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10화 (1,010/1,303)

1010화 도와달라고? (2)

‘사고 치는 건 막아야지……. 너무 허접한 것만 물어보고 있으면 뭐…….’

안대훈에게 맡기면 되지 않겠나?

약간 짬 때리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사실 마이너 서저리 과가 환자 보는 데 도와주는 역할이라면 안대훈 정도면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었다.

생긴 게 우스워서 그렇지 결단코 우스운 인간은 아니지 않나?

수혁이 보기에도 안대훈의 실력이 썩 처지지 않는 편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 가지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지금 전화를 건 상대, 그러니까 우리 자랑스러운 이비인후과 의사이신 친구분이 아주 유명한 환타라는 점이었다.

“어어. 그래. 말해 봐.”

“응. 근데…… 내가 사실 전반적으로 환자를 잘 모르겠어서……. 영통 해도 되나?”

“영통……. 응. 그래, 그게 나을 거 같아.”

수혁은 아까보다도 더 성의 있는 태도로 변해 있었다.

왜냐?

바루다가 일전에 이 친구가 뜬금없이 베니건스를 사 줬던 기억을 떠올려 주어서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베니건스라는 게 딱히 뭐 대단한 건 아니겠지만…….

학생 때 베니건스면…….

지금으로 치면 여느 호텔 식당 오마카세나 다름없지 않겠나.

어마어마한 은혜를 입었다 이거였다.

할 수 있는 게 영통이라면 해야 할 터였다.

드르륵

해서 수혁은 전화를 끊고 기다렸고, 머지않아 전화가 다시 왔다.

“아니……. 환자가 왜 이렇게 많아. 다 네가 봐?”

“어? 어어. 이번 시간에는 내가 다 보지.”

“어……. 그렇군.”

영상은 짤막하게나마 오랜만에 보는 친구 얼굴을 비추었다가 이내 모니터를 비추고 있었다.

[원래 얼굴이 저 모양이었습니까?]

‘아니……. 저렇진 않았지. 나름 최근에도 봤었는데……. 가서 망가진 모양인데.’

[다들 군의관 때가 태어나서 제일 건강했던 때라고 떠들어 대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인데……. 하긴.’

수혁은 저 친구가 원래는 외과 지망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꽤 확고했었고 그래서 그런지 성적도 좋았더랬다.

사실 외과 갈 생각이면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지만, 저 친구가 꿈꾸던 외과 의사는 하얀거탑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백강혁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이 꽉 깨물고 공부를 했었는데…….

그만 학생 때 테이블 데스를 겪고 말았더랬다.

사람 생명 다루는 건 못 하겠다고, 술 먹으면서 울먹거렸던 기억이 있었다.

‘아무나 이런 업을 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오직 나같이 내면이 단단한 사람만이…….’

[거기서 어떻게 이런 식의 잘난 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거죠?]

‘잘난 척이 아닌데?’

[네네.]

이상한 사고 회로를 통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수혁은 모니터에 뜬 환자 목록을 놓치지 않았다.

무려 25명의 환자가 입원 중이었다.

담당의는 모조리 한 명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는데…….

친구 이름은 아닌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주로 보는 한 명의 의사가 있고 나머지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한 사람이 24시간 저만한 환자를 보는 건 사형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일 터였다.

“어……. 너무 많지. 하……. 수술 환자도 아니고 이게…….”

“혼자 볼 수가 있는 건가……?”

“8시간씩 보면 되긴 한데…… 나 다음 오시는 선생님은 일반의라, 나랑 비슷하거나 그럴 거야.”

“음.”

일반의라…….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일반의라고 해도 뭐가 되었건 간에 6년간의 정규 과정을 마쳤다는 얘기니까?

하지만 인턴과 레지던트라는 과정을 겪지 않은 상황에서 이만큼이나 중증도 있는 환자를 본다는 건 그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식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멘탈 자체가 터져 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하여간, 봐 봐.”

해서 수혁은 인계가 되기 전에 대강 다 봐주기로 마음을 먹고는, 처음부터 환자를 보기로 했다.

