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15화 (1,015/1,303)

1015화 도와달라고? (7)

‘급성 장간막 허혈?’

이게 뭐더라?

친구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장간막이란 조직은 그저 옛날 옛적 언젠가 들어 본 단어일 뿐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의대에서 왜 족보라는 걸 만들어 쓰겠나.

혹자는 그거 공부 적게 하고 유급 면하게 하려는 꼼수 아니냐고 하겠지만…….

족보만 해도 어지간한 교과서보다 두껍다는 걸 알게 된다면 마냥 그런 말은 못 할 터였다.

‘아, 맞다. 이거…….’

달달 외워야 하는 족보의 특성상 아주 오랜 시간을 기억에 묻어 뒀다고 해도 주요 키워드만 주어지면 금세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죽을 수도 있다…….’

죽을 수 있는 병이었다.

장간막 허혈이라는 건 곧 소장으로 가는 동맥에 피가 잘 가지 않게 된다는 뜻이었고, 이것을 방치하게 되면 소장이 썩을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소장이 썩는다…….

소화기관 중 압도적으로 길고 부피도 커다란 장기가 썩는다면 대체 사람이 어찌 되겠나?

가뜩이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니만큼, 환자도 죽게 될 가능성이 너무 컸다.

‘서두르자.’

거기까지 딱 생각이 미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 마음만큼이나 부리나케 친구는 다시금 레벨D 방호복을 껴입었다.

물론 외과는 그 전에 콜했다.

원래 같으면 이런저런 말이 많았을 터였다.

누구에게나 이 음압 병동, 그러니까 코비드 병원은 좀 오기가 꺼려지는 곳이기에 그랬다.

머리로는 중요한 병동이고 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단 생각도 하겠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원래 하던 업무는 아니지 않나.

-네? 급성 장간막 허혈이 의심된다고요? 하아.

비단 코비드 병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응급실 진료만 해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최대한 뒤로 미루기 위해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기 마련인데……

급성 장간막 허혈의 위력은 남다른 법이었다.

-근데 이비인후과 선생님 아니세요?

-제가 이수혁 교수님 친구라서요.

-이수혁……?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교수님이요.

-아…… 설마 그럼…….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이수혁 교수님이 확인한 사안이에요.

-갈게요.

아니, 그보다는 이수혁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옷을 입고 들어가고 있으려니 벌써 외과 의사 하나가 뛰어오고 있었다.

대학 병원이 아니다 보니 복부 보는 전문의가 뛰어오고 있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뛸 때마다 세월의 무게가 뱃살의 형태가 되어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과연 외과는 험난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친구는 우선 안으로 향했다.

공간 구분을 위해 마련된 유리창을 통해 스테이션 측 대화가 들려왔다.

-그…… 이비인후과 선생님은요?

-들어가셨어요.

-네? 아니, 들어간다고 뭐 하실 수 있는 건 없으실 텐데……?

-그래도 환자 보던 사람이 옆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직 CT를 찍진 않았거든요. 이수혁 교수님 말이라면서 그냥 들어갔어요.

-네? CT도 안 찍고 그럼 저를……?

-네. 죄송해요. 근데 이수혁 교수님의 말씀이라고……. 무슨 종교라도 있는 사람처럼 눈이 돌아가시던데요?

-그…….

외과 의사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안쪽에 있는, 비닐 포대기 같은 걸 뒤집어쓰고 있는 의료진들을 바라보았다.

특정한 한 사람을 노려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다 똑같이 생겼거든.

‘저 양반이 아랫사람인 것도 아니고…… 군의관이라고 했지……? 하아.’

사실 생각해 보면 화낼 일도 아니긴 했다.

아랫사람이 아니지 않나?

아니, 그 전에…….

화는 저 양반이 내야 할 일일 거 같긴 했다.

이 병원이야 나라에서 보라고 했고, 또 나름 지원도 해 준다고 하니 병동을 마련한 것이지만…….

저 사람은 군의관인데 그냥 차출되어서 여기로 온 거 아닌가.

민간인 지원자들도 여기 있긴 한데…….

그들은 그래도 나라에서 나름 정당한 비용을 받을 수 있지만, 군의관들은 따로 나오는 수당이 교통비 만 원 정도라고 들었다.

말하자면 만 원 받고 감염 위험을 감수하는 동시에 저만한 환자들을 봐야 하는 책임감까지 부여받았다는 뜻이었다.

“들어갈게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외과 의사는 화가 절로 가라앉고 그 대신 측은지심이 후루룩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어쩌겠나.

옷 갈아입고 들어가야지.

‘꽝 나와도 화내지 말자……. 꽝 나와도 화내지 말자…….’

다만 CT 찍었는데 ‘어?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하는 엔딩이 떴을 때의 대비는 해 두어야만 했다.

옛날 레지던트, 펠로우 시절처럼 뻘노티했다고 태우고 혼냈다가는…….

사회생활이 파탄 나도 할 말 없었다.

군의관 선생님이 이 병원은 도저히 못 오겠다고 하면 원장님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나 하고 궁금해하지 않겠나?

“후우우…….”

심호흡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환자와 이비인후과 의사가 보였다.

둘은 놀랍게도 대화 중이었다.

“환자분, 조금 많이 아프신 거 같아요. 메스껍다고 일찍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유……. 덕분에 한 번 죽다…… 살았는데……. 이렇게 또…….”

“배가…… 아까보다 살짝 더 부푼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검사해 볼게요. 아, 여기 외과 선생님 오셨네요.”

“그…… 네. 안녕하세요.”

꽤 친절한 태도였다.

