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5화 다시 시작 (1)
또각
또각
수혁은 예의 그 지팡이를 짚고서 병원으로 돌아왔다.
말이 돌아온 것이지 본과는 본교가 아니라, 병원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도 좀 걷다가 엘리베이터만 타면 금세 센터였다.
“후.”
한때 음압 병동으로 트랜스폼 했던 센터는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애초부터 모듈식 구조로 지어 둔 덕이라 할 수 있었다.
감염내과 출신 1호 원장인 신현태 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괜히 쓸데없이 낭비한다는 비난도 쏟아졌었지만, 그 효용을 원장 임기 내에 입증해 낸 지금에 이르러서는 비난은커녕 찬양 일색이었다.
“어디래?”
“아…… 뉴욕입니다. 저희 센터요.”
“아하.”
수혁은 뉴욕도 슬슬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 본원이 코비드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센터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보니, 가뜩이나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했던 뉴욕시에서 뉴욕 센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청했던 덕이었다.
그 덕에 환자를 꽤 많이 받아 볼 수 있었고, 그 결과 코비드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이후로는 본격적인 가동이 가능해졌다.
“아, 교수님. 저 장종우입니다. 전에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했습니다.”
“아, 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은혜가 한량없어 이 어찌 갚을 수 있을지…….”
전화를 받아 보니 장종우였다.
본인이 쓰러졌던 것을 수혁이 살려 낸 적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태도가 극히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장종우는 당시에 종교적 체험을 한 적이 있지 않나.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이수혁 교수 목소리랑 굉장히 닮아 있어서 혼자 방에 있다가 무릎도 꿇은 적이 있을 지경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수혁 나무위키에 들어가 보니 하필 몰타 십자가를 배경 삼아 앉아 있는 사진이 있었고 각지에서 이어지는 간증 페이지까지 있어서, 장종우는 교회를 나가긴 하되 반쯤은 수혁교의 신자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이단 신자가 되었다 이 말인데…….
그렇다 보니 태도가 공손하다 못해 약간 교주를 마주하는 느낌까지 일었다.
“네……. 의사가 환자 치료한 거에 꼭 은혜를 갚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 낮고 천한 이의 전화를 받아 주심에…….”
“그, 거기까지 하시고. 환자는요?”
다행한 것은, 수혁은 이미 이러한 일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의사가 이런 일에 익숙해진다는 게 정말로 이상한 일이긴 한데…….
어쩌겠나.
실제로 그 주변에 있는 이들 중 종교적 체험을 한 사람들이 많고 따라서 이 지랄을 막 해 대는데…….
“아 네.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직 저희 센터가 피부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설비는 이미 다 갖추고 있었더랬다.
실제로 코비드 사태가 한창일 때는 미국 내 의료진들 중 뉴욕이 아닌 곳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저 센터에서 일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건 사태 때의 일이었고, 그 사태가 끝난 지금은 원래 계획대로 피부과부터 돌리고 있었다.
뭐…….
워낙 인지도를 한 방에 쌓아서 바로 병원을 열어도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사실 병원이라는 것이 열고 싶다고 막 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의사들도 모아야 하고 간호사들도 모아야 하고 또 다른 의료 인력이나 보조 인력도 다 모아야 했다.
“그래서 제가 의뢰드리는 것도 피부과 환자인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아요.”
“일반적이지 않다……?”
“네. 저희가 사실 피부과 중에서도 보험 진료가 아니라 미용 진료를 위주로 보고 있습니다. 아, 한국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여기서야 뭐 나누는 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은데 편의상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네네. 계속해 보세요.”
일반적이지 않은 피부 질환이라.
그것도 미용을 주소로 왔던 환자라는 얘긴데…….
‘구미가 당기는데.’
[그러니까요. 이런 환자는 사실 좀 생소하죠?]
‘응. 그렇지.’
피부과 환자를 보는 경험 자체가 드물지 않던가.
언제였더라.
그래 김성진의 싸가지 없는 동기 녀석 혼쭐내던 때 이후로는 거의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뭐 그사이에도 진료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인상적인 케이스만 두고 본다면 그렇다는 얘기였다.
“환자는 29세 남자 환자로 유분기가 많은 얼굴 피부를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유분기가 많은 피부라.”
“네.”
확실히 주소부터 생소했다.
기름기 많은 피부가 증상이라니.
평소 거의 외모에 관심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수혁은 혹시 나도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해서 잠시 얼굴을 쓸어 보았다.
피부과 의사가 보기엔 그냥 마른세수를 하는 것처럼만 보여서 말을 그대로 이었다.
“여기 내원 당시에 찍은 사진입니다.”
“어우. 29살이요?”
“네. 한국 나이로 치면 31살이긴 한데…….”
“아니, 그래도 너무…… 주름이 너무 두꺼운데요? 고생을 많이 했나?”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공대 출신으로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아, 환자는 인도 출신입니다. 앵글로·색슨족인 부모에게 3살 때 입양되어 미국에서 쭉 자랐습니다.”
“아, 그렇군요. 흠.”
인도라.
확실히 미국은 땅덩이도 넓은 데다가 온갖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보니 진료 전 고려해야 할 것에 꼭 인종이 들어갔다.
수천 년 전 인구와 DNA를 대조해 봐도 별 차이가 없는,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과 비교하자면 이게 제일 커다란 차이라 할 수 있었다.
