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12화 (1,012/1,303)

1012화 도와달라고? (4)

코비드 환자에서 혈전이 잘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수혁이 보고해 준 바 있었다.

안지오텐신 시스템에 관여하기에 그러한데…….

지금 저 환자에게서 발생한 상황은 그런 게 아니었다.

심장 문제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방세동이었다.

“어, 어어!”

“일단 일반적인 세동이라면 크게 문제가 안 될 거니까……. 일단 들어가!”

“어, 어!”

“초음파 아까 거기 있는 거 한번 대 보고. 내가 봐줄게!”

“응, 응.”

수혁의 말에 일단 친구 녀석은 부리나케 달려 들어갔다.

그간 환자 기록을 보면서 앉아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친구는 망설임 없이 옷을 입고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쁘고 힘들다고 투덜거릴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왜냐?

간호사들은 안에 상주하고 있다가 교대 시간이 되어야 나올 수 있기에 그랬다.

입고 벗는 수고가 적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저 옷은 편의를 위한 설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입고 있는 거 자체로 지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 저 환자분 자료 좀 띄워 주세요.”

“아, 네!”

물론 그동안도 수혁은 시간을 낭비하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 환자 차트를 보니 나이도 많지 않나.

78세.

고령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사망 확률은 미친 듯이 올라간다고 봐야만 했다.

“원래 심방세동이 있는데……. 위장관 출혈이 있었어서 항응고 처방이 끊겨 있었군……. 그게 벌써 2주나 됐어.”

[2주면……. 응고로 인한 혈전이 발생하고도 남을 시기로군요.]

‘제대로 된 워크업이 안 된 거야. 하긴……. 우리 병원으로 오는 환자 중에서도 많긴 하지.’

[아직도 정신이 없는 걸까요?]

‘앞으로 더 하면 더했지……. 나아지긴 어려울걸.’

갑자기 과중한 로딩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감염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환자를 봐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평소만큼의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지금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료진들이 원래부터 이러한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게 아니지 않나.

오히려 지금 허겁지겁 들어가고 있는 친구 녀석처럼 이런 감염 환자를 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 죄다 강제로 박으면 안 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팬데믹 사태가 터졌다고 해서 기존에 아프던 사람이 낫는 게 아니다 보니 인원 운운하기 전에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 들어왔어! 초음파도 준비됐어!”

“어. 일단 심장에……. 이렇게 대 봐.”

수혁은 급한 대로 자기 옆에 있던 레지던트를 눕힌 후 거기에 초음파를 갖다 대는 시늉을 했다.

다행히 친구 녀석이 눈썰미가 있는 녀석이다 보니 곧잘 따라 했다.

그래 봐야 수혁이 없었으면 해석이 안 되었겠지만…….

하여간 수혁은 좌심방에 뭉쳐 있는 혈전을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생기기만 했다면 다행일 텐데, 살짝 찢겨 날아간 흔적이 있었다.

순식간에 거기까지 알아본 수혁은 아까 영상이나 심장내과 부르길 잘했다 하면서 속으로 물었다.

‘망할……. 어디지?’

[머리. 아니, 목일 겁니다.]

‘목? 어떻게?’

[환자 얼굴을 보세요.]

‘아.’

환자와 이비인후과 친구에게는 다행이게도 이 자리에는 수혁만 있는 게 아니라 바루다 또한 있었다.

녀석은 수혁이 초음파에 뜬 영상을 살피는 사이, 환자 얼굴을 살폈다.

그 결과 우측 안면의 처짐을 즉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야!”

“어. 어!”

“환자 우측 상하지 모터 체크!”

“어, 어어어!”

해서 부리나케 지시를 내렸다.

이런 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친구는 옛날 옛적부터 환타였다 보니 응급실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더랬다.

그 덕택이라고 할까?

이런저런 검진 기술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측……. 우측 위약이 꽤 심한데! 환자분!”

“우응…….”

“원래……. 원래 그러셨어?”

“아니, 아니. 이것도 증상 같은데.”

“하.”

저 정도면 바루다가 말했던 대로 내경동맥 정도는 막힌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 안쪽의 어떤 혈관이 막혔을 수도 있겠지만…….

뭐가 되었건 응급이었다.

그것도 초응급.

두두두두

그러한 상황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신경과 의사와 영상의학과 의사가 뛰어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였는데, 입원실 안에 켜져 있는 영상을 보면서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와, 이 선생님. 진짜 이수혁 교수님이랑 아는 사이 맞네요?”

“그렇다니까요. 아무튼, 이거……. 목에 이거…….”

“아……. 경동맥……. 뇌는 아니네요.”

신경과 의사는 안도의 한숨인지 뭔지 모를 숨을 토해 내고는 방금 친구가 했던 신경학적 검진을 보다 자세하게 해냈다.

영상의학과 의사는 수혁의 명대로 시행한 초음파의 결과로 떠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런. 하……. 어쩌지.”

곤란한 기색이 그득했다.

그 이유는 수혁도 알 수 있었다.

이 환자가 코비드 감염 환자이기에 그랬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인 이 코비드 환자를…….

인터벤션, 그러니까 경부 혈관 조영술 및 혈전 제거술을 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빼서 인터벤션실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지 않나.

그 말은 곧 병원 이동하면서 감염 위험이 발생한다는 얘기일 뿐 아니라 인터벤션실을 소독을 위해 한동안 쓰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 환자를 살리고 나면 다른 환자가 위급할 경우, 불가피하게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하거나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급합니다! 이 환자……. 이대로면 죽어요!”

