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04화 (1,004/1,303)

1004화 시간 벌기 (1)

“네, 닥터 헨리.”

“전에 말씀드렸던 mRNA 전사 방식의 백신……. 기억하십니까?”

“네, 알고 있죠. 백신의 한 획을 긋는 개발이지만, 아직 안정성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셨죠.”

유전공학을 비롯한 기초과학 또는 응용과학 여러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은 백신 분야에서도 어마어마한 혁신을 가져오고 있었다.

기존의 백신 개념을 완전히 날려 버리는 백신이 나왔다는 얘긴데…….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일정 부분 또는 약독화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넣어 주는 방식에서 탈피해 아예 그 병원균의 설계도면을 이용하여 훨씬 강력한 항체 생성을 꾀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하게도 면역 획득률 차제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일례로 우리가 주로 맞게 되는 독감 백신 같은 경우 면역 획득률이 70% 언저리에서 노는 데 반해 mRNA 전사체를 이용한 백신 같은 경우 면역 획득률이 95% 이상을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제약 회사 데이터고 더 자세한 것은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숙주의 면역 체계를 조금……. 건드리는 방식이 될 수 있겠죠.”

거기에 더해 한 가지 더 큰 장점이 있는데, 어마어마하게 빠른 생산이었다.

생산 자체가 빠르단 얘기가 아니라 새로운 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개발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백신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던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감기 백신.

돈 냄새가 솔솔 나지 않는가.

이거 개발하면 인류가 감기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얘긴데…….

화이자는 이 어마어마한 걸 만들어 두고도 딱히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외에 또 다른 회사도 비슷한 방식의 기술을 개발해 놓고선 그냥 두고 있었다.

“자가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네. 그 외에 또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미지수입니다.”

부작용 때문이었다.

세상에 부작용 없는 치료법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긴 했다.

그렇기에 의학의 기본은 비용 효과를 따는 것에 있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감기는…….

딱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질환이었다.

물론 감기로도 사망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기저질환을 관리하거나 할 문제이지 백신을 놔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란 얘기였다.

“하지만……. 이 미지의 질환에 대해서는…….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겠는데요.”

“네. 검토 중입니다. 다만 실험실에서도 일부 부작용 중에서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어서 말입니다.”

“주의해야겠네요.”

“네. 이 질환에 대해……. 면밀히 알아봐야 합니다. 만약 기본적인 처치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라도 치명률이 1% 미만으로 관리가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보고되는 사례들을 보면 꿈같은 얘기 같은데요.”

“아직 감염률이 어떤지……. 알지 못하니까요.”

“네. 그렇긴 하죠. 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강력하게 건의를 한 번 더 해 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하게 되면……. 글쎄요. 1년? 2년?”

“음.”

헨리의 말에 수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헨리와의 통화는 거의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개의 경우 헨리가 일방적으로 화이자 또는 미 제약회사들의 동향을 알려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헨리는 이를 통해 주식이라도 사라고 한 건데 수혁은 진료할 시간에 딴짓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배우고만 있었더랬다.

다시 말해 수혁에게 있어 헨리와의 통화는 힐링 그 자체였다 이 말인데…….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가……. 기분이 좋지 않네.’

[일단 잠을 못 자서 지금 기본적인 톤 자체가 내려가 있습니다. 호르몬 수치가 널뛰고 있어요. 빨리 잠부터 자길 권합니다.]

‘알았어. 하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핵심이 되긴 하겠지만, 메르스와 사스를 보십쇼. 중간에 적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될 거 같냐?’

[가능성이 훨씬 낮아지긴 했죠.]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비관적인 얘기가 오가고 있어서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는 것이 많을수록 현실을 직시하게 되기에 그랬다.

확실히 이번 바이러스는 이전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특히 무증상 감염자의 존재는…….

바이러스에게 있어서는 거의 비대칭 전력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미국 상황 잘 좀 알려 주세요.”

“네. 이번에는 일 생기면 바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물론 헨리보다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그러니까 모국에서 이 사태를 훨씬 더 강력하게 겪고 있었으니까.

‘흐음…….’

[일단 고민 그만하고 자요. 최근 72시간 중 수면 시간이 4시간뿐입니다. 그것도 쪼개서 잤어요. 이러다가는……. 진짜로 죽습니다.]

‘알았어. 얼마나?’

[수면 박탈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8시간 수면을 권유합니다.]

‘하…….’

[방금 왔다는 환자 때문에 그렇습니까?]

‘응.’

[신현태가 이끄는 감염내과를 일단 믿으십시오.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알았어. 흐음.’

[지랄 말고 자.]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복잡한 머리를 애써 가라앉히고는 자리에 누웠다.

누우면서도 잠이 쉽게 오려나 싶었는데, 워낙 피곤했기 때문에 거의 눕자마자 뻗어 버렸다.

그 시각, 감염내과 팀은 눈을 붙이기는커녕 하루 동안 제일 바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최초로 진료하신 분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지?”

“아직……. 3일?”

“3일? PCR밖에 방법이 없어서 그런가?”

“네. 그나마 빨라진 거라고 합니다, 이게.”

“이런 망할…….”

신현태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장덕수를 비롯한 여러 교수들 그리고 펠로우들이 초조한 얼굴로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 음압 병실에 있는 환자를 바라보면서였다.

