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화 초청 연자들 (2)
“아니……. 저…….”
“저랑 사진 좀…….”
사진 찍기 위해 온 교수들 중에는 숫제 다른 강의실에 있던 이들도 꽤 많았다.
잿밥에만 관심 많은 인원이 굉장히 많다 이 말이었다.
당연하지만, 초청 연자 대부분은 그들보다는 강의실에서 봤던 수혁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임팩트 있는 공방은 국제 학회 어디를 다녀도 보기 어려운 일이지 않겠나.
“이수혁 교수님. 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까?”
“아……. 뭐, 평소에 공부를 좀 열심히 합니다.”
“공부요? 저도 열심히 하는 편인데, 이 정도까지는……. 듣자니 주력 분야가 딱히 없다던데, 맞습니까?”
“네. 굳이 따지자면 희귀 질환이나 흔한 질환의 희귀한 경과가 제 주력 분야라고 할 수 있겠네요.”
“허……. 그러니까……. 해결사시군요?”
“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는, 이현종의 친우이자 심장내과의 대가인 닥터 트레이시였다.
그 또한 미국 유수의 병원인 메이요 클리닉의 중진이기에 우수한 인재를 보면 그저 들이대는 것이 습관이었다.
“미국에서도……. 각 병원마다 그런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교수들이 일부 있기는 합니다만 이 정도로 전문적으로 의뢰받는 센터를 꾸리고 있는 교수는 단 하나도 없어요. 이거……. 아. 이번에는 일정이 좀 그런데. 언제라도 한번 방문이 가능하겠습니까?”
“저희는 좋죠. 국제 펠로우쉽도 받고는 있습니다. 아무도 지원을 안 해서 그렇지.”
“하하. 진면목을 몰라서 이러는 거 같은데요? 제가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좋네요.”
“더불어, 저희 병원에도 한번 오셔서 구경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메이요 클리닉이 임상 쪽으로도 우수하지만 연구 중심 병원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세계 최고라는 말을 당당히 입에 담고 있는 트레이시를, 수혁은 올려다보았다.
190cm가량 되는 거한이었는데 얼굴만 보면 산타 할아버진가 싶을 정도로 인상이 좋았다.
저런 얼굴로 뻔뻔스레 세계 최고를 운운하고 있는데, 별 반발심이 들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 그러니까.
[메이요……. 논문에서 진짜 지겹도록 읽었던 이름이로군요.]
‘그럴 수밖에 없지. 여기가 진짜 연구는…….’
[일단 매해 이 병원으로 기부되는 금액만 6억 불……. 그러니까 8천억이 넘는 돈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 돈이랑 수익금까지 전부 진료랑 연구에 쓰인다고 했지?’
[네, 비영리 재단이라고 하더군요.]
‘모든 병원이 비영리지만……. 저만한 돈이 돌아가는 비영리 재단이라면…….’
기부금만 8천억이다.
8천억.
국내 어지간한 기업 1년 순수익과도 맞먹을 만한 금액인데, 수익금은 그보다 더 크다고 들었다.
헌데 그 돈을 전부 진료와 연구에 쏟고 있었다.
간단한 비교를 하나 하자면, 현재 국내 1위인 태화 의료원의 연간 환자 수는 430만 명에 병원 관계자가 7천 명인 데 반해 메이요는 연간 환자 수가 130만 명에 관계자는 5만 8천 명이었다.
이것만 봐도 메이요의 진료 질이 얼마나 대단할지 대강 예상이 갈 터였다.
“어이, 트레이시. 남의 아들 꼬시고 있네.”
수혁이 이런 생각에 빠져 있으려니 이현종이 다가와 볼멘소리를 해 댔다.
이제 와 수혁이 어디 갈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메이요라……?’
메이요 클리닉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나?
물론 지금 막 센터를 열고, 학회도 만들어서 으쌰으쌰 하고 있는 데다가 사실상 수혁이 핵심 멤버이기에 당장은 빠지면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이라면…….
