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화 완전체 (3)
“몽골입니다.”
“몽골?”
“네. 백 교수님…….”
“아.”
수혁은 그렇지 않아도 커피 딱 마시고 잠이 들었던 마당이라 30분의 낮잠만으로도 어느 정도 집중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커피 냅. 일종의 부스터인데……. 자주 쓰면 죽을 겁니다.]
‘응. 일단……. 경과 어느 정도 정리할 때까지만…….’
[네, 제가 들어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수혁은 인류의 보고예요. 몸 챙겨 가면서 일하십쇼.]
‘알았어.’
거기에 더해 백강혁이란 말을 듣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네, 이수혁입니다.”
“아…….”
백강혁.
세상 모든 의사들이 또라이라는 칭호를 양보한 존재 아니던가.
그에 더해 역사에 길이 남을 외과의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현역에서 뛰고 있는…….
‘귀신 보는 놈…….’
수혁의 평과는 전혀 상반된 평을 내린 백강혁은 조금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일단 몽골 측에는 아직 환자가 없어. 없는데…….”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주변으로 잡음이 꽤 뒤섞여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몽골 병원은 그래도 꽤 자리 잡지 않았나?
시설도 태화에서 이런저런 지원을 통해 지어 둔 덕에 어지간한 2차 병원급 이상은 되었다.
안에 설비는 어마어마하다는 말도 부족할 지경이었고.
“여긴……. 흐음…….”
“여기? 지금 몽골이 아니에요?”
“응? 거긴 알아서 돌아가는데 뭐. 난 다른 곳에 있어.”
“어디……요?”
그러고 보니 지금 중국 말을 들은 거 같았다.
중국 말이 원래 성조 때문에 좀 시끄럽게 여겨질 수 있는데,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뭔가 소란이 이는 느낌이 있었다.
“말해 주면 이수혁 교수랑 태화가 곤란해지고…….”
“네?”
그럼에도 수혁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해서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네. 그럼 더 묻지 않겠습니다.”
이현종은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서 그랬다.
세간에서는 통합진료센터에 미친 사람들 다 있네 어쩌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지 않나?
진짜 광기.
그에 비하면 이현종도 댈 것이 못 되었다.
“그래. 운신이 자유롭지 않아서 전화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20명 정도의 중환자가 있어.”
“20명이요? 한 시설에요?”
“아니, 한 병동에.”
“병동……?”
병동에 스무 명의 중환자가 있다고?
수혁을 비롯한 여러 의료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지고 있었다.
그래, 지금 번지고 있는 이 미상의 폐렴…….
이름도 몰라 처음 발원한 지명인 우한을 붙여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폐렴은 확실히 급속도로 번져 나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하필 상기도 감염증과 비슷한 데다가 아직 자연 경과가 어떤지도 알지 못하다 보니 제대로 구별이 안 되어서 더더욱 번지고 있는 거 같기는 한데…….
그렇다 해도 한 병동에 20명을 꽉 채울 정도는 아니었다.
발원지가 아니라면 그랬다.
‘이 사람…….’
[뭐……. 이런저런 소문이 있죠.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20명의 데이터를 한 번에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단 점이죠.]
‘그건 그렇지. 하긴, 뭐……. 위험한 일에 끼진 않았겠지?’
[위험할걸요? 알아서 하긴 할 겁니다. 이현종은 몰라도 태화 전체가 어느 정도 양보할 만한 존재니까요.]
‘하긴.’
위험한 생각이 일었지만, 그건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확실히 바루다의 말대로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경과는 어떻죠?”
“일단 네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 약은……. 급한 대로 타미플루도 쓰는 그룹이 있고. 칼레트라, 클로로퀸, 리바비린. 이렇게 나뉘어서 들어가고 있어.”
“항바이러스제……. 중구난방이네요?”
“그럴 수밖에. 애초에 항바이러스제라는 게 항생제처럼 타깃이 딱딱 정해지기가 어렵지.”
“그건 그렇죠.”
주변으로 흘러가는 소음엔 날카로운 비명과 알람음 등이 뒤섞여 있었다.
그 와중에 이어지는 통화가 수월할 리는 없었다.
일단 통화라는 거 자체가 허용되어 있기는 한 걸까?
적어도 한국에서는 현지 태화 주재원을 통해서조차 우한에 대한 접근이 불가해진 상황이었다.
덩달아 수혁의 마음도 급해졌다.
“그럼 그중에서 효과가 제일 좋은 건 뭐가 있을까요?”
“표본이 너무 작고, 대상 선정도 아무렇게나 이루어져서 그렇게 말하긴 어려워. 다만…….”
“다만?”
“항바이러스제 종류보다는 항바이러스제가 들어간 시점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이고, 그것보다 중요한 건…….”
“네, 듣고 있습니다.”
“스테로이드 치료 여부. 그리고 호스트의 건강 상태야. 간혹 젊은 환자들도 죽어 나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건.”
“면역 반응이겠죠. 역시.”
“이미 알고 있나? 밖은 아직 케이스가 많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데이터 분석해서 정보를 얻는 건 제 전문이니까요. 이것도 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니, 아니지.”
강혁은 역시 귀신 보는 놈이 다르긴 다르단 생각을 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무리 그가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안에 분위기는 엄하디엄했기에 그랬다.
통제에 따르지 않았던 이들 중 사라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메일 보낼 방도가 없어서 사람 하나 따로 뺐는데……. 아마 오늘쯤 보낼 만한 곳에 도착할 거야. 지금 내가 불러 주는 아이디로 접속해서 보낸 메일함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그럼, 여기 있는 환자들……. 경과 기록이 있을 거야.”
