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화 성장하는 이현종? (2)
말은 태연하게 하고 있었지만 이현종도 긴장이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직 코비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많을 수가 없는 상황이지 않나.
‘그나마…….’
이현종은 얼굴을 굳힌 채로 회의실 쪽을 돌아보았다.
딱 두 달 만에 본 회의실은 보기만 해도 냄새날 거 같은 모양새가 되고야 말았다.
실제로 아까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책상 위에 놓인 양말이 서 있는 걸 본 거 같은데…….
‘더 생각하면 토할 거 같으니까 하지 말자.’
실제로 이현종 인턴 시절엔 전공의법도 없었고, 당연히 주 88시간 근무 따위의 보호 장치도 없었던 데다가 사회 전반에 걸쳐 군대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때이지 않나.
그때는……
집에 가는 건 사치가 아니라 그냥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가난뱅이는 또 어찌나 많은지 양말도 부족해서 그냥 하나만 신고 지내는 놈들도 꽤 있었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양말에 발에서 난 땀이 배이고 또 배이다 보면 굳어서 서게 된다는 것을.
‘저 지경이 되도록…… 천재가 혹사를 한 덕에 예상한 것보다는 훨씬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했지만…… 흐음.’
원래 우리 뇌는 ‘생각하지 마’를 수행할 수 없는 장기라지 않던가?
허나 그게 가능하게 되는 타이밍이 있었으니, 바로 아예 다른 생각으로 덮을 때였다.
그리고 그 다른 생각이 더 매력적이거나 압도적일 때에는 아주 쉬웠다.
‘백신은…… 또 다른 영역…….’
이현종은 환자가 맞았다는 백신을 생각하면서, 새우등 자세를 취하고 있는 환자와 이를 위에 낑낑거리고 있는 의료진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피부과 의사는 아예 처음 해 보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옆에 있는 의료진, 즉 간호사는 베테랑급이라는 점이었다.
태화에서 불려간 사람들인 만큼 인재풀이 달랐다.
“그…… 이렇게 하면 됩니까?”
그 덕분에 간신히 자세를 잡은 피부과 의사가 현종을 돌아보았다.
이현종은 몇몇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어. 영상 보니까 뭐…… 뇌압 상승 소견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아서…… 바로 하는 거긴 한데. 하면서 뇌압이 높이 측정되면 중단할 수도 있어. 알아들었지?”
“네, 네!”
“좋아. 자 그럼…… 일단 손톱으로…… 척추랑 척추 사이에 자국을 만들어. 딱 보면 그래. 거기. 확실히 공부 잘했네.”
“여기…… 여기 맞죠?”
“어, 맞아. 최대한 진하게 남겨. 베타딘으로 칠하고 나면 또 이게 안 보일 수가 있어.”
“네네.”
피부과 의사는 과연 에이스 출신답게 딱딱 짚어서 손톱으로 자국을 남겼다.
의사들이 다 그러하듯 이 친구도 손톱을 바짝 깎아 두긴 했지만, 있는 힘껏 찔러 대서 그런가 자국은 잘 남았다.
“으.”
“환자분 비명 지를 만큼 누르진 말고. 엄마 아냐?”
“아, 네. 죄송…… 미안해, 엄마. 근데 이게…….”
“흐으…… 괜찮아…….”
“엄마가 괜찮다는 건 안 괜찮다는 말이니까 주의하란 말이야.”
“네네.”
잠시 해프닝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하여간, 자국은 영상을 통해 보고 있는 이현종마저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이나 제대로 남았다.
“자, 그럼 소독을 하자고. 베타딘으로.”
“네. 근데 이거 그사이에 지워지거나 하면…….”
“안 지워질 거 같으니까…… 그리고 노인네들 피부는 원래 저런 거 남으면 잘 안 없어져. 아, 어머님보고 뭐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노인네예요.”
“그…… 네.”
