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화 완전체 (2)
수혁이 직접 언급한 곳은 두바이, 뉴욕, 싱가폴, 몽골뿐이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곳으로 연락을 돌렸다.
여기 모인 이들의 면면만 봐도 쉬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현종, 신현태.
비단 국내 학회에서만 잘나가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특히 이현종은 말 그대로 월드 스타였다.
수혁도 이번에 꽤 깊은 인상을 남겼고.
비록 국내 학회이긴 했지만, 자리에 왔던 이들 대부분은 호감을 심지어는 두려움마저 지닌 채 고국으로 돌아간 마당이었다.
“아……. 네. 확실히 이수혁 교수님이 돕는다면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 병원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하기로 약조했다.
메이요에 메사추세츠 병원에…….
유수의 병원들이 협력을 하기 시작하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환자 의뢰가 끊이지 않던 센터가 거의 뭐 터져 나가기 직전이 되어 버렸다.
“네네. 일단 메일로 보내 주시죠.”
“네네.”
“아…….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요? 그럼 화상 연결하겠습니다. 이수혁 교수님?”
불명열 환자 중에 이른바 다른 질환일 각이 보이지 않는 환자들은 일단 의무 기록이 넘어왔다.
개인 정보를 제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어차피 EMR의 시대가 도래한 지도 오래다 보니 간단한 솔팅만 하면 될 일이라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그 와중에 아직 진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들은, 일부 협약을 맺은 병원에 한해서이긴 했지만, 화상 진료 요청도 오고 있었다.
“아, 네.”
안대훈과 김성진은 바로 전전날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했던 것을 후회했다.
진짜…….
이제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어제 몇 시간 잤더라?
아니, 자기는 했나?
[수혁, 이거만 하고 30분가량 취침할 것을 권고합니다.]
‘오케이.’
[건성으로 답하지 말고요. 환자 보다가 뒤지게 생겼어.]
‘알았어. 나도 엄청 힘들어.’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건 교수들 때문이었다.
비단 수혁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이현종도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진짜로 어디가 좀 부서졌는지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에 더해 감염내과 측 교수들과 펠로우들도 태반이 이쪽으로 동원되었다.
어차피 사태 터지면 죄 갈려 나갈 사람들이니 미리 좀 갈자는 의견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요구인데, 태화 의료원에 남은 이들은 애초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인생을 갈아 넣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한마디 불만조차 없이 일하고 있었다.
“네, 이수혁입니다.”
“네. 싱가포르 의료원의 왕팡입니다.”
“왕팡? 오랜만이네요.”
“네, 교수님! 영광입니다!”
3년 차였던 왕팡은 이제 4년 차가 되어 있었다.
그래 봐야 대학병원 내과 레지던트가 화장할 여력은 없을 텐데, 화상이라 그런지 굉장히 신경 쓴 티가 역력해 보였다.
물론 수혁은 그러한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상황도 그런 걸 알아볼 만한 상황이 아니기도 해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환자 상태는 어떻죠?”
“네! 환자 나이는 68세, 당뇨와 고혈압으로 본원에서 외래 팔로우 업 중인 환자입니다.”
“흡연력은 없나요?”
“아! 있습니다! 40갑년의 흡연력입니다.”
“그렇군요.”
게다가 수혁은 어제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의뢰와 기록을 종합하느라 머리에 빈틈이라고는 아예 없었다.
‘남자, 고령, 흡연자에서 유의하게 경과가 좋지 못해. 기저질환이야 당연한 거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사안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두바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성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걸 감안한다면…….’
[결국, 현재로서는 예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흡연과 나이입니다.]
벌써 몇 가지 결론을 도출했을 정도였다.
당연하지만 겨우 이 정도에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환자 바이탈은?”
“혈압이 수축기가 100 밑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만, 수액과 약도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산소 포화도가 산소 없이 90% 미만으로 떨어져서 100% 산소 5L를 주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92% 이상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발열은?”
“39도에서 약 쓰고 37.8도로 내려오긴 했지만…….”
“사진을 볼까요?”
“네!”
“역시…….”
바이탈만 보면,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은 엉망진창이어야 마땅했다.
허나…….
이 환자의 경우엔 딱히 그렇지가 않았다.
엑스레이 사진만 보면 입원 치료가 아니라 외래 치료만 해도 되지 않나 싶을 지경이었다.
‘이쯤 되면 이 페렴의 특징이라고 해도 되겠어.’
[네. 미처 사진이 변하기 전에 더 작은 단위에서 손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은…….]
‘감염도 문제지만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도 문제라는 거지. 어떻게 보면 예상 가능한 일이긴 해.’
[네. 너무 낯선 병원균이다 보니 면역이 과도하게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이러다 더 경과하면 결국 아주 심각한 폐 손상을 일으키던데…….’
[단지 병원균으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또한 특징으로 보여졌다.
일반적이지 않은 소견인데, 벌써 여러 번 반복되지 않았나?
현장에서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느낌을 받았다.
아마 수혁도 현장에서 직접 봤다면 그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여러 번 본 마당이었다.
“스테로이드를 쓰는 게 좋겠습니다.”
“네?”
“일단 항바이러스제를 쓰면서, 스테로이드를 쓰죠.”
“어……. 스테로이드를…….”
“일단 지금 중국에서 발원한 폐렴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아직 항원 검출하는 검사가 없으니 확인은 불가하지만, 어제부터 본 32례의 증례를 검토하면 경과가 거의 비슷해요.”
