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20화 (1,020/1,303)

1020화 반대의 경우도 있다 (2)

“아, 교수님.”

이현종은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긴 할 텐데, 병원의 인싸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학회 내에서나 어디에서나 괴팍한 위인으로 통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이현종 같은 어른이 권위적인 어른들보다는 나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그의 압도적인 실력과 직위 때문에라도 이런저런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물론 제일 중요했던 건 이현종의 기분이었다.

‘저놈 저거 얼굴 보니까 또 골 때리는 환자 온 거 같은데.’

골 때리는 환자들만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이렇게 되면 기분이 좋을 게 아니라 더러워야 정상일 테지만, 이현종은 정상이 아닌 인간 아니던가.

그는 새롭고 어려운 환자 보는 걸 무엇보다 좋아했는데 여기는 그야말로 새로운 환자들만 오고 있다 보니 껄껄 웃음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무슨 환자지?”

“네, 사실 저희 시설 말고 동네 의원에서 보던 환자인데요. 상태가 안 좋다고 무작정 밀어 넣었습니다.”

“검사는?”

“음성 나왔습니다.”

“그럼 우리 환자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현재 이 근방 중환자 시설이 다 풀로 돌아가고 있어서요.”

“하긴……. 그렇긴 하지.”

꽉 들어찼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코비드 환자가 창궐하고 있다 보니, 미처 분류가 채 되기 전에 병원에 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렇게 들어간 경우에 안 그래도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코비드가 쭉 번지게 되는 불상사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폐쇄된 병동이나 중환자실이 적지 않다 보니 풀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조차 모자랐다.

쥐어짜고 있었다.

그러니 급한 대로 여기로 보낸 것도 무리는 아니란 얘기였다.

“그나저나 음성이면……. 여기 와서 걸릴 수도 있겠네.”

“네, 그래도 소독 철저히 하고 있고……. 사실 대부분 음압 베드로 이송되고 있어서 오히려 가능성은 낮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지.”

이현종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와중이었고 또 새로운 환자들이 밀어닥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한창 피크일 때보다는 나아진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장구들이 많이 보강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음압 베드였는데, 관짝처럼 생겨서 안에 들어갈 생각을 하면 갑갑해질 지경이었지만 감염의 위혐을 최소화 하는데 있어서는 정말이지 가장 강력한 무기라 할 수 있었다.

“하여간, 병력은?”

“아. 네. 일단 처음 갔던 동네 의원은 피부과입니다.”

“피부과……?”

“네. 가려움증을 동반하지 않는 피부 발진이 거의 1개월 전부터 지속되어서요, 이를 주소로 피부과에 내원했습니다.”

“지금은……?”

이현종은 처치실 내에 들어가 있는 환자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물론 발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보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호흡 곤란이었다.

아주 심한 건 아니었지만…….

거기에 더해 39도를 넘나드는 고열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발진은 원래부터 이랬나?”

“아…… 아니라고 합니다. 이건 홍반성 황반 발진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흐음……. 이런 양상을 보이긴 않는데…….”

두 달 내내 코비드 환자만 봐 왔다 보니 역시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코비드였다.

하지만 수혁에게 받았던 자료를 봐도 그렇고 질본에서 직접 배부하고 있는 자료를 봐도 그렇고 또 개인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논문 서치에서도 이러한 증상은 없었다.

발진으로 시작하는 코비드라?

너무 이상하지 않나.

“네. 근데 일단 이걸 봐 주십쇼.”

“폐렴은 있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폐렴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라고 봐야 할 거 같은데.”

“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단 검사는 음성이라고?”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한 번 더 나가 보고……. 우리 쪽에서 나간 건 아니겠지?”

“네네. 그렇죠. 나가 보겠습니다.”

검사 오류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양성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만 음성인 경우에는 떠올릴 수 있는 자잘한 오류가 꽤 많았다.

그래서 판독할 때도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것이기도 했고.

물론 코비드 사태가 터진 지도 이제 꽤 지난 무렵이니만큼 실수가 있을 가능성은 적겠지만…….

숙련도와는 별개로 의료진은 전부 다 지쳐 가고 있었다.

‘실수가 안 터지기 어렵지.’

종합 병원이라는 곳은 애초부터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곳인데, 거기에 더해 사태가 터졌으니 오죽 하겠나.

언론에서는 쉬쉬하지만 이현종이 아는 과로사만 벌써 둘은 되었다.

감염이 아니라 그냥 힘들어서 죽은 사람만 둘이란 얘기니…….

“쯧.”

이현종은 혀를 찬 후, 엑스레이 외에 다른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았다.

“백혈구 엄청 뜨고……. 빈혈은 없고……. 흐음……. CRP 뜨고……. 이렇게만 봐서는 그냥 감염 소견인데. 아니, 잠깐만.”

“네?”

외부에서 가지고 온 소견과 여기서 시행한 소견들이 어지러이 섞여 있어서 한눈에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부에서 한 건 그나마 다 EMR로 정리가 되는데 외부에서 들고 온 건 종이 쪼가리들이다 보니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중에 이현종이 낚아챈 한 장의 소견은 심전도였다.

“이거 누가 찍은 거야.”

“아……. 아직 여기서는.”

“밖에서?”

“네.”

“음……. 느낌 안 좋은데.”

분명 심전도를 찍기 위해 찍은 검사 결과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찍었어요.’라는 말을 하기 위해 찍은 검사란 건데, 그렇다 보니 진짜 대강대강 했는지 개판이었다.

뭐…….

다들 바쁘다 보니, 게다가 코비드 음성 환자다 보니 마음이 풀어졌을 수는 있겠지만…….

‘판독에 Infarction(경색)이라고 써 있으면 누구 하나는 봤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인간적으로?’