“달리 접촉했던 사람은?”

“비행기 내부 말고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일단 공항에서 경고를 했고, 환자가 그 경고를 잘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그건 다행인데. 진료하셨던 분들은…….”

“일단 해당 병원에서 격리 중이라고 합니다.”

“거기도 음압 병동이 있나?”

“그건……. 아닐 겁니다만, 다 비우고 격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흐음…….”

그렇게 되면 자기들끼리 주고받게 될 공산이 컸다.

신현태는 아까 유리창 너머 환자를 진찰할 때 입었던 레벨 D 방호복이 담겨 있는 폐기물 통을 바라보았다.

‘이게 공기 감염인지 아니면 비말 감염인지 정도만 알아도 대응에 도움이 될 텐데…….’

지금으로서는 일단 최악을 상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황상 비말로 보이긴 했다.

만약 공기 감염이었다면…….

‘그랬으면 진짜 영화 찍는 거지…….’

그렇게 되면 팬데믹은 기정사실이고, 얼마나 죽어 나갈지부터 염려를 해야 할 터였다.

아니, 벌써 팬데믹이 벌어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지금도 팬데믹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하긴 하지만…….

같은 팬데믹이라고 해서 다 같은 모양새를 띄진 않았다.

‘의료 체계가 붕괴하는 데까지……. 며칠 걸리지도 않을 거야.’

아무 치료도 받지 않았을 경우의 치명률까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제아무리 사스보다 낫다고 해도 5%는 넘는다고 봐야 할 터였다.

그런 게 공기 감염으로 번진다?

정말로 인구 5%가 사망하는 꼴을 지켜보게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이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팬데믹이 생긴다고 해서 세상에 원래 있던 병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으니.

게다가 사람이 병으로만 죽나?

먹을 게 없으면 죽게 되는데…….

어떤 질환으로 인해 사회가 마비되게 된다면…….

‘5%에 공기 감염이면 마비지. 나라 망한다 진짜…….’

신현태는 잠시 안 좋은 생각으로 가득해 있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지금 그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어서 그랬다.

“일단……. 환자 엑스레이는 괜찮지만……. 산소 요구량이 늘고 있어.”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이상해요. 이수혁 교수님 말씀대로입니다.”

신현태는 간신히 유리창 너머 환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환자는 젊디젊었다.

30대…….

다른 곳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태화 측 주재원이었다.

그렇기에 기저질환이니 뭐니 하는 정보를 훨씬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미혼……. 흡연력도 없고, 기저질환도 없어.’

그렇다고 뭐 BMI가 높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환자는 누가 봐도 건강체였다.

허나 명백히 중환자 코스를 밟고 있었다.

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특히 젊은 환자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면역 반응이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수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지독한 놈이야, 진짜.’

머리가 좋은 건 둘째 치고서라도…….

집념이 진짜 대단했다.

이현종조차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매일 밤 뻗고 있는데, 수혁은 거의 이틀 밤을 새우고 마지막 날까지 꽉꽉 채워서 일을 해낸 마당이었다.

그렇다고 일만 했냐?

그것도 아니었다.

“스테로이드 펄스로 때리고……. 항바이러스 넣자.”

“어떤…….”

“수혁이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렘데시비르가 가장 효과가 좋을 거로 예상이 된다고 했어.”

“렘데시비르면……. 에볼라 치료제요?”

“어, 일단 질본에 요청해서 받아 놨어. 태화에서도 어떻게든 확보하겠다고 했으니까……. 재고 들어올 거야. 그걸로 써 보자.”

“네.”

거기에 더해 연구까지 진행했다.

머리 나쁜 사람은 테이터 찍찍 써 놓은 엑셀만 봐도 머리가 핑핑 돌 거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데, 수혁은 벌써 머리통 안에 대강의 시나리오가 있는지 잘도 정리해서 결론을 몇 개 내둔 바 있었다.

“사진에 비해 산소 요구량이 높을 거야. 그리고 곧 폐가 망가질 수도 있어. 스테로이드랑 바이러스제가……. 잘 듣기를 기도해 보자고.”

“네.”

“그리고, 환자 동선 한 번 더 파악해 보고. 아직 우리나라는 초기니까……. 역학 조사해서 선제적으로 막는 게 중요할 수 있어.”

“네. 교수님.”

“우리끼리만 하지 말고 정부에 요청해. 어차피 나도 내일 회의 참석할 거니까…….”

“네, 그럼 좀 주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 자야지. 자긴 해야 하는데…….”

신현태는 아직 의식이 온전한, 그래서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젊은 환자를 바라보았다.

‘망할…….’

저걸로 끝이면 좋을 텐데.

이미 전 세계로 번지고 있지 않던가.

긴가민가했던 건 사흘 전의 일이었다.

수혁이 나서서 각 나라의 불명열 환자들을 둘러본 결과…….

참담했다.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을 뿐, 이미 팬데믹이었다.

“이거 한 번만 더 보고 잘게.”

“아……. 네. 저희도 숙지하겠습니다.”

“그래.”

수혁이 정리한 데이터들의 정수, 지침서를 손에 쥔 채로 신현태는 원장실로 향했다.

간혹 통합진료센터 일 봐주고 하면서 라꾸라꾸 침대라도 들여놓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소파에서 잘 뻔했다.

아니면 병실이나.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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