 하는데, 사실 뭐 독감 검사 같은 거 해 보시면 아시겠지만…….이미 두 줄 뜨면 기다리는 게 의미가 별로 없죠.”
“하긴 사라지진 않으니까?”
“네. 염색한 것도 붙고 나서는 더 진해지면 진해졌지, 절대로 옅어지진 않아요. 벌써 이 정도면 확실하죠. 아니, 근데……. 이거 검체가……?”
“골수야.”
“골수.”
병리과 교수는 흐음-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거……. 어……. 림프종이에요?”
“그렇지.”
“SLE라면서요.”
“딴 데서는 그렇게 진단하고 약을 그렇게 썼지.”
“근데 림프종이네요? 게다가 이거……. 비호지킨 중에서도 꽤 빠른 놈인데?”
“그렇지. 그 말은…….”
“죽을 사람 살리셨네. 와.”
아까 다녀온 것이 덜 억울해지는 느낌이었다.
다 같은 의사라지만 엄밀히 말해서 분과별로 다 좀 역할이 다르지 않나?
병리과는 영상의학과와 같이 서비스 파트로 분류가 되고, 진단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환자를 고치는 과는 아니었다.
그게 좀 아쉬웠는데, 오늘은 뭔가 해낸 기분이 들었다.
‘근데 왜 이수혁 교수님이 안 오셨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벌써 전화기 따위는 어디에 버려뒀는지 한층 멀어진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취한 수혁이가 멀쩡한 조태진보다 낫네!”
그제야 이 진단에 이수혁이 어떻게든 연관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초지종을 더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연결이 끊어졌다.
물론, 현장은 점점 더 뜨거워져 가고만 있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cd 20이라고 수혁이가 그러더라고. 난 또 뭔 아이돌 cd 사 달라는 소린 줄 알았는데. 우리 수혁이가 그럴 애야?”
“아니죠. 본인이 아이돌인데.”
“응?”
“아뇨, 아닙니다.”
조태진의 말에 이현종이 이 새끼 또 종교적인 언행인가 해서 눈을 샐쭉하게 떴다.
물론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잘난 척해야 하니까.
본인도 본인이지만 수혁이 거 아닌가.
이럴 때가 제일 신났고, 이러려고 살았다.
“아무튼. 생각해 보니까 의학적인 용어 같더라고. cd 20. 골수. 느낌 딱 오잖아.”
“거기서 그걸 유추했다고요?”
“내가 수혁이 아빠니까.”
“아.”
“아무튼, 하하하. 이 환자……. 그럼 이제 사는 건가?”
밝은 텐션 그대로 말했더니, 조태진이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림프종.
암을 주로 보는 혈액종양내과에서도 림프종이나 백혈병은 좀 다른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환자가 너무 젋고, 경과가 너무 빠르고, 그래서 많이 죽었으니.
“그……. 최선을 다해 봐야죠.”
조태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저 의사들이 늘 하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 해도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더욱이 이현종도 한없이 가벼워 보일 때가 있긴 해도 실상은 심장을 보는 사람 아닌가.
하루가 멀다 하고 환자가 죽어 나갈 수 있는 센터의 센터장이었던 적도 있었더랬다.
“아. 그래.”
이현종이 그렇게 나오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까.
“환자한테 설명은 언제 하지?”
“늦었으니…… 내일 학회 가기 전에 깨워서 말씀드리죠.”
“비몽사몽인 건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새벽 1시 넘었는데요?”
“언제 그렇게 됐지?”
“환자 보다 보면 원래 뭐…….”
분위기도 가라앉았고, 또 학회도 가야 하니 자연스레 모임은 파했다.
유부남인 신현태, 이현종 그리고 조태진은 집으로 갔지만, 안대훈은 집에 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가 봐야 아무도 없는데 뭐 하러?
‘게다가 교수님도 여기 계시는데, 내가 어딜 가나.’
해서 안대훈은 곤히 잠에 빠진 수혁을 들쳐 업고 당직실로 향했다.
“응? 꿈이 아니었나?”
다음 날 수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대훈의 말에 대꾸했다.
뭔가 들리긴 했는데, 꿈결인 줄 알았기에 그랬다.
[꿈이라뇨……. 그런 꿈이 어딨습니까?]
‘난 또 네가 이젠 꿈에서도 공부를 시키는구나 했지.’
[어……?]
‘아니, 그러라는 얘긴 아닌데?’
[꿈이라……. 확실히 세뇌의 효과가 있죠. 지금의 저라면 얼마든지 실감나는 케이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고요.]
‘아니…….’
주고받은 공방에서 압도적인 손해를 본 수혁은 일단 몸을 일으켰다.
꿈에서 봤던 환자가 실제로 여기 있다면, 가서 봐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미쳤네. SLE로 오인된 환자를 하루도 안 지나서 림프종으로…….’
[그것도 IVLBCL입니다. 진단이 늦어져서 예후가 안 좋아지는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죠.]
‘이걸…….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진단했다 이 말인가.’
[네. 조는데 어쩝니까? 그래도 이현종이라 수혁 이름을 넣어 주긴 했습니다.]
‘너무 아깝네……. 이건 진짜 대박인데…….’
[근데 들어 보니 안대훈, 조태진 콤비도 어느 정도 둘이서만도 진단을 잘했던데요?]
‘그렇지. 그건 그래. 흐음……. 확실히 실력들이 늘었지?’
[그러니까요. 이게 진짜 쉬운 병이 아닌데.]
IVLBCL.
지독히도 어려운 질환 아니던가.
가뜩이나 림프종이라는 게…….
진단이 쉬운 질환이 아닌데, 이놈은 혈관 안에서 자라니 말할 것도 없었다.
