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화. 코비드에서도 (2)
조태진은 표정이 그리 좋지가 못했다.
당연했다.
놀러 갔다가 저리된 거 아닌가.
사실 2주 전이라고 해도…….
이미 코비드로 난리가 시작되고 있던 마당이었기에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와서 그따위 말을 할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없었다.
‘왜?’
[미쳤어요? 그런 말은 참아야지.]
‘너무 억울해하시니까. 그럴 일은 아니다……. 뭐 이런 말인데.’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고.]
물론 수혁은 아니긴 한데…….
다행히 바루다라는 억제기가 있어서 입은 다물 수 있었다.
하여간, 그러한 상황에서 조태진은 입을 열었다.
여전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아무리 봐도 놀러 갔다가 갇힌 것만으로 저러는 건 아닌 듯했다.
“여기 내 친구도 있거든?”
“네.”
노티는 두서없이, 또 뜬금없이 시작됐다.
수혁이 아니었다면 눈살을 찌푸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수혁이 또 이런 면에서는 이해심이 대단했다.
“한……. 그래. 나 학회 왔을 때 원래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코비드 양성이 나왔어.”
“친구라면……. 형이랑 동갑이에요?”
“응.”
“그럼 40대……. 남자?”
“남자. 아, 너도 알겠다. 장우영 교수.”
“아……. 내과는 아니시죠?”
“어.”
장우영.
수혁은 바루다를 시켜서 데이터를 떠올렸다.
다행히 업무적으로 직접 연관이 없어도 바루다는 대강 의사들 프로필 정도는 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통합진료센터라는 곳의 취지 자체가 모든 과를 다 아우르는 데 있기도 했고, 또 같은 병원에 있는 사람 알고 지내서 나쁠 게 없어서이기도 했다.
[체형은 보통 체형입니다. BMI값으로 따지면……. 아슬아슬하게 경도 비만 정도가 되겠군요.]
‘그렇군.’
물론 이런 식으로 진료에 도움이 될 거란 기대는 없었는데, 뭐가 되었건 잘된 일이었다.
“아무튼, 기저질환도 없고 건강하거든. 미국 와서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근데 딱 나 학회 온 날 양성이 나왔어.”
“증상이 있었어요?”
“증상은 전혀 없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서 진료 중이잖아. 양성 나온 환자들 보고 미리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검사를 했나 봐.”
“아……. 하긴 뉴욕 센터는 또 특히 조심해야겠죠.”
한국도 그렇게 하고 있긴 했다.
의료진이 걸린 채로 진료 보게 되면 이거야말로 큰일 아닌가.
안 그래도 아픈 사람만 보는 사람인데 코비드야?
정말이지 살아 움직이는 바이러스 덩이 그 자체가 될 수 있었다.
“응. 근데 이게 증상이 하나도 없다 보니까……. 그냥 집에서 경과 관찰하기로 했어. 입원하기엔 환자도 많고……. 무엇보다 오히려 더 아플 수도 있어서.”
“그렇죠. 게다가 환자 본인이 의사니 증상 보고도 훨씬 정확하겠죠.”
“응. 매일 연락 주고받으면서 보면 되기도 하고. 그래서 경과 관찰을 했어. 나야 학회 다니다가 갑자기 폐쇄당해서 벙찌기도 하고 좀 정신없어서 연락은 잘 안 했는데……. 하여간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봉사나 할까 해서 3일 전부터 병원 나오고 있거든?”
조태진.
이 인간도 역시 명의병 환자였다.
저런 상황에서 병원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말이 쉽지 당연한 일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코비드는 아직 미지의 질환이었다.
그나마 수혁의 활약으로 대강의 경과가 밝혀지고 있고, 무증상 감염자 등 경과가 가벼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알려지고 있는 마당이라고 해도 그랬다.
죽을 수 있었다.
단순히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죽을 수 있었다.
“아, 네. 대단하네요, 역시 형.”
“아냐, 아냐. 이현종 교수님도 대구 가셨다며. 너도 거기서 아예 중환자실 전담으로 보고. 패밀리 다 일하는데 나만 어떻게 노닥거리고 있겠냐.”
물론 숭고한 뜻만 있는 건 아니고…….
살짝 이럴 때 학회 나간 것에 대한 면피용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얘기를 떠들진 않았고, 그사이 조태진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근데 방금 걔가 응급실로 왔어.”
“응급실……?”
“응. 벌써 양성 나온 지 열흘도 넘었기 때문에 아예 다른 질환으로 왔을 줄 알았는데……. 숨 숨쉬기가 힘들대.”
조태진은 그런 말을 하면서 처치실을 가리켰다.
애초에 전화를 휴대폰으로 걸어 온 마당이었기 때문에 달려가는 동안 화면이 몹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환자가 눈에 들어 왔다.
알던 모습과는 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살집이 저것보단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BMI 정상으로 보이는데.’
[그렇죠? 살이 빠진 모양인데……. 운동을 했다는 진술이 있었으니, 병 때문에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무증상이었잖아?’
[그렇긴 하죠.]
‘근데…….’
[지금은……. 무증상이라고요? 이게?]
달라진 것은 비단 살집뿐만이 아니었다.
환자는 확연히 아파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산소 포화도가 기껏해야 80%밖에 되지 않았다.
“후우우욱……. 후우우욱…….”
“언제,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조태진은 우선 폰을 맡겨 둔 채, 달려갔다.
건네받은 간호사 또한 수혁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가타부타 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환자를 가리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었다.
왜 혈액종양내과인 조태진이 코비드 환자를 보고 있나, 이런 의문.
