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3화 극복 (2)
또 다른 측면?
팬데믹 질환이 늘어날 거란 전망은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절망적인 얘기다 보니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있을 뿐, 관련된 사람들은 정도가 차이가 있을지언정 거의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얼마 전 수혁이 언급했던 부분도 있지 않나.
고기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아무래도 가축과의 접촉이 늘어나고 또 그것의 수출입이 일어나면서 인수 공통병이 는다는 것.
‘그거 말고 또……?’
‘뭐지……?’
‘뭐야?’
학생들뿐만 아니라, 레지던트들도 웅성거렸다.
사실 이번 일로 감염병에 관심이 생긴 이들이 많아서 그랬다.
그 당시에는 진짜 최악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다 경험이지 않았나?
게다가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더 찾아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보니, 적어도 의료진이라면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공부도 하고 있었다.
“기후 변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죠?”
그 와중에 수혁은 피피티를 띄웠다.
기후 변화라는 달랑 네 글자가 쓰여 있는 피피티였다.
얼핏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기후 변화가 중요한 일인 건 다들 알았다.
하지만 의료랑 뭔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돈룩업이라는 영화에서 말하듯,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는 이미 우리 지척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고 있거나 또는 체감하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뿐이죠.”
수혁은 그런 의문에 가득 찬 얼굴을 즐기듯 바라보았다.
[악취미입니다, 수혁.]
‘너도 실은 즐기고 있잖아?’
[저도 그 악취미를 공유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흐흐.’
나는 아는데 너네는 모르는 것을 말하는 것.
이게 얼마나 커다란 즐거움인가.
한 번이라도 맛보게 되면 이걸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또 연구하게 되어 있었다.
원래도 공부에 상당히 미쳐 있는 수혁에게 이러한 자극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수혁은 말 그대로 실실 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비드. 원체 흔한 바이러스를 원류로 하는 신종 바이러스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 코로나 바이러스죠. 이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아, 그래. 안대훈 선생?”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그렇지. 그렇습니다.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아마 앞으로 찾아올 신종 바이러스들 또한 아주 높은 확률로 인수공통감염병일 겁니다. 이미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간 발생한 사람 전염병의 75%가 인수공통감염병일 정도예요.”
75%?
이전보단 늘었을 거라 생각을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한 수치이지 않나?
더더욱 이전으로 돌아가면 절반도 채 되지 못할 터였다.
아니, 절반이 뭔가 반의반도 안 될 터였다.
실제로 그러했던 역사가 있었다.
“지금까지 이 인수공통감염병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온 것은 대개 가축입니다. 제가 올해 초에 썼던 논문에서도 이를 범인으로 지적했죠. 실제로 고기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각국의 목축업이 늘었고 또 이로 인한 가축과의 접촉이 크게 늘면서…… 인수 공통 감염병의 위험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게 되면, 사실 홍역, 결핵, 천연두, 백일해, 인플루엔자 등이 다 가축에서 유래한 질환이죠.”
“아…… 그랬구나.”
“아…….”
“제국주의적 단어이긴 하지만, 편의상 쓰자면 구대륙과 신대륙의 전염병이 크게 달랐던 것 또한 각 대륙에서 가축화된 동물군의 차이 때문입니다. 구대륙에서 전파된 천연두 등이 신대륙 사람들을 학살했고 또 신대륙에서 전파된 매독이 구대륙을 휩쓸었죠. 아, 매독도 라마라는 가축에서 유래한 질환입니다.”
신기한 이야기였지만,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말했던 가축 기원설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이전부터 그랬는데 요새 좀 심해지고 있다, 이 정도 아닌가?
하지만 수혁의 강의는 늘 그러하듯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선에서 마구잡이로 드리프트를 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키우는 가축에 큰 변화가 있을까요? 그 수가 늘어가고 또 범지구적인 거래가 더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여기서 더 새로운 질환이 나올 만한 구석이 있을까요? 실제로 인수공통감염병에 걸리는 사람의 수는 늘어날 수 있을 테지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질환이 나올 가능성은 적습니다.”
지금까지 가축을 중심으로 얘기하다가 갑자기 아니라 했다.
그러더니 산불 사진과 홍수 사진을 띄웠다.
둘 다 아주 극단적인 사진이었는데, 예전 같았으면 아니겠지만 이제 와서 저런 사진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터였다.
뉴스에 꼭 한 번은 뜨니까.
그만큼 흔한 일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러한 산불과 홍수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 자세히 말하면 지겨울 테니까…… 간단히 말씀드리죠. 기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북극의 빙하가 녹는 건 알고 있죠?”
“네, 교수님.”
“그러면서 북극의 열 반사가 저하됩니다. 그럼 기온이 더 올라가서 북극과 중위도 지역과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어요. 이로 인해 대류권 상부에서 서쪽으로 빠르게 흘러가야 하는 제트 기류가 약해지고 결국에는 대기 순환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저기압이 오래 한곳에 머무르면서 폭우가 나고 또 반대편에서는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면서 산불이 일어나는 겁니다. 산불이 얼마나 심각하냐면 캘리포니아에서만 불로 인해 사망한 나무, 즉 고사목이 1억 2900만 그루에 달합니다.”
“아…….”
우리 교수님은 기후도 잘 아시는구나…….
레지던트 몇몇이 몽롱한 얼굴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중엔 우하윤도 끼어 있어서 수혁의 기분이 요란해졌다.
