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화 도와달라고? (6)
환자가 폭발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만한 일이 있다면…….
공교롭게도 대부분이 태화 의료원, 그중에서도 수혁과 연관이 있었다.
하나는 일단 열난다였다.
완전히 보급이 안 된 상황에서 사태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유행 지역을 빨리 간파해 내는 데에는 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언젠가 발열이 없이 퍼지는 질환이 나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애초에 발열이라는 게 밖에서 온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나는 것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그런 감염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단 지침대로 보고 있지?”
“어? 어어어. 보고 있지. 나 진짜 전문의 시험 볼 때보다 더 열심히 한다……. 눈앞에서 자꾸 죽어 나가니까…….”
또 하나는 지침이었다.
진료 지침.
연령별, 성별 그리고 기저질환별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 곧 교과서와 같은 내용을 수혁이 집필하고 있었다.
물론 세계 각국마다 뛰어난 의사들이 있고 그들 대다수가 현 사태에 대해 현직에서 뛰고 있다 보니 그들이 작성하는 내용도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경우엔 그저 보탠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대다수는 수혁이 적은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때 그 환자가 어떤데?”
“어어어.”
수혁의 친구, 환타 이비인후과 전문의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혁이 작성한 내용에다가 세계 각국의 석학들 그리고 각국의 질병 관리 본부끼리의 소통을 통해 매주 업데이트 하고 있는 지침은, 코비드와 싸우고 있는 일선의 의료진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성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보고 있다 보면 뭔 놈의 성격이 이렇게 자주, 또 급격하게 바뀌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그 지침서가 자세해지면 자세해질수록 의료진은 원래 진료과가 어디든 간에 관계없이 일차적인 대응을 함에 있어 우수한 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런 질환을 봐야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전문의까지 땄을 정도라면 환자 보는 데에 최소한의 능력이 있다는 반증이기에 그랬다.
“일단 그 환자…… 그때 혈전 제거술을 시행했어. 발루닝으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 나도 자세히는 못 알아들었는데……. 아무튼, 혈관 외과에서 수술했어.”
“으응, 그래. 약은?”
“위장관 출혈 위험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뇌경색이나 폐색전증 또는 심근 경색과 같은 질환의 위험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해서 apixaban(아픽사반, 경구용 항응고제)이랑 metoprolol(메타프롤롤, 항아드레날린 작동제) 약물 더했지.”
“흐음.”
metoprolol.
이건 사실 베타 차단제로, 딱히 혈전하고는 상관이 없었다.
고혈압 치료제라고 봐도 무방한데……. 일부 기전에서 심방세동을 억제하는 기전을 보여 그때 쓰일 수 있었다.
‘상기도 감염이 아니라 폐렴까지 진행한 환자에서 베타 차단제라……. 질병 자체에 좋지 않았겠는데.’
[뭐……. 지켜보면서 써야 하긴 했을 테지만 그럴 수 있죠.’]
애초에 폐렴이 있으면서 호흡 곤란이 있을 때 기관지 확장을 위해 베타 항진제를 쓰는 게 보통이었다.
그걸 쓰면서 베타 차단제를 쓴다는 건 멍청한 짓이라 할 수 있었다.
서로 반대되는 약을 쓰는 건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아서 그랬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지 않나.
목의 혈관이 통으로 막혀서 하마터면 말 그대로 환자를 잃을 뻔했다.
‘그에 비해 apixaban은 직접적이지.’
-네. 항응고제이므로……. 예방 효과가 있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고용량을 쓰긴 어려울 거야.’
-네. 위장관 출혈도 무시할 만한 증상은 아니죠.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위장관 출혈이 좀 경시 받는 편이었다.
워낙에 음식도 그렇고, 생활도 그렇고 특히 일터나 학교 등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나라다 보니 위장 질환이 있는 이들이 많지 않나.
당연하게도 위장관 출혈을 겪은 사람도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젊은 사람들이다 보니 큰 문제로 번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서 별거 아닌가 싶은 기조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번져 있었는데, 실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커다란 응급 상황이었다.
“근데 환자가 저산소성 호흡부전증이 발생하고…… 약간 물이 차면서 푸로세마이드도 썼어.”
“이뇨제를 썼다 이거지?”
“응. 2차 감염도 생겨서 네 지침대로 항생제 추가하고 했는데…… 그러면서 산소 요구량은 좀 줄었거든? 인투 안 하고 그냥 코에 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정도로.”
“음, 그건 좋은 소견인데.”
환자가 몇 살이었더라.
78세였나?
이 정도면 딱히 기저질환이 없었다고 해도 치명률이 팍 뜰 수밖에 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의학에 있어서는 나이가 깡패라 그랬다.
더군다나 이 환자는 기저질환도 있는 사람이지 않나.
그 와중에 조금이나마 좋아졌다면,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사실 이게 별거 아닐 수도 있거든? 근데 좀 불안해서.”
“불안하다고? 말해 봐.”
불안함이 노티의 근거가 된다…….
성질 더러운 내과 의사였다면 이쯤에서 개지랄을 한 번쯤 떨어 주었을 테지만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뭐 딱히 수혁의 인격이 완성되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는 친구의 환타 기질을 알고 있었다.
‘얘가 불안하다고 하면 잘 봐야 해.’
[기억을 읽어 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내공이 후진 겁니까?]
‘나도 모르겠어. 별명이 조총이었어. 이순신 장군님 쏜 놈 같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아, 그 정도쯤 된다면……. 이해가 갑니다.]
이비인후과.
귀, 코, 목을 보는 과.
모든 과가 그러하듯 중요한 과였다.
