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28화 (1,028/1,303)

1028화 부작용이 있다면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잔슨은 난리가 났다.

임상시험에서 급성 횡단성 척수염이 무려 두 건이나 발생했던 것을 은폐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그랬다.

이미 국내에 충분한 백신이 있는 미국에서는 당장 잔슨에 퇴출 명령을 때려 버렸다.

사실 미국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퇴출되어야 정상일 테지만…….

누누이 말해 왔듯 코비드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었다.

-EU에서는 퇴출 없다고 하더군요. 다만 해당 사안에 대해 정확히 정리할 때까지는 허가 보류라고 합니다.

-우리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당장 백신이 없는걸요. 게다가 다른 종류의 백신이라고 해서 해당 부작용이 없는 게 아닙니다. 빈도가 좀 차이가 나긴 하는데…… 대개의 경우엔 대처가 가능합니다. 초기에 확인한다면요.

유럽도 그랬지만 대한민국을 비롯한 여러 동아시아 국가 또한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어쩌겠나.

이제 와서 백신을 만들 수도 없는데.

mRNA 전사 방식의 백신이라는 콘셉트는 알더라도 그들이 낸 특허를 피해서 당장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면 사실 벌써 만들었을 터였다.

자본 논리로 인해 의료계의 선두자가 아닌 패스트 팔로워 위치를 선택한 대한민국으로서는 잔슨을 들여오는 방법 외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고위험자 위주로 백신이 도입되고 있어.”

“다행이네요.”

“이것도 태화에서 큰일 했는데…… 지금 김다현 회장님은 미국 갔어. 모던이랑 파이자랑 협의할 거라고. 일단 파이자 쪽은 수혁이 너도 있고 해서 얘기할 창구가 있어서 좋다고 하시긴 하던데…… 하여간, 전 세계적으로도 꽤 빠르게 도입이 되고 있으니 좋은 일이지.”

“부작용이 문제긴 한데…… 그건 일단 빠르게 캐치를 해야겠죠?”

“그렇지. 흐음.”

신현태는 얼마 전 회의에 있던 일을 떠올리다가, 이내 수혁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뒤로는 이현종이 뻗어 있었다.

아무리 불세출의 기인이네 뭐네 해도 노인은 노인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일만 끝나면 바로 뻗어서 잤다.

“아무래도…… 표기된 부작용 외에도 또 다른 부작용이 있겠죠?”

“그럴 수밖에 없어. 뭐…… 은폐하지 않았다고 해도 절차를 너무 간소화했잖아.”

“급하니까요.”

“급하지. 이게 엔데믹이 되려면 대체 얼마나 소요되려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될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인구도 많고, 거리두기니 뭐니 한다고 해도 이전 세대보다는 훨씬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둘은 잠시 쌕쌕거리며 잠들어 있는 이현종을 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소리를 좀 줄이려다가 이내 다시 높이기도 했다.

넘어가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옆에서 나팔을 불어도 못 일어날 거 같아서 그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게, 이현종이 오늘 받은 신환만 무려 열이 넘었다.

일반 환자도 신환이 열이면 병동이 뒤집어지는데 이건 코비드이지 않나?

게다가 이쪽으로 왔다는 건 국가가 공인한 중환자라는 뜻이니 사람이 저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말이었다.

“그사이에 너무 많이 죽어 나가면 안 될 텐데…….”

“그나마 의료 체계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가정하에서는 치명률이 0.3%가량이니까요. 그것도 고령까지 다 쳐서고 젊은 환자에서는 더 낮고요.”

“그렇긴 한데…….”

신현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회상했다.

-그래도 젊은 사람은 괜찮아서 다행이야.

할 수 있는 말이긴 했다.

수혁도 하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늙은 사람들은 죽어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수명이 다해 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요사이엔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많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내 평생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죽는 사람 많이 본 건 처음인데.’

평생을 대학 병원에서 있어 온 이에게도 코비드는 재난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이라서 재난이라는 걸 온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바깥은 여름이지 않나.

수많은 이들의 노력 덕에 대한민국 사회는 그나마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여전히 시국은 더 많은 이들의 더 많은 노력을 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전 갈게요.”

“어, 어어.”

“삼촌도 좀 자요. 얼굴이 말이 아닌데.”

“어…… 그래. 이거 끝나면 술이나 한잔하자.”

“그거 벌써 석 달째 하는 말인 거 알죠?”

“언젠가는 끝나겠지.”

신현태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좋지 못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건 끝나겠지만…….’

한번 브레이크가 걸리긴 했다.

국가 간의 물류 이동이 줄고 사람 이동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그랬다.

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를 두 눈 똑똑히 뜨고 보고 있는데 이게 언제까지 지속되겠나.

결국,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 말은 곧 머지않은 미래에 또 이런 질환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뭐…… 어쩌면 인류가 백신을 맞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신현태는 수혁이 나가자마자 일단 고개를 모로 하고 누웠다.

그러곤 꿈을 꾸었다.

그 세상엔 왜인지 코비드가 없었다.

“어, 대훈아.”

“네, 교수님.”

그 시각 수혁은 병동이었다.

여전히 머리를 제대로 밀지 못해 수도승이 된 대훈이 그를 맞아 주었다.

어찌 보면 이게 더 어울리나 싶기도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연륜이 있어 보이다 못해…….

영험하다고 할까 아니면 신실해 보인다고 할까.

“좀 어때.”

수혁은 간신히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여상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좋습니다. 확실히 이현종 교수님이 보시면 안정감이 있어요.”

