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01화 (1,001/1,303)

1001화 완전체 (1)

시끌벅적했던 학회도 끝이 났다.

원래 그러한 행사들이 늘 그러하듯, 끝나고 나면 밀려 있던 일들로 한 주, 두 주 정도는 후딱 날아가 버리기 마련이었다.

“와……. 4월도 끝났네. 올해도 3분의 1이 다 갔어.”

이현종은 텅 비진 않았지만 어쩐지 빈 듯한 느낌이 드는 센터 회의실에 앉아 바깥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합진료센터 사람 중에 바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겠지만, 이현종은 아마도 특히 바빴긴 했을 터였다.

그 와중에 이기자 교수와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기에 그랬다.

하여간, 그 회포를 풀기 위함인지 뭔지 손에는 맥주도 한 캔 들고 있었다.

병원에서 맥주라니, 어이없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미 정규 퇴근 시간은 지나도 한참 지난 마당이었다.

“그러니까요. 시간이 진짜 빨라요.”

물론 수혁은 맥주가 아니라 그냥 물을 들고 있었다.

이현종이 어제 당직이었고, 오늘은 수혁이 콜 당직이라 그랬다.

사실 펠로우에 임상 강사도 있기에 교수 둘이서 계속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설 필요는 없었지만…….

수혁과 이현종이 보기엔 안대훈이고 김성진이고 다 부족해서 이러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좋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교수들이 그러고 있는데 펠로우랑 임상 강사가 쉴 수 있겠나?

안대훈, 김성진도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발적인 집담회도 매일 저녁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둘의 시선은 뭔가 좀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서 있는 세 명의 의사에게로 향해 있었다.

김인수, 장종우 그리고 이태원.

이제 전역한 지 1주일 된……. 휴가까지 만끽하고 들어온 이들이었다.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뭐든지 맡겨 주십쇼.”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이게 이 둘이 너무 열심히 했더군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 거르고 걸러서 뽑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군 병원에 있던 몸들이지 않나.

공부를 하려고 해도 자료나 여건이 받쳐 주질 못했다.

그에 비해 안대훈과 김성진은 그야말로 하드 트레이닝 중이었다.

‘후후……. 너무 열심히라……?’

안대훈은 지난 2달을 회상했다.

레지던트 때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펠로우가 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혁과 이현종 모두 레지던트에 맞춰서 환자를 내리고 또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넌 이제 진짜 수제자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무시무시한 양의 공부와 일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흐하하…….’

옆에 있는 김성진은 숫제 울고 있었다.

안대훈이야 옆에서 맨날 봤으니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김성진이 보던 교수는 안국태이지 않나.

그 개새끼…….

가르쳐 주는 것도 없이 부려 먹기만 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가르쳐 주는 게 너무 많은 것도 뒤지게 힘들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걱정 마. 우리가 책임지고 가르쳐 줄 테니까.”

“네. 실력은……. 충분히 쌓일 거예요.”

단 두 달 만에 상당한 격차가 생겨 버린 제자들 앞에서 이현종과 수혁은 그저 씨익 하고 웃었다.

왜냐.

격차라는 게 자기들끼리나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이지…….

이 둘이 볼 때는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이지 않나.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보다……. 신현태 얘는 어디 갔어?”

“회의 들어 갔다가 온다고 했……. 아, 오네요.”

“쟨 아마 쌍놈이었을 거야.”

“그……. 올 때 돼서 이름 불렀는데 오는 건 양반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니, 그냥 쌍놈이라서 그래.”

“뭐…….”

이현종이 쌍놈이라는데 뭐 어쩌겠나.

수혁은 자기 아버지의 성향을 잘 알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막말로 신현태가 쌍놈되는 게 지금 와서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이현종이 맨날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양반은 아닌 거 같아 보이긴 했다.

-야, 현태나 조태진이나 장딴지를 봐. 농사짓는 장딴지지 그게 글 읽던 장딴지니. 그에 비해서 너나 나를 봐라. 한산 이씨야말로 성씨 장사도 거의 안 했으니……. 어? 딱 생긴 것만 봐도……. 이런 몸으로 농사지었다고 생각해 봐. 다 죽었어.

처음엔 진짜 뭔 이런 개소리가 다 있나 싶었다.

-진짜라니까? 이런 몸을 해 가지고서 살아남았다는 건, 우리가 양반이었다는 증거야. 김성진이도 봐 봐라. 걔는 경주 김씬데 고향이 군산이야. 말이 되냐?

하지만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이게 또 그런가 싶기도 했다.

물론 그런 말을 하고 있다 보면 당연하게도 반발을 사기 마련이었다.

때가 어느 땐데 양반 타령이냐는…….

이현종이 그런다고 할 말이 없어지면 이현종이겠냐는 걸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인마, 양반 출신인 게 뭐가 좋냐. 조선 망친 것도 양반이고 나라 팔아먹은 것도 양반인데. 나는 부끄러워.

신현태는 그럴 때마다 ‘이 새끼 이거 진짜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라는 말을 했더랬다.

하여간, 양반은 못 되는 신현태가 방으로 들어왔다.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어떻게 됐어?”

“이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데……. 벌써 미국, 일본……. 유럽 일부 국가에서 3차 감염자로 추정되는 환자들이 나오고 있어.”

“아……. 그럼…….”

“아직 정확하진 않은데, 무증상 감염자들도 있는 거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이게 이렇게까지 빠르게 퍼질 리가 없지.”

“팬데믹인가.”

“응.”

신현태는 한숨을 푹 쉬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이현종이 들고 있던 맥주캔을 뺏어다가 들이켰다.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한대?”