“환자분.”
“아……. 네. 혹시 이수혁 교수님?”
“아, 네. 어제 입원하셨다고…….”
“어제……. 교수님도…….”
“아, 네. 하하. 정말 드문 일인데…….”
수혁은 미친 서브 홈마 놈이 찍어서 보내다 준 사진을 떠올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꿈인 줄 알았다고 해도……. 대체 왜 응급실에서 소리를 질렀을까 싶었다.
하여간, 수혁은 분위기를 잡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나쁜 소식 전하기이지 않나.
의료진들이야 오진된 케이스를 바로 잡았으니 기쁘겠지만, 환자는 자가면역질환이 암이 된 상황이었다.
“환자분의 질환은 혈관 내 B 거대 세포종입니다. 자가 면역 질환이 아니라, 림프종입니다. 그래서 썼던 약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림프종이라는 말이 낯서실 텐데……. 혈액 세포로 이루어진 암입니다.”
“아.”
그렇다고 질질 끌 수는 없었다.
당장 치료를 해야만 하니까.
시간이 없었다.
진행이 워낙에 빠르니까.
게다가 비장이 약간 터지지 않았나?
그건 그냥 두고 보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다행히, 항암제에 아주 잘 듣는 암입니다.”
“그……. 생존율은…….”
여기 오자고 주장했던 보호자의 말에, 수혁이 돌아보았다.
아들이라고 해도, 30대라 수혁이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수혁은 감히 그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하진 못하고, 그저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절반가량 됩니다. 이 아형의 경우에는 그보다 낮고요.”
“아.”
암.
50%도 안 되는 생존율.
두 모자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기 진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늦지는 않았어요.”
“아……?”
“그쪽 병원에서 일단 골수 검사까지 진행했고, 치료에 반응이 적을 때 여기 보내는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어제 보셨던 우리 안대훈 선생과 조태진 교수님이 간밤에 진단을 해낸 덕도 있고요. 이렇게 되면 생존율은…….”
수혁은 어제 조태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 우리 병원도 카티 세포 센터 만들긴 할 텐데……. 빨라야 내년이긴 해. 이 환자는 1차 항암이 안 들으면 아선에서 지금 진행 중인 임상 시험에 넣어 보자고. 정확한 적응증은 모르겠지만 다행히 LBCL의 아형이니까 넣어 볼 수 있을 거야. 병기도 그렇게까지 진행한 상태는 아니고.
의학은 진보하고 있었다.
불과 1, 2년 전이었다면 진짜로 절반이 안 될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70% 이상까지 이끌어 올린 상황이었다.
심지어 암 외의 합병증으로 죽어 나갈 가능성까지 대폭 낮춘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임상 시험 대상자가 되어 1차까지만 항암 치료를 하고 카티를 한다면…….
[1차로 끝나는 게 최고겠지만…….]
‘대안이 있다는 건 언제나 환영할 만한 일이지.’
[그렇죠. 이럴 때면 확실히 연구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 하지만…….’
[저나 수혁이나 임상에 최적화되어 있긴 하죠.]
‘그래.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자고.’
수혁은 남몰래 미소를 짓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70%까지도 봅니다. 낙심이 되시겠지만……. 기운 내시고 같이 달려 보죠. 필요하다면 다른 병원의 협조도 구해 보겠습니다.”
“아.”
“물론 암이다 보니 앞으로는 제가 아니라, 어제 봤던 조태진 교수님이 보시게 될 겁니다. 저도 종종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태진을 떠올린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이 다소 편안해졌다.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 보지 않았나.
진료에 얼마나 진심이었나.
종종 건네던 위로의 말 또한 힘이 되어 주었다.
좋은 의사 같았다.
믿을 수 있는, 그런 의사.
“그럼 가실까요?”
그렇게 회진을 마친 안대훈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켰다.
“그럴까. 아빠는 오셨겠지?”
“네. 아까 저쪽에서 회진 도셨습니다.”
“그래. 오늘 강의는……. 우리 센터는 어제 다 했나?”
“네. 아무래도 중요한 시간에 다 낑겨 넣어 놔서요.”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가르치는 것도 맛이지만…….
학회라면 모름지기 좀 날뛰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저번 주도 그렇고……. 우리가 주최하는 학회는 아무래도 질문도 못 하고.”
“그간 격조했죠.”
“음? 그건?”
그리고 안대훈은 수혁의 마음을 읽어 내는 데 진심인 사람이었다.
딱 저번 주 학회, 그러니까 통합의료학회 하면서 알았다.
우리 교수님 욕구 불만이구나.
그나마 강의로 잘난 척을 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저대로 그냥 두었다간 빵 하고 터질 거다.
해서 준비했다.
“교수님이 좋아하실 만한 파트 세션입니다.”
“호오……. 내분비에 감염에……. 자가면역, 암까지.”
“시간에 따라 동선도 짰습니다. 그게 별로시면 B안도 있습니다.”
“호오……. 이거 좀 바쁘겠는데.”
“학회는 바빠야 맛이지 않겠습니까.”
수혁은 당연히 카티 세포와 같은 최신 의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만, 결국, 본질은 임상 의사이지 않나.
당연히 케이스에 기반한 발표를 제일 좋아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약간의 허점이 있는 케이스 발표를 좋아했다.
그리고 대훈이 준비한 강의표는 딱 거기에 부합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는데……. 택시 탈까.”
“그러실 줄 알고, 통합진료학회 교수님들만을 위한 미니밴을 빌렸습죠.”
“너…….”
“하하하. 이거 놓으십쇼. 숨 막힙니다. 아니, 진짜로. 숨 막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