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30화 (1,030/1,303)

1030화 부작용이 있다면 (4)

드르륵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혁의 외침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지금처럼 다급하게 외치는 사람이 아닌 만큼, 응급실에 있는 가용한 인력은 다 달라붙었다.

“환자분! 여기가 어딘 거 같아요!”

“으…… 모, 몰라……!”

“저는 누구입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대통령 이름은?”

“그…… 어…… 뭐…… 뭐더라.”

가면서도 수혁은 끈질기게 들러붙어서 무언가를 물었다.

주로 장소, 사람 그리고 시기에 관한 것을 물었는데 간단하지만 환자의 의식 수준을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환자는 그중 단 하나도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력은?”

수혁이 묻는 동안 안대훈과 이태원 그리고 레지던트들이 함께 같이 딸려 온 자료를 살피고 있었다.

행정력의 무리한 소요로 인해 점점 기록의 질이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 건 아니었다.

역학 조사가 필요한 동선 부분만 비어 있을 뿐, 과거력이나 증상의 추이 등은 빼곡히 적혀 있다 이 말이었다.

“없습니다!”

“아예?”

“네. 꾸준히 먹는 약도…… 비타민 외에는.”

“비타민? 종합 비타민?”

“네.”

“별 의미 없겠는데.”

그 덕에 수혁은 환자의 병력 사항에 특이할 만한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다.

의식 상태가 혼미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부위에 얼마만큼의 손상이 발생한 것인지 유추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넌. 너가 봐도 모르겠어?’

[저는 수혁의 시력과 시야를 토대로 데이터와 교차 검증해서 결과를 출력하는 걸 잘하는 거지…… 보이지 않는 걸 보는 재주는 없습니다.]

‘모르겠다는 말을 굉장히 길게 풀어서 하는 재주가 있네?’

[그냥 모른다고 하려니까 자존심이 상해서요.]

‘지랄.’

바루다도 그 이상의 정보는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아까 결정한 대로 CT부터 빨리 찍는 게 급하단 얘기가 되었다.

아무리 신체 검진이 중요하다 어쩐다 해도 결국, 영상이라는 장비가 결정적이지 않겠나.

“기다리셔야…….”

하여간, CT실 앞에 도착하자 너무 급하게 달려오는 바람에 연락이 안 된 탓에 방사선사 하나가 나와 난색을 표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도 의사들이 많다 보니 대놓고 뭐라 하진 않았지만 눈으로 욕했다.

다들 아프고 지친 와중이니 그럴 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머리! 머리! 출혈이 의심됩니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달려온 탓에 숨이 찬 채로, 수혁은 머리를 외쳤다.

그러자 방사선사의 얼굴이 대번에 변했다.

그러곤 미리 와서 앉아 있던 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머리라서…….”

“나도 아파!”

“하지만…… 머리는…… 이게 원칙입니다.”

“아, 뭔 시발. 뭐 VIP야?”

“그게 아니라 저건 진짜 지체하면 안 됩니다.”

당연하게도 환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의학적으로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지 않겠나.

아니, 알아도 짜증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아프니까.

하지만…….

“죄송합니다.”

수혁의 눈치를 받은 안대훈이 애들을 데려가서 환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 음.”

언제나 그러하듯, 안대훈은 눈앞에서 대놓고 뭐라 하기 참 어려운 몰골을 지닌 사람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하도 고생을 하다 보니 눈알에 악이 끼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아, 알겠어요. 뭔 얼굴이…….”

환자도 꽤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물러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수 초에 불과할 지경이었다.

“그럼 들어갑니다!”

그가 비켜서자마자 침대가 냅다 들어갔다.

그제야 환자들은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제일 아파 보였기 때문에 수군거림 또한 빠르게 잦아들었다.

“세팅은…….”

“일단 넌컨으로 한 방 찍고요. 그다음엔…… 저기 뭐야. 조영술도 가능하겠습니까?”

“아…… 시간이…….”

“어쩔 수 없어요. 이게…… 백신 맞은 사람인데.”

“백신이요?”

“네. 지금 병원에서도 놔 주고 있을 거 같은데. 코비드 백신이요.”

“아아. 저도 내일…… 아니, 그럼?”

“네, 백신 부작용이 의심됩니다.”

“네에?”

방사선사는 이게 진짜인가 하는 얼굴이 되어 환자를 돌아보았다.

백신 맞았다고 사람이 저렇게까지 된다고?

말이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을 꺼낸 게 수혁이지 않나.

이제 병원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 알겠습니다. 철저히 보고 싶으신 거죠?”

“네.”

“알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을 어찌 허투루 볼 수 있겠나.

납작 엎드려서 따라야지.

수혁의 말은 적어도 의료진에 한해서는 황제의 말처럼 위엄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혹시 모르니까 신경외과 콜은 해 놓자. 수술 필요할 수도 있어.”

“네!”

“휴…… 보자고.”

수혁의 명에 따라 이태원이 전화를 걸고 그사이 세팅이 마쳐진 검사실 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환자가 의식이 온전치 않은 상황인 데다가 CT는 기기가 작아서 굴러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니 안에 인턴 하나가 납복과 함께 남았다.

드드드드

곧 사진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본디 뇌는 검다기보다는 짙은 회색과 회색으로 보여야 정상인데 지나치게 밝은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출혈을 의미했다.

작지도 않았다.

피가 터졌다는 얘기.