또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목소리에 퉁명스러움이 깃들고 있었다.
아빠 된 마음으로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 봐야 저 망할 미국의 사이즈에는 비할 수 없다는 생각도 일조하고 있었다.
“아, 닥터 리. 그럴 리가요. 그냥 한번 놀러 오라는 말을 하는 거죠. 한국 의사들도 안식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닥터 리와 제가 연을 맺은 것도 닥터 리 안식년 때 아닙니까?”
“음……. 그렇긴 하지. 뭐……. 그래. 수혁이도 이제 2년 차……. 3년 뒤에는 연수 가긴 해야지.”
“그러니까요. 그 전에 한번 오시죠. 저도 뭐……. 한국 분들이 서부 선호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보통은 스탠포드나 샌디에고 또는 저기 어디지……? 아, 그래 ucla랑 어바인 쪽으로 가죠.”
“그렇지. 놀러 가는 놈들이 많지.”
놀러 간다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교수들, 그러니까 서부로 갔다온 교수들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서부가 인기가 많은 건 맞기는 했다.
날씨가 좋잖아.
오죽하면 도시 이름이 로스앤젤레스, 즉 천사들의 땅이겠나.
심지어 근처에 포진한 교수들은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연수가 곧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더더욱 첫 방문 때 충격이 컸더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놀러 간 건 아니었다.
아닌데…….
“뭐. 할 말 있어?”
“아뇨. 아닙니다.”
이현종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트레이시라는 양반도 어마어마한 사람 아닌가.
이현종이 심혈관 중재 시술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한다면 트레이시는 그 신기원을 재빨리 밟아 미국의 선구자로 남은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 떠들어 대고 있는 두 인물은 적어도 심장내과의 역사에서만큼은 대대로 이름을 남길 거인들이었다.
“그에 비해 저희 메이요는……. 미네소타에 있어서 좀 심심하긴 하실 거예요. 날씨도 여름 말고는 그리 좋다고 하기 어렵고. 하지만, 오시면 제가 진짜……. 그 뭐라더라.”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부산에서 오신 분이 알려 주신 말이 있는데……. 아! 풀코스! 그래, 풀코스로 접대하겠습니다.”
“어떤 새낀지 모르겠는데 참 좋은 거 알려 줬네. 아무튼, 뭐…….”
이현종은 트레이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메이요를 떠올렸다.
트레이시는 앞뒤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돈에 흔들릴 만큼 궁한 사람도 아니었고.
이놈이 표하는 호의는 말 그대로 호의라고 받아들여도 좋을 터였다.
‘메이요 좋은 병원인 거야……. 뭐 말할 것도 없지’
애초에 대형 병원의 시작이 대개 사회 환원 목적이지 않던가?
태화니 아선이니 칠성이니 하는 병원들 모두 기업 후원금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위에서 내려오는 돈이 없으면 경영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게 뻔할 정도로 투자 또한 이루어지고 있었고…….
하지만 메이요는 그 사이즈가 아예 달랐다.
로체스터라는 도시 전체가 메이요 하나로 돌아갈 정도인데…….
‘거기가 안전하기도 하고……. 요새 서부 쪽은 노숙자들도 너무 많고 위험하다니까…….’
이현종은 흐으음 하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이어 나갔다.
아마 본인이 연수 가는 길이라 해도 이만큼의 고민을 하진 않을 텐데, 확실히 자식이 무섭긴 했다.
진짜 별의별 고민을 다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타노 타게시라고 합니다. 이수혁 사마를 뵙게 되어서 무한한 광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두 노교수가 대화를 이어 나가는 사이, 잠시 자유롭게 된 이수혁에게 누군가 달려들었다.
기타노 타게시.
아까도 달달 외운 흔적이 역력해 보이는 한국어로 인사를 올렸던 일본인 교수였는데, 지금도 광영 운운하고 있었다.