이런 병동에서 한 1주일만 지내 보면 본성 나올 텐데…….

‘실력은 모르겠지만 인성은 된 사람이다, 이건가.’

딱 환자에게만 잘하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아까 간호사 말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개새끼였으면 벌써 욕을 했을 거거든.

이들 입장에서 군의관은 그냥 뭐 한번 왔다가 가는 뜨내기들일 뿐이니까.

물론 파견이라는 게 꽤 길고, 또 지금 분위기를 보면 아무래도 한 달 더 연장이 될 거 같기는 한데.

‘그래, 역시 화는 내지 말자고.’

두 달이나 여기서 뺑이를 친다고?

허이구.

외과 의사는 다시금 애도의 한숨을 쉬고는 앞으로 나섰다.

뭐가 되었건 급성 장간막 허혈이 의심이 되는 상황이라면 이쪽에서 메인으로 봐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안녕하세요. 외과 김철호입니다. 방금 들으셨겠지만……. 환자분 배에 혈관 하나가 막혔을 가능성이 좀 있어요……. 그걸 이제 배만 보고 확인할 수는 없고요, CT를 찍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아…… 네에…….”

“보호자분들께는 저희가 따로 연락 중이니까, 그런 걱정은 마시고요. 일단은 검사 진행하겠습니다.”

“네에…….”

해서 일단 말을 하고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쪽에 있는 의료진들은 이 병원에서 동고동락하던 사람들이다 보니 대부분 척 하면 척이었다.

바로 전화기 드는 게 보였다.

아마 CT실로 전화하는 것일 터였다.

원래 같으면 한참 전에 전화했어야 할 텐데, 여기서는 괜찮았다.

환자 옮겨서 나가는 게 진짜로 쉽지가 않은 상황이거든.

“일단 환자 옮기겠습니다.”

감염 환자다.

그것도 아직 미지의 감염 환자.

그렇다 보니 이송할 때 무조건 이송용 음압 침대를 사용해야 했다.

말만 들어도 뭔가 만만치 않아 보이지 않나?

실제로는 더했다.

“끙.”

“전원 확인합니다.”

“배터리 상태 괜찮아요?”

“아. 교체하겠습니다.”

“네.”

일단 음압이라는 게 그냥 바퀴 굴러가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보니…….

일단 배터리가 필요했다.

또 음압이 제대로 걸리는지도 봐야 했다.

“어…… 된다. 됩니다!”

“오케이……. 다른 복장 점검하시고.”

“네.”

“동선 체크 된 거죠? 마주치는 사람 있으면 큰일 나요.”

게다가 길도 따로 빼서 가야 했다.

일단 엘리베이터 하나를 통으로 할애해서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복도나 이런 곳에서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서 미리 통제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꽤 많은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비인후과 친구와 외과 의사는 환자 침대를 끌고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외과 의사야 이렇게 여기까지 오는 경우가 잘 있다 보니 별생각이 없었지만, 병동에 계속 있던 이비인후과 의사나 다른 의료진들은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엘리베이터로 시신도 옮기기에 그랬다.

생각보다 많이 죽어 나가고 있다 보니 그 빈도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드르륵

하여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래로 향했다.

그사이 산소 공급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음압 베드 안쪽을 조작할 수 있는 고무 형태의 장갑을 이용해 몇 가지 처치를 했다.

환자는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가뜩이나 숨도 잘 안 쉬어지는 마당에 좁은 유리관 형태의 이송용 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딱히 공간이 주어진다고 해서 숨을 잘 쉴 수 있는 상태는 아니긴 한데…….’

이비인후과 의사는 환자의 심정을 알기에 고무장갑을 낀 상태긴 하지만 일단 환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는 사람이다 보니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는지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네, 이쪽으로!”

그렇게 CT실로 도착하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방사선사가 어설프게 걸친 레벨D 방호복 안에서 검사실을 가리켰다.

사실 CT실 하나를 통으로 감염 환자용으로 내놓는 것이 좋기는 할 터였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되겠나?

아직 중환자실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위층에 들어올 일반 병동도 음압 시설이 미처 갖추어지지 않아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더 기다렸다 받았으면 했는데 환자가 갑자기 폭발해 버리는 바람에 미리 받게 된 마당이다 보니 여러모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드르륵

물론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은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찍고 나면 소독을 하든 뭘 하든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 환자를 옮기고 밖으로 나가 대기했다.

‘이쯤 했으면…… 꽝 아니어라……. 제발……. 아니어라…….’

그렇게 비닐 옷 입고 바삐 움직이고 나니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외과 의사도 사실 레벨D 방호복을 입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밖에 있는 선별 검사소에는 의료진들이 돌아가면서 나가야 하기에 그랬다.

그래서 나름 각오를 하고 왔는데, 역시 검사만 하는 것과 발로 뛰는 것은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지나치게 힘들다고나 할까?

근데 그 고생이 그냥 헛고생이 된다면 얼마나 섭섭하겠나, 이거.

해서 절박한 심정이 되어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끝났습니다.

평소라면 안에 들어가서 같이 봤을 테지만 이거 입고 여기저기 만지고 하는 게 좋을 리가 없다 보니 밖에서 대기하다가 병동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유리창을 통해 안쪽에 띄운 영상을 바라보았다.

이비인후과 의사 쪽은…….

‘뭘까, 저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

그에 비해 외과 의사는 골이 아파 왔다.

‘이거 입고 그냥 왔다 갔다만 해도 힘들었는데……. 수술을 해야 하는구나…….’

CT상 장간막 동맥은 정말이지 이보다 명확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확실하게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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