[어어, 거기까지. 그냥 교수로 보는 거라니까.]
‘상상도 못 하냐, 나는?’
[응. 못 해. 왜 내 연산 능력을 망상에 쓰냐고…… 벌써 28대손까지 나왔잖아요.]
‘어, 그래. 이건 좀 나도 그렇긴 하네.’
가족이 아니라 가문을 꿈꾸던 수혁은, 그랬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제정신으로 돌아와 말을 이었다.
“이 극심한 홍수와 산불은 우리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우리는 사실 불을 끌 수도 있고, 물을 치우거나 수재민을 구조할 수 있는 힘이 있죠. 그에 비해 야생 동물은 어떨까요?”
“아…….”
“야생 동물이 주로 서식하던 곳에 불이 났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많긴 하겠지만, 살아남았다 해도 문제죠? 서식지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니까요.”
“으음.”
학생들은 아직 무슨 말인지 잘 감을 못 잡은 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아니, 레지던트나 그 이상의 직급을 가진 이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기껏해야 원래 센터에 남은 이들이거나 또는 우하윤처럼 수제자급이 될 가능성이 큰 이들이나 얼핏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박쥐를 예로 들겠습니다. 산불이 나서 서식지가 파괴되었어요. 날개 달린 생물이니만큼 타 죽는 대신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겁니다. 기존의 서식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요. 문제는 이미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땅덩이가 너무 넓다는 겁니다. 물론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은 곳도 있지만 그곳의 기후는 다른 동물에게도 험난하기에 언급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죠.”
수혁은 말을 하면서 동시에 피피티를 넘겼다.
그러자 원래 밀림에 살고 있던 박쥐들이 파괴된 밀림을 피해 민가 근처에 자리 잡는 그림이 떴다.
“자, 이렇게 됩니다. 박쥐라는 미지의 야생 동물이 민가로 오게 된다는 겁니다. 이건 가축이 아니죠. 우리가 전에 접촉해 왔던 것들과 달리…… 아예 새롭게 접촉하게 되는 동물들이란 말입니다.”
“아…….”
“이게 그냥 상상으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니파 바이러스란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으음.”
수혁의 말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안대훈을 제외하고서는 그랬다.
“대훈아, 눈치 없이 손 들지 말고. 학생 강의다, 지금. 넌 펠로우고.”
“아, 네.”
녀석은 머리가 죄 빠져나갈 정도로 공부하는 미친놈이지 않나.
아마 레지던트 때도 해낼 수 있었을 텐데 이젠 펠로우였다.
머리도 더 빠졌지만 지식도 더 쌓였다는 얘기였다.
하여간, 수혁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안대훈을 무시하고서 말을 이었다.
“말레이시아 니파라는 지역에서 갑자기 뇌염이 발생했습니다. 1년 사이에 무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졌을 정도로 치사율이 높은 뇌염이었죠. 역학 조사를 해 보니 주로 양돈업, 즉 돼지 치는 사람들에게서 발생을 했었기 때문에 신종 플루처럼 돼지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라 여겨졌지만…… 알고 보니 서식지를 잃고 민가 근처로 날아든 박쥐가 범인이었습니다. 후에 이를 니파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는데 치사율은 무려 40%에서 75%로 추정됩니다.”
“아…… 75%……!”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75%라니.
코비드가 기껏해야 0.3%에서 3% 내외였는데도 전 세계적으로 600만이 죽지 않았나.
75%였다면 인류는 멸절 위기에 달해 있었을 터였다.
“그래서 이게 멀리 번지지 못한 겁니다. 숙주가 어디 가기 전에 사망하니까요. 어찌 보면 바이러스가 발생한 것은 불운이었지만 번지지 못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문제는…… 과연 언제까지 우리가 운이 좋을까에 있겠죠.”
운이 좋았다.
자연 발생한 바이러스가 거의 사멸했으니까.
물론 더 알아보면 사멸한 것은 아니고, 여전히 그 지역 일대에서 간간이 창궐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수혁이 방금 말했던, 너무 높은 치사율에 더해 뇌염이라는 질환이 보일 수 있는 증상의 한계 때문에 아주 널리 번지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긴 할 텐데…….
“기후 위기는 점점 심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어 이동하는 야생 동물의 수는 늘어나고 있고 또 늘어나겠죠. 그 말은 곧…… 우리 인류가 전에 보지 못했던 질환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 또한 점점 더 올라갈 거란 얘기가 됩니다.”
“아…….”
팬데믹을 겪어 보지 못한 상태였다면 다들 그냥 그런 갑다 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 봐야 말레이시아 니파라는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하지만 이젠 달랐다.
수혁의 말대로 코비드는 사회 전체에 백신이 되어 모두의 경각심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서식지를 잃어 가고 있는 동식물이 있는 데 반해 늘어 가는 동식물도 있거든요.”
늘어?
그럼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수혁이 사진을 띄웠다.
모기와 진드기가 떠 있었다.
“이것들의 서식지는 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것들이 유발하는 질환들도 늘어 가고 있죠. 이는 비단 그 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도 의미합니다. 실제로 국내를 보면…… 뎅기열과 말라리아 유병률이 늘어 가고 있죠. 열대 기후에서나 호발한다고 알려져 있던 질환들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한다는 건데…….”
수혁은 말을 하다 말고 바루다를 불렀다.
‘사실 다음이 진짠데…….’
[그렇죠. 앞으로 의사 수요가 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 열심히 하자.’
[말해 뭐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