내막을 알고 보면 간단한데, 뉴욕 센터는 일단은 미용을 중점으로 보기로 한 마당이었다.
그 참에 코비드가 터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런 진료를 하게 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진료에 제한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오늘…… 부터 갑자기…….”
“갑자기? 숨만 차?”
“아니, 여기……. 여기가 아파.”
“가슴? 심……. 심전도!”
그래서 나서게 된 것이 내과 전문의 조태진이었다.
그래 봐야 아주 막 특출날 수는 없었다.
혈액종양내과 쪽이라면야 대가겠지만…….
이건 분야가 다르지 않나.
물론 짬바가 아주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보니 일단 해야 할 검사는 하고 있었다.
“동맥혈 검사! 아, 빨리! 주사 빨리!”
친구가 쓰러진 마당인데도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이곳저곳 뛰고 있는 조태진과 환자 그리고 바이털 사인을 수혁이 면밀히 살폈다.
그에 더해 아까 했던 짤막한 환자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고 하죠. 수혁, 환자의 우측 하지를 살피십시오.]
조태진만 길길이 뛰고 있는 건 아니었다.
중점을 피부 미용에 두고 있었다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모든 인력은 태화에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응급 상황에 대한 프로토콜이 인이 박이다 못해 거의 척추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지경에 있는 이들이란 얘기였다.
그렇다 보니 간호사들은 벌써 환자의 옷을 벗기거나 그게 여의치 않은 경우엔 옷을 잘라 모든 부위를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두고 수액 라인을 달면서 피를 뽑아 가는 등의 처치를 별 지시가 없었음에도 재빠르게 하고 있었다.
‘아……. 우측 하지가 부어 있군.’
[처음 보는 소견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 저건 DVT야. 의심의 여지가 없어.’
DVT.
Deep vein thrombosis의 준말인데, 다시 말해 정맥에 혈전이 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드물지만은 않은 병인데 일반인에게는 주로 이코노미 신드롬으로 알려져 있을 터였다.
하여간 드물지 않은 것에 비해 꽤 위험한 합병증을 수반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환자는 이미 그 합병증이 수반된 것으로 보였다.
“형!”
그렇다면 시간을 지체해서 좋을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어, 어!”
일단 심전도를 보고 있던 조태진은 수혁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심전도에서 딱히 경색 같은 게 나오질 않아서 당황하고 있던 참이었다.
사실 심근경색에서 이런 증상이 딱히 저명한 것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우심실 경색이면 통증이 아니라 숨이 차는 증상이 주된 호소가 되기도 해서 기대를 걸었는데 아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씨티부터! 폐색전증이 의심됩니다! 환자 우측 다리를 보면 부어 있죠? 아마 초음파 대서 보면 거기 혈전 있을 거예요!”
“아!”
왜?
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코비드 감염과 대체 색전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아마 상대가 수혁이 아니었거나 또는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조태진이 아니었다면 근거에 대한 질문이 100% 튀어 나갔을 터였다.
‘수멘.’
하지만 조태진은 수혁에 대해서만큼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표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신뢰라기보다는 그냥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 지경이었던 건 아니었다.
물론 다 쓰러져 가는 오컬트 동아리를 지키며 강철의 조태진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에게 이러한 신앙을 심어준 건 역시나 안대훈이었다.
하루 이틀 함께한 것도 아니고 홈마까지 같이 하다 보니 영향을 진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여자였으면 이해는 가겠다!
아내가 진담 반 농담 반 섞어서 이런 말까지 했을 정도로 수혁에 대한 애정마저 강한 조태진은 그 길로 환자를, 그러니까 친구를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어!”
“교수님!”
“어디 가요!”
“CT! 방금 들었잖아!”
“아니…….!”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회개해라!”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의료진은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조태진은 씨름부 출신임을 유감없이 뽐내며 무작정 내달리고 있었다.
‘이 독사의 자식들.’
감히 수혁의 명을 의심한다는 것에 열이 받아서이기도 했는데, 하여간, 그렇게 도착한 CT실은 비어 있었다.
환자가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 갑자기 무슨.”
물론 환자가 없는 거랑 갑자기 들이닥치는 건 좀 별개의 일이었다.
“장우영 교수 알죠? 지금 죽게 생겼으니까 빨리!”
“어어. 네네.”
“나. 나 아직 안……. 죽…….”
“닥쳐!”
“어, 어.”
그래서 반발을 하려고 했지만, 조태진은 진짜로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들이민 환자도, 들이민 의사도 교수이지 않나?
뭔가 둘 사이에 아직 원만한 합의가 있었던 거 같진 않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들이밀고 와서 찍겠다는데 어쩌겠나.
“빨리, 빨리!”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기 시작한 기계를 보면서, 조태진은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수혁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다.
당연하다고 하기엔 좀 그랬지만 머릿속에 담고 있는 생각은 전혀 다르긴 했다.
조태진은 폐색전증이 맞는다면 무슨 치료를 해야 하고 또 예후는 어떠할지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수혁은 이미 그건 다 알고 있었다.
그가 고민하는 지점은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코비드에서……. 폐색전증을 일으켰다는 보고는 있긴 했지만, 무증상자는 처음이야.’
[이렇게 되면 그 환자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으면서 혈액의 와류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폐색전증이 생겼을 거라는……. 기존의 추정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 물론 자세한 건 문진을 더 해 봐야 해. 말이 무증상자였을 뿐 누워 지냈을 수도 있으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죠. 하지만 기존 이론이 부정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새로운 가설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코비드의 예후를 조금 더 나쁘게 예측하게 만들 수 있겠군…….’
그는 이 질환의 미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