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23화 (1,023/1,303)

1023화 센터 어게인 (2)

“호흡음 안 들려. 뉴모 맞아.”

이현종은 센터 내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방호복을 입고는 안으로 들어가 환자를 살폈다.

심지어 방호복을 입은 주제에 청진도 했다.

“드, 들리세요?”

“안 들린다니까. 인수야, 너도 많이 아프니? 그러고 보니 코비드 걸렸었다며. 요새 논문에 포스트코비드컨디션이라는 것도 나오더만.”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불세출의 기인이라 그럴까.

비닐 쪼가리 위에 청진기를 올려놓은 주제에도 잘만 들리는 모양이었다.

뭐……

수혁도 얼마 전부터는 이런 마법 같은 짓을 하긴 했는데…….

그전까지는 절대, 말 그대로 절대 자기 청진 소견을 신뢰하지 않았다.

찰칵

하여간, 센터 내에는 벌써 포터블 엑스레이가 구비되어 있었다.

애초에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것을 홀로 해결할 수 있는 센터를 표방하고 있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봐 봐.”

“아…… 이거…… 아침에는 괜찮았는데.”

“원래…… 원래 그래, 이 망할 놈의 병이.”

자세한 건 병리 검사를 해 봐야 알 터였다.

아니,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부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작정 하는 게 아니고 동의를 받고 진행이 되는 것인데……

의료진 말고도 숭고한 희생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이것처럼 강력하게 증명하는 일도 없을 터였다.

“폐가 섬유화되면…… 질겨지고, 질긴 건 아무래도 터지기도 쉽지.”

“하긴…… 그렇죠. 하…… 그래도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뭐…… 너 이런 거 못 봤어?”

“네? 거의…… 저희는 사실 호흡기 증상보다는 다른 증상이 두드러지는 환자들을 봐서요. 호흡기는 주로 본관 중환자실에서 보고 있어요.”

“아…… 그렇지. 우리가 그런 센터지.”

이현종은 그런 말을 하면서, 흉강 안에 들이찬 공기를 빼기 위한 술기 세트가 오는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한순간에 팍 터졌다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공기가 벌써 어마어마하게 차 있었다.

질겨진 데다가 기계 호흡을 하고 있다 보니 가능한 일인데, 이런 건 조금만 지체가 돼도 긴장성 기흉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긴장성 기흉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그대로 사망하는 병이었고 실제로 현장에서 그렇게 사망하는 환자들이 꽤 있다고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폐렴보다 너무 빠른 경과를 보일 때가 있어서 그랬다.

“자…… 소독하자고.”

“네, 교수님.”

아무튼, 조기에 발견했고 대응도 하고 있었다.

같이 들어와 있는 김인수도 실은 홀로 이만한 센터를 지키고 있어도 하나 이상할 거 없는 인재이지 않나.

그런 이의 보조를 받고 있다 보니 일은 아무래도 일사천리일 수밖에 없었다.

“자, 꽂는다.”

“네.”

어느새 흉관이 삽입되고, 숙련된 다른 의료진들에 의해 딱딱 설치까지 완료되었다.

“후.”

땀이 좀 난 모양이었다.

이현종은 아까보다 살짝 흐릿해진 시야를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그와 함께 좀 더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괜찮았다.

나가면 되니까.

“저, 교수님.”

그런 생각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는데 의료진 하나가 그를 붙잡았다.

뭔가 하고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 자네.”

병동 터줏대감 중 하나였다.

원래 딴 데 있던 베테랑 간호사인데 이현종의 부름에 응해 준, 고마운 사람이란 얘기였다.

“네. 그…… 환자 하나가 혈당이 갑자기 튀어서요.”

“혈당이 튀어?”

“네.”

“이상한 일인데. 어디에 있지?”

“저기.”

“그래, 가자고.”

“네, 감사합니다.”

3호실에 있다가 나왔더니 다음에 도달한 곳은 바로 옆 2호실이었다.