“어, 응. 고마워. 일단 지금……. 아니다. 내 판단보다는 그냥 진짜 1번부터 본다?”

“어, 그게 좋을 거 같아.”

“오케이.”

친구는 그의 뜻에 따라 그냥 환자 명단에 있는 1번을 눌렀다.

환자 나이는 56세.

고령이라고 하기는 좀 그랬지만…….

하여간 젊은 환자는 아니었다.

미지의 질환 속에서 잘못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기저질환은 없네?”

“응. 근데 열도 많이 나고, 오한도 있고……. 그나마 산소 주면서 95% 이상 유지되고는 있어.”

“그래, 사진은 어때?”

“사진?”

“흉부 엑스레이.”

수혁은 기록에 있는 환자 얼굴 사진 근처를 맴도는 마우스 커서를 보다가 간신히 한숨 쉬는 것을 참아냈다.

[잘했습니다.]

‘그래.’

은인에게 실례이지 않나?

따지고 보면 이비인후과에서 제일 많이 보는 사진은 아마 내시경 사진일 터였다.

코가 되었건 귀가 되었건, 하여간에 엑스레이는 좀……. 거리가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한 면을 억지로 이해해 가면서, 사진 뜨는 것을 기다렸다.

“폐렴……. 흐음……. 사진상으로는 벌써 꽤 걸린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얼마나 됐지?”

“진단 받은 지는 1주일인가 됐어. 원래 일반 치료 시설에 있다가, 룸에어에서 호흡곤란이 발생하고 해서 오셨지.”

“그렇군. 그래, 폐는 그래도 크게 문제없어 보여.”

“다행이네. 그럼.”

“아니, 잠깐만.”

문제없다는 말에 마우스 커서가 곧장 ‘X’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본 수혁이 당황스러워서 황급히 말렸다.

“응?”

“폐가 문제……. 없다는 소리잖아, 친구야.”

새끼야 라고 나가려는 걸 간신히 친구로 치환했다.

이러한 기색을 눈치챈 것은 당연하게도 안대훈 정도뿐이었다.

조태진도 옆에 있었다면 알아차렸을 테지만 그는 지금 미국에 갇혀 있지 않나.

이현종은 대구에 가 있고…….

신현태는 오히려 수혁보다도 더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다.

“아……. 그럼 다른 데도? 근데 코비드 이거 상기도 감염 질환 아닌가?”

“으응……. 그럴 수도 있는데, 사실 여기저기 번질 수가 있어 가지고. 확인은 해 봐야 해.”

“오케이.”

하여간 수혁은 초인적인 인내로 친구의 마우스 커서를 ‘X’에서 치울 수 있었다.

그렇게 향한 것은 역시나 검사 결과였다.

환자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시 감염 존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에는 CCTV를 통해서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들어가라고 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일 터였다.

일단은 밖에서 쭉 훑어보고 결정해 줘야 할 터였다.

“어……. 친구야?”

“응.”

그렇게 띄운 검사에서 대번에 이상한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당이 떠 있었다.

‘기저질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없다고 했죠. 물론 감염 상황에서는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뜰 수는 있습니다만…….]

‘먹는 것도 거의 없을 테고, 사실상 수액에 섞여 들어가는 것 정도가 다일 텐데 200을 치고 있어. 검사 시간을 보면 식전인데 말이지.’

[그 말은…….]

‘확인이 필요해.’

아직 사례는 없었다.

코비드에 국한한다면 그러했다.

하지만 여러 감염 질환의 경우를 고려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응? 왜?”

수혁은 해맑게 물어 오는 목소리를 간신히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당. 저거 눌러서 이전 검사 결과 띄워 볼래?”

“어…… 오. 이게 왜 뻘겋지?” 아, 당직 선생님이 보셨네. 인슐린 들어갔는데?”

“아니, 그러니까…….”

그래.

당이 뜨면 인슐린 줄 수 있지…….

줄 수 있는데, 그건 결과론적인 처방이지 않나.

