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화 부작용이 있다면 (3)
두통과 구토.
두 가지 모두 어마어마하게 흔한 증상이었다.
사실 살면서 한 번도 두통을 겪어 보지 못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또 토 한 번 안 해 본 사람은 얼마나 있겠나.
심지어 두통과 구토 둘 다 있어 본 사람도 적지 않게 있을 터였다.
‘그저 그런 증상으로…… 국립 중앙 의료원에서 우리한테 쏠 리는 없지.’
[그렇죠.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국립 중앙 의료원.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경제 순위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사실 ‘국립’이 들어가는 병원이 엄청 좋을 거 같을 텐데, 사실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일단 국군 수도 병원도 따지고 보면 다 국가 시설인데……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생각해 보면 그닥이지 않나?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나라 의료 정책이 적어도 의료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일정 부분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해 놔서 그랬다.
다시 말해 민간 의료 기관들까지 전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국가 보험 아래 있게 함으로써, 민간 의료 기관이들이라 해서 다른 민영 기업처럼 사익만을 추구할 수 없게 해 놨다 이 말이었다.
‘그렇게 큰 병원은 아니지만…… 구성원은 상당히 훌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은퇴하는 교수들 중 일부가 그쪽으로 가고 있죠.]
‘그렇지. 그 양반들 짬밥이 보통이 아닐 텐데…… 흐음.’
[그러니까요.]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사실상 국립 의료의 태반을 민간 의료 기관들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병원이 아예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해서 몇몇 의료 기관들을 운영 중이었는데 그중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앙 의료원이었다.
그렇다고 시설을 막 투자해 주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인력 충원은 신경 쓰는 편이었다 보니 수혁도 알고 있는 이름이 병원에 드문드문 있을 지경이었다.
“교수님, 그럼 응급실로 가실까요?”
잠시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려니, 안대훈이 다가와 물었다.
머리가…….
옆 머리만 자란 안대훈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뭐라고 해야 할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어, 그래. 가자.”
그냥 무슨 말이 되었건 간에 안 들어주면 무례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어른 모셔다 놓고 모욕하는 그런 느낌도 있고…….
[수혁. 엄밀히 말하면 안대훈은 직급도, 나이도 모두 아래입니다.]
‘어…… 그렇지. 나도 알지.’
[김인수야말로 원래 선배였고, 나이도 위입니다.]
‘아까 라면 사 오라고 괜히 그랬나.’
[그…… 사 오라고 할 수는 있죠. 바쁘니까. 근데…….]
‘이상하게 김인수 선생님이 안대훈보다 편하네.’
수혁은 바루다와 그에 관해 얘기하면서 동시에 지팡이를 짚고서 응급실로 향했다.
수술을 해 놨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너무 몸을 혹사해 놔서 그런가. 이전보다 훨씬 움직이기가 힘든 느낌이었다.
체력적으로 좀 달린단 느낌이랄까?
“교수님.”
“저도 모시겠습니다.”
다행한 것은 이태원과 안대훈이 양쪽에서 수혁을 부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뒤로 몇몇 레지던트들도 있었고, 사실 이런 허드렛일에 해당하는 건 그들이 해야 맞는 것이라 뒤늦게라도 나섰지만…….
‘감히 이 영광을?’
안대훈이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뒤로 슥 물러서고야 말았다.
‘진짜네…….’
‘그렇다니까? 좀 특이한 센터야.’
‘그만큼 훌륭한 교수님이라는 뜻이겠지?’
‘그치…… 야, 교수님이 우리보다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냐?’
‘하긴, 진짜로 여기서 사시는 거지, 지금?’
‘응. 그래서 연애도 못 하는 거라던데?’
‘아니…… 이수혁 교수님 정도면 나가면 줄을 서겠고만…….’
‘그게 또 입을 열면 ‘아 이래서-’라는 생각이 든다는…… 헙.’
안대훈은 수혁에 관해서라면 거의 무슨 독심술을 익힌 것처럼 행동하기에, 또다시 눈을 부라렸다.
해서 방금 전까지 속삭이고 있던 레지던트들은 잔뜩 쫄아서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다 왔네.”
“네, 교수님.”
“여기서부터는…….”
“네, 교수님.”
하여간, 일행은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러자 이태원과 안대훈은 급하게 부축하던 것을 멈추고 문부터 열었다.
이 안부터는 이제 전쟁터이지 않은가.
환자도 많았고.
위신을 생각해야만 했다.
몸이 불편할 때 부축받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뭐가 되었건 자기 몸 하나 못 가누는 사람이 자길 본다는 것이 좀…….
‘고객의 소리가 있었다고 했지.’
[네.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나 있는 법이죠.]
사실 몸으로 치료할 것도 아닌데 왜 그러나 싶긴 한데.
실제로 불편하다고 하니 뭐 어쩌겠나.
해서 수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지팡이를 짚은 채 안으로 향했다.
“야야! CPR!”
“아무래도 어지럼증이 머리 쪽 전이 같습니다…… 한번 봐주셔야겠는데요?”
“지금 CHEST PA 찍었는데 간 위쪽으로 공기가 보입니다. 퍼포 같은데…….”
“선생님! 119에서 CPR 환자 5분 내로 온다고 합니다!”
응급실에 딱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정규 저녁 시간도 지났겠다…….
본격적으로 바빠질 타이밍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당연한 것을 넘어서 익숙한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랬다.
서울 시내 큰 대학 병원 응급실이라면 보통 이렇지 않던가?
“열? 열난다고? 그럼 지금 못 들어오지! 나가! 나가라고!”
“아니, 내가 지금 아픈데……!”
“그렇다고 여기 다 전염시키려고요? 나가요! 시큐리티! 뭐 해!”
“네네!”