판독이 이런 데도 아무도 안 봤다니, 충격이었다.

다행인 것은 기기 오류로 나온 출력값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이현종이 볼 때는 그랬다.

“심전도 일단…….”

“앗. 이거.”

“아닐 거 같은데, 다른 문제가 있어 보이니까 가져와.”

“네네!”

그렇게 이현종 손에 들린 종이를 본 응급의학과 의사가 화들짝 놀라다가 이현종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고 이내 심전도를 드륵드륵 끌고 왔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이현종보다야 당연히 훨씬 어렸지만 그 또한 과장급 인사다 보니 나이가 꽤 있었다.

‘배 나온 사람이 저거 끌고 오니까 보기가 좀 그렇네.’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살이 빠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찌는 사람이 있는데 이 양반은 명백히 후자였다.

아마 나이 때문일 터였다.

인턴이면 더 빨리 뛰라고 할텐데, 양심상 그럴 수가 없다 보니 이현종은 불만을 속으로 삭이다가 이내 심전도를 달았다.

“와.”

“뭐.”

“원장님, 아직도 직접 다십니까?”

“아니, 내가 안 달지. 근데 지금은 자네가 손이 없는지 가만히 있어 가지고.”

“이, 이거 죄송합니다.”

“농담이야. 숨 좀 돌려. 아니, 젊은 사람이 그거 갔다 왔다고 헐떡이나?”

“죄송합니다. 운동 좀 해야 하는데…….”

“지금은 운동할 때도 아닌 거 같은데…….”

괜히 운동하다가 뒤질 거 같단 생각을 하면서, 이현종은 심전도를 확인했다.

드르륵

기기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심전도 결과를 토해 냈다.

이현종은 그걸 받아 보기도 전에 환자 상태를 알아낼 수 있었다.

“심방세동…….”

“네?”

“심방세동! 거기에 RVR(Rapid Ventricular Response, 빠른 심실 반응)까지 있잖아! 이 환자 진짜 과거력 없어?”

동시에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방금 전까지는 발진 좀 있고 열 좀 나고 숨 좀 차는…….

일반적인 중환자였다면 이제는 심장이 망가진 응급 환자가 되어 버렸다.

“어…… 없, 없습니다!”

“이런 망할. 그럼 이번에 생긴 거야.”

“모,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요?”

“자네는 심장이 가만히 있는데 130, 180회로 뛰는데 몰라?”

“아.”

심방세동은 방금 말한 대로 증상이 없을 수도 있었다.

심방만 두근거리고 그게 심실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환자는 그 심방의 미세한 떨림 중 태반이 심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걸 모른다?

이미 죽었다고 봐야 했다.

“이번에 생긴 거야! 초음파. 초음파 가져오지!”

물론 이 환자가 죽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현종이 있지 않나.

심장 내과의 스페셜리스트를 넘어 월드 스타 이현종이 이 자리에 있는 한 심장 문제로 뭐가 어떻게 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봐도 무방했다.

“네, 네!”

응급실 의사는 다시 한번 출렁이는 뱃살과 함께 달려서 초음파 기기를 끌고 왔다.

아니 갔다 오진 못하고 그저 닿았다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헉헉거리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좋아. 볼까.”

이현종은 그렇게 전달받은 초음파 기기를 이용해 환자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환자는 음성 환자였고 또 따로 처치실에 격리된 상황이었기에 음압 베드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아 그냥 바로 볼 수 있었다.

“좌심실 비대……. 뭐 이건 나이 감안하면 그렇게 심한 건 아니고……. 박출량이 근데 31%야. 떨어져 있어.”

“어, 어쩌죠?”

“어쩌긴. 일단 리듬 조절하고……. 아픽사반 써서 혈전 예방해야지. 혈소판감소증이 있으니까 주의하긴 해야 할 텐데…….”

“네, 네!”

이현종은 일단 필요한 조치를 취한 후, 그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의료진들을 보다가 이내 환자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지금 당장 필요한 조치는 다 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걸 하지 못했다.

바로 진단.

‘뭐지……?’

무슨 병이지?

일단 코비드는 뒤로 둬야 했다.

아무리 지금 창궐하고 있는 병이라지만, 증상도 이상하고 검사 결과도 음성이지 않던가.

‘차근차근 정리해 보자……. 일단 얼굴을 다시 볼까.’

심장에 꽂혀서 이것저것 하느라 못 봤던 부분부터 다시 살폈다.

그랬더니만 이상 소견이 여기 저기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막염……. 거기에 구강 염증도 있어. 이거……?’

거기에 더해 목에서는 림프절 비대가 확인되었다.

거기에 더해 부정맥과 심실 기능 장애까지…….

‘이건…… 피부 점막 림프절 증후군과 흡사해. 아니, 근데…… 이상한데…….’

피부 점막 림프절 증후군이라고만 하면 너무 낯선 질환이겠지만, 이 질환에는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

가와사키병.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모두 한 번쯤은 들어 봤음 직한 메이저 질환이었다.

주로 5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열병이며, 합병증으로 심장 혈관에 이상을 일으켜 아주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질환이었다.

누구나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질환이란 얘기였고, 이현종은 가뜩이나 심장을 보는 의사인 데다가 부인이 소아과 이기자 교수다 보니 최근 들어 더 많이 본 질환이기도 했다.

‘성인에서…… 가와사키병은 극히 드물어. 지금까지 보고된 사례가 몇 개나 있지?’

정확한 숫자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100례도 안 되었다는 건 확실했다.

‘시벌……. 뭐지?’

이현종은 조용히 욕을 내뱉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음 지시만 기다리고 있는, 해맑은 얼굴의 의료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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