안에 있는 환자는 당연하다는 듯 의식이 흐렸다.

아니, 그냥 재워 두고 있었다.

벤틸레이터를 쓰고 있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괜히 하는 짓이 아니니만큼 당연히 유리해지는 지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증상을 들을 수 없지…….’

증상.

환자가 호소하는 불편감.

이게 생각보다 얼마나 자주 무시되던가.

의식이 멀쩡한 환자가 말하는 증상조차 표현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초진 또는 입원을 위한 면담에서야 당연히 그 증상이 너무 중요하지만…….

그때 있지 않았던 증상은, 지정의가 신경 쓰지 않는 이상 씹히는 일이 많았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의식이 없다?

그럼 증상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몸짓이나 표정을 봐야 하는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필연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을 경우, 진단이 느려진다…….’

이현종은 이미 어느 정도 방치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환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다고 뭐가 막 보이진 않았다.

‘수혁이는 이러다 눈알 돌아가면서 뭔가…… 이상해지는 지점이 있던데. 난 안 되는군.’

바루다가 없는데 수혁이 따라 해 봐야 뭔 소용이 있겠나.

하여, 이현종은 일단 검사 수치부터 살피기로 했다.

검진이 가능할 만한 의식 수준이 아니어서 그랬다.

아니, 저런 게 목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깨우는 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었다.

조기 진단에 대한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묻어 두고 넘어가야 했다.

“어젯밤에 한 번 떴잖아.”

“아…… 뭐지? 기록은 없던데.”

“누가 당직이었는데?”

“대훈이요.”

“대훈이…… 이전에는 안 뜨던 환자가 갑자기 뜬 건데…… 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겠네.”

사람이 아프면, 그냥 아픈 수준이 아니라 이 정도로 아프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지 않던가.

그중에는 고혈당도 있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호르몬이 뿜어져 나오다 보면 가능한 일이었다.

딱 한 번만 발생한다면…….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었다.

‘하, 그 새끼.’

물론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쉽지 않은 것도 아니고…….

보다 젊은 시절의 이현종이었다면 가서 지랄도 했을 거 같은데…….

아까 본 대훈의 수도승 머리가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뭐 어쩌겠나.

애가 뒤지게 생겼는데.

실수라고 하기도 좀 뭐하지 않나?

‘그래도 인슐린 썼으면…… 말은 해 줘야 하는데.’

이현종은 한숨과 함께 검사 수치를 바라보았다.

인슐린을 또 반감기 짧은 게 아니라 긴 걸 썼다.

그래서 오전 검사에서는 묻혔다.

사전 지식이 없이 그냥 보면 아무 문제 없나 보다 하고 넘어가도록.

하지만 그 반감기가 지나자 이렇게 탁 떠 버린 것.

그 말은 내인성 요인이 있고 그것이 전혀 교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밀라아제 나가지.”

“네?”

“췌장염일 수 있어. 급성으로…… 이거 전에 수혁이가 말해 준 적 있는데 모르나?”

“아…… 맞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초음파 갖고 와 봐.”

“아, 네.”

이현종은 들들 끌려 오는 초음파를 보면서 습관처럼 환자 심장 부근에 젤을 바르다가 이내 상복부로 내려왔다.

김인수도 뭔가를 느꼈지만 일단 닥치고 있었다.

민망해진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이게 습관이 돼 가지고. 하하. 참 별일이지? 나이 들어서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아, 네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김인수 딸랑이야 뭐 유명하지 않나.

안대훈, 김성진처럼 종교적이진 않지만 그래서 더 정석적인 딸랑이였다.

‘얘도 그렇게 되려나.’

아직 함께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서 그렇지 더 지나면 체험이라는 걸 하고 영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이현종은 초음파 프로브를 환자의 배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뭉개졌네. 하…… 급성 췌장염이야. 이거 일단 대증치료 하자고. 의식 있었으면 엄청 아파했을 거야. 아니…… 잠깐만…… 기저 혈압이…….”

