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11화 (1,011/1,303)

1011화 도와달라고? (3)

급성 췌장염.

사실 아주 드물기만 한 병은 아니었다.

응급실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다 보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케이스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약간 지역적인 특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주로 유흥가 근처나 대학가 근처에서는 조금 더 흔한 양상을 보였다.

술.

이게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에 그랬다.

물론 제일 흔한 건 돌이긴 한데…….

‘하지만……. 상기도 감염병을 일으키는 질환에서는 드문 합병증이야. 일단 독감 같은 질환도 이걸 일으키지는 않고……. 하지만 사스는 일으켰다는 보고가 있지.’

[이상한 일이군요. 아직 n수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태까지 쌓인 임상 결과를 보면 사스에 비하면 치명률이 훨씬 낮은데 말이죠.]

‘같은 계통이라 이런다고 말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게…….’

[보통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췌장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거참…….’

수혁은 잠시 천장을, 그러니까 희멀건 천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한민국이야 사스를 어찌어찌 잘 넘긴 편이지만 사실 당시 영향권 아래 있던 곳은 난리도 아니지 않았나.

특히 직격탄을 맞았던 홍콩은 거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다시피 하는 바람에 은퇴했던 의료진들마저 나서야만 했었을 지경이었다.

한데 이번 코비드는…….

‘그 사스가 더욱 대유행할 수 있도록…….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느낌마저 드는데.’

[하지만 사스와 이번 코비드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 관계도 없습니다. 지금 범인으로 지목되는 건 철산갑 또는 박쥐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그에 비해 사스는 사향고양이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뭐……. 사실 이러한 질환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란 예측을 한 건 바로 수혁 아닙니까?]

‘그랬지. 근데 막상 유행하니까 너무 짜증 나는데?’

[그나마 열난다가 도움이 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특히 국내뿐 아니라 미국처럼 의료 접근이 어려운 나라에서 더더욱 유행 지역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를 기반으로 논문 쓰면, 수혁도 수혁이지만 우하윤도 교수 되는 데 무던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생각을 멈추었다.

어떨 땐, 바루다와 대화를 하면서 정말 오랜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럴 땐 확실히 바루다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많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은 아직 의료 체계 붕괴로 이어지고 있지 않았지만…….

미국 같은 경우엔 그렇지가 못했다.

뉴욕은 너무 많은 시신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장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헨리에게 들은 것이니 틀림없을 터였다.

‘사실 거리두기도……. 부작용이 없는 건 아냐. 사람을 죽이는 건 병원균만이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신현태는 여전히 수혁을 아직 어린애라고 여기고 있기에 자세한 얘기는 안 해 주고 있지만, 수혁도 눈치가 있는 사람 아닌가.

오가다 듣는 대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자영업자들……. 많이 힘들 거야.

-헬스장 폐쇄도 문제죠?

-그렇지. 가뜩이나 성인병 지표가 나빠지고 있는데……. 언론에서는 확찐자니 뭐니 하면서 가볍게 넘어가지만 분명 이로 인한 인명 손실도 있을걸.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원장님. 그래도 우리나라는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긴 한데……. 아무래도 정책에 조언을 하다 보니까 장점보다는 단점만 보여서 말이야. 앞으로 더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게 괴로워.

상황이 점차 안 좋아지면서 이제 신현태가 어딜 가는 게 아니라 해당 기관에서 신현태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물론 높으신 분들은 엉덩이가 지나치게 무겁다 보니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긴 한데…….

김다현이 일련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언플을 시도하는 것만으로 거의 뭐 태풍이 몰아치려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높으신 분들이 직접 오는 건 아니었고, 실무진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대화를 수혁은 우연찮게 들었고.

‘아닌 게 아니라……. 삼촌 얼굴이 많이 상했지.’

[사돈 남 말할 때가 아닙니다, 수혁. 수혁도 거의 몇 년은 늙어 보여요.]

‘나야 아직 젊으니까 잠만 제대로 자도 회복될걸.’

[음……. 아무튼, 지금 친구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 일단 췌장염 체크해 두자고. 빨리빨리 보고하도록.’

[네. 안대훈이 나름 페이퍼 워크에도 능해서 다행입니다.]

‘능할……. 수밖에 없지.’

수혁은 참담한 회고에서 벗어나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안대훈이 눈에 띄었다.

평화롭던 시기에도 수혁교 이끈답시고 이런저런 서류를 다루던 놈 아닌가.

그중에는 이현종에게 물려받은 프락치 명단도 있다고 들었다.

대체 의사들이 왜 저 지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훈련이 되기는 했는지, 나름대로 또 도움이 되고 있기는 했다.

“어……. 그럼 이 환자는 그렇게 하면 되지?”

대화는 길었지만, 막상 흘러간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수혁은 이제 바루다와의 대화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능숙해져 있었기에 그랬다.

“어, 다음. 환자 보러 가자.”

“어어. 잠만. 나 옷 좀.”

“응. 그래.”

수혁은 이비인후과 환타 친구가 음압 병동을 빠져나오고 소독 과정을 거치는 사이, 안대훈을 비롯한 여러 센터 구성원에게 방금 알아낸 지침을 알려 주었다.

수혁도 수혁이지만 나머지 인원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매일매일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매시간 새로운 정보를 듣고 익혀야 하기에 그랬다.

제아무리 새로운 질환과의 싸움을 시작한 마당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지경이었다.

-대훈아, 한번 보자.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게.

