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06화 (1,006/1,303)

1006화. 코비드에서도 (1)

“영상 찍은 거 있죠?”

“아, 네. 있습니다.”

“보죠.”

코비드.

이 망할 놈의 질환은 과연 새로운 질환답게 별의별 방향으로 드리프트를 꺾고 있었다.

물론 절대다수의 환자들은 상기도 감염 증세만을 보이고 끝나긴 하는데…….

그 외에 심장 질환을 일으키거나 신경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도 꽤 있었다.

절대로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빈도였다.

그중에서도 길랑바레라는 병을 꽤 자주 동반했는데, 이 또한 역시 코비드라는 질환이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의 증거가 되었다.

“흐으음……. 확실히 길랑바레는 아닌데.”

“네. 영상에서도 그렇지만 증상이 좀…….”

“흐음.”

수혁은 방금 들었던 증상을 떠올렸다.

아니, 바루다에게 시켰다.

이럴 때만큼은 바루다도 말을 꽤 잘 듣는 편이었기 때문에 하라는 대로 줄줄 읊었다.

[복시, 진동, 사지의 운동실조, 오른팔 감각 변화, 먹거나 마실 때 딸꾹질 등이 발생했고……. 모든 사지의 운동 실조는 우측에서 더 두드러졌습니다. 근력 자체는 정상이고요.]

‘좋아……. 길랑 바레에 밀러 피셔 변이가 있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영상에서 보이는 소견은 전혀 달라.’

[네. 우측 소뇌를 주목해 주십시오.]

‘소뇌 자루에 신호가 증가해 있어. 대강 13mm x 28mm가량?’

[네, 그렇습니다.]

증상 및 영상 소견을 종합했을 때, 환자의 진단명은 다소 뜬금없어 보였다.

‘롬브뇌병증(rhombencephalitis)……?’

[자가면역 또는 감염, 종양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뇌간이나 삼차 신경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바루다는 여러 원인을 말했지만 사실 30% 이상에서 원인을 알 수 없이, 그냥 발생하는 이상한 질환이었다.

그 외에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원인이 있다면 역시 바루다가 말한 것처럼 다발성경화증, 베체트병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리스테리아 감염, 엠스타인-바 바이러스, 결핵과 같은 감염 또는 종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허나 이 환자의 경우엔 일단 자가면역질환을 비롯한 다른 기저질환이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종양도 마찬가지였다.

“환자 뇌척수액 검사를 혹시 진행하셨습니까?”

“아……. 지금 막……. 네.”

“같은 걸 의심하는 걸 수도 있겠는데……. 저는 롬브뇌병증(rhombencephalitis)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좀 이상해서요.”

“그렇죠. 환자의 기저질환을 생각하면 역시 리스테리아 감염병이 가장 흔한 원인일 텐데, 사실 감염병 자체가 다른 감염병의 위험 요인이긴 해도 리스테리아 감염병이 흔하지 않으니까요.”

“네. 설마…….”

“뭐……. 일단 확인을 해 보시죠.”

“네. 교수님.”

수혁은 살짝 김이 새는 느낌을 받았다.

임상 증상과 영상만 보고도 대강의 진단명이 떠오르지 않았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렵지 않은 케이스라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냥 지들이 해결 가능한 거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말이다. 물론……. 케이스 자체는 별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해도, 이러한 정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긴 할 거야.’

[네, 만약 다른 증거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코비드가 드물게 롬브뇌병증(rhombencephalitis)을 일으킬 수 있다는 증거가 되겠죠. 확실히……. 까다롭군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감염병이라는 것은…….]

‘흐음.’

수혁은 잠시 기다렸다.

그사이 수화기 너머의 의료진들은 분주히 움직여, 뇌척수액 검사 결과물을 도출해 냈다.

“백혈구 증상은 없습니다. 그제 시행한 세균 배양 검사에서는 음성이고……. 으음……. 코비드 PCR은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음성이요?”

“네. 이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의료진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리스테리아가 아니면 코비드라도 나와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수혁은 대번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흐음……. 환자가 코비드 양성 보인 지 얼마나 되었죠?”

“증상 보고한 것이 10일이고, 진단된 것은 9일이니……. 실제 감염되었을 시기는 더 전으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자, 잘 들으십시오.”

수혁은 다시 한번 환자의 히스토리를 듣고는, 눈을 감았다.

딱히 바루다와의 대화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좀 피곤했다.

환자가 물밀듯 밀어닥치는 데다가, 그 환자라는 게 간단한 환자들이 아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직 코비드라는 병에 대해 잘 모르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형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그렇죠?”

“네, 그렇죠.”

“이전 사스의 경우를 보면 아직 코비드에서는 뇌수막염이나 뇌염 사례를 보고 받은 바가 없지만, 결국, 같은 바이러스의 변형이니만큼 비슷한 경과를 밟을 수 있을 겁니다. 약간의 사고의 비약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단서가 적으니……. 이렇게 가자고요.”

“네네. 듣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소리를 내뱉게 된 것은 아니었다.

수혁의 추론 능력이나 논리적인 사고 능력은 잠이 부족한 와중에도 출중했다.

아까 마신 각성제도 도움이 되긴 했고 또 바루다도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 사스에서는 뇌수막염이나 뇌염 등의 보고가 꽤 있었습니다. 당시 검사 결과를 보면 CSF 백혈구 수의 경미한 증가가 있었고 그 외 단백질이나 포도당 등은 정상이었습니다. 더 지금 이 환자가 보이는 수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죠?”