“뭐……. 일단 출입국 틀어막을 수는 없지, 지금은. 그런다고 막힐 수준도 아닌 거 같아. 벌써 다 퍼져 버려서……. 일단은 공항에서 방역 철저히 하는 수밖에 없지.”

“방역이라…….”

“아, 그리고 수혁이가 말했던 앱 그거 프로토타입은 벌써 나왔잖아. 일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 감염 학회에서도 효용성이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 써 보기로 했어.”

“오. 열난다?”

“응. 그거 근데 이름 그냥 그렇게 가기로 한 거지?”

“개명하기 전에 벌써 다 퍼졌으면 어쩔 수 없지.”

이현종과 신현태는 무슨 이름을 그딴 식으로 지었냐는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몰루? 하는 얼굴이었다.

작명 센스라고는 1도 없는 인간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딸랑 그것만 결정되지는 않았을 거 아냐.”

“지금 확정된 건 그거뿐인데?”

“응?”

“아는 게 없잖아.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다 갈팡질팡하고만 있어. 무엇보다 발원지로 예상되는 중국에서 딱히 정보를 안 줘 가지고…….”

“이 와중에 정보를 통제한다고? 팬데믹 안 겪어 봤대?”

“사실 제대로 된 팬데믹은 우리도 처음이지. 그렇게 안 되길 바랄 뿐인데……. 돌아가는 꼴이 이미 넘어간 느낌이야. 하여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이 질환의 경과나 특성을 명확히 하는 건데…….”

신현태는 본인이 말을 하면서도 이게 지금 당장 가능할 수 있을 리가 없단 생각부터 들었다.

왜냐.

아무리 봐도 인수 공통 감염병에서 기원한 바이러스인 거 같지 않나?

그중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감기 바이러스의 태반이 이 코로나 바이러스인데…….

벌써 중국 내에서 이 질환을 지칭하는 단어도 괴질에서 폐렴으로 변한 지 오래되기도 한 만큼 상기도 감염 증상이 주된 증상인 것도 우연은 아닐 터였다.

‘문제는……. 우리한테 도는 감기 바이러스는 그 역사가 수천 년이 넘은 만큼……. 서로 완전히 적응했지만……. 이놈의 병은…….’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

인류가 난생처음으로 겪는 질환.

그것의 경과를 속속들이 밝히는 것이 쉽겠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그런 일들이야말로 대개 어렵기 마련이었다.

“거……. 어렵네……“

“그러니까. 어쩌면 진짜…….”

“홍콩에서 전에 얼마나 죽었다고?”

“의료진만 수백.”

“흐음……. 나야 뭐 살 만큼 살았다 치는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리고 형은 따지고 보면 심장 내과 의산데, 이걸 왜 봐.”

그러니 신현태가 맥주 먹다가 한숨 쉬고, 맥주 먹다가 또 한숨 쉬고 하는 게 우연은 아니란 얘기였다.

이현종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젊은 의사들이라고 해서 크게 표정이 다르진 않았다.

말만 안 하고 있을 뿐, 무언가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건 확실한 상황이지 않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만한 양반들이 이 정도로 얼굴을 굳히고 있을 턱이 없었다.

“어쩌겠어. 병 있는 곳에 의사가 가야지.”

“아니, 형은 심장 환자 봐야지. 팬데믹 온다고 다른 환자들이 없어지나?”

“그것도 그렇긴 한데……. 사스 때 홍콩에서 호흡기 의사들만 죽어 나간 건 아니잖아?”

“그건……. 그건 그렇지.”

당연한 일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 두 나이든 의사들의 감회가 아무래도 젊은것들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도 신현태도 사스 당시에 학회에서 사귀었던 친구 몇을 잃었기에 그랬다.

자화자찬처럼 느껴질는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홍콩의 의료진들은 그야말로 영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행동을 했더랬다.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는 다른 이들의 목숨을 위해 뛰었다 이건데…….

친구가 그렇게 죽은 마당에 비슷한 상황에서 부담감이 없을 수가 있겠나?

“일단 중요한 건 이 질환이 어떤 질환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겠네요?”

그렇게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만 하던 가운데, 수혁이 입을 열었다.

신현태와 이현종은 그런 수혁을 돌아보았다.

취기 하나 없는 얼굴은, 늘 그러하듯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다른 놈이었다면 젊은 놈의 치기 어린 생각이라 매도할 수도 있었겠지만, 얘는 수혁이었다.

“응?”

“그래, 중요하지. 근데 어떻게…….”

“백신 개발이나 치료제 개발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임상 경과를 보는 건 우리가 제일 잘하잖아요.”

“으음.”

“흐으음.”

“제 생각에 벌써 미국, 유럽에도 의심 환자가 있다면……. 이미 국내 또는 다른 나라에도 진단이 되지 않은, 불명열 환자가 있을 거라는 뜻이겠죠. 그 환자들을 종합해서 경과를 보는 건……. 외람된 말이지만 우리……. 아니,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할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한다.

의학이 올림픽도 아닌데 저런 말을 하는 게 온당한가?

아마 다른 이들이 이 방 안에 있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불만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들은 엄밀히 말해 수혁 패거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혁교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었다.

“그렇지.”

“최고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수멘…….”

그렇다 보니 부정적인 피드백이라고는 아예 없었다.

“그러니 환자들을 모아 보죠. 두바이, 뉴욕, 싱가폴……. 몽골 정도가 우리가 즉시 접근 가능한 병원이 있는 곳이죠?”

“그렇지. 내가 지금 연락 돌릴게.”

“나도.”

방안만 떠올릴 뿐이었다.

이현종과 신현태를 필두로 해서 전화기를 급히 들었다.

그러던 중, 이현종이 좀 민망한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아, 몽골만 좀 네가 해 줄 수 있어?”

교도니 뭐니 해도 백강혁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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