“아.”
그뿐만이 아니라, 수혁은 그 자체가 천재였다.
또 바루다도 이런 식의 데이터를 다루는 데에는 도가 텄다는 말조차 모자랄 지경이었고.
해서 불명열, 원인 불명의 상기도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을 다른 질환과 구별하는 데 있어서 이미 세계 다른 모든 의사들에 비해 한 발자국 먼저 나가 있을 수 있었다.
“경과가 보시면 알겠지만 사진에 비해 너무 빠르고 심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아……. 네. 그렇지 않아도……. 포터블도 찍었는데 그것도 아직 나쁘지가 않아서…….”
“과민 반응으로 인한 것으로 보면 될 겁니다. 이 바이러스는 인류가 처음 겪어 보는 것이니까요. 고령에서 더 잘 걸리긴 하겠지만……. 이와 같은 이유로 아마 젊고 건강한 환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중환자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이러한 경과를 생각한다면, 조기에 스테로이드를 쓰는 것이 환자 예후에 도움이 될 겁니다.”
“교수님께서……. 네.”
왕팡이 옆을 돌아보자, 닥터 양 즉 싱가포르 교수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차피’라는 말을 쓰는 건 좀 그렇지만…….
당장 방법이 없지 않나.
사실 저번 주에도 이런 식으로 환자를 잃었더랬다.
그때는 진단은커녕 뭐가 뭔지 의심조차 못 했다.
“그럼 경과 보고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드립니다!”
그에 비해 수혁은 어떠한가?
돈 한 푼 안 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천재였다.
딱 봐도 죽을 거 같은 얼굴이지 않나?
그럼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허나 근거 있는 답변을 내주었다.
아니, 그전에 이 병원에 왔을 때 보여 주었던 모습만 생각해 봐도…….
‘천재……. 아니, 괴물…….’
얼마나 임팩트가 컸던지 불과 며칠 있다가 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원내 팬클럽이 생겼을 지경이었다.
간혹 집담회도 따로 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해가 안 가진 않았다.
그만큼 대단했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자. 스테로이드 쓰자고.”
그렇게 싱가포르 의료원에서 수혁의 명대로 처방이 들어갔을 무렵, 수혁은 당직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센터에 양해를 구하고서였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 하는 이는 당연하겠지만 아무도 없었다.
누구보다 수혁이 고생하고 있다는 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무엇보다도 한숨과 함께 당직 방으로 들어서는 수혁의 뒷모습에서는 일견 숭고함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후광이 인다고 해야 할까?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더 정진하자.’
‘진짜 사람 괜찮다니까?’
‘주변에 싱글인 애 누구 있더라.’
그러다 보니 레지던트들은 물론이거니와 간호사들도 호감을 품었다.
[딴생각 말고 눈부터 감으세요.]
‘왕팡 이뻐졌더라. 원래도 이뻤는데. 더 이뻐졌어.’
[그러니까……. 지랄 말고 잠이나 자라고.]
‘으응. 근데 왕팡 꿈꿀 것 같은데…….’
[나한테 불쌍해 보여서 무슨 유익이 있냐고.]
‘후우우우.’
생각을 읽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수혁은 쓸데없다기보다도 너무나도 구슬픈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좋아. 자니까 데이터를 구성해 보실까.]
그사이에도 바루다는 쉬지 않았다.
원래도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이런저런 정리를 하긴 했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평소와도 달라져 있지 않나.
너무 많은 정보가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중엔 일반적이지 않은 정보도 있을 것이고, 아예 틀린 정보도 있을 것이었다.
잘 정리해서 분류해 놓지 않으면 인류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될 수도 있었다.
[확실히……. 고령, 남성에서 예후가 좋지 못해. 그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소아에서는 중증 환자가…… 아니, 감염자 자체가 적어. 흠.]
바루다는 홀로 가상의 손가락을 맞부딪치면서 추론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수혁이 자고 있다 보니 뇌의 방대한 부분이 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 평소처럼 빠르진 않았다.
또 수혁이 나름대로 팍팍 질러 주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허나 바루다에겐 시간이 있었다.
쉴 필요가 없는 존재였으니.
[수혁의 말대로……. 면역 반응이 질병 경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맞는 거 같아. 소아는 아무래도 면역 체계가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으니……. 정확히 말하면 사춘기를 기점으로 예후가 변할 가능성이 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추론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다만 하나 걸리는 것은……. 성별인데. 남자가 정말 더 나쁜 게 맞나?]
면역 반응이 연관이 있다고 한다면…….
기저에서 면역 반응이 누가 더 좋은지를 확인하는 게 필요했다.
다들 남자가 유리하지 않겠나 싶을 텐데, 추위나 더위, 스트레스, 또 감염균에서 모두 여자가 유리했다.
애초에 수명만 봐도 그렇지 않나?
[기저질환이나 흡연, 음주력 등등을 보정하고 나면……. 어쩌면 여자가 더 안 좋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지침을 세울 때 뭔가 에러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이건 두바이……뿐만 아니라 무슬림 지역 데이터를 보다 면밀히 봐야 해. 아직 n수가 너무 부족해.]
소아에 비해 이건 또 애매했다.
사실 벌써 뭔가를 파악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딱 하루가 지났을 뿐이니까.
“교수님, 30분 지났습니다. 죄송합니다.”
게다가 막상 연구에 쓸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아.”
환자가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