그 와중에 의료진을 괴롭히는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어? 아니, 뭐……. 우리나라 그렇게 안 심하지 않냐? 난 솔직히 거리두기 이거 왜 이렇게 계속하자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밖은 확실히 괜찮긴 했다.

하지만 대훈에게 요즈음은 거의 전쟁과도 같았다.

아니,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자고 나면 매일매일 환자가 쏟아져 왔다.

심지어 센터 개소 이래 제일 많은 환자를 잃어버리고 있기도 했다.

진단이 안 되어서도 아니고, 치료를 제대로 못 해서도 아니었다.

원래 바이러스 감염은 일정 부분 환자가 이겨 내야 하기에 그랬다.

어쩔 수 없다 이건데…….

-항문까지 다 밀봉하고……. 보호자분들 CCTV로 임종하시는 거 보신 거죠? 그럼 이제…… 갑시다.

어쩔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하루가 멀다고 사망 선고를 하고 심지어 그 환자를 보호자가 아니라 화장터로 인계해야 하는 상황에서 멀쩡히 있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더 무서운 건 그나마 안대훈은 가족이 없어 사정이 낫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있는 의료진 중엔 일부 엄마나 아빠가 코비드를 보는 의료진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기까지 했다.

불안하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또는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말을 넌지시 또는 대놓고 들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돌았다.

평소엔 아이 아프면 그렇게 살갑게 물어보던 이들이 이러니 진짜 돌아 버릴 지경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대훈아.”

“아, 네.”

그런 대훈을 상념에서 깨운 건 역시나 수혁이었다.

정신을 차린 대훈은 그보다 훨씬 더 피곤해 보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수혁을 확인했다.

‘그래……. 서운한 건 잠깐이다…….’

밖에서 어찌 안의 상황을 알겠나.

뉴스에서 하루에 얼마가 걸리고 몇몇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오긴 하지만, 그렇게 그냥 글자로 듣는 것과 안에서 실제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수멘…….’

게다가 안대훈은 남들에게 핍박당하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하기도 했다.

처음 수혁 팬클럽을 만들 때도 그랬다.

세상에 뭔 놈의 교수 팬클럽을 만드냐고…….

그런 와중에 홈마?

이건 진짜 또라이 같은 짓이란 얘기만 들었다.

허나 안대훈은 무소의 뿔처럼 고고히 걸어온 사람이지 않나.

고작해야 병원 밖의 사람들의 말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거 정리해서 보고하고. 이거 좀 걸릴 거 같으니까……. 우리 환자 좀 봐줘.”

“아, 네. 제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김인수 선배……. 괜찮은 거 맞냐?”

“아……. 어제부터 유독 힘들어하긴 했습니다.”

“설마…….”

“본인도 불안한지 개별 당직실에 들어가 있긴 한데……. 검사 결과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 선배가 생각보다 약하더라고. 잘 보자.”

“네. 교수님.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게다가 지금은 수혁이 주요 임무를 지속적으로 맡기는 상황이지 않나.

이런 와중에 딴생각?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후우…….”

대훈이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뜨고, 고개를 돌려 보니 친구가 다시 나타나 있었다.

화상 전화 너머 얼굴이 잠깐 사이에 맛이 좀 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벗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니.

게다가 엄밀히 말해 마이너 서저리과인 이비인후과에게 바이털이 왔다 갔다 하는 환자를 보는 일이 익숙하겠나?

그게 싫어서 또는 못 할 거 같아 마이너 서저리로 가는 이들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또 저 친구는 유독 그랬었다는 걸 떠올려 보면 구역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야, 너 뭐 먹냐?”

“아, 제산제. 속이 쓰려.”

“아.”

아니, 약을 먹고 있었다.

수혁은 아까보다 좀 더 안쓰럽다는 얼굴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명치 주변으로 통증이 좀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도 하얬다.

원래 같으면 좀 쉬게 해 줘야 할 테지만…….

지금 저곳에 의사라고는 저놈뿐이었다.

“후. 다음 환자 보자.”

사실 의사에게 이러한 중압감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여기 올 때 어느 정도 각오도 했을 테니 친구도 별말 없이 환자 목록을 다시 짚어 가기 시작했다.

순탄한 환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 일반 병동 맞아?”

“어? 어……. 그럴걸? 중환자실은 아랜데. 아직 안 열었어.”

“안 열어? 아……. 그래서……. 하. 하긴. 중환자실 세팅이 그렇게 빨리 될 리가 없지.”

해서 재차 물었더니만 이런 답이 돌아왔다.

[중환자실이 아직 안 열려서 거기 가야 할 환자들이 여기 있는 것이로군요.]

‘그러니까. 이런 얘기는 굳이 해 줄 필요가 없겠지?’

[네. 가뜩이나 심신미약 상태 같은데 괜히 말했다가 도망가면 어쩝니까?]

수혁은 저 친구라면 도망가는 대신 거기서 말뚝 박고 죽을 거 같긴 했지만, 여하간 입을 놀리진 않았다.

대신 성심성의껏 환자를 봐주었다.

[수혁?]

‘아니,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고.’

[그런 얘기가 아니라. 화면 우측 상단의 모니터를 보시죠].

‘모니터……? 아. 씹. 저거 왜 저래.’

그러다 수혁은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감시 모니터를 보고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심전도 이상했다.

부글거린다고 해야 할까?

“야!”

“어, 어?”

“빨리 다시 들어가! 영상의학과, 심장내과 다 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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