귀, 코, 목 다 중요한 기관이고 특히 감각과 연관되어 있다 보니 불편할 수 있는 과이지 않나?
하지만 대개의 경우엔 생명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물론 두경부외과 파트 같은 경우엔 얘기가 좀 다르지만, 그 경우도 수술이 크고 무서운 것이지 직접 죽어 가는 환자를 보진 않았다.
그만큼 상태가 안 좋아진 환자는 내과에서 알아서 받아 갔다.
‘쟨……. 그 와중에 심근경색 환자를 두 번이나 봤다니까?’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전신 상태가 썩 괜찮단 뜻이었다.
마취라든지 긴 수술이라든지 하는 걸 견딜 수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을 내린 후에야 비로소 수술에 들어가기에 그랬다.
뭐 응급 상황에서는 이런저런 고려 없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바로 그것이 중증외상을 비롯한 응급 수술의 예후가 예약 수술에 비해 좋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싹 점검을 했다 이건데…….
심근경색이 왔다.
-나 사실 오늘이 예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환자가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는데 ‘전 오프라서요’ 하고 룰루랄라 병원을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적어도 친구 녀석은 그럴 수가 없는 놈이었다 보니 수술장까지 따라가서 참관하고, 환자가 살아나는 것까지 기어코 확인했더랬다.
여태 모쏠이라 해도 무방할 만한 연애 경험만 지닌 수혁이 볼 때는 저러면 당장에 차여야 할 것 같았는데 제수씨도 의사라 그런지 잘 이해해 주었다고 들었다.
-급성 신부전이…… 왔네?
-응급 암이라고 해서 뭔 소린가 하고 왔더니 역형성 갑상선암(Anaplastic thyroid cancer)이었어. 환자한테 뭐라고 하지……?
-머리에 병뚜껑이 박혔다고 해서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고 환자 보러 갔더니 진짜 박혀 있더라……. 뇌척수액이 막 새……. 나 무섭다. 나 마이너 과인데…….
-환자가 갑자기 쓰러져서 보니까 폐에 뭐가 있는 거 같아. 어? 폐색전증……? 이게…… 왜……?
그것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와…… 전화한 기억만 이렇네?’
[미친……. 이게 다 한 사람의 경험이란 말입니까? 어쩌면 우리는 인재를 곁에 두고도 못 알아보고 있던 것이 아닐까요?]
‘무슨 소리야?’
[이비인후과에서조차 저만한 환자들을 봤습니다. 우리 센터로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
솔깃했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냥 제정신인 사람이 본다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생각임에도 불구하고도 그랬다.
“환자가 구역질을 하거든? 메스껍다고 하시고.”
수혁이 기억을 회상하고 또 음습한 스카우트를 계획하고 있을 무렵,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는 근심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주요 키워드는 두 개였다.
구역질과 메스꺼움.
원인이야 차고 넘쳤다.
우선 당장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역시 위장관 출혈이었다.
위에 원래 출혈이 있었다는 건 위염 또는 궤양이 있었다는 얘기일 테고…….
지금 들어가는 약들을 고려해 보면 그게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거 같진 않았다.
“혈변이나 토하는 건 없었고?”
해서 물었다.
별 기대는 없었다.
당장 지난주의 친구를 생각해 보면…….
이 새끼 이제 들어가서 확인할 게 분명했다.
헌데 친구는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대신 사진을 보여 주었다.
“직장 수치 검사했지. 멜레나 소견은 아냐. 맞지?”
장갑 사진이었는데, 과연 묻어 나온 변을 보니 멜레나 즉 혈변은 아니었다.
다만 묽게 느껴지긴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친구가 말을 이었다.
“근데 설사를 해. 배가 아프냐고 하니까 그렇진 않다고 하고. 근데 전에 혈변 있고 할 때는 배가 아프셨다고 하거든?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해서.”
“흐음.”
제일 흔한 원인은 배제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뭘까?
수혁은 반사적으로 친구 뒤에 놓인 모니터, 즉 환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모니터로 향했다.
병실마다 CCTV가 있어 그걸로 환자를 살필 수 있게 만들어 둔 것인데 저런 거 고안한 것이 신현태였다.
지금 맛이 간 채로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우연이 아니란 뜻이었다.
“확대해 볼래?”
“어, 어어.”
확실히 1주간 친구도 혹독한 시간을 보냈는지 빠릿빠릿함이 달랐다.
또 나름 바이털을 보는 사람답게 피곤함과 더해 어떤 묵직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여기 보면…… 배도 좀.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살짝 좀 부푼 느낌이 있단 말야.”
“부풀어? 언제랑 비교해서?”
“어제?”
“어제라…… 부풀었다……. 검사 소견은?”
“산소 요구량은 줄어드는데……. 백혈구 수치가 늘었어. 젖산 수치도 늘었고.”
“아하.”
팍.
수혁의 머릿속에 벼락처럼 내리꽂힌 생각이 있었다.
이미 이 환자는 혈전으로 인한 문제를 보이지 않았나?
제아무리 약을 쓰고 있지만…….
원래도 응고 장애가 있었다는 얘긴데 거기에 더해 코비드까지 앓게 되었다.
그간 여러 차례 확인하지 않았나.
코비드는 명백히 혈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소인을 가지고 있었다.
백혈구 수치와 젖산 수치의 증가도 이를 대입하면 쉽게 이해가 되었다.
[거기에 메스꺼움과 혈변을 동반하지 않는 설사……. 복부 팽창.]
‘이런 시발.’
벼락같이 결론에 도달한 수혁은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외과! 외과 콜해!”
“뭐, 뭐라고 하면서?”
“급성 장간막 허혈! 빨리 재관류하지 않으면 환자 죽어!”
“으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