피부과 의사는 좀 불안해하는 얼굴이긴 했지만 일단 베타딘으로 치덕치덕 닦아 내기 시작했다.
부위가 부위이니만큼 여기가 지저분한 상태에서 잘못 찌르기라도 한다면…….
진짜 대재앙이 펼쳐질 수 있어서 그랬다.
‘환자 증상은…… 척수염에 준해. 이것이 만약 감염이 아니라고 한다면…… 흐음…….’
베타딘은 꽤 강한 소독제이지만 바른다고 바로 소독이 되는 건 아니고, 자연 건조될 때까지 기다려야 최대의 소독 효과를 노릴 수 있는 녀석이지 않나.
그 말은 곧 바르고 나서도 수십 초에 해당하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현종은 그 시간 동안 백신에 대해 생각했다.
‘백신…… 본격적으로 맞기 시작한 지가 이제 고작 한 달이나 되었을까?’
신현태.
이 친구가 가서 아주 그냥 피를 토했다고 들었다.
거리두기 등의 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와중이어서, 정부에서는 백신에 제법 소극적으로 나와서 그랬다.
-거리두기는 시간을 버는 것뿐입니다. 물론 팬데믹으로 번지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죠! 하지만 다른 나라가 다 박살 났는데 우리만 거리 둬서 뭐 합니까? 팬데믹 사태가 공식적으로 선포된 이상…… 결국,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야 종식이 될 겁니다.
-백신은 부작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로 인해 피해 입을 사람에 대한 고려는 없습니까?
-지금도!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감수하고 진행 중인 거 아닙니까? 그것만으로 해결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질질 끌다가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또 의학적으로도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 있어요!
신현태는 이렇게 말했지만, 다른 프락치들의 말에 의하면 그야말로 ‘지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난동을 피웠더랬다.
뭐…….
이쪽이건 저쪽이건 쉽지 않은 선택이긴 할 터였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처럼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 건 아니다 보니 백신에 대해 소극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있었고.
어마어마한 행정력의 소요와 비용 그리고 부작용 등의 이슈가 있지 않겠나.
허나……
신현태의 말대로 팬데믹은 이미 벌어진 마당이었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백신 제조사를 보유한 나라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빠르게 백신을 도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고된 부작용은 발열이나…… 피로감 또는 무력감 등이 대다수지. 일부에서 혈전증이 보고되고 있기도 한데……. 신경 쪽으로는 아직 모르겠네. 하지만…… 뭐, 얼마든지 예상은 할 수 있어.’
수혁에게 좀 밀리는 감이 있다곤 하지만…….
이현종은 홀로 우뚝 선 천재 아닌가.
게다가 의학에 있어서만큼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노력가였다.
그런 사람이 현 의료계 최고 이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코비드 백신에 대해 무지할 수가 있겠나.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논문을, 다는 아니더라도 대개는 읽어 보고 있었다.
그 덕에 이런저런 부작용은 알고 있었는데, 아직 눈앞에 있는 이 환자 같은 부작용은 못 봤다.
‘일반적인 백신에서도 길랑바레 같은 건 얼마든지 가능해. 더 심한 경우라면 급성 횡단성 척수염도 가능하지……. 지금 이 환자 같은 경우…… 옳거니. 그래, 증상이…… 확실히 급성 횡단성 척수염이랑 비슷한데?’
이현종은 머리를 굴리다 말고,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찔러 넣어야 할 타이밍이 와서 그랬다.
아까 무자비할 정도로 눌러서 만들어 둔 자국이 사라지고 있다, 이 말이었다.
“어어. 그거 내려놓고. 마취! 마취부터!”
거기에 더해 피부과 의사는 길쭉한 스파이날 니들을 집어 들고 있었다.
“아.”
“아? 엄마라더니. 뜨거운 효도 하려고…… 얼마나 아픈데 거기가.”
“죄송합니다.”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면 나중에 조용히 풀라고. 내 앞에서는 하지 말고…….”
“네네.”
