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32화 (1,032/1,303)

1032화 극복 (1)

코비드 진료에 나선 의료진들이 감내해야 하는 건, 꽤 다양했다.

우선 감염병에 대한 위험이 있었다.

“총 감염 인원 8천…….”

고작해야 8천 명이란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이건 모든 의료진이 아니라 정말 코로나 전담 의료 시설 또는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진들만을 대상으로 해서 산출해 낸 결과물이었다.

당연하게도 일반 인구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안에서 또 나누어 보자면, 아무래도 간호사 직군이 제일 많이 감염되었다.

수가 많기도 많지만, 교대 근무 시에 지속적으로 음압 병동 내에 들어가 있어야 하기에 그러했다.

제아무리 보호의를 입고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일에 어디 절대란 법이 있다던가.

안에서 급히 일하다 보면 찢기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중에서 위중증 환자가 70명. 흐음…….”

신현태는 회의실에서 이마를 짚었다.

사실 감염자 통계만 두고 보면, 썩 괜찮은 편이라 그랬다.

기존 의료 인프라를 유지하는 선에서 본격적으로 코비드 진료에 나선 이들이 몇만이 채 되지 못한다는 걸 감안하면 뭐…….

많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었나?

“적군요?”

그런 신현태의 말에 국회의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그를 노려보다가, 이내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저치도……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냐. 그냥 모르는 거지. 아니, 모르는 척하는 건가…….’

정치가 어렵다는 말은 많이 들었더랬다.

원내 정치도 나름 프락치도 써야 하고 또 쇼잉도 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진짜 정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들었더랬다.

그래 봐야 별 감흥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관심이 없었거든.

‘정치 논리다, 이거지…….’

신현태는 세계 현황을 돌아보았다.

태화 의료원의 통합 진료 센터를 위시해서 메이요, 메사튜세츠 병원 등의 감히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한 병원들, 그리고 각국의 질병관리본부와 WHO에 더해 행정부들이 각고의 노력을 더한 덕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비드도 슬슬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원래 예상했던 시일이 적어도 5년에서 10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고작해야 1년이 채 다 가기 전에 이 정도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 해도 좋았다.

“적다뇨. 이 중에 사망한 인원이 15명입니다. 의사가 10명, 간호사가 4명 그리고…… 보조 인원이 1명이군요.”

신현태는 그 기적에 대한 공을 오로지 의료진에게 돌리지 않길 원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뭐…… 사실 우리들만 노력한 건 아니긴 하지.’

일각에서는 의료진들을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니냐면서 다소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진짜 최전선에서 싸워 온 신현태가 볼 때, 이 대환난을 극복하기 위해 싸운 건 의료진뿐만이 아니었다.

연구진, 개발진을 더해도 모자랐다.

기실 이 환난을 겪어 온 모든 이들이 함께했다고 봐야 할 터였다.

물론 희생의 경중은 있겠지만, 지금까지 일상은 분명 모두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봐야 했다.

그래도…….

“일반 인구에 비해서 딱히 높은 비율은 아닌데요.”

“나이를 감안한다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의료진 중에서 의사들이 많이 사망한 건, 나이 때문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물론 의료진 중에서는 의사들이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편이긴 하죠.”

군의관, 공보의들도 동원이 되기는 했더랬다.

또 일부 휴가를 반납하고 짧게나마 진료에 지원했던 이들도 있기는 했더랬다.

다시 말해 젊은 의사들도 제법 많이 동참했다, 이 말인데…….

아무래도 절대다수는 은퇴했던 이들이었다.

최소 60대 이상의 의사들이 많이들 뛰어들었더랬다.

“하지만 존경하는 의원님. 60대 사망률보다 의료진의 사망률이 더 높습니다. 그 전에 감염률도 높고요. 봉사하러 오지 않았다면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뭐…… 그런 걸 폄훼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자자, 그만들 하시고. 의료진에 대한 감사 광고는 신문 통해서도 하고,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차차 더 논의하기로 하고…….”

신현태는 의장의 말에 뭐라 말을 보태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기실 방금 전까지 공방이랄 것도 없이, 투덜대던 이의 화두는 작은 것이지 않나.

그에 비해 이제부터 나올 얘기는 너무 거대해서 신현태 따위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경제가 문제입니다, 경제.”

경제.

다시 말해 돈.

비단 현대 사회만 두고 볼 것이 아니라, 인류가 문명을 이룩하고 나서부터 저 돈이 중요치 않았던 적이 있던가?

물론 어째 점점 더 돈만 더 중요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따가…… 수혁이랑 맥주나 마시러 가야지.’

하여간, 돈 얘기가 나오는 이상 신현태가 주도적으로 나설 일은 없을 터였다.

사실 벌써 몇 주 전부터 이랬다.

사태가 터지고 얼마 안 되었을 땐 와서 그렇게 물어보고 어르고 달래던 이들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태도를 바꾸고, 코로나 전담 의료진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은 것 같네 어쩌네 하고 있었다.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긴 했다.

애초에 이 전담 의료라는 게 일시적인 것이었으니까.

사태가 끝나 간다면, 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도 떠나보내야 하는 게 맞으니까.

‘그래도 좀 더 명예롭게 끝내 주는 일도 있기는 할 텐데…….’

이런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야, 우리가 거지야? 뭘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그렇게 따지면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은 억울하지 않겠냐? 아직 그냥 우리나라 분위기가 그런 거지. 수혁이 말이 어차피 이런 일이 앞으로 종종 있을 거라며? 반복되다 보면 인식이 더 좋아지겠지. 안 그래?

