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화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질환도 있다 (2)
종이 인간 수혁은 팔락거리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사이 김인수는 환자의 콧구멍을 쑤시고 돌아와 PCR 검사를 내보냈다.
오후 3시가 가까워 오고 있는 만큼, 원래 같으면 결과가 아무리 빨라야 내일 오전이나 되어야 나올 터였다.
하지만 그건 선별 검사소 얘기였다.
병원은 그보다 훨씬 급히 결과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예 창구가 따로 있었다.
여기서 급하다고 지랄까지 한다? 그러면 2시간 안짝에도 결과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 그 환자는 어떻게 됐어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환자는 지금 당장 넘어갈 정도로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었다 보니 두어 시간가량은 기다려 볼 수 있었다.
물론 환자 하나만 봤을 때 성립되는 얘기일 뿐이었고 의료진들은 다른 환자 보느라 정신없이 들락거려야만 했다.
잠시 짬이 난 틈을 타 김인수는 수혁의 이비인후과 친구가 보던 환자에 대해 물었다.
“아……. 그 환자분 다행히 빨리 진단되어서, 재관류해서 사셨지. 이제 퇴원했을걸?”
빨리 진단했다고 해서 반드시 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장간막 동맥 혈전증은 말 그대로 초응급이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치명률을 자랑하는 질환이었으니까.
더군다나 환자 상태도 별로였기 때문에…….
그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인수도 잘 알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 다행이네요. 그럼 그 친구분도 원래 부대로 원복했고요?”
“아…….”
수혁은 김인수의 이어지는 질문에 차마 즉답을 하진 못했다.
‘불쌍한 놈…….’
녀석의 진료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좌충우돌이라 할 수 있었다.
본인이야 엄청나게 괴롭겠지만, 실제로 제산제를 먹으면서 일하고 있을 정도라고 들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 이비인후과 의사의 우당탕탕 코비드 진료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허나 녀석은 성의도 있었고 무엇보다 성적도 좋았던 데다가 애초에 바이털과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수혁을 비롯한 여러 내과 의사 친구들에게 서슴지 않고 물을 수 있는, 뻔뻔함을 탑재하고 있었다.
성의 있고, 뭘 말해 주면 알아들을 머리가 있는 놈이 뻔뻔하기까지 하다 보니…….
성과가 꽤 좋았던 모양이었다.
-어……. 나 한 달 더 있게 됐어…….
-뭔 소리야? 한 달만 있는 거 아니었어?
-어……. 근데 여기 담당 과장님이 나 좋게 말씀해 주셨나 봐. 한 달만 더 있어 주면 안 되냐고 하는데 내가 또 어떻게 안 된다고 하냐…….
-이 뭔…….
윗분들이 거기에 알 박고 싶어질 정도로.
물론 규정이라는 게 있다 보니 대놓고 안 된다고 하거나 마음의 소리에라도 찔러 봤으면 방법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애초에 그렇게 모질 수 있는 인간이면 저렇게 열과 성을 다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막말로 군대도 강제로 간 건데, 거기서조차 과에도 상관 안 하고 또 강제로 저기다 박은 건데 거기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의사란 뜻이었다.
실력과는 별개로…….
“아……. 그렇게 됐습니까?”
“어. 그러니까 혹시 나 잘 때 전화 오면 잘해 줘. 제산제랑 PPI랑 다 먹고 있대.”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긴 하겠죠. 하긴…… 환자 넘어가고 하면 힘들지.”
김인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도 조금이나마 느껴 보지 않았나.
대학 병원과 군 병원은 그 중증도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대학 병원에 있을 땐 그나마 백이 있지 않나.
교수들이 있다, 이 말이었다.
허나 군 병원은 혼자 책임을 져야 하다 보니 그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되었다.
헌데 저긴 코비드를 보고 있으니 뭐…….
“교수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그 전화를 받은 이는 일단 수혁을 불렀다.
“응, 뭐죠?”
“아까 입원한 환자 검사 결과 나왔다고 합니다.”
“아…….”
“음성이라는데……. 그래서 일단 재검 들어간다고 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네.”
PCR 검사를 했을 경우, 가장 빨리 결과를 볼 수 있는 경우는 당연하게도 양성이 뜬 경우였다.
음성이 뜨면 적어도 한 번은 더 확인을 해 보는 것이 원칙이었다.
지금처럼 숫제 병원에서 나간 경우라면 몇 번 더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왜냐면 임상적으로 또 접촉력으로도 의심이 된다는 뜻이었으니.
검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있을 수 있지 않겠나?
물론 그 실수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워낙에 심각하다 보니 결과를 통보하기 전에 판독 단계에서 이미 어느 정도 거르고 또 거르긴 하지만…….
하여간 잘못 나왔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웠다.
“저……. 제대로 했습니다, 교수님.”
아무튼, 그 말을 듣자마자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김인수가 부리나케 말했다.
아까 코 쑤신 게 그였으니 당연했는데, 수혁은 딱히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
대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제대로 했겠죠. 벌써 두 번이나 음성이 나왔어요. 선별 검사소에서도, 여기서도. 그 말은…….”
“네? 아니, 그래도……. 교수님 증상이.”
“증상이 흡사하죠. 하지만 김인수 선생님.”
“네, 교수님.”
그렇게 완전히 일어선 수혁은 김인수를 바라보았다.
비록 피곤에 절어 있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진중한 눈이었다.
아니,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떤 욕심이 뒤섞여 있다고나 할까?
일반적인 시선에서 말하는 욕심이 아니라 수혁이나 이현종에게서나 엿보이는 욕심이었다.
바로 가르침에 대한 욕심이었다.