이현종이 재빨리 개입한 덕에 피부과 의사는 살벌한 스파이날 니들 대신 마취 주사를 집어 들고는 푹푹 찔러 댔다.
‘저거 저렇게 하면 아픈데…….’
그나마 약 찌르기 전에 혈관 찌르지 않았나 확인하는 용도로 주사기 뒤로 빼는 건 하고 있어서 다행인데…….
어…….
마취제를 찔러 넣었으면 마취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부분에 주사를 찔러 넣으면 얼마나 좋은가.
두 번 세 번 아플 일도 없고 그럴 텐데.
저 새끼는 우측 찌르고 좌측 찌르고 위에 찌르고 아래 찌르고 뭔가 이상한 방법을 쓰고 있었다.
“으…….”
저럴 거면 그냥 스파이날 니들을 한 방에 꽂는 게 어땠을까 싶을 정도의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야 피부과 의사는 주사기를 내려놓았다.
사실 이현종은 환자의 등만 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이현종으로서는 실로 드물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골수검사를 해도 이렇지는 않을 거 같았다.
“네네.”
“그, 알겠습니다. 자…… 이제부터 중요해. 집중해.”
“네!”
피부과 의사는 그런 이현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다란 스파이날 니들을 집어 들었다.
“손톱자국 있는 부위로 찔러. 직선으로……. 그러다 보면 뭔가 관통되는 느낌이 나면서 저항이 약해지는 지점이 나올 거야.”
“음.”
“너무 모르겠단 표정 짓지 말고…….”
“아뇨, 알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ABGA 같은 거 아닙니까?”
“어…….”
아니, 그런 아닌데.
물론 동맥 찌르는 것도 어려운 거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척수 천자 하는 거랑 동일시하는 건…….
‘아니지. 용기를 줄까.’
자세 제대로 잡았고.
위치 잡았고.
소독도 했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이라 해 봐야 그냥 척수 천자 실패 정도일 터였다.
물론 사고라는 게 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후련하게 커질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하는 꼴을 보니까 애가 충분히 조심스럽긴 했다.
“그래, 찔러.”
“네! 제가 이래 봬도 인턴 때…… 애들이 어려운 케이스 있으면 요청하고 그랬습니다.”
“그래…….”
인턴끼리 ABGA 실패해서 돌아가면서 찌르는 경우가 있긴 했다.
주로 3월인데, 좀 늦는 애들은 4월에도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근데 뭐…….
그게 큰일이겠나.
‘에휴…….’
정말이지 월드 스타인 이현종이 들을 땐 하찮기만 한 자기 어필이었지만…….
이현종도 많이 늘었지 않나?
그 덕분에 겉으로는 한숨만 쉴 수 있었다.
“잘하네. 옳지. 아니, 아니지. 거기 아냐. 바로 찔러야지.”
“네네. 뭐 원래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이현종은 후우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말리진 않았다.
일단 마취를 하지 않았나.
아플 일은 없다 이거였다.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고 칠 만큼 팍팍 찌르고 있진 않아서였다.
“돼, 됐다. 멈춰!”
“네?”
“이 새꺄. 지금 노란 물 맺혔잖아.”
“아. ABGA 생각하느라 피 찾고 있었어요.”
“아후…….”
그렇게 노란 물, 그러니까 뇌척수액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일단 색깔은 맑았다.
저것만으로 단적으로 말할 순 없겠지만…….
‘세균은 아니고…….’
이현종은 이게 만약 백신 부작용으로 확인이 된다면 어쩌나 하면서, 말을 이었다.
“검사 나가고. 일단 뇌압은 정상이네. 그렇다고 뇌척수액 뺄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마개. 응, 그거 꽂아. 어어. 그래, 옳지. 검사 빨랑 보내고…… 나오자마자 전화해. 여기 시간은 신경 쓰지 말고.”
“시차 때문에 근데.”
“지랄 말고! 엄마라며!”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