‘세계로 나가려면 필수적인 고려라 할 수 있지.’
[네. 우리나라에서야 이게 당연한 거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가 훨씬 적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인도 출신이라고 해서 인종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인도도 그 땅덩이가 넓지 않던가.
대개 아리아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하여간에 이쪽도 깊숙이 파고들다 보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종의 차이는 질환별 유병률뿐만 아니라 예후에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서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얼굴을 보면 단순히 얼굴에 기름이 많아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란 판단이 섰습니다. 특히 이전에 찍은 사진을 보시면…….”
“어…… 이게 언제예요?”
“불과 1년 전의 사진입니다.”
“허.”
1년 전 사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둥순둥하다고 해야 할까?
동양인에 비해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편견을 깰 수도 있을 거 같은 인상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사진은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 사진을 보시면, 피부가 상당히 두껍습니다. 또 이 사진 보시면 보이십니까?”
“잡히질 않는 거예요?”
“네. 너무 두꺼워져서 꼬집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름이 아주 강하게 지게 되어서 전체적으로 사자 같은 형상을 띄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사자 같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네. 저희 피부과에서는 이런 얼굴을 두고 사자상이라고 하는데 꽤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게 정상적인 변화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죠.”
저게 정상적인 변화겠나.
아무리 사람이 마음고생을 했다고 해도, 1년 만에 저렇게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거의 수십 년의 변화를 건너뛴 느낌이라고 해도 좋았다.
‘뭐지……? 기질적 원인이 있을 거 같은데.’
[네. 피부과 질환이라고 하지만…… 표현형이 피부일 뿐 전신 질환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입니다.]
그렇기에 수혁은 바루다와 더불어 피부과 질환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로 사고를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뭔가 나아가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진료 과정 전체를 두고 보면 여전히 발을 떼지도 못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망망대해에 서 있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아직은 수혁이나 바루다조차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직 검사 등을 염두에 두고 있긴 한데…… 그전에 고견을 들어 보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렇군요. 환자 혹시 직접 볼 수 있을까요?”
“직접……요?”
“화면 통해서요.”
“아, 네네. 물론입니다! 외래 기반으로 보고 있긴 한데, 지금 대기 중입니다. 바로 오라고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낮추시죠. 제가 참 송구스럽습니다.”
장종우 교수는 밖으로 나가면서 이상한 소리를 남겼고, 수혁은 자동 반사적으로 그냥 씹었다.
주변에 하도 이상한 소리를 해 대는 놈들이 많이 있다 보니 생긴 방어 기제였다.
꽤 효과적이었다.
그 어떤 이상한 말도 듣는 쪽에서 아예 반응을 하지 않으면 주변에서는 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잊는다는 걸 이제 수혁은 알고 있었다.
끼이익
아무튼, 장종우 교수는 본인이 말한 대로 지체 없이 달려갔다 왔는지 헐떡이면서 환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환자에게도 채근했었는지 환자 또한 숨이 차 보였다.
‘거참…….’
환자에게까지 저럴 건 없지 않나 하면서 혀를 차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수혁. 환자의 정수리를 보십쇼.]
‘왜 풍성한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두피가 접혀 있습니다.]
‘접혀……? 어? 그러네? 얼굴만이 아니라 두피가……?’
[저런 소견을 정확히 가리키는 용어가 있죠.]
‘그렇지. cutis verticis gyrata. 두피가 두꺼워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얼굴뿐만이 아니라 두피도 두꺼워졌다.
이는 확실히 전신 질환이 원인이 되었을 것을 강하게 의심해 볼 수 있는 소견이었다.
‘알려진 원인은 없지만…… 대개는 선천적인데.’
[그렇죠. 물론 아주 심한 형태는 아닙니다. 아마 의사가 아니라면 쉽게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
두피는 주름이 지지 않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상함을 캐치할 수 있을 터였다.
다시 말해 의료진이 면밀히 두고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환자의 머리가 그리 짧은 편이 아니다 보니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수혁.]
‘응?’
[환자의 손을 보십시오.]
‘손? 아.’
수혁이 아직 환자의 두피에 대한 사고에 갇혀 있을 때, 아무래도 시야가 아주 넓을 수밖에 없는 바루다가 먼저 손의 이상을 찾아냈다.
말이 좋아 이상이지 이것 또한 실력 있는 의사가 의심의 눈초리로 한참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변화였다.
‘곤봉지…… 저건 확실히 이상한데.’
[피부가 두꺼워지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저것도 있음 직한 변화이긴 합니다.]
‘그렇네. 이렇게 되면…… 확 좁아지는데?’
[그렇죠. 이제 선택지가 몇 남지 않았습니다.]
둘의 대화는 꽤 두텁게 쌓여 나가고 있었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장종우가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는 참일 뿐이었다.
허나 수혁은 이미 망망대해를 지나 어떤 섬을 포착한 기분이 들었다.
남은 건 몇 가지 검사뿐이었다.
“교수님.”
“아, 네. 환자분 어디를 보여 드릴까요?”
“아니, 지금은 그보다 엑스레이가 필요합니다.”
“네? 엑스레이요?”
물론 다른 이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일 뿐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수혁이지 않나.
“네, 엑스레이. 다리를 찍어 보죠. 지금 바로 가능합니까?”
“네, 가능……합니다. 찍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이상해 보이는 소리를 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