‘음…… 압력 정도는 낮춰 줘야 할 거 같은데.’

물론 피가 났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어떤 출혈인 경우에는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흡수되는 경우도 있었다.

주로 고혈압으로 인한 출혈이 그랬는데, 이건 그게 아니었다.

[그렇죠. 아니면 피떡을 일부 직접 제거해야 할 수도 있고요. 이쯤 되면 조영술은…….]

‘아냐. 혈전증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었잖아. 어쩌면 혈전증 때문에 이 출혈이 발생했을 수도 있어.’

[순간적으로 압력이 걸렸다?]

‘그렇지.’

[가능성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혈전증의 규모가 이렇게까지 크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횡단성 척수염에 대한 보고는 있었고?’

[그것도 그렇군요.]

얼마 전부터, 그러니까 사태가 터지고 나서부터 꾸준히 드는 느낌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미지의 영역에 발을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긴긴 터널을 불 하나 없이 걷고 있는 느낌과도 비슷했는데…….

코비드뿐만 아니라 백신에 대해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하아.’

한숨이 절로 흘러나오는 순간이다, 이 말이었다.

“자, 그럼 조영술 합니다.”

“네. 최대한 빨리 해 주세요.”

“네네.”

“교수님, 신경외과는 바로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래, 잘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공통된 적에 대해 병원 사람들만큼은 하나가 되어 맞서고 있었다.

특히 코비드 질환을 다루고 있는 센터와 팀에 대해서는 나름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김다현의 명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과 사람들의 부채 의식이 한몫하고 있었다.

코비드라는 질환을 본다는 게 단순히 힘들기만 한 게 아니지 않나.

물론 물리적인 힘듦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감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으니, 다른 과에서도 부르면 바로바로 왔다.

드드드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기기가 또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환자는 다행인지 뭔지 얌전했다.

아까도 자극을 주지만 않으면 조용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인턴은 일단 긴장한 채로 환자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이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이니까.

“넘어옵니다.”

“혈전이 있군…….”

“좌측 정맥동으로 혈전이…… 너무 큰데요?”

“거기만 있는 게 아니라 밑으로…… 내경정맥까지 쭉이야. 이거…… 이거……?”

수혁은 과연 여기만일까 싶었다.

[그럴 거 같지 않군요. 다발성 혈전증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런 망할.’

복부나 흉부 또는 기타 다른 곳의 정맥도 막힐 수 있다 이 말이었다.

파종성 혈정증이 발생했다 이 말인데…….

‘이거 아데노 바이러스 매개로 한 백신 맞지?’

[네. 아무래도 이런 류의 위험도가 좀 더 높을 거라고 예상이 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전격적으로 발생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신경외과 측 의견을 들어 보고 가능하면 배나 다른 곳에 대해서도 워크업을 해 봐야겠는데…….’

[네, 그게 좋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거…… 수술 잘 해 놓고 환자는 죽을 수도 있어요.]

만약 흉부에도 혈전증이 생겼다면?

지금 환자 의식 상태를 보면 흉통이고 나발이고 표현할 길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기껏 머리 수술 잘 해 놓고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란 말이었다.

“교수님. 펠로우 왔습니다.”

“아, 그래. 사진 좀 띄워 보자.”

“네.”

하여간, 신경외과 의사가 왔으니 사진은 보여야 하지 않겠나.

해서 안대훈이 일단 사진을 띄우고 나머지는 길을 비켜 주었다.

신경외과 펠로우는 센터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와서야 간신히 수혁과 사진을 대면할 수 있었다.

히스토리는 대강 들었기 때문에, 심각성은 인지한 지 오래였다.

“그…… 음. 사이즈가 꽤 큽니다. 감압술 정도는 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급하겠죠?”

“네? 그……. 이유가 뭔지 여쭤도 될까요?”

“지금 이 환자…….”

“아, 혈전이.”

수혁은 손을 움직여 다른 영상을 보여 주었다.

혈전이, 거대한 혈전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이쪽 해부라면 신경외과 펠로우도 전문이다 보니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네, 혈전이 크죠. 이게 다른 부위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네? 어디에요?”

“배나 흉부. 아니면 팔다리? 만약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서 혈장 교환술 등의 처치가 들어가야 합니다.”

“아…….”

“물론 머리가 급하다면 그에 대한 워크업이나 처치를 좀 미뤄야겠죠. 하지만 그만큼 머리 말고 다른 쪽 원인으로 환자가 잘못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흉부 아니라 배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소장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혈관이 막혔다면 어찌 되겠나.

막대한 양의 혈류가 막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로 인해 소장이라는 거대한 장기가 손상될 수 있었다.

정도를 지나치게 되면 나중에 가서 무슨 짓을 해도 회복할 수 없었다.

“음…… 크기가 크긴 한데…… 관찰을 못 해 볼 정도는 아닙니다. 흡수될 여지가 있습니다. 일단 동맥 출혈이 아닌 것으로 보이거든요.”

“아…… 그렇죠? 여기 보시면. 정맥동 혈전과 연관된 출혈로 보여요.”

“네네. 울혈이 되면서 애초에 약했던 혈관이 찢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출혈만 일어나지 않으면 흡수가 될 겁니다. 물론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 지경이 되어서 온 환자를 살리겠다는 발상을 한다는 거부터가 보통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너랑 내가 나서면 이 정도는 봐야지.’

[그렇죠.]

이쪽은 드림팀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