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94화 (994/1,303)

994화 월드스타 (3)

네가 해 보라고 했다?

나중에 딴 얘기 하기 없기다?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좌장을 바라보았다.

본디 좌장과 이현종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닌 만큼 표정만 보고 상대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불가한 일일 터.

‘어……. 나 왜……. 알 거 같아……?’

허나 좌장은 이현종의 퀴퀴한 속내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거 같은, 그야말로 찜찜한…….

한 가지 안타까운 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두 가지였다.

수혁이 입을 떼고 있었다.

“비후성 심근염증이 보이면 무조건 가족성 비후성 심근염증으로 진단하는 것이, 온당합니까?”

분명 방금 말했던 대로 질문이었다.

질문이기는 한데…….

어째 추궁하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고, 질문을 받는 당사자인 스튜어드가 제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오직 스튜어드만이 이 케이스의 흐름을 알고 있어서 그랬다.

말이야 장황하게, 니들이 평생 가도 볼 수 없을 케이스라고 했지만 이 발표의 보다 정확한 제목은, 무엇무엇으로 오인되어 진단이 지연되었던 케이스 1례였다.

그 무엇무엇이 가족성 비후성 심근염증이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뭐……. 우연이겠지.’

그 와중에 꽤 날카로운 질문이 툭 하고 찔러 들어왔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허나 닥터 스튜어드의 짬밥도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저 그런 의사였으면 마운트 사이나 병원에서 모셔 왔겠나.

그 계산 정확한 유태인들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아이의 동생에게서도 진단이 된 이상, 가족성 비후성 심근염증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질환이 없지 않았겠습니까?”

10년도 더 된 케이스였다.

그럼에도 잊지 못하고 굳이 사례를 꺼내 온 것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마운트 사이나 병원에서 근무하는 닥터 스튜어드조차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이 케이스를 접해 보지 못해서였다.

‘네가……. 이 질환을 알겠니?’

그러니 스튜어드로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상대가 아니었다면…….

필시 그랬을 터였다.

“아뇨. 그럴 수는 없죠.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비후성 심근염증의 원인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

수혁의 말에 스튜어드의 얼굴이 조금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서 그랬다.

‘유전……? 그런 걸 묻는 건가?’

비후성 심근염증은 일종의 유전 질환이지 않나.

그 이상 파고 들어가는 건, 해당 질환만 연구하는 연구자가 아니고서는 쉽잖은 일이었다.

임상 의사라면 그냥 이 정도까지만 알고 있다가 해당 환자가 오면 그때 논문 서치를 통해 필요한 조치를 하면 되었다.

안타까운 건 지금 스튜어드는 임상 의사로 선 게 아니라 발표자로 서 있단 얘기였다.

이 자리에선 논문 서치는커녕 네이버 검색도 불가능했다.

“그……. 유전 질환이죠.”

“정확한 유전자의 이름은 모르시는군요?”

“그……?”

“상염색체 우성으로 보통 유전이 되죠. 1개의 sarcomeric gene의 돌연변이가 비후성 심근증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알고 계시죠?”

“아……. 네.”

스튜어드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싸코메릭?

뭔 개소리야?

이런 생각이 들던 와중이었다.

설마 저놈이 아무 소리나 해 놓고 그렇죠? 한 건 아니기만을 빌 뿐이었다.

물론 수혁은 그런 종류의 함정을 팔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이 정도 지식은, 적어도 수혁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그렇지……. 그중에 흔한 건 베타 마이오신 체인이지.’

이현종에게도 그랬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이 이 모양이니, 수혁의 오해가 중첩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때문에 수혁은 진짜로 상대가 다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죠. 그중 가장 흔한 것은 베타 마이오신 체인과 마이오신 결합 단백질이죠? 다른 9개의 유전자는 아주 드문데……. 굳이 따지자면 트로포닌 T, 트로포닌 I, 트로포마이신 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굉장히 원인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걸 그냥 가족성 비후성 심근염증이라고 진단해 버린 이유가 궁금하군요.”

또다시 질문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보면 아까 했던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어…….’

질문을 듣는 당사자는 이게 질문인지조차 대번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

앞에서 떠들었던 베타니 뭐니 마이오신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사실 임상 의사에게 아주 익숙한 단어는 아니어서 그랬다.

“그. 일단 남매가 둘 다 비후성 심근염을 보였고……. 그 외에 다른 증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진단했습니다.”

스튜어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는 어느 대가를 마주한 듯 굽신거리고 있었다.

한쪽 손은 주머니에 꽂은 채, 정장 단추를 풀어헤치고 이리저리 건들거리며 발표를 시작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풍채 당당했던 장수가 한순간에 소인배 간신처럼 쪼그라드는 느낌이 일었다.

“그래서 그렇게 진단했다……. 다른 증상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보통은 이렇게까지 발표자가 위축되면 질문이 멈추는 법이었다.

사실 학회라는 곳이 사형장은 아니지 않나.

