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7화 다시 시작 (3)
“음.”
수혁과는 달리 장종우 교수는 엑스레이를 보면서 이게 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이게 이런 뜻인가?’
뭐야, 이게?
실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생각해 보면 피부과 의사가 대체 언제 이런 걸 보겠나.
따져 보면 내과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수혁 교수님은 알 거야. 그분은…… 아신다.’
허나 다른 이들과 비할 바는 아니지 않나.
애초에 눈앞에 나타난 전형적인 미국 부유층 사람에게도 쫄지 않고 따박따박 할 말 다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수혁에 대한 믿음 덕분이었던 장종우였다.
해서 장종우는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당당하게 검사실을 나가 환자와 보호자 앞에 섰다.
‘와…… 여기 빛이 밝아서 그런가. 더 영롱하네.’
블링블링하게 박혀 있는 주얼리가 번쩍거리는 게 뭔가 있어 보이는 재질의 잡지에서나 보던 그런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자꾸 보고 있으면 쫄 거 같아서, 장종우는 일단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교수님?”
“네, 보고 있어요. 사진도 받았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꽤 허접해 보일 수 있는 화상 시스템이었지만, 기실 수혁은 여러 화면을 받아 보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보는 건 딱 환자의 모습뿐이고, 뉴욕 센터의 EMR 중 유출되었을 경우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외한 것들에 대해서는 다른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방금 찍은 사진도 원본 그대로 받아 본 참이었다.
“어떠신가요?”
“일단 사진을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보여 주시죠.”
“아, 네. 교수님.”
그에 비해 이쪽에서는 수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냥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장종우야 휴대폰으로 수혁의 얼굴을 보고 있었지만 환자나 보호자는 그렇다, 이 말이었다.
“자…… 여기.”
“시간 없는데. 거기 내가 전화하면 당장 오늘 오후에라도 볼 수 있다고요.”
장종우가 사진을 띄웠지만, 보호자는 여전히 삐딱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가 말이 좋아 태화 의료원 뉴욕 센터지 사실상 미용 센터이기에 그러했다.
아무리 설비가 있다 해도, 또 코비드 사태에 얼마간 일조를 했다 해도 심각한 질환을 보는 데 있어서도 뛰어날 거란 기대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접근 가능한 병원이 한정되는 계층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상대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우리 애…… 언제 이렇게 된 거야, 대체. 잘생겼던 얼굴이 말이야.”
금발의 여성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뉴욕 유수의 병원 진료가 가능하다는 게 허풍은 아닌지, 직통 번호가 찍힌 휴대폰을 쥐고서였다.
그렇다면 서두르는 게 좋았다.
당연하게도 장종우는 서두르고 자시고 할 게 없는 입장이라 수혁의 말만 기다렸다.
그저 속으로 응원 비슷한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수멘…….’
그리고 수혁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듯, 이내 입을 열었다.
“사진을 잘 보시면…… 다리의 뼈를 따라 골막 반응이 보입니다. 그리고 발 사진을 보면 피질에 침식이 있어요. 이는 비단 환자분의 질환이 피부에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닌, 뼈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는 소견입니다.”
“뼈……? 그럼 역시.”
수혁의 말에 보호자가 들고 있던 가방을 보다 높이 치켜드는 모양새를 보였다.
비록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문외한이라 저게 어떤 브랜드의 가방인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모르는 이들이 봐도 한두 푼 할 물건은 아닐 거란 느낌을 주었다.
‘왜 저래?’
[모르죠.]
‘마운트 사이나 거기 완전 돌팔이인데…….’
[그러니까요.]
‘스튜피드 교수한테 갔다가는…….’
[스튜어드.]
물론 수혁이나 바루다는 그런 것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마 피부 조직을 검사해 보면 표피, 진피에서 모두 증식 소견이 보일 겁니다. 다행히 여기 장종우 교수님께서 여러 혈액 검사를 시행했을 뿐만 아니라, 아까 보니 머리 엑스레이도 찍으셨더군요?”
“아, 네. 호르몬 수치 보면서…… 조태진 교수가 찍어 보라고 했습니다.”
“네. 거기 보면 뇌하수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sella turcica 구조물 또한 정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러한 것들을 종합하고, 또 지금 환자분이 보이고 있는 증상과 엑스레이 소견 등을 미루어 보면, 가능한 진단명은 단 하나뿐입니다.”
수혁의 말은 여전히 휴대폰을 통해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환자나 보호자나 상대의 얼굴은커녕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오히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수혁의 목소리와 말투는 여느 중후한 엘리트 의사와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수밖에 없지 않나.
아니, 오히려 더하다고 봐야 했다.
타고난 연기 실력에 더해 바루다의 보정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어 실력 또한 완벽했기 때문에 신뢰성을 더하고 있었다.
어느새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도 조용했다.
“Touraine-Soulente-Golé 증후군이라는 병입니다.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률조차 집계되지 않을 정도로 드문 질환인데…… 표현형은 꽤 다양합니다. 어떤 환자에서는 아주 심각하게, 또 어린 나이에 나타날 수 있는 데 반해 어떤 환자에서는 꽤 늦게, 또 경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무슨 병이라고요?”
진단명은 심지어 영어도 아니었다.
아예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에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장종우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물었다.