“그……. 네.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이번 학회에 이수혁 사마를 뵈러 온 겁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은은히 뿜어져 나오는 것이……. 과연 이것이 진정한 천재의 풍모로군요.”
아마 안대훈을 겪어 보지 못했다면, 지금쯤 너무 당황해서 뒷걸음질이나 치고 있었을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주변에서 영어 잘 알아듣는 사람들 모두 뜨악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지경이지 않나.
하지만 수혁은 상또라이조차 노상 겪어 온 몸이니만큼 후후 하고 웃어넘길 수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이제 보니 저희가 도움을 많이 받았던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어어……. 아이고……. 제가 이수혁 사마의 정수리를 보게 되다니요!”
“아.”
그런 수혁도 갑자기 도게자를 하는 기타노 앞에선 잠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혁 옆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안대훈 그리고 그의 영향을 깊이 받아 거의 뭐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김성진이 그를 즉시 일으켜 세웠다는 점이었다.
“이런 거 교수님이 불편해하십니다. 정 하고 싶으시면 두 분이서만 계실 때 하시죠.”
“아.”
“아니, 나는 둘이 있을 때도 불편해.”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보는 눈이 적으면 가마 타도 껄껄 웃고 하십니다.”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 이상한 거 새기게 하지 마라, 대훈아…….”
잠시 이상한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하여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잠깐 넘어졌다가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부드럽게 넘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수혁 사마. 도쿄에 한번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이번 하계 학회가 있는데……. 오시면 제가 하꼬네에 있는 아주 멋진 료칸 투어도 준비해 두겠습니다.”
“오……. 료칸이라고 하면……. 온천 있고 맛있는 음식 주는 곳 말씀이시죠?”
“네네. 바로 그렇죠. 500년가량 된 료칸이 있는데 정원만 만 평이 넘는, 정말 좋은 료칸입니다.”
“오…….”
거기에 더해 기타노는 얼마 전 안대훈에게 들었던 정보를 이용해 수혁을 홀리기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우리 교수님은 다리가 불편하셔서 골프 투어 이런 거……. 별 매력을 못 느끼십니다. 걸어 다니는 걸 아주 싫어하시는 건 아니지만, 정도를 지나치면 불쾌해하세요.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기타노는 수혁이 거의 이순신과 버금가는 영웅이 될 거라 여기고 있었다.
해서 그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안대훈의 말을 그야말로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딱 산책하기 좋은 정도의 길이면 됩니다. 거기에 온천 좋아하십니다. 뜨끈한 물에 몸 담그는 거 말이죠. 그리고……. 아! 맛있는 음식을 진짜 좋아하십니다. 딴 거 다 못해도 음식만 맛있으면 좋을 정도로요.
다행히 일본에는 이걸 딱 만족시킬 수 있는 숙박 시설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기타노는 워낙 잘나가는 교수이니만큼 매년 초청을 통해서건 자기 돈을 써서건 간에 료칸 투어를 꽤 다니는 편이었다.
그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곳에 수혁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걸로 뭘 어떻게 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냥…….
‘한번 모셔 보고 싶다……,’
그냥 순수한 호의였다.
원래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오늘 강의에서 완전히 판가름 났다.
이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 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안대훈과 같이 걸출한 인물이 목숨을 다해 충성을 바치는 것이겠지.
“좋죠, 하계 학회……. 흠. 초록 제출하면 되려나요?”
“아……. 아니, 강의까지요? 그럼 더할 나위 없을 거 같습니다.”
“학회 가는 건데 강의는 내봐야죠. 받아 주실지 모르겠지만.”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약 떨어진다면, 그거 본 놈 눈알을 후벼야죠.”
“아.”
그에 반해 수혁은 약간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단 기타노 타게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꽤 많은 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내가 너무 잘했냐?’
[뭐……. 나쁘지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