“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스 바이러스의 RNA가 검출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직접 바이러스의 침투가 있었다는 것이죠.”

“아……. 그럼 이건……?”

얘기가 진행됨에 따라 의료진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어째 듣다 보니 점점 더 혼란스러워져서 그랬다.

그렇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대체 뭐라는 건가!

수혁은 대번에 그 표정을 읽어 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에 비해 이 환자는 바이러스의 검출이 없었죠. 그 외에 다른 검사상의 변화도 없고…….”

“네, 대체 이게…….”

“환자 병의 경과를 보시죠. 벌써 2주 가까이 되었습니다. 아직 발열은 있지만, 신경 증상을 제외하면 상기도 감염증에 관한 증상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으음.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감염 후 면역 반응에 의한 증상일 거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겁니다.”

“아……? 아. 음. 확실히 말씀을 듣고 보니…….”

“새로운 형태의 감염병일수록 아무래도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죠. 그리고 지금 영상이나 증상을 보면……. 자가면역질환의 형태를 일부 띄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질환은 감염 후 면역 반응이라고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타당합니다.”

“아.”

그렇게 수혁이 말을 이어 나가자, 비로소 의료진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떴다.

물론 면역 반응이라고 해도 해결이 쉬운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바이러스가 직접 머릿속으로 침투했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일단은 증상 조절하시면서 두고 보시는 것으로 충분할 거 같습니다. 혹 변화 있으면 바로 알려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새로운 형태의 합병증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의료진은 말을 저렇게 했지만, 수혁은 실제로 데이터 하나를 쌓았다는 생각에 흡족한 상황이었다.

확실히 누워 있다가 일어날 만한 케이스였다고나 할까?

몸은 피곤하고 머리는 멍했지만…….

‘충족감이 있어.’

[새로운 걸 배운다는 느낌을 말하는 겁니까?]

‘응. 그렇지.’

[저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군.’

뭔가 다른 종류의 만족감이 수혁의 전신을 감돌고 있었다.

‘과연……. 우리 교수님은……. 천재……!’

안대훈은 그런 스승을 보면서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에 있던 질환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인류가 최초로 마주한 질환에 대해서도 천재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이러다 진짜……. 이번 사태 끝나면 완전 월드 스타로 우뚝 서실 거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WHO에서도 공식 석상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수혁이 발표한 내용을 참고해서 지침서를 발표하고 있지 않나.

‘사태가 끝나면’이 아니라 그냥 벌써 우뚝 선 것일 수도 있었다.

따르르릉

그때 전화가 또다시 울렸다.

안대훈은 그 즉시 원래 하고 있던 생각을 멈추고, 전화부터 받았다.

왜냐.

‘우리 병동은……. 그나마 상황이 좋아.’

객관적으로는 좋다고 하기 좀 어려운 상황이었다.

태화에서 부리나케 설비 충원에 나서서, 적어도 센터 내의 모든 병실은 음압 병실로 개조해 주긴 했지만…….

설비는 설비고, 질환 자체가 문제였다.

워낙에 중환으로 빠르게 이행하는 환자들이 많다 보니 환자도 의료진도 다 죽어 나가고 있었다.

허나 여기엔 수혁도 있고 신현태, 장덕수 등의 감염 내과 스페셜리스트들이 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진짜로 다른 데서 봤으면 죽을 만한 환자를 살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 다른 곳은…….

“네,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입니다.”

“네네! 어휴!”

난리 통이었다.

“네, 어디시죠?”

“그러니까! 어휴!”

이것 봐라…….

자기 소속도 밝히지 못하고 있지 않나.

다 똑똑한 사람들일 텐데 이러고 있다는 건 멘탈이 어지간히 나갔다는 뜻일 터였다.

멘탈이 이렇게 나가 버리게 된 것은…….

당연하게도 어려운 환자들이 와서겠지.

“뉴욕. 뉴욕이야.”

수혁은 번호를 보고 거꾸로 유추했다.

그 말에 안대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뉴욕 센터인 거죠?”

어쩐지 외국 번호로 왔는데, 한국어로 말하고 있다 싶었다.

아마 신현태가 짬 때린 결과물일 텐데…….

기본적으로 화가 많이 나 있긴 할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태화 의료원에 있다가 뉴욕 가게 된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공교롭게도 이놈의 코비드가 터져 버리지 않았나?

사실 미국 가랄 때 얌전히 가는 이유가 애들 교육이나 뭐 이런 거였을 텐데…….

‘코비드 때문에 학교 닫았지……?’

여러 선배들의 하소연을, 발이 유독 넓은 안대훈은 벌써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전해 들은 마당이었다.

“아, 그렇지. 미국에 우리 뉴욕밖에……. 아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살려 줘!”

“네? 누구……. 아, 이거 설마.”

“나 조태진이야!”

“아니, 왜……. 왜 거기 계세요?”

“학회에 휴가 붙여서 왔다가 갇혔어!”

“아.”

그래도 이건 또 몰랐다.

아니…….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필 봉쇄 직전에 학회를 갔다가 갇혀?

그것도 정보를 풀지 않아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는 중국 측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코비드가 가장 심한 뉴욕에……?

“아무튼, 내가 니들이랑 친한 거 알고 부탁하는 건데……. 사실 내 전문 분야는 아냐.”

“그렇죠. 이건 감염병이니까.”

“형, 저도 있어요. 말씀해 보세요.”

“그래, 휴. 아……. 그래. 후.”

이쪽에서도 황당한데 본인은 어떻겠나 싶어서, 센터 사람들은 조태진이 제대로 된 노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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