“아! 그럼 정말 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어……. 전 기억 못 했는데.”
옆에 있던 안대훈이 당황한 얼굴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빨리 말한 데다가 아이디나 비번이 복잡하기도 해서 기억하기가 어려웠기에 그랬다.
김성진이나 김인수 등등 또한 비슷한 표정이었는데, 별 상관은 없었다.
“이거 녹음돼.”
“아.”
“그리고 난 외웠어.”
“아…….”
역시 수혁이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다들 감탄하는 가운데, 또 다른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엔 불명열 환자에 관해 미국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아무래도 우한 폐렴 같은데, 혹 아닐 수도 있으니 의견을 묻는 전화였다.
“경과가 전형적이진 않는데……. 오히려 다른 감염병의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최근에 치과 치료받은 적이 없는지 확인해 보시죠. 숨찬 증세가 심한 데 반해 상기도 감염 증세는 거의 없어요. 발열도 미열이고…….”
“아……. 네. 지금. 아! 이런.”
“그럼 심내막염으로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군요.”
“네네. 감사합니다.”
“아뇨.”
당연하게도 이런 식으로 꽝이 나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원래 같으면 이런 병 놓칠 만한 병원이 아닌데…….
실수가 나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새로운 미지의 가능성이 등장하게 되면……. 당황하게 될 수밖에 없지.’
[그렇겠거니 했는데 실제로도 그렇군요.]
‘그러니까. 좋지 않은데. 이렇게 되면…….’
[실제 이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도 문제가 되겠지만 이 질환 때문에 밀리게 될 다른 질환 환자들도 문제가 되겠군요.]
‘그러니까…….’
이런 식의 진료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위기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감염……
미지의 감염병.
팬데믹에 대한 경험이 충분히 쌓였다고 하기 좀 어렵지만……. 미지의 감염병에 대한 경험은 있었다.
수혁에게도 그랬다.
그땐 학생이긴 했지만.
‘병원 인프라도 많이 뺏길 수밖에 없어. 만약 감염자 나와서 우리 병원이 폐쇄되거나 그에 준하는 조치에 처해진다고 생각해 봐.’
[건강한 이들에게는 문제가 없을 테지만……. 원래 이 병원에 다니던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겠죠.]
‘그렇지. 응급 질환자들에게도……. 그렇고.’
[하지만 그런 건 지금 당장 우리가 걱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저기 머리 빠져 가는 아저씨 한 분 계시지 않습니까?]
‘하긴……. 정책적인 건 내 전문 분야가 아니지.’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신현태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 빠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이, 신현태 밑으로만 미용실이라도 차렸나 싶을 정도로 무수한 머리카락이 널려 있었다.
“덕수야.”
“네.”
아니, 그 옆에 있는 장덕수 교수도 그랬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감염내과 교수들과 펠로우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꼴이 어째 대한민국만 무사할 수가 없을 거 같아서 그랬다.
“아까 질본에서 전화 온 거…….”
“네. 아무리 봐도 맞는 거 같은데요.”
“접촉력도 충분히 있을 거 같고…….”
“네. 일단 이쪽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괜히 받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게다가 하필 원장인 신현태가 감염내과였다.
심지어 병원도 태화이지 않나.
대기업들이 다들 그러하듯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태화는 다음 먹거리 중 하나로 바이오를 잡아 둔 터라 잘 보일 필요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제일 낫긴 할 겁니다. 이 팀을 보세요.”
“그야 그렇지. 근데 지금도 위태로운데…….”
“국제 진료를 다 보고 있으니까 그렇죠. 돌아가면서 보도록 하고……. 하면 훨씬 나을 겁니다. 그리고……. 메르스 때도 그랬지만, 막상 우리 병원으로 환자 왔다고 하면……. 환자 팍 줄지 않겠습니까?”
“넌 그게 원장 앞에서 할 소리냐?”
“실제로 그런데요…….”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일 수밖에 없지 않나.
병원 입장에서는 일부 희생을 감수하고 감염병을 보게 되는 것인데, 외부에서는 오히려 낙인 효과가 있어서 다른 환자가 팍팍 줄어들기만 했다.
실제로 그로 인해 망한 병원도 있지 않던가.
태화 의료원이야 망하진 않겠지만…….
이만한 덩치를 지닌 병원에 환자가 오지 않게 된다면 가뜩이나 간신히 똔똔으로 맞춰서 돌아가는 판에 막심한 적자를 보게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수혁이가 어제 그랬지.’
신현태는 자신이 애정해 마지않는 조카를 돌아보았다.
-이건 하루 이틀로 끝날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메르스나 사스랑은 달리……. 또 다른 감기 바이러스가 하나 등장했다고 봐야 해요. 모든 사람이 걸리고 나서야 끝날 겁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다른 놈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후려 깠을 텐데.
하필 수혁이었다.
-무증상 감염자도 있는 데다가……. 상기도 감염 증상만 보이고 넘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환자들도 있어요. 사태 초기에 그러한 정황들이 벌써 보인다는 건 실제 비율은 훨씬 높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격리나 거리두기 또는 선제 치료만으로는 무리가 있어요. 결국,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나오고……. 종래에는 집단 면역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어요.
이게 사실이라면…….
어차피 모든 이가 다 매를 맞게 될 거란 얘기지 않겠나.
그렇다면 먼저 맞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기왕 오라고 한 거……. 철저히 보자고.”
“네. 응급실 측에도 곧장 음압 병동으로 이송하라고 전해 놨습니다.”
“그래.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