“원래 헷갈리는 케이스는 많죠. 코비드는 아마도 더더욱 그럴겁니다. 저와 다른 의사들이 아무리……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고 해도 아직까지 쌓아 온 세월이 부족하니까요.”
“아, 아닙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쓰신 지침서는……!”
김인수도 이제는 수혁의 그런 눈빛을 읽어 낼 수 있게 된 지 오래였다.
뭐 눈치를 살핀다 그런 수준이 아니라, 이럴 때는 무조건 경청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금과옥조 같은 지식이 와르르, 주르르 쏟아질 테니까.
그 와중에 팬데믹 때문에 더더욱 빠른 속도로 쌓인 존경심 때문에도 김인수는 거의 뭐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김인수 선생님. 의학에 절대는 없어요.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모든 과학자는 지조가 없어야 한다.”
“아.”
그거 궤도라는…… 분이 농담 삼아 하는 소리 아니었습니까?
김인수는 잠깐 스쳐 지나간 불민한 생각을 애써 지웠다.
이어지는 말 때문이었다.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언제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을 버리고 갈아타야죠. 헌데 코비드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그렇게까지 많이 갈아탈 시간이 없었어요. 그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건…… 맞습니다. 그렇죠.”
“게다가 이 환자는…… 아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가죠.”
“네, 네. 교수님.”
수혁은 그렇게 과학자로서 지녀야 할 태도를 알려 주고는 음압 병동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칙칙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공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음압이 제대로 걸렸다.
지속적으로 살균과 소독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둘은 천천히 레벨D 방호복을 걸쳤다.
이것도 다 오염 없이 입고 벗는 절차가 정해져 있어서 꽤 오래 걸렸다.
특히 수혁은 몸이 불편하다 보니 더했다.
[종이 인간이 꼭 들어가야 되나? 그냥 안에 김인수만 보내면 안 됩니까? 내시경 카메라처럼.]
‘그……. 김인수 선생님도 사람이거든?’
[네, 근데 한 번 걸렸으니까 상당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겠죠.]
‘그렇긴 할 텐데……. 뭐 걸렸다고 100% 다 면역력을 획득하는 건 또 아니잖아.’
[그야 그렇죠. 하지만 적어도 이수혁보다는 강하겠죠.]
‘아……. 나도 운동할게. 운동.’
[지금은 잠이 더 급합니다.]
‘알았어, 잘게.’
우여곡절 끝에 안으로 들어선 수혁은 즉시 아까 입원했던 젊은 환자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일단 임상적으로는 코비드가 강하게 의심이 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검사는 음성이었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과는 떨어져 있는 병실, 즉 김인수가 있던 당직실을 개조한 병실로 옮겨 둔 상태였다.
“좀 어떠세요?”
“아…….”
환자는 역시나 직접 봐도 숨이 좀 차 보이긴 했다.
허나 룸에어에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거나 하고 있지는 않았다.
99%.
환자가 젊어서 잘 버티는 것일 수도 있지만…….
글쎄, 지금껏 본 코비드 케이스들을 거울 삼아 봤을 때 지금 환자의 폐사진이라면 훨씬 더 안 좋아야 맞았다.
“저는…… 좀……. 힘들긴 합니다.”
그 외에 열도 아직 있었다.
약을 주긴 했지만, 기본적인 약만 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증으로 이환하는 증거도 없이 약을 세게 주는 것이 별 소득이 없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특히 스테로이드라는 강력한 약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보니, 더더욱 조심해서 써야 해서 이 환자에게는 아직 쓸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네, 일단 제가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아까 나간 검사에서도 음성 소견이 나왔습니다.”
“음성…… 이요?”
“네. 코비드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수혁의 말에 환자는 이게 과연 좋은 일인 건가 하는 얼굴이 되었다.
코비드도 무섭긴 하지만, 사실 젊은 환자에서는 아주 치명률이 높지는 않다는 얘기를 뉴스를 통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맞서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는 그나마 합리적인 두려움만 느끼는 법이었다.
그에 비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느낌이 찾아오면, 그 두려움에 비합리적인 요소가 껴 들기 마련이었다.
“제가 보면서 말씀드리죠.”
그렇게 굳어 버린 환자를 보면서, 수혁은 담담히 말했다.
좀 피곤해서 그렇기도 했다.
열정적으로 환자를 꼬시기엔 지난 몇 주간 너무 많은 고생을 해 버렸다.
더구나 애초에 비닐에 쌓여 있다 보니 뭔 말을 해도 제대로 전달되는 법이 없었다.
“아…… 해 보시고. 흐음.”
게다가 할 일이 많기도 했다.
환자 전신을 살펴야 하니까.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점차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코비드가 유행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경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신체 검진이었다.
다들 성가시고 힘든 데다가 ‘어차피 검사하면 되는데 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다.
허나 수혁은 이 사태가 터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질환만 걱정하고 있지 않던 사람이었다.
‘다른 질환일 가능성…… 아마도 코비드로 오인되어서 사망한 환자들이 꽤 있을 거야.’
수혁은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 별다른 특징 없는 얼굴과 목을 지나 상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청진 자체도 딱히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허나 한 가지 아예 예측하지 못했던 이상이 있었다.
가슴에서 팔로 이어지는 곳, 즉 겨드랑이 주위에 작은 홍반이 있었다.
“이거 안 가려우세요?”
“네? 아…… 그러고 보니 약간…… 네, 그런 거 같기도…….”
“손바닥 내밀어 보세요.”
“네? 아, 네.”
해서 손을 보니 아직 수혁이 보기에는 딱히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루다의 의견은 달랐다.
[미세 반상출혈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데이터 베이스를 보면 대개 이런 소견 이후 이렇게 됩니다.]
‘아. 그렇다면…….’
[아예 계열이 다른 질환입니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