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4화 극복 (3)
바루다의 말마따나, 말해 뭐 하겠나.
수혁과 듀오를 이룬 바루다는 아마도 둘 중 하나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에 최선을 다할 터였다.
오히려 수혁은 ‘끝’을 염두에 두고 있지 못했지만 보다 냉정할 수 있는 데다가, 밤마다 홀로 남아 사유의 시간을 강제 받아 온 바루다로서는 간혹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혁, 다음 의제로.]
‘어, 그래.’
바루다는 방금 전보다 깊어진 눈으로 수혁을 불렀다.
눈치 말아 먹은 수혁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넘겼다.
탁 펼쳐진 고산 지대를 찍은 사진이었는데, 설명 없이 보면 당최 어딘지 알아볼 길이 없었다.
“티베트의 사진입니다.”
“아……”
티베트?
대체 저런 게 왜 나오는 거지?
뭐 이런 생각들이 튀어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티베트라니?
우리 방금 전까지…… 니파 바이러스랑 뎅기열, 말라리아 얘기하고 있지 않았나?
“보통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얘기할 때, 제일 많이 언급되는 영구 동토는 사실 북극의 얼음이죠?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고 그로 인한 피해를 언급하는 건…… 정말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네, 교수님.”
머리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수혁의 강력한 지지층들은 일단 ‘네’를 외쳤다.
머리보다 가슴이 빠르니까.
그들에게 수혁은 빛과 소금이니까.
“그러면서 동시에 얼음 안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들어 보셨을 텐데…….”
“네, 교수님.”
이번엔 흐름이 다시 일반인들의 이해의 범주로 돌아왔기 때문에, 이번 ‘네’는 꽤 우렁찼다.
비단 수혁의 광팬들만 외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뭐…….
얼음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가 풀려나올 수 있단 말은 딱히 논문 아니라 그냥 뉴스나 신문에서도 한 번쯤은 보았음 직한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북극은 지금도 태반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기후를 자랑하는 곳인데 고대 바이러스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들이 어찌 거기에 많이 분포해 있겠나.
혹독한 기후란 건 비단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바이러스에게도 최소한의 생존을 담보해 주지 않는 법이었다.
거기에 더해 태반의 숙주가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라면 바이러스 또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북극 다녀와 보신 분 계십니까? 아니, 질문을 바꾸죠. 북극에 가 본 사람을 알거나, 갈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이어지는 수혁의 말에 침묵이 이어졌다.
북극이라…….
남극엔 세종 기지라도 있고, 또 덕분에 거기에 공보의로 가는 사람들도 있긴 있었다.
개고생이 예정되어 있는 곳이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 보겠냐는 생각으로 가는데…….
북극은 21세기, 즉 인류가 현대 문명을 이룩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조차 미지의 영역이었다.
“없죠. 북극은 지금도 그렇지만…… 이전에는 더 험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는 남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아요. 남미를 돌아가는 항해의 위험이 그 어떤 해협에서의 항해보다 훨씬 더 크다는 걸 감안해 보면 쉽게 유추가 가능한 일입니다.”
수혁은 의학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조차 능숙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때문에 딱히 북극이니 남극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의대생들도 여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말은 곧 북극이나 남극의 영구 동토 또는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이…… 적어도 의학적으로는 큰 위험을 야기하지는 않는다는 얘기가 됩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바이러스는 인간 또는 가축 혹은 그 둘 모두의 밀도가 높고 동시에 접촉도 빈번할 때 훨씬 강력한 시너지를 일으키니까요. 자, 그래서…… 다시 이 사진을 봅시다.”
수혁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아까 떴던 사진에 글씨가 나타났다.
“티베트입니다. 고산 지대에는 영구 동토가 아주 잘 보존이 되어 있었죠.”
그리고 한 번 더 움직이자 불과 20년 전의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하는 사진이 떴는데, 확실히 만년설의 양 차이가 꽤 심해 보였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영구 동토가 기온이 올라가면서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한데…… 시베리아입니다.”
“아, 시베리아도 있구나…….”
시베리아도 사실 험악한 지대긴 했다.
영구 동토라는 게 말이 쉬워 영구 동토지…….
엄밀히 말하면 계속 얼어붙어 있는 곳이란 얘기 아니던가.
허나 인류는 과연 적응의 동물이다 보니 무려 그러한 곳에서조차 생을 이어 나갔더랬다.
21세기의 얘기가 아니라, 고대의 이야기인데…….
“그쪽의 땅이 녹으면서…… 보이십니까? 이 사체 중엔 길게는 2천 년 전에 묻혀 있던 사체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죠.”
“아…….”
“그 때문에 실제 2016년엔 탄저균에 의해 죽은 순록의 사체가 노출되면서 다시 탄저균이 번져 근방에 있던 순록 이천 삼백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고 소년 한 명도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의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준 사건이라고 보면 됩니다.”
“허…….”
의사라 해서 의학적인 사건을 모두 알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오직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만이 모든 분야에 걸쳐 다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아예 처음 듣는 얘기다, 이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강의실 안에는 어느새 웅성거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몇몇은 경악에 찬 얼굴이 되어 있기도 했다.
탄저균은 테러에 쓰일 만큼이나 강력한 균인데 그게 그냥 자연 상태에서 저런 식으로 발생했다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다.