공개 처형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오……. 약간 꼬소한데?’

‘잘한다.’

‘저 새끼 뭔가 좀 건방지더라고……?’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숨 막히는 질문이 이어지다 보면 청중들의 분위기가 비우호적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스튜어드가 시작하기 전부터 너무 어그로를 끌어서 그랬다.

니들은 평생 가도 보지 못 할 거라니……. 이게 말인가 막걸린가.

물론 뉴욕에 비하면 서울이 아직은 좀 빛이 바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

원인을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운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쯤 혜성같이 나타난 사나이 수혁은 알게 모르게 지지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 레지던트들은 원래도 로마 콜로세움에 들어서던 군중의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왔다.

“그……. 네. 다른 증상은 없었습니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보십쇼. 진단 당시 환아의 나이가 8개월입니다. 8개월.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서 어떤 증상을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여간, 스튜어드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 진짜 어려운 케이스이지 않은가.

아까 살짝 어그로를 끌었다는 건 인정했다.

하지만…….

정말 평생 가도 못 볼 의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랬다.

근데 이렇게 몰아붙여?

뭐야 이거?

해서 좀 강하게 답변했는데, 수혁은 당황하기는커녕 피식 웃었다.

“하아……. 닥터 스튜어드?”

“네.”

“말 못 하는 환자에게서는 문진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어렵지 않습니까.”

“그럼 의식불명으로 발견되는 환자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소아나 노인 또는 장애를 입은 이들에게서는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이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랬으면 응급실이 어떻게 돌아가겠나.

소아과는 아마 존재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일단 아이에게는 부모가 있을 겁니다. 특히 생후 8개월 정도 되는 아이의 부모라면 가장 가까운 보호자며, 대부분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맞죠?”

“그……. 네.”

“그리고……. 아까 영상 한 번만 더 틀어 보시죠.”

“어……. 네.”

답하면서도 찜찜했던 차에 수혁이 그 찜찜한 구석을 까발리다 못해 찢어발겼다 보니, 스튜어드는 이제 간신 수준이 아니라 죄수 수준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마치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기에 수혁의 말에 따라 영상을 트는 것 또한 일체의 망설임 없이 이루어졌다.

“심초음파를 시행하고 있는 영상인데……. 식도 통해 하는 것도 아니니, 세데이션(Sedation, 진정제 투여)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맞죠?”

“아, 네. 그냥…….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지금 정상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겠네요?”

“네.”

“근데 보세요. 팔다리의 이완을 보십쇼. 저 나이대 아이들은 충분히 사지를 가눌 수 있습니다. 저 아이의 이완도가 정상으로 보입니까?”

“그…….”

수혁이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영상으로만 봐서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스튜어드는 다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죄수의 태도에서 간신배의 태도까지는 회복할 수 있었다.

“확실히 애매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본원에서는 근전도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정상이었어요.”

“근전도라…….”

“네! 여기서 정상이었다고요!”

이제는 간신배가 아니라, 본연의 모습.

그러니까 거만하기 그지없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맞아! 하……. 질문이 너무 날카로워서 검사 소견도 잊고 있었네.’

망할 놈이.

어?

감히 미국에서도 명망 높은 의사인 내게 말이야.

보니까 10대로 보이는데.

동양인이 어려 보인다고 해도, 실제 나이가 기껏해야 20대 아니면 30대 초반 아니겠나?

“8개월 수준에서 정상이겠죠?”

해서 허리를 펴려는데, 상대가 여전히 뻣뻣했다.

“응……?”

“영아에서 근신경이 성인만큼 발달합니까?”

“아……”

왜 그런고 했더니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 그랬지…….

그랬네.

하.

스튜어드는 생애 마지막으로 하늘 보는 죄수처럼 빛이 내리쬐는 발표장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 시기 근전도의 정상 소견은……. 물론 비정상 소견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것이겠지만 진단함에 있어 가치가 아주 높지는 않아요. 그럴 수가 없죠. 더 중요한 건, 임상 소견입니다. 동의하세요?”

“네…….”

“자,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바로 가족성 비후성 심근염으로 진단하는 것이 온당한 진료 행위였습니까?”

“그…….”

스튜어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확실히 이 케이스는 오인했던 케이스였긴 했다.

하지만 그건…….

스튜어드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또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냥 케이스가 너무 어려운 케이스여서 그랬다.

하지만 지금 이어진 공방에 의해 마치 스튜어드가 멍청하거나 또는 게을러서 이렇게 된 것같이 되어 버렸다.

‘진짜……. 그런가?’

문제는 스튜어드 또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툭.

그래서일까?

감은 두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스튜어드의 구두코에 부딪혔다.

다행히 빛이 워낙 밝아서 청중들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좌장은 확인할 수 있었다.

‘울려? 해외 초청 연자를 울렸어?’

진짜 울고 싶은 건 스튜어드를 직접 모시고 왔던 좌장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