“그래…… 그렇지. 김성진 선생님은?”

“내일 오전에 출근입니다.”

“아, 그렇지. 내 다음번이지.”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염도 며칠 깎지 못해 거지꼴이었다.

그런 수혁을 주변에 있던 이태원 그리고 김인수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레지던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센터에서 보고 있는 코비드 환자가 무려 100명이 넘어가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인력이 몰릴 텐데, 수혁과 이현종의 티칭 마인드 때문에 한번 여기 갔다 오면 애들이 이상하게 쓸 만해진다는 인식까지 더해져 병동은 북적대는 느낌마저 일었다.

“자, 그럼…… 일단 여기서 좀 볼까.”

이현종 덕에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게 된 수혁은 우 안대훈 좌 김인수를 두고, 또 뒤로는 이태원을 비롯한 수많은 레지던트들을 둔 채로 환자 목록을 뒤적거렸다.

원래 있던 환자도 107명인데, 신환 10명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108명이었다.

퇴원한 환자는 고작 5명.

“4분이나 돌아가셨군…….”

낮에만 4명이었다.

밤까지 치면 두 배도 넘을 터였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밖에서, 뉴스에서, 또 논문에서 말하는 치명률은 적어도 여기에선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프던 사람들에게 감염된 코비드는 그야말로 무서운 병이었다.

“신환 중에서도 둘은 좋지 않겠는데…….”

빠른 속도로, 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환자 차트를 살핀 수혁은 우선 신환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아닌 게 아니라 이현종도 해당 환자 차트에는 별을 붙여 놓았더랬다.

죽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었다.

“일단은 뭐…… 정석으로 봐야겠는데.”

“네, 그렇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수혁뿐만 아니라 김인수나 안대훈 또한 본인들은 체감하지 못한 사이에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늘어 있었다.

적어도 코비드를 보는 데 있어서는 국내 아니라 해외 누구랑 비교해도 우위에 있을 거라 단언해도 좋을 정도였다.

때문에 수혁의 말에 지체 없이 답할 수 있었다.

답을 해야 할 거 같아서 부리나케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확실히 늘었군요.]

‘그러니까. 답답하게 굴지 않지?’

[네. 근데 안대훈 머리는 그냥 다 밀고 싶긴 합니다.]

‘내가 밀까……?’

[그럼 또 광영이네 뭐네 하면서 울고불고할 텐데요?]

‘아, 좀 참을까……?’

수혁은 그런 둘을 보면서 영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화상 룸.

그러니까 원격 협진을 위한 곳에서 전화가 울리고 있어서 그랬다.

처음엔 협약을 맺은 병원들에서만 오다가 이제는 그냥 대중이 없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냥 막 왔다.

“어디예요?”

“국립 의료원입니다.”

“아, 국립 의료원. 그럼 확실히 코비드 관련이겠네. 네, 곧 갑니다. 연결해 줘요.”

“네!”

간호사의 말에 수혁은 몸을 일으키곤 좌우의 보좌를 받으며 안으로 향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럴 때 말로라도 지랄했을 텐데 지금은 힘들기도 하고 어차피 지랄해도 소용없다는 걸 다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김인수도 어느 틈에 이렇게 되어 버렸군요.]

‘그러니까…… 오래 버틴다 싶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래도 꽤 정상인에 가깝던 김인수가 망가졌다는 점이었다.

하긴 양옆에서 김성진, 안대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수멘수멘 하는데 멀쩡히 버티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상 초유의 사태이지 않나.

원래 사람은 코너에 몰리게 되면 비이성적인 행태를 띄게 된다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무언가 신심이 동하는 데 있어 최적의 시기라 할 수 있었다.

“이수혁 교수님!”

“아…… 선생님.”

‘누구지?’

[국립 의료원 최창환입니다.]

수혁은 전혀 모르겠는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는 척을 했고, 바루다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아는 얼굴로 만들었다.

‘아, 그렇지.’

수혁이 그렇게 작당을 하고 있는 사이, 최창환은 부리나케 말을 이었다.

“그, 백신 문제 때문인데요.”

“아…… 백신이요.”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지 않았나?

우리나라야 원체 의료 인프라가 잘되어 있는 만큼 잘 버티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는 재난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급하게 도입한 백신이다 보니 당연히 반작용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게 명확지는 않은데…… 아유, 환자 보호자가 아주 난리를 치고 있어서요. 일단 그쪽으로 보냈는데…… 이거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선조치 후보고가 되어 가지고.”

“아뇨, 괜찮습니다. 저나 이현종 교수님 순번에는 그래도 됩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최창환은 눈앞의 의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원래 선조치 후보고를 하게 되면 쓴소리 몇 마디는 각오해야 정상이라서 그랬다.

허나 이수혁, 이현종 부자는 환자 보는 데 환장했다는 세간의 평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언제 어떤 환자를 보내도 좋아했다.

특히 그 환자가 어려운 환자거나 하면 나중에 이메일로라도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

설마 진짜 그렇게 여길 리는 없을 테니 틈만 나면 감사의 말을 해야 했다.

“그…… 환자가 한 2주 전에 백신을 맞았습니다.”

“1차인가요? 아, 1차겠네요.”

“네네. 건강한 사람인데 관련 직종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맞게 된 사람입니다. 나이는…… 52세고요.”

“잔슨?”

“네. 그렇습니다.”

“네, 증상은요?”

“두통…… 과 구토입니다.”

“아. 지금 오고 있다고요?”

“네.”

“언제쯤……?”

“곧 갈 겁니다.”

“잘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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