고맙단 말은커녕 코로나 전담 의사라는 말에 숙박은 물론이거니와 식당 출입도 금지당해 본 경험 때문에 흑화하다 못해 쿨병 말기에 걸려 버린 이현종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더 상처받기가 싫었다.

징징거린단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그냥 그랬다.

-그보다, 뉴욕 센터 이번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하던데요? 협진이 꽤 오고 있어요!

거기에 더해 수혁 또한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얘가 고아였다는 사실을 정말이지 아주 곰곰이 생각해 봐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해맑은 녀석 아닌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고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녀석인데…….

‘이번에 수혁이가 진료 지침에…… 백신 부작용 리스트에 더해서 대응 지침까지 만들어 줬지.’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도 확실히 얻었더랬다.

차차 CNN 인터뷰도 잡힐 예정이라니 말 다 한 셈 아니겠나?

물론 ‘대한민국 의료계’가 갖고 있는 선천적인 한계 때문에 의학계 내에서는 정도 이상의 명성을 아직은 갖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마 이번에 해외 학회에라도 나가게 되면 아는 척하는 얼굴들이 꽤 많을 터였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딱히 뭐가 없지……?’

그러나 국내에서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뉴스뿐만이 아니라, 예능에서도 코비드 전담 의료진에 대해서는 잘 다루려 하지 않았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 재난은…….

이 재난을 굳이 다시 곱씹게 할 이유는 없으니까.

-네? 섭섭이요? 전 이 일 재밌었는데요. 그리고 의미도 있었죠. 덕분에 사회 전체가 백신을 맞았잖아요. 앞으로 이런 팬데믹 사태가 더 늘어날 텐데…….

허나 수혁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녀석은 벌써 다음 스텝을 보고 있었다.

실제로 아까 나오면서 봤더니 회진 돌고 강의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래, 뭐…….’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신현태는, 불려 온 다른 의료진들과는 달리 느긋한 얼굴로 시계만 돌아볼 수 있었다.

어쩌다 질문이 날아들 때도 있긴 했는데, 태화 의료원 원장쯤 되면 아무리 멍 때리고 있었다 해도 의료에 관련한 질문이라면 즉시 답할 수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신현태가 무료히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수혁은 학생들과 있었다.

늘 그러하듯 병원에 실습 나온 학생들과 있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통합 진료 센터 부센터장 이수혁 교수님이십니다.”

강의 보조는, 다른 강의도 아니고 그냥 학생 강의 보조라면 레지던트나 데리고 와도 되는 일이었다.

일단 강의도 듣게 할 겸, 겸사겸사 그렇게 하는 편인데…….

지금 마이크를 잡은 건 안대훈이었다.

한동안 수도승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머리 스타일이 되어 있던 녀석은 마침내 싹 밀어 버리고 동시에 반짝반짝 광까지 낸 참이었다.

덕분에 뒤에 서 있던 수혁의 얼굴까지 광이 나는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굳이 앞자리부터 채울 필요는 없어요. 비워져 있는 자리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알아서 들어갈 겁니다.”

오늘의 강의 대상은 본과 2학년이었다.

본과 특성상 1년이 4학기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4학기도 다 끝나 갈 무렵이다 보니 다들 얼굴이 무슨 역전의 용사 같아 보였다.

당장 3주 남짓한 겨울 방학이 지나면, 실습생으로 전직해서 병원에 나가야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그런 연고로 인해 자의식이 하늘을 찌르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이번만큼은 마른침을 연신 삼키고 있었다.

왜냐.

“어, 오랜만이네.”

“아, 선생님…….”

“야, 너도 오랜만이다.”

“서, 선배.”

안대훈이 말했던 것처럼 구석구석을 선배들이 채우고 있어서 그랬다.

그 바쁘다는 내과 레지던트들인 주제에 열 명도 넘는 인원들이 와 있었다.

학생들이야 모르고 있겠지만, 태반은 정작 통합 진료 센터가 아니라 다른 분과를 돌고 있는 놈들이었다.

우하윤을 비롯해 수많은 레지던트들이 배움에 대한 열망, 그거 하나로 들어와 있다는 얘기였다.

“잘 들어라. 진짜 금과옥조와도 같은 말씀이니까.”

“그래, 엄한 짓 하면 다 뒤진다.”

“다음 OB 회식 때 병나발 불고 싶으면 졸아도 되고.”

“히익.”

원래 초딩은 중딩이 무섭고 중딩은 고딩이 무서운 법 아닌가?

의대생도 똑같아서 어떤 부분에서는 교수보다 이런 선배들이 더 무서울 때가 있었다.

하늘 같은 것들이 와서 군기를 잡고 있다 보니 다들 찍소리도 못 하고 앉아만 있었다.

“교수님, 얼추 준비가 된 거 같습니다.”

“어…… 그래. 근데 너무 무섭게 하는 거 아니니?”

“천지분간 못 하는 것들이 많아서, 불가피한 결정입니다. 교수님.”

“그래…….”

그렇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수혁이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또각

예의 그 지팡이 소리와 함께, 수혁은 마이크를 쥐고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수혁입니다. 원래…… 강의 제목이 케이스로 배우는 내과학으로 되어 있을 텐데, 한 20분만 딴소리를 하겠습니다.”

딴소리란 말에 학생들 중 일부가 한숨을 쉬려다 억지로 틀어막았다.

좌우에서 노려보는 선배들 때문이었다.

원래도 신성시되던 수혁이었지만,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더더욱 그 위치가 올라갔기에 그랬다.

“이제 코비드는 끝나 가고 있죠? 희망적인 얘기만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점 미리 사과합니다. 앞으로 이 비슷한 사태가 더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 지금까지 제가 얘기했던 것과는 좀 다른 측면을 통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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