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13화 (1,013/1,303)

1013화 도와달라고? (5)

“좀 어때요?”

수혁은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 김인수가 있는 병실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애초에 원래 있던 병동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고, 이곳은 당직실이었던 곳을 병실로 주기는 뭐하다고 해서 휴게실로 쓰던 곳이긴 했지만…….

하여간에 환자가 된 김인수가 있으니 지금 당장은 병실이라고 해도 별문제는 없을 터였다.

“괜찮습니다, 쿨럭.”

“기침 소리가 안 좋은데……?”

“아……. 뭐……. 쿨럭. 원래 좀 기관지가.”

“아.”

기저질환이 있나?

수혁은 바루다를 통해 김인수의 지난 행적을 슥 훑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

김인수는 수혁뿐만 아니라 바루다에게도 주요 동료로 인지되고 있었기에 그랬다.

[딱히……. 감기를 자주 앓았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만 확실히 한번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오래가긴 했습니다.]

‘소리가 기관지…… 기관지 문제라고 퉁 칠 게 아닌 거 같은데……?’

[네, 저도 재생하면서 느꼈습니다. 기관지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성 천식일 가능성이 있겠군요.]

‘우리 김인수 선배……. 공부 좀 더 하셔야겠네……. 대체 이게…… 무슨 인사이트야?’

[뭐가 되었건 우리 센터 일하다가 아픈 겁니다. 표정 식히지 마십쇼……. 무슨 인간이 이렇게…… 의학밖에 모릅니까.]

‘내가 그랬나.’

수혁은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하여간 바루다의 말이 어지간하면 맞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표정을 따스하게 바꾸었다.

어렵진 않은 일이었다.

환자 볼 때 마인드로 접근하면 되니까.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굳이 뭐 선서 같은 걸 만들어다 시키겠나.

하지만 적어도 치료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가치 평가를 전혀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하고 있었다.

“청진이 가능하면 좋겠는데…… 쉽지가 않아서요.”

“네네. 이해합니다.”

방호복을 입는 순간 여러가지 제약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일단 장갑을 끼고 일하다 보니 평소에는 잘만 뽑히던 피도 안 뽑히기도 했다.

팬데믹 사태 초창기 시절 환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란 뜻이었다.

맨손으로 하다가 장갑으로 하는데 느낌이 같겠나?

특히 정맥처럼 시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없이 그냥 촉감에 의지해서 찔러야 하는 동맥 채혈 같은 경우엔 꽤 결정적이었다.

물론 청진기보다는 아니었다.

머리에 뭔가 뒤집어쓴 채로 청진을 한다…….

‘하필이면’이라고까진 할 게 없겠지만, 하여간 비닐 소재다 보니 귀에서 바스락 소리가 너무 나서 뭔가 듣기가 어려웠다.

“엑스레이상으로는 아직 뭐……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제가 봤을 땐 기관지 확장증 같은 게 있다기보다는 그냥 기도 과민성이 염증에 의해 지나치게 올라가는…… 가성 천식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천식이요? 아…… 그러고 보니 제 기침이…….”

“알레르기도 있죠? 뭐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약을 좀 써 보죠. 제가 보니까 바이러스랑 싸우기 전에 기침하다가 더 아프겠어요.”

기침.

폐를 포함한 기관지에 낀 이물을 제거하기 위한 방어 기제.

다시 말해 사람이 살아가기에 반드시 필요한 기전이라는 건데…….

이게 또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일단 밤에 더 심해지는 특성상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면역력에 관여하는 것이 꽤 많은데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일컬어지는 것 중 하나가 수면 아닌가.

실제로 예방 주사를 맞고 면역 형성이 될 때조차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냐 없냐로 면역 생성 확률이 뒤바뀐다는 보고가 있을 지경이었다.

“네, 쿨럭. 심려 끼쳐서 죄송…….”

“죄송은 무슨. 푹 쉬고 계세요.”

“아니, 저는…….”

“일단 쉬세요.”

“근데 공백은 괜찮…… 괜찮습니까?”

“아,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대훈이 좀 더 쥐어짜고 하면 됩니다.”

“아니, 그러니까…….”

김인수는 병실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당직실 내부의 차디찬 콘크리트 벽뿐이긴 했지만…….

하여간 그 너머에 있을 안대훈을, 정확히 말하면 안대훈의 몰골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벌써 몇 주 전부터 맛탱이가 가고 있지 않았나.

애초에 그리 보기 좋은 몰골이 아니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지금쯤이면…… 진짜 거지 그 자체 아닐까?’

한참 후배이기 전에 동료였다.

사선을 같이 넘나들게 된 동료.

아니, 전우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들이 맞서야 할 상대는 비단 코비드를 비롯한 병만 있는 게 아니었다.

희대의 천재 이수혁과 이현종도 뭐가 되었건 넘어야 할 산이지 않나.

예전엔 그래도 꽤 유했던 거 같은데 딱 제자 포지션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마어마한 가르침이 내려오고 있었다.

상대가 어떤 사람들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태였다면 괴롭힘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아무튼, 제가 보고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아, 네. 영광…… 쿨럭. 입니다.”

“약 들어가면서 기침 추이도 좀 볼게요.”

“네네.”

김인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말건 수혁은 해야 할 말을 남긴 채 밖으로 향했다.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사실 따지고 보면 다른 모든 의료진과 다를 거 없는 하얀 비닐에 둘러싸인 뒷모습이건만.

저토록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걱정 말라는 말에 진짜로 걱정이 사그라드네…….’

사실 의료진이 굳이 걱정이라는 단어를 꺼낸다는 건 대개 안 좋은 예후를 의미하지 않겠나.

물론 동네 병원에서야 그럴 가능성이 없겠지만…….

대학 병원에서는 가능성이 농후했다.

