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26화 (1,026/1,303)

1026화 성장하는 이현종? (3)

이현종은 뉴욕 병원과의 협진을 마친 후, 부리나케 논문 초안을 작성했다.

말이 논문이지 케이스 리포트인 데다가 그 이름 높은 이현종이다 보니 속도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몇십 분 만에 거의 다 완성이 되었을 지경이었는데, 그렇다고 어디 보내거나 하진 않았다.

‘이 백신에 대해서는 임상 시험 과정에서도 전혀 횡단성 척수염이 보고가 되지 않았어. 이상하네…… 전사 방식을 보면…… 안 생길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이상해서 그랬다.

보고가 없었다.

급성 횡단성 척수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심각해 보일 수밖에 없는 이름인데, 실제로도 그랬다.

이건 절대로 누락이 되어서는 안 될 부작용인데, 어디에도 그러한 보고는 없었다.

그 말은 아주 드문 형태의 부작용이라 임상 시험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는데 그걸 이현종이 확인했거나 혹은 그냥 우연이 겹친 것이란 얘기가 되었다.

‘아니, 근데…… 이론상…… 얘나 다른 놈들이나 다를 게 없잖아.’

이현종은 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도저히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나?

다른 백신과 크게 다를 게 없는데…….

물론 이현종이 기초의학 쪽으로 전문가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있는 자료를 해석조차 못 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랬다.

‘뭐…… 결과 나오고 봐야지.’

이현종은 신중히 접근하기로 마음먹고는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자 김인수가 다가와 물었다.

“이수혁 교수님은 안 깨워도 될까요?”

그 말에 시계를 보니 이제 들어간 지 한 3시간 정도 된 것 같았다.

사람이 3시간만 자도 살 수 있던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묻길래 혹시 그랬나 하고 생각을 해 보니 역시 아니었다.

“이 새꺄. 뭘 벌써 깨워.”

“아니, 그게. 보통은 이쯤이면 일어나셨거든요.”

“그러니까 애 얼굴이 박살이 났지. 너 신도 아냐?”

“시, 신도요? 저는…… 아직.”

“아, 넌 아니지. 아무튼, 좀 자게 둬. 나 있는데 뭔 문제야. 뭐 안 되는 거 있어, 지금?”

“그건…….”

김인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현종은 월드 스타지만…….

그의 진짜 전성기를 목도한 이들은 지금 적어도 사십 이상 먹은 이들이지 않나.

이렇게 나누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겠지만, 굳이 나누자면 지금 한창 펠로우로 일하거나 또는 그 밑에 레지던트로 있는 이들에게 월드 스타는 수혁이었다.

두 눈 똑똑히 뜨고 수혁의 활약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이현종의 활약은 약간 전해 듣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보통은 이현종 교수님을 이수혁 교수님 밑에 두는데…….’

김인수도 그랬다.

이현종이 좋은 의사고 또 훌륭한 스승이라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젊은 천재에 대한 기대는 모두에게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보니 그랬던 건데 오늘 보니 어떤가.

‘미쳤네, 진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늘도 수혁이 전면에 나서서 활약했던 그 날처럼 그냥 쭉쭉 환자들이 해결이 되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나은 점도 있었다.

수혁은 어디 하나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데 반해 이현종은 적절히 자제할 줄도 알아서 그랬다.

“뭘 눈 감고 생각하고 있어? 그게 그렇게 어렵냐?”

“아, 아닙니다. 진짜…… 새삼 놀라워서 그랬습니다.”

“새삼? 이 새끼들이 날 뭐로 보는 거지……? 내가 없어 보여서 내 입으로는 이런 얘기 안 했는데, 나 월드 스타야, 인마. 학회 가면 아직도 어?”

“네네. 진짜 천재시죠.”

“이게 인정해 주는데 묘하게 기분이 안 좋네?”

“근데, 교수님. 환자 또 온다고 합니다. 응급실 통해서.”

“아, 요놈 봐.”

이현종은 뜸 들이고 있던 김인수에게 잔뜩 시비를 걸다가 이내 환자 자료를 띄웠다.