“이걸 알고 보니까 살짝 올랐네요. 수치 자체는 정상인데…….”

“별다른 이유 없이 변했다면 정상이 정상이 아닌 거지.”

“맞습니다, 교수님.”

“통증이 있었군. 딱히 혈압 조절할 필요는 없고, 진통제 살짝 올리지.”

“네, 교수님.”

“잘 보자고. 이러다가 훅 가.”

“네.”

급성 췌장염.

사실 뭐…….

유흥가 근처, 그러니까 거의 대학가를 끼고 있는 대학 병원에서는 자주 보는 병이었다.

술 먹다 보면 췌장이 뻗어 버리거든.

그런 경우엔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물론 없는 게 낫긴 할 텐데, 젊은 사람들이야 뭐…….

하지만 지금 여기 누워 있는 환자는 나이도 많고 코비드도 있었다.

‘죽을 수도 있겠는데.’

너무 많은 죽음을 단기간에 보아 온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그사이에 뭔가 더 벌어진 것은 없었다.

“아후.”

막상 들어가 있던 시간을 다 따져보면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새 땀이 차 있었다.

이현종은 가슴 주변이 퍼렇게 물든 수술복을 펄럭거리며 환자 목록을 다시 살폈다.

슬슬 점심때가 다가오고 있어서였다.

배가 고프단 게 아니라, 다른 처방들이 추가될 시점이 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해서 딸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환자 개개인을 살피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김인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 그래. 그렇게 하지.”

“이 환자는…….”

“어, 그러자.”

“네.”

“아니, 아니지. 여긴 이렇게.”

“네.”

그뿐만 아니라, 의자에 앉은 채 죽어 있던 아니, 죽지는 않고 잠들어 있던 이태원도 합류해 이런저런 처방들을 내고 있었다.

동시에 의뢰 온 협진들도 해결해야 했다.

“아니…… 우리 상황 뻔히 알면서 계속 내?”

“그…… 뭐…… 어려운 환자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수혁이가 이거 다 해결하고 있었나?”

“돌아가면서…….”

“돌아? 돌았어? 나도 없는데 누구랑 돌아.”

“그, 아니. 네, 맞습니다. 사실 이수혁 교수님이 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얼굴이 박살이 났지.”

만만치 않은 강행군이었다.

거기도 힘들었지만 여기도 더 힘들었으면 힘들었지 덜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과연 그랬다.

“하아.”

나이 때문인지 뭔지 자꾸 한숨이 나와서 더 힘들게 느껴질 무렵, 김인수가 어깨를 두드렸다.

“응?”

“교수님. 전화 왔습니다.”

“전화? 아…… 화상인가?”

“네. 뉴욕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조태진이는 집에 왔나?”

“아…… 네. 무사히 탈출했다고.”

“그냥 거기서 더 보지 왜.”

“여기 본인 환자가 많아서요.”

“아 맞다. 걔 혈종이지? 알았어.”

이현종은 잠시 안부를 묻다가 이내 전화실로 향했다.

말이 전화실이지 그냥 화상 회의실이었다.

“어, 이현종입니다.”

“아…… 이수혁 교수님은요?”

“잡니다.”

“아…… 네.”

사실 전화 건 사람은 이수혁을 더 원했지만 잔다고 말하는 이현종 눈이 살짝 돌아가는 기미가 보여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좀 이상한 사람인데 아들 얘기가 낑겨 들어가면 도른자가 된다는 평이 자자하지 않던가.

게다가 그 이전에 이 양반도 천재는 천재였다.

“코비드 관련은 아니고…….”

“어, 괜찮으니까 말해 봐. 우리 원래 코비드 전담 아니잖아.”

“네네. 사실 저희 어머님인데.”

“별거 아닌 건 아니지?”

“그건 아닌 거 같아서요.”

“그래, 그럼 쭈뼛대지 말고 빨리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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