“하씨…… 식겁했네. X 될 뻔했잖아.”
허나 여태 보지 못했을 만한 광경도 있었다.
우선 응급실 앞쪽으로 하얀 천막이 처져 있었다.
그 뒤로는 긴 줄이 서 있었는데 그게 다 응급실 대기 줄이었다.
우선 코비드가 아니라는 걸 확인해야만 안에 들어올 수 있어서 그랬다.
물론 담당 의사가 판단할 때 이건 검사고 지랄이고 너무 급하단 생각이 들면 예외로 둘 수도 있겠으나, 그것도 일단 열이 동반되어 있으면 안 될 일이었다.
야박하다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안에 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 과정에서 놓쳐서 사망하는 사람들도…… 꽤 있겠지?’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코비드 외 사망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으니까요. 사망자한테 검사해 보고 코비드 안 나오면 그냥 무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이런 거 와서 한 번이라도 보면 그런 얘기 못 할 텐데요.]
‘오겠어? 높으신 분들이야…… 뭐 나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삼촌 말 들어 보면 답답할 때 많은 거 같던데.’
[뭐…… 일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골 아픈 일은 신현태 원장이 도맡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수혁은 진짜 몇 개월 만에 몇 년은 팍 늙어 버린 신현태를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않나.
수혁이 가서 뭘 할 수 있겠나.
높으신 분들 역정이나 안 내면 다행이었다.
이현종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사람 열 받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그랬다.
그러한 면에 있어서는 수혁뿐만 아니라 바루다도 마찬가지다 보니 브레이크도 없었다.
“교수님, 좀 일찍 온 거 같은데…… 앉아 계시죠.”
“어, 그래.”
“이쪽으로.”
안대훈은 수혁을 자리에 앉힌 후, 한층 더 어두워진 얼굴로 응급실을 살폈다.
의학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하면 이제는 슬슬 억울해질 만한 실력을 쌓은 그였지만, 아무튼, 수혁에 비하면 문외한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나?
그런 그가 봐도 심각한 환자가 많았다.
태화 의료원이야 늘 그렇다지만 오늘은 유독 더한 느낌이었다.
아니, 아마 요즘 들어 더더욱 그렇긴 할 터였다.
태화엔 수혁이 있으니까.
‘우리 병원처럼…… 그나마 이전 모습 비슷하게 굴러가는 곳도 잘 없지.’
이현종과 수혁 그리고 신현태가 이끄는 감염 내과 사단의 위력은 그야말로 어벤저스 부럽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대형 병원들조차 마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대 이전 수준만큼의 퍼포먼스는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들 덕에 태화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던가.
그 덕에 응급실이 죽을 맛이긴 했다.
환자가 줄기는커녕 점점 늘고 있거든.
‘교수님이…… 말은 안 해도 진짜 갈아 넣고 계시는구나.’
물론 그 때문에 안대훈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은 아니었다.
‘이 와중에 응급실을 돌아볼 생각조차 못 하시고 그냥 자리에 앉다니…….’
안대훈은 고개를 이리저리 저어 대면서 이태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태원도 심연에 갇힌 듯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을…… 여기서 봤지. 아니, 면접이라고 해야 하나…….’
응급실 아니라 온 병원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보지 않았나.
이 사람은 환자 보는 데 진심인 정도가 아니라 그냥 미친 사람이었다.
면접이라면서 하루에 한 명씩만 부르길래 이 인간들이 미쳤나 싶었는데 진짜로 미쳤다는 걸 확인했더랬다.
어찌 된 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기운이 나는데, 진짜…….
‘그러던 사람이 흠.’
둘의 시선이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수혁에게로 향했다.
이게 그나마 이현종이 오고 나서 좀 나아진 것이라는 게 끔찍했다.
그전에는 진짜 이러다 송장 하나 치우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리를 했으니까.
아니, 송장이 하나면 다행이었다.
여럿이 될 공산도 컸다.
왜애애앵
물론 이 둘이라 해서 멀쩡한 건 아니다 보니, 이전 같았으면 같이 좀 돌자고도 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옆에 앉아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말이 시간 죽이기지 별로 죽이지도 못했다.
한 5분 남짓 앉아 있었더니 어느새 앰뷸런스가 들어오고 있어서 그랬다.
한 대만 들어왔으면 아까 말했던 CPR 환자인가 했을 테지만, 두 대가 연달아 오고 있었다.
“울리다 꺼지는 거 보면 이제 다 왔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 들어올 때까지 사이렌을 울렸더랬다.
이 근방은 진짜 차가 많은 곳이거든.
하지만 주변 민원 때문에 반경 500M 내에서는 사이렌을 끄도록 지침이 바뀌었다.
이것 때문에 다 와서 막판에 막혀서 환자 죽겠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아직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갈까?”
“네.”
감염 환자가 아니라 백신 부작용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보니 방호복까지는 입지 않았다.
물론 장갑이나 안면 보호대 등의 장구는 장착했지만.
하여간, 일행은 그렇게 다가가 환자를 마주했다.
“계속, 계속 눌러!”
“하나, 둘, 셋, 넷…….”
옆으로는 연이어 왔던 CPR 환자가 그대로 처치실로 직행했다.
살아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다.
수혁은 수 초간 그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분!”
52세.
건강했다는 환자는, 심각하게 아파 보였다.
“우욱…….”
단지 구토를 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경부 경직은 없었습니다!”
119대원의 말을 들으며, 수혁은 환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이상하군요. 무엇보다 양측 홍채 크기가 다릅니다.]
‘망할.’
단순 두통이 아니다.
뇌염이나 뇌수막염도 아니다.
“CT실 연락해! 환자분! 여기 어딘 줄 알겠어요?”
“으아아아…….”
출혈 또는 경색.
머리 쪽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마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