역학 조사관부터 해서 연관된 모두를 갈아 넣어서 만들고 있는 전원 자료였다.

환자의 나이부터 성별, 사는 곳과 같은 행정적 자료부터 어디를 갔고 어디에서 접촉을 했고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고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등과 같은 의학적 자료도 포함하는 자료였다.

물론 처음보다는 아무래도 그 퀄리티가 점점 떨어지고 있긴 한데 환자 수가 초반에 비하면 거의 100배 가까이 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흐음…… 진짜 중환자네.”

“네. 사실상…….”

“아니, 아직 DNR 받을 정도는 아냐. 일단 너무 젊어. 40대라니…….”

“네, 최선을 다해야겠죠?”

“그렇지.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확인한 환자는 명백한 중환자였다.

바이러스 폐렴으로 인해 폐가 망가져 가고 있었다.

약은 수혁의 지침을 따라 다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은 진행되는 중이었다.

원래 바이러스 질환이라는 게 의료진의 역할이란 호스트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는 게 대부분일 때가 많지 않나.

대개 젊고 건강했던 사람들은 그냥 경과대로만 가고 스스로 이겨 내는 경우도 많았지만…….

의학은 통계이다 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안타깝게도 딱 이 환자의 경우가 예외에 해당했다.

“일단은 루틴대로 보자고. 홍창기는 뭐 하지?”

“중환자실 보고 있으시죠. 거기도 죽을 맛일 겁니다.”

“그래. 이 환자 그쪽으로 보내. 어차피 특별한 건 없을 거야.”

“아…… 네. 그렇게 배정하겠습니다. 근데 전화가 이쪽으로 왔었는데…….”

“어차피 결정은 우리가 하는 거지. 이 환자는 다른 이유를 찾아서 뭐 할 여지가 없어. 그냥 묵직하게 폐렴이랑 싸워야지. 그건 창기가 우리보다 잘할걸.”

“하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이나 이현종이 나서면 예후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뭔가 숨겨져 있던 것을 찾아낼 수 있고 그게 해결 가능한 문제일 경우에나 해당하는 일이었다.

대다수의 코비드 환자들은 그냥 폐렴으로 죽었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치료를 해도 그랬다.

바이러스 질환이란 원래 그랬다.

‘그래, 홍창기가…… 잘하는 편이지.’

물론 그쪽의 스페셜리스트들이 들러붙으면 달라지기도 했다.

시간을 보다 잘 벌어 준다, 이 말이었다.

그러한 쪽으로는 아예 그쪽으로 노하우를 쌓아 가고 있는 홍창기가 적임이었다.

딱히 막 반짝반짝하는 일은 아니었다.

약 쓰고, 벤틸레이터 조작하고, 물 잘 조절하고 하는…….

그러면서 제때제때 필요한 일을 해 줘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안타깝게도 딱히 그쪽에 대해서는 나라에서 별로 인정을 안 해 줘서 고생만 직사하게 하고 보상은 적긴 한데…….

그나마 태화는 원내 평가 및 동료 평가로 성과급을 재지정하는 제도가 있다 보니 홍창기를 위시한 태화의 중환자 의학과 사람들은 보상이 그래도 썩 괜찮은 편이었다.

부우웅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오후도 다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사이 이현종은 김인수와 더불어 무려 5명의 신환을 받았고, 현진도 5건을 더 봤다.

“흐아아아.”

이쯤 되니 애초에 놀다 온 것이 아닌 이현종도 슬슬 지쳐 가고 있었다.

아까부터 수혁이 보고 얼굴 망가졌네 어쩌네 하고 있긴 했지만…….

그 또한 평소보다 훨씬 힘들긴 매한가지였다.

얼굴이야 세월이 애초에 망가뜨려 놓은 탓에 별 티가 안 날 뿐이다, 이 말이었다.

“이것만 받고 가야겠다…… 이제 수혁이 슬슬 깨울 준비해.”

“네, 교수님.”

“아들이랑 시간도 못 보내고 이게 뭔 일이니.”

“너무 우수하셔서…….”

