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27화 (1,027/1,303)

1027화 부작용이 있다면 (1)

“어…….”

신현태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제 달려서 지금 숙취라는 업보에 시달리고 있는 건가 싶을 만한 광경이었다.

물론 신현태가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억울하고 분해서 돌아가실 지경이 될 터였다.

그는 요 몇 달간 술은커녕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있었다.

오로지 에너지 드링크 또는 커피만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잔슨 백신에서…… 급성 횡단성 척수염이 나온 거 같다, 이 말이지?”

“응. 뭐……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극히 희박해.”

“다른 병력은 없고?”

“없어. 증상 발생 48시간 이내 백신 맞은 게 가장 주요 병력이야. 아…… 뭐 다른 거 있긴 한데 본원에서 조절 중이고.”

“아, 여기 출신 의사 어머니라고 했지.”

“출신이 아니고 아예 뉴욕 센터에 있어. 넌 가만 보면 교수 아니면 걍 다 외부 인사로 생각하더라. 진정한 꼰대라니까.”

여러 가지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이 정도로 다양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면, 하나하나의 무게라도 좀 가벼워야 할 거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모든 일들이 이걸 정말 사람이 하라고 만든 일이 맞나 싶을 만큼이나 심각한 것들만 있었다.

거기에 이현종이 거대한 똥을 던진 마당이었다.

이러니 한숨이 나오지, 안 나오고 배기겠나?

심지어 막판에는 빈정대기까지 했는데 방금 던진 똥이 그것조차 당장은 눈에 안 들어올 만큼 심각한 사안이었다.

‘잔슨…… 하, 시발.’

지금 백신의 주력 기업들은 당연하게도 미국 기업들이었다.

다른 나라는 한 기업도 없는 경우가 태반인데…….

미국은 두 개나 있었다.

그럼 백신이 남아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닌 게…….

원래 백신이라는 게 생산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물건이었다.

하다못해 독감만 해도 WHO에서 연초에 ‘올해 이런 게 유행할 거 같은데’라고 하면 그것에 맞춰서 생산을 하는 시스템인데, 예측이 빗나가면 그때 가서 고치지도 못하지 않나.

mRNA 전사 방식 백신이라는 게 기존 백신보다 생산 방식이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물량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 지질 나노입자 방식을 채택한 백신은 미국 내에서의 물량도 없어서…… 잔슨으로 구매를 해 오고 있는 실정이야. 이게…… 아무래도 아데노 바이러스를 전사체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보니 열등할 가능성이 높으면 높았지, 우월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신현태는 당장 저번 주에 참석했던 회의의 자료를 돌아보았다.

일단 백신을 조기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간신히 관철시켰다.

다만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었는데, 바로 부작용 문제였다.

지금도 행정력의 소요가 장난이 아닌데 백신 접종에 더해 부작용 처리까지 더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부작용은…… 전세계적으로 보고되는 것을 보면 보통은 고열과 몸살입니다. 물론 심각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부작용이 코비드로 인한 위험과 상쇄될 정도는 아닙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코비드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해서 더 약독화된다면 모를까 아직은 백신의 위험은 코비드의 위험과 비할 게 아닙니다!

그런 우려가 튀어나오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신현태는 이렇게 질러 버리고야 말았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감염내과 학회에서 다들 신현태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선배, 이거…… 응? 해야죠?

-선배 아니면 누가 얘기를 합니까.

-막말로 나중에 정치할 생각도 없으시잖아요. 국회의원들이랑 척 좀 진다고 뭐.

다시 생각해 보니까 진짜 열이 확 뻗쳤다.

개새끼들이 지 일 아니라고 국회의원이랑 싸우라고…….

-그 말 책임지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국민들 우려가 아주 커요!

-네, 책임질 수 있습니다! 시발 진짜. 전문가 말을 안 들어.

-네? 뭐라고 했습니까?

-배고파서 식빵 찾았습니다, 왜요!

-거…….

물론 중간에 급발진한 건 순전히 신현태 책임이긴 한데…….

“야, 왜 조용해. 자?”

“자긴…… 잔슨이 그런 부작용이 있을 거 같다, 이 말이지? 이건 이 방식의 백신에서 예상되는 중대 합병증이라…… 무조건 확인하게끔 되어 있는 건데.”

“그래, 나도 이상해서 다시 확인했어. 나야 그거 대상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대다수는 이거 맞는 거 아니냐?”

“응. 코비드 진료 전담의나 봉사자들 아니면…… 의료진도 일단은 잔슨이야. 난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뭐 아무래도 미국 측에서 데이터 쌓인 게 다른 백신들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아, 골 때리네? 일단…… 흐음.”

신현태가 흐음, 흐음 하고 막 한숨도 쉬고 하니까 이게 조용하겠나?

당연히 시끄럽지.

거기에 더해 수혁도 이제는 슬슬 일어날 때가 된 마당이었다.

평소라면 훨씬 일찍 일어났을 텐데 이현종의 배려로 더 자게 되었다 보니 숫제 푹 잤다는 말까지 써도 될 지경이었다.

“삼촌, 뭐 해요?”

회의실 라꾸라꾸 침대에서 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난 수혁의 말에 신현태는 고개를 돌렸다.

“어…….”

이걸 말할까 말까 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수혁은 실무진이지 않나.

게다가 천재이다 보니 기대를 안 했던 부분에서도 도움을 준 적이 굉장히 많았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 상의하지 않을 이유는 절대 없다, 이 말이었다.