허나 수혁의 입에서 튀어나오니까 진짜로 막 걱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끼이익

수혁은 그렇게 밖으로 나오고 나서, 다른 환자들을 보기 위해 회진을 돌았다.

회진용 지팡이를 짚고서였는데, 이게 아무래도 소독이 좀 애매하다 보니 밖에서 쓰는 것과 안에서 쓰는 것을 구분해서 쓰고 있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밖에서 대기 중이던 안대훈이 물어 왔다.

사실 수혁은 다리가 불편한 것 때문에 안에 잘 들어가진 않고 있어서 그랬다.

애초에 수혁의 진가는 진단에 있지 않던가.

물론 이런저런 처치도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꽤 잘하는 편이지만, 사실 태화 의료원에 남을 정도의 의료진이라면 술기가 부족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기왕 들어온 거 한번 보죠. 또…… 교수 얼굴 보는 게 환자들에게 의미가 있으니까요.”

[굉장히 비과학적인 주장이지만…….]

‘현상으로 증명되는 거에 과학을 들이미는 건 무의미하지. 아마 더 발전하면 어느 정도 이론도 나올걸.’

[그건…… 그렇긴 합니다.]

해서 밖에 주로 있었는데, 오늘은 김인수 때문에 들어왔으니 그냥 돌기로 했다.

바루다의 말대로 딱 과학적인 이론만 들이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실제로 교수가 자주 얼굴 들이밀면서 안심시키면 환자 상태가 달라지는 게 보이는데.

게다가 밖에서 카메라 통해 보고 듣는 것과 직접 보고 듣는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약을 좀 바꿔 보지.”

“이분은…… 준비를 슬슬 하는 게 좋겠는데. 보호자 분들 연락해서…….”

“아직 음전은 안되었지만, 퇴원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있던 병원으로 가시죠.”

“좋네요. 지금 상태 좋습니다.”

수혁의 이어지는 말에 따라 들어온 의료진 모두가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툭툭 내던지는 말조차 중요해서 그랬다.

그중에서는 아예 환자 계획이 바뀌는 경우조차 있었다.

딱히 환자 상태가 바뀌어서라기보다는 수혁의 판단이 달라져서라고 보는 게 더 맞았다.

‘확실히 다른 곳의 희귀한 환자들 보는 게 도움이 되네.’

[네. 지침이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이거 또 정리해서 보내 줘야겠군요.]

‘그래야겠지. 아, 피곤하네…….’

[배도 고프고요. 아…… 짜장면에 탕수육 먹고 싶네.]

‘간짜장으로 하자.’

[요새 후라이 올려 주는 데가 없어서 괜히 기분이 나쁘던데요.]

물론 그 중심에 선 수혁도 여유가 없진 않았다.

판단이 달라졌을 뿐, 그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가 않아서 그랬다.

바루다의 도움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도 천재이지 않나.

실시간으로 지침을 바꾸고 그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였다면 처음부터 이만한 명성을 얻지도 못했을 터였다.

‘찾아보자. 나 갑자기 너무 당기는데……. 어차피 우리 회식도 글렀고…… 시켜서라도 먹여야지.’

[오…… 이것이 재력인가.]

‘다 먹일 만한 돈은 벌고 있지.’

[연애도 안 하니까 돈이 남고요?]

‘갑자기 돈 쓰기가 싫어지네…….’

[그러지 맙시다. 기분 좋게 갑시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에게 투덜대긴 했지만, 머리로는 명확하게 계산을 마친 상황이었다.

지금 센터뿐 아니라 감염 관련한 과들 모두 개고생을 하고 있지 않나.

평소에도 딱히 편하다는 말은 나올 수 없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로딩이 두 배는 족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회식?

밥이나 제때 먹으면 다행이었다.

실제로 수혁은 병원 밥이 아니라 주먹밥이나 먹으면서 끼니 때운 지 오래였다.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별 차이가 있거나 하진 않았다.

“제가 쏩니다.”

“와아아아아!”

그렇다고 금일봉을 턱턱 내어 줄 수도 없지 않나.

파견 근무식으로 가는 인원들에겐 나라에서 어느 정도 돈을 준다지만, 원래 있던 인원들은 병원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보너스가 다였다.

거기에 감염 위험이 있지, 외부의 시선도 달갑지가 않지…….

이런 와중에 도망 안 가고 자리를 지켜 주고 있는 이들 덕에 센터가, 더 나아가 병원이, 그리고 이 나라가 버티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줄 수 있는 게 이 짜장밖에 없다…….’

해서 수혁은 짜장이라도 쏘기로 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뭔가 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런 수혁을 보면서 신현태는 생각했다.

‘우리 수혁이…… 진짜 부센터장 같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여전히 삐걱대고 있기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고.

인류가 처음 맞아 보는 상황이지 않나?

아니, 이전에도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팬데믹이라는 인지조차 없이 죄다 죽어 나갔으니 이번이 처음이라고 쳐도 무방할 터였다.

하지만 센터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얼추 뭔가 되어 가는 듯했다.

안에서 보기엔 그랬다.

-코비드 감염자 수가 연일 급증하고 있습니다.

-서울 일일 감염자 수가 만 명을 넘어가는 가운데…….

허나 바깥 상황은 아예 달랐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삶은 이어져야 하니까.

누누이 말했듯 사람을 죽이는 건 코비드뿐만인 것이 아니지 않나.

다른 병도 있고 무엇보다 그냥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이걸 비난할 수 있나?

오히려 그걸 하지 말라고 하는 입장에서 미안함을 느껴야 할 지경이었다.

드르륵

물론 안에서는 그러한 변화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응?”

“어엉. 수혁아. 전에 그 환자.”

“뭔?”

“경동맥 막혔던 환자!”

“아.”

너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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