“그래, 그렇지. 잘난 것도 죄라니까.”

이현종은 기지개와 함께 넋두리도 늘어놓고는 전화를 받았다.

뭔가 익숙한 번호다 싶더니만 뉴욕이었다.

“어. 결과 나왔나?”

“네네!”

“그럼 화상으로 재연결하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현종은 느릿느릿 화상 룸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목소리가 밝은 거 보니까 결과가 좋은 모양이구만……. 가만? 결과가 좋아?’

결과가 좋다고?

그럴 수가 있나.

사실 뇌척수액 검사에 대한 결과는 지금 아주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검사에 대한 해석일 텐데 이현종은 아직 그러한 점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 준 적이 없었다.

뭐, 그렇다고 화상 룸에 안 갈 건 또 아니다 보니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다 보니 전화가 울렸다.

딸각

받아 보니 이번엔 룸 전체가 연결되었다.

이현종은 그렇게 화면에 뜬 피부과 의사를 바라보았다.

시차 어쩌구 하더니만 오히려 저쪽이 새벽이었다.

날밤을 아예 새운 모양인데…….

환자가 엄마라고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지?”

“네, 지금 떴을 겁니다.”

“음.”

EMR은 연결되어 있었다.

같은 계열 병원이다 보니 당연했다.

하여간, 보니까…….

예상했던 바대로였다.

“단백질 좀 올라갔고…… 호중구 많고…… 다혈구 증가되어 있는데……. 딱히 검출되는 건 없네? 뭐 이거야 더 기다리다 보면 뭔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

“아, 네. 일단 검사실에서는 색도 그렇고 감염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고 합니다. 그럼 그냥 팔다리 힘이 빠지는 건…… 머리도 아니고 척수 쪽도 아닌 다른 어딘가일까요?”

예상대로가 아니었던 건 상대 의료진의 반응이었다.

되게 멍청한 소리를 주절거리고 있었는데 밤을 새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뇌척수액이 깨끗하다고 척수가 깨끗하다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의학이란 말인가.

‘화…… 내지 말라고 했지? 수혁이 아빠이자 센터장이니까?’

만약 이현종이 오늘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이기자 교수에게 한마디 듣지 않았다면 지금쯤 한 번은 지랄을 했어도 남았겠지만, 그는 또 참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제대로 된 진단을 위해 여러 가지를 떠올렸다.

‘자가면역질환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항핵항체검사는 음성이야. 그렇다고 100% 아니라고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은 아주 떨어져.’

고려해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감염이 아니라고 해서 괜찮다고 할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명백히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 있고 또 징후가 있는데 괜찮긴 뭐가 괜찮겠나.

‘그에 비해…… 백신의 기전을 떠올려 보자. 이 백신은 다른 백신처럼 지질 나노입자에 봉입된 융합 스파이크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mRNA 백신이 아냐. 이건……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하지……. 그래, 역시 이쪽이 오히려 더 척수염이 잘 생기면 잘 생겼지, 안 생기거나 덜 생길 수는 없어.’

아까부터 고민했던 것처럼 백신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증상이나 검사실의 소견도 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제조사가 이에 대한 보고를 하지 않았단 점인데…….

그것이 이현종을 고민하게 하는 점이었다.

“이봐.”

“네.”

“확실히 그 백신이야?”

“아, 네. 저희 외국인이라…….”

“흐음…….”

“왜, 왜 그러시죠?”

“일단…… 스테로이드 치료 시작하지. 감염은 아냐. 백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자가면역질환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조기에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도움이 되겠지.”

“아, 그건 어떻게.”

“내가 자세히 처방 낼 테니까 그거 따라가고…… 경과 보고 확실히 해. 나는 이건…… 좀 더 고민을 해 봐야 되니까.”

만약 이현종의 생각이 맞다면…….

백신 제조사에서 의도적으로 부작용을 숨겼단 얘기가 되었다.

이건……

커도 너무 커다란 문제였다.

‘이런 골치 아픈 건 역시…….’

혼자서 끙끙 앓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현종은 별 고민도 없이 신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짬 때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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