‘아직 시작도 안 한 건데…….’
[그렇죠. 더 겁을 줘 볼까요?]
‘겁이라…….’
[적어도 이 주제에 있어서는 겁주는 게 의미가 있을 겁니다.]
‘하긴 그렇지. 하필 시기도 딱 적절해?’
[그렇습니다. 수혁의 말대로 코비드는 인류에게 있어 백신 역할을 톡톡히 할 겁니다.]
수혁은 잠시 기다렸다.
소란이 가라앉기까지.
원래 단상 위에 선 이의 침묵이란 때론 천금보다 힘이 있는 법이라, 금세 조용해졌다.
“시베리아라는 험지에서조차 저런 균이 나오는데…… 과연 인류 역사 속에서 더 빈번한 교류가 있던 곳의 영구 동토엔 어떤 바이러스가 있을까.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네, 교수님. 궁금합니다.”
물론 그중엔 안대훈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수혁의 말에 꼬박꼬박 답하는 이도 있긴 했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수혁의 말마따나 보다 인류가 많았던 곳의 영구 동토에는 훨씬 무서운 것들이 있을 거 같아서 그랬다.
수혁은 조용한 강의실에서 홀로 또각 소리를 내면서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사진이 하나 떴다.
2021년도에 뜬 논문이었다.
“그래서 2021년 미국과 중국의 공동 연구팀이 티베트 굴리야 빙하의 영구동토층을 굴착해 1만 5,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바이러스 샘플을 확보했습니다.”
“1만 5천 년…….”
저 정도로 옛날이면 대체 얼마나 옛날인 거지?
구석기? 신석기?
아니, 인류가 존재했던 때이긴 한 건가?
“아니, 바이러스는 뒤지지도 않아?”
“바이러스가…… 생명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잖아. 한번 생성이 되고 나면…… 의도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남는 놈들도 있을 정도니…….”
오죽하면 바이러스에 대한 정의가 생명체가 아닌 ‘존재’겠나.
애초에 숙주에 의존하지 않으면 스스로 번식조차 못 하는 것들이다 보니 이를 둘러싸고서도 꽤 많은 음모론이 ‘존재’할 정도였다.
수혁의 말발과 바루다가 쌓아 온 데이터, 곧 지식을 활용한다면 이쪽으로도 하염없이 길고 재밌는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는 시간이 아니다 보니 수혁은 그대로 원래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 나갔다.
“수백 가지의 기능할 수 있는 바이러스 종류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수백 가지요?”
“네, 수백 가지. 기능할 수 없는 종류의 바이러스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지는데…… 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그럼……”
수혁은 질문을 던진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그러니까 내과 돌게 되면 싹수 봐서 꼬셔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했다.
“이 수백 가지의 기능할 수 있는…… 그러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적합한 환경과 숙주만 주어지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 중에 우리 인류가 아예 처음 보는 종류의 바이러스가 무려 28가지나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저기 티베트의 영구 동토에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바이러스가 무려 28가지 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허…….”
“아니…….”
“28가지요?”
수혁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진 젊은 의학도들을 보며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가학적인, 그러니까 변태적인 성향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경각심을 심어 주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혁아…… 이건 그냥 강의로만 쓰지 말고 대국민 캠페인에 쓰자.
-네?
-너 예능 한번 나가라.
-예능……이요? 뭔……?
-유느님이 하는 거 있어.
-유느님……? 의느님이 아니라?
-이거 농담이지? 그렇지? 형?
아닌 게 아니라 신현태의 요청도 있지 않았나.
아니, 그 이전에 태화와 정부 측의 요청도 있었다.
기후 위기라는 게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실존하는 위기이기에 그랬다.
심지어 이 위기는 어떤 한 권력자에 의해 발생하는 종류의 위기, 즉 히틀러나 무솔리니 또는 히로히토, 푸틴과 같은 이들에 의해 벌어지는 전쟁과는 좀 다른 위기였다.
그냥 모두의 방임 속에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는 위기였다.
물론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이미 꽤 잘하고 있는 나라긴 했지만, 그럼에도 인식 변화는 필요하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가서도 잘하겠지?’
[뭐…… 수혁 입 터는 거야 유명한 거 아닙니까? 게다가 저도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하긴 우리 둘이 함께라면 못 할 일이 없지. 이게 뭐…… 웃기려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 웃기려고 나가는 거면 저부터가 말렸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의학적인 얘기니까요.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피피티를 띄웠다.
우리가 맨날 보는 환경 보호에 관한 내용이 떠 있었다.
일회용품 줄이고 하는 것들.
너무 많이 봐서 이젠 더 이상의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들.
하지만 고대 바이러스들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 보니, 같은 문구라 해도 느낌이 많이 달랐다.
뭐랄까.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저, 교수님.”
그러한 분위기를 후후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수혁에게, 혹시 몰라 밖에 남아 있던 이태원이 달려와 속삭였다.
“환자?”
“네.”
“가야지, 그럼.”
“네, 교수님.”
의대 교수란 강의만 하는 존재가 아니지 않나.
그중에서도 수혁은 진료를 쉬면 안 되는 이였다.
본인이 즐기기도 했고.
‘강의는 한동안 안 해도 되겠어.’
[그럼요. 역시 의사는 환자를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