장종우는 묻고 나서야 이게 좀 부적절한 질문이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막았지만, 어차피 별 상관은 없었다.
이제 이들은 장종우가 아니라 휴대폰, 그러니까 수혁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일명 TSG 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 어떻게 말해야 쉬울까…… 아, 그래. 유전 질환이라고 보면 됩니다. 혹시 아드님께서 자녀가 있습니까?”
“아, 아뇨. 아직 없습니다. 사실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도…….”
“뭐, 나중에 계획이 생기게 되면 이에 대해서는 한 번쯤 짚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전 질환이긴 하지만 반드시 유전이 되는 건 아닙니다. 또 유전이 아닌 다른 질환에 의해 이차 발병도 가능한 질환입니다만…… 제가 볼 때 그건 별로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군요.”
“하…… 유전 질환…… 이라고……?”
수혁은 머리를 짚고 있는 보호자와 환자를 보며, 장종우가 이제야 휴대폰을 돌려서 가능하게 된 일인데, 말을 이었다.
“다행히 표현형이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방치하게 되면…… 삶의 질에 있어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얼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한 변화가 이미 진행이 되어 있고…… 당연하겠지만 미학적 변화는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되죠.”
“네네. 그럼 어떻게…….”
외모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들 들어 봤을 터였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외모가 사회생활에 있어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되었다.
특히 질병에 의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면, 의료진은 그에 대해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이 미학적 변화에 대해서는 성형외과와 피부과적인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용 수술이나 시술에 대해서는 오히려 저보다 장종우 교수님이 훨씬 잘 아실 테니…… 이쪽에 대해서는 장종우 교수님을 통해 상담을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네. 그…….”
보호자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속으론 또다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똑똑한 사람인 거 같긴 해……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처음 듣는 질환에 진단이 된다고?’
사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닥터 쇼핑이라는 말이 왜 있겠나?
한두 번 방문했던 병원의 의견을 신뢰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인데, 비단 저렇게까지 공격적인 단어가 아니라 2차 의견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었다.
‘무조건…… 가 봐야겠어.’
뭐…….
들어 봄 직한 의견이니만큼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진 않았다.
해서 듣고는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문자는 보내 두었다.
오늘 오후에 갈 테니까 진료 시간 마련해 두라는 문자였다.
“그 외에…… 문제가 되는 것은, 환자분.”
“아, 네.”
“손 앞으로 내밀어 보세요.”
“네.”
“약간 벌어지는 느낌이 있죠?”
“아…… 네. 이게 딱 안 붙는 느낌입니다.”
“그렇죠.”
곤봉지.
손가락이 곤봉처럼 넓어지면서 벌어진다, 이 말인데…….
이게 그냥 모양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불편을 야기하기 마련이었다.
지금 환자도 손가락을 딱 붙일 수가 없지 않나?
물론 아직은 본인 외에 다른 인원은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변화이기는 하겠지만 저게 저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 질환은 손목과 무릎, 인대 등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운동이 제한될 수가 있습니다.”
“아…….”
“아직 그런 것도 아니고, 다행히 환자분의 표현형이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니 일단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대신 병원에 꾸준히 다니긴 해야 합니다. 약물 치료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긴 한데…… 유전자 레벨에서의 문제기 때문에 근본 치료가 아니라 그때그때 대응하는 치료다 보니 관찰하면서 약을 바꾸거나 더하고 또는 끊고를 반복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아…… 네네.”
수혁의 설명은 치료에 있어서도 늘 그러하듯 막힘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도 아까보다는 훨씬 수혁에게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허나 이렇게 여기서만 끝낼 거면 대체 왜 매년 큰돈을 기부해 가면서 마운트 사이나 병원의 VIP 지위를 유지하고 있겠나.
‘그래도…… 가자. 가서 이 사람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달하면 되겠지.’
보호자는 어느새 휴대폰에 녹음 기능도 켜고 있었다.
장종우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다.
의사로 살다 보면 이런 환자를 한두 번 겪게 되는 게 아니라 그랬다.
아니, 불시에 녹음을 했다면 몰랐을 테지만 이 보호자는 처음부터 좀 삐딱선을 탔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예상이 쉬웠다.
‘이게…… 틀리진 않겠지?’
장종우는 그렇게 녹음 기능이 켜진 휴대폰을 보다가 이내 수혁 쪽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이라면 절대로 틀리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감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었다.
‘태진이가 봤으면 지랄했겠구만.’
조태진이라면 어땠을까?
불안?
그런 마음 따위는 아예 품지 않았을 게 뻔했다.
대신 불안에 떠는 장종우를 향해 이 독사의 자식이라는 둥 온갖 욕을 해 댔을 터였다.
‘거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졌다.
마침 그때 수혁이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안도가 될 만한 얘기를 꺼냈다.
“아, 이 질환은 모양에 변화를 미칠 뿐이지…… 수명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해서 둘은 감사를 표하면서 일단 진료를 끝낼 수 있었다.
아니, 수혁과의 진료를 끝냈다고 하는 게 옳을 터였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보호자가 환자를 끌고 다른 병원으로 갔기에 그랬다.
“들어 보니까 믿음이 가던데…….”
“기껏해야 엑스레이 하나 찍고 무슨?”
“말이 딱딱 논리적이던데…….”
“그래 봐야 작은 나라 의사야. 최고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