“흐음…… 그래요? 근데 확실히 이론적으로는 잔슨 쪽이 이런 류의 부작용이 더 흔하면 흔했지…… 없을 거 같진 않은데요? 이게 이런 식으로 공표가 되어 있었어요?”

“몰랐구나?”

“네. 아직은 코비드 자체만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슬슬 봐야지 했는데…… 흐음.”

“이상하지? 이거 어떻게 확인해 볼 방도가…….”

“뭐…… 잠깐만요.”

수혁은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세상에서 제일 수상쩍단 얼굴이 되더니만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최근 들어 자주 통화하게 된 사람, 즉 헨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잔슨 쪽 사람은 아니지만…….

여하간에 이런 일이 있을 때 뭔가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이라서 그랬다.

“네, 이수혁 교수님. 네? 아…… 그게 정말입니까?”

그는 수혁의 말을 듣고, 당연하지만 놀랐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만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뭔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반응이 좀 뜨뜻미지근하시네요?”

“아…… 그게. 사실 말입니다. 이수혁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이게 이론적으로 좀 말이 안 된단 말이죠? 제가 속한 회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인공 지질을 이용한 전사 방식은 당연히 바이러스를 이용한 전사 방식에 비해 훨씬 우월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네, 뭐…… 효능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해도 원치 않는 반응에 대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죠.”

“그렇죠. 근데 우리 측에서는 발생했던 중대 부작용이 거기선 없다고 하는 게 이상했습니다. 임상 시험 사이즈를 보면 확률상 나타났어야 했거든요.”

“네, 지금 보니까 그런데. 흠.”

“그래서 확인해 보니…… 임상 시험에 참가했던 사람 중에 입원 치료했던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잔슨 쪽에서 발표했던 중대 합병증 수랑 안 맞아요. 딱 두 케이스가 안 맞습니다.”

“아하. 이거 설마.”

은폐를 했다?

이건 연구 윤리상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수혁은 물론 이현종, 신현태 모두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것인데…….

“그렇게 되면 확률이 저희 쪽의 두 배, 많게는 세 배에서 네 배가 됩니다. 아무래도 좀 높죠?”

“그렇네요. 이걸 은폐했다는 걸까요?”

“심증만 있었습니다. 너무 큰일이라서요. 근데 말을 들어 보니, 흠.”

“그럼 이거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WHO에 보고해 주시죠. 저희 측에서 라인이 있어서…… 일을 불릴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이것 때문에 잔슨 백신을 못 쓰게 되는 일은 없겠죠?”

“아.”

헨리는 한국에서 일단 잔슨부터 도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이즈의 일이 아니었다.

범지구적인 재앙이지 않나.

각국의 지도자들이 비상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심지어 미국 같은 경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조금 늦춰질 수는 있겠지만, 그 시일도 길지 않을걸요. 아무리 중대 범죄라 해도…… 사안이 사안이니까요.”

“하긴…… 전례 없는 재난이죠.”

“네, 재난입니다. 그렇다 해도 알릴 것은 알려야죠. 이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진료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진료하는 건 결과에 있어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네네. 저는 그럼 이 부작용이 발생할 때 대처법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네, 교수님. 언제나 그렇듯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사태 전의 수혁의 명성은 사실 명성이랄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한국에서야 젊은 의사들 중심으로 거의 신앙에 가까운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계는 넓지 않는가.

게다가 대한민국 의료의 위상은 세계에서 아주 높다고 하긴 어려웠다.

수준이 낮은 건 결코 아니었다.

최고라 해도 무방한데, 문제는 선도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냥 빨리 따라가는 입장에 불과한 데 있었다.

‘이제 그것도 옛말이지.’

헨리가 아무리 한국에 수혁이라는 위대한 의사가 있다고 해도 다들 코웃음을 쳤더랬다.

간혹 잘하는 사람 있는 것도 알고 수술 건수에서 대단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알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서 그랬다.

심지어 헨리의 이명을 고쳐 주었던 일에 대해서도 순전히 우연 아닌가 하는 반응이 튀어 나왔다.

‘코비드 사태로 인해 수혁은 월드 스타가 됐어. 뭐 여전히 의문을 표하는 놈들이 있지만…… 그놈들도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코비드 사태가 터지고,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지침의 양과 실제로 진료 의뢰를 했을 때 어마어마하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이제 수혁을 의심하지 못했다.

의심은커녕 몇몇 병원들에서는 숫제 팬을 자처하는 이들도 많이 생겼다.

그 이면에는 안대훈이라는 걸출한 의사가 있다고 듣긴 했는데, 하여간, 수혁은 이제 명실공히 유명 인사였다.

“일단 가서 자료를 좀 볼까요?”

그 주인공 수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회의실을 나섰다.

자기 전에도, 자고 나서도 씻지 못한 데다가 면도도 제대로 못 해서 진짜 거지꼴이었지만…….

그럼에도 늠름해 보이는 건 아마 후광 탓일 터였다.

“어, 그래.”

“일단 비공식적으로라도 대응은 해야 할 거 같아요. 국내 지침서는 따로 배포하도록 하죠.”

“어어, 그거 만들어 주면 나는 너무 좋지. 고마워.”

“고맙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래도…… 백신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오다니…… 감개무량한데요? 곧 끝날 수 있겠죠?”

신현태는 지친 얼굴로 물어 오는 수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 끝나겠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발생했다는 변이 얘기는 내일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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