수혁도 알았다.

아니, 의료진이라면 다 같이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눈앞에 있는 환자는 이 사람인데.

훗날을 위해 이 사람을 희생시켜?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도덕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아마 의사 개인에게도 평생 기억에 남는 상처가 될 터였다.

“그, 알겠습니다!”

다행히 영상의학과 의사는, 수혁의 팬이었다.

그가 이룩한 수많은 업적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달까?

사실 지금도 그래서 들어온 마당이었다.

영상의학과는 밖에서 사진만 보고 판단을 내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 그랬다.

“네네. 인터벤션……. 필요합니다. 안 하면 환자 죽을 거 같습니다.”

-하아……. 네, 센터장님.

로컬 병원이다 보니, 오히려 한번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환자는 곧장 인터벤션실로 이송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이송용 음압 침대에 환자를 옮겨야만 했다.

이대로 그냥 나갔다가는 병원 전체가 오염 지역으로 분류, 환자를 못 받게 될 것이기에 그랬다.

병원 전체가 폐쇄되면 경영도 문제겠지만 이곳에 와야만 하는 환자들도 모조리 위험해질 테니 그래야만 했다.

드르륵

원래 같으면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들 하나하나가 번거로워진 상황이란 얘기였다.

‘저러니까……. 실수가 늘지.’

[뭐……. 이해는 합니다만…….]

수혁은 그렇게 이동하게 된 환자를 보다가,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저렇게까지 일이 커진 이상에야 지금 당장 이쪽에서는 해 줄 만한 일이 없어서 그랬다.

게다가 이쪽도 할 일이 계속 쌓여 가고만 있었다.

애초에 저긴 일반 병동에 있을 수 있는 환자들이 가는 데 반해 이쪽으로는 중환자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대훈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사실 어지간한 환자는 우리 대훈이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다른 병원에 여전히 제한적이긴 해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런 안대훈의 얼굴이 조금 질려 있었다.

“그……. 양성 떴습니다.”

“응? 누구.”

“김인수 선배…….”

“아……. 이런 망할. 접촉자는?”

수혁은 순간 김인수의 걱정보다는 병동 폐쇄를 떠올렸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만약 여기 있는 의료진들 전원이 접촉자로 분류된다면…….

‘여기 있는 환자는 다 죽어…….’

인수인계가 이루어지긴 할 터였다.

하지만 이토록 중한, 새로운 질환으로 인한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무리죠.]

전부 다까지는 아니겠지만 거의 다 죽을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애초에 본인이 불안하다고 음압 병동 내 당직실에 들어가서요. 방호복 없이 접촉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이런 미친……. 그럼 지금 저게 김인수 선배라고?”

“네.”

“왜 불안해하지? 방호복 입었잖아?”

“그게, 방호복이 찢어졌다고 합니다.”

“아……. 아니, 좀 좋은 거로 주지…….”

수혁은 방호복을 떠올리면서 투덜댔다.

그게 찢기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말이 되는 게 현실이었다.

그나마 의료진들은 기본적으로 멸균 개념이 잡혀 있고 또 조심스레 움직이는 게 습관이 되어 있지만, 사실 저 음압 병동에 들락거려야 하는 사람이 비단 의료진들뿐인 건 아니지 않나.

음압 시설이라는 게 워낙에 급하게 들어섰다 보니 이런저런 오류가 발생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설비팀이 들어가야만 했다.

물론 그들이 환자를 대면하진 않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오고 나서야 방호복이 찢겼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진짜 소름 끼치는 순간들이 있었더랬다.

다행히 그들 중 감염된 사람이 없긴 했는데…….

‘올 게 왔구나…….’

[김인수……. 잘 봐야겠군요.]

‘망할.’

그 첫 주자가 김인수가 될 줄이야.

김인수는 다들 자신을 걱정할 거라 여겼는지 휴게실 아니, 이제 병실이 되어 버린 곳에서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래 봐야 열이 번뜩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기운 차 보이지도 않았다.

“다들 한 번 더 말씀드릴게요.”

해서 수혁은 일단 모두를 불러 모았다.

그러고 나서야 모두의 얼굴이 지난 시간보다 훨씬 더 어둑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일도 힘들어졌지만…….

중압감이 짓누르고 있을 터였다.

감염의 위험과 평소보다 중한 환자들을 보고 있다는 압박감…….

실제로 이 센터에서는 드문 일인 사망 선고를 매일같이 하게 되지 않았나?

그 점은 제아무리 수혁이라 해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의료진의 안전입니다. 여러분이 안전해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거나 하는……. 그런 식상한 말씀을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이따금 이쪽으로 와 현장 확인을 하는 공무원들이 이 비슷한 소리를 하긴 했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현장에서 구르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냥 오래도록 써먹기 위해 건강하라는 투로 들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투덜대는 이들도 있었고.

“제 동료이자 친구들이 아프게 되는 건 보기가 싫습니다. 물론 우리는 젊고 기저질환도 없으니 상대적으로 환자들에 비해 위험해질 가능성이 적긴 합니다. 하지만 예외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디 조심해 주십시오. 뭐 여긴 제가 있으니 다 살리긴 하겠지만……. 아시겠죠?”

해서 조금 달리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수혁이 무슨 말을 해도 별 울림이 없었을 터였다.

안대훈이나 우하윤과 같은 충신들이야 다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수혁은 여전히 젊은, 아니 어린 교수일 뿐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수혁과 센터 사람들 사이엔 이미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전우끼리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함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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