환자가 당뇨가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당이 뜰 수 있기는 했다.

먹는 게 없다고 해도 움직임이 제한되고 하니까?

게다가 감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때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은 필연적으로 당을 끌어 올리기도 했고…….

하지만 당뇨가 없는 상황에서 당이 저렇게 뜨고 있다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원인을 알아내야지. 일시적인지 아닌지도 봐야 되고. 옳지. 그래. 아……. 이게……. 계속 뜨는데…….”

“아…… 점점 높아지네. 당뇨가 생기셨나.”

수혁은 참신한 의견에 남몰래 헛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췌장 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혈당이 올라간다는 건, 당뇨를 포함해 뭐가 되었건 인슐린이 부족해지고 있거나 인슐린에 대한 저항성이 오르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급성기라면 후자보다는 전자를 의심해야 할 터였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기관이 췌장이니 방금 수혁이 하는 말은 당연하지만 타당한 말이었다.

“아…… 왜?”

“이유야 모르겠지만, 방치하면 위험할 수 있는 이유일 거야.”

혈당이 갑자기 오르는 경우, 저 나이에서는 사실 췌장암부터 의심해 볼 수 있었다.

암이라는 건 주변 조직을 박살 내는 놈이지 않나.

하지만 급성기라면…….

“초음파 볼 수 있어?”

“아니. 못 보지……“

“초음파가 있냐는 말이야.”

“아, 있어. 안에 있더라.”

“그럼 지금 좀 들어가서 봐 볼래? 급성 췌장염이면 큰일이야. 일단 혈액 검사도 좀 해 보고.”

“어떤?”

넌 내과 의사였으면 뒤졌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혁은 그러나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췌장염일 때 급속히 오를 수 있는 게 리파아제와 아밀라아제가 있지.”

“아하.”

“그거 내고, 들어가서 함 봐 봐. 만약 맞다면 일단 npo(금식)부터 해야 해. 아니면……. 안 돼.”

“어어. 근데 원래 췌장염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야?”

“코비드에서는……. 사실 아직 보고가 안 되었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췌장염을 일으킨다는 보고도 없고.”

“어……?”

“다른 원인일 수도 있다는 건데. 뭐……. 가능성은 언제나 있지.”

수혁은 환자의 폐색전증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아무래도 엔지오텐신 관련한 문제를 일으킬 공산이 클 텐데, 이걸 적용한다면 췌장염도 가능했다.

[사스 때도 그랬죠. 확실히 사스와 꽤 비슷한 기전을 갖고 있군요.]

‘어. 그렇지. 그러고 보니……. 전에 일부 환자들에게서 당 조절에 문제를 겪었다는 보고가 있었지. 기저질환이 당뇨가 있는 환자들이라 무시됐지만 어쩌면 사스보다 췌장에 더 잘 들러붙을 수도 있어.’

[거참……. 골 때리는 놈이네, 이거.]

‘그러니까 말이다.’

수혁이 그렇게 추론을 이어 나가는 사이, 그러니까 아직 실험실에서는 확인되지 못한 사안을 임상적으로 역추론을 해낸 사이에 친구는 레벨D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병동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뒷모습을 보니 굉장히 비장해 보였다.

하긴 그럴 터였다.

진짜 걸릴 수도 있지 않나?

바이러스엔 눈이 없기 때문에, 의사라고 해서 빗나가리란 법 또한 절대 없었다.

-들어왔어. 어……. 켰어.

“좋아. 그럼 배에 대 봐. 협조 가능하면, 말랐으니까 숨 들이쉬고 배를 불룩하게 만들고……. 천천히 내쉬라고 해 봐. 그 상황에서 천천히 눌러가면서 봐 봐.

-좋아. 어……. 난 모르겠다.

초음파 화면에 복부 영상이 잡히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수혁은 달랐다.

“일단 npo 걸자. 췌장염이야. 하……. 좋지 않은데…….”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확실히 일부 환자에 있어서 코비드는 역시나 중한 경과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얼굴이 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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