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38화 (1,038/1,303)

1038화 다시 시작 (4)

보호자는 그렇게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마운트 사이나 병원으로 향했다.

“하…… 막히네. 괜찮아?”

“네? 아…… 네. 이거 아픈 건 아니어서.”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됐으면 빨리 말을 했어야지.”

“걱정하실까 봐 그랬죠.”

아들은, 그러니까 환자는 부산스럽게 입을 놀려 대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어릴 땐, 입양아인 줄도 모르고 살았더랬다.

한눈에 아예 다르게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잘해 주었다.

정말 엄마, 아빠처럼.

심지어 유대교라는 무척이나 보수적인 종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래도…… 이수혁? 그 사람 말이 맞는 거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도 비슷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을 해야 하네 어쩌네 하지만 그건 지나친 일반화였다.

미국은 넓은 나라고 또 다양한 인종과 민족 그리고 계층이 얽혀 사는 나라이니만큼 각각의 상황은 아주 달랐다.

그리고 환자가 속한 이 집안은 부모의 서포트가 거의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그런 종류의 집안이었다.

‘일단…… 가만히 있자. 뭐…… 나야 좋지. 더 확실해진다면?’

그렇다 보니 아들로서는 나서려야 나설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또 사회생활을 함에 따라 아무래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더 알게 되었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가서 알았다.

입양아들이 다 자신처럼 크지 못했다는 것을.

그냥 기회를 온전히 얻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대까지 당한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좀 무례하게 대한 거 같은데…… 나중에 마음 정리되시면 따로 사과하라고 말씀드려야겠다.’

환자는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에도 어머니는 쉬지 않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니, 숫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말이 더 옳을 터였다.

“좀 더 빨리 갈 수 없어요?”

기사를 향해서였다.

다행한 것은 기사도 이 집안을 모신 지 오래되었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곧 지금 저런다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놈의 아들만 엮이면 저러시네.’

평소에는 그토록 품위 넘치는 귀부인인데, 이럴 때 보면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일 끝나면 또 금일봉 두둑하겠구만…….’

기사는 오히려 좋다는 생각으로 침착하게 대응했다.

“지금 슬슬 러시아워라서요.”

“하. 안 막히는 길 몰라요?”

그런 게 뉴욕에 있겠습니까…….

있다면 응?

다들 거기로만 다녀서 또 막히겠지.

기사는 그렇지 않아도 막히는 길을 달릴 생각에 답답해 오던 참이었기에, 앞을 내다보며 몰래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하아…… 애가 아픈데.”

애가 아니라 어른입니다.

키가 저보다 큰데요?

얼굴만 보면 30대가 아니라 50대라고 해도…….

‘잉? 언제 저렇게 되셨대?’

그제야 기사는 아들의 몰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목구비를 통해 동일인이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지만, 얼굴 곳곳에 팬 깊숙한 주름 때문에 너무 늙어 보였다.

기껏해야 1년? 아니, 반년 만에 보는 건데 무슨 20년 만에 보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오늘은 더더욱 이해가 가긴 하네.’

저게 자연스레 저리되었을 리는 없지 않겠나.

그냥 아들만 따로 떼 놓고 봐도 동부의 유수한 보딩 스쿨을 나와서 아이비 리그까지 직행한 이후 현재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초엘리트였다.

그렇게 경험을 쌓은 후에는 아마도 아버지가 운영하는 투자 회사로 갈 게 뻔했고.

그런 사람이 어디 가서 저렇게 얼굴이 변하겠나.

아프다고 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터였다.

“일단…… 제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어머니는 그렇게 기사를 쏘아붙인 후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이번에는 기사가 아니라 의사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지금 준비했어요?”

“아…… 네. 준비됐습니다. 오시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닥터 스튜어드도 있어요?”

“물론입니다. 외래 끝나자마자 올 예정입니다. 이제 한…… 10분?”

“그럼 우리랑 시간이 얼추 맞겠네. 알겠어요.”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인.”

마냥 닦달만 해 대면 진상도 저런 진상이 없을 테지만, 부인은 저래도 아무 문제 없을 만큼의 후원금을 매년 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마운트 사이나 병원 자체가 이런 식의 후원금이 메인 수익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더더욱 잘할 수밖에 없었다.

부우웅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닦달의 결과라고 한다면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돌연 길이 뚫리는가 싶더니 속도가 좀 났다.

마운트 사이나 병원 근처가 부촌이라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서 두세 블록만 더 가면 슬럼이었다.

탕멀리서 총소리인지 아니면 타이어 터지는 소리인지 헷갈리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아…… 앰뷸런스 뒤에 있었네요, 저희가. 운이 좋았습니다.”

“잘됐네. 우리 내려다 주고, 주차장에 있어요. 여기 위험할 수 있으니까…… VIP 전용으로.”

“네, 사모님.”

이제 보니 차량은 앰뷸런스 뒤에 딱 달라붙어서 달리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예기치 않게 병원까지 길이 뚫리고 있었다.

차량들이 앰뷸런스만 보면 경기 일으키듯 옆으로 비켜 준 덕이었다.

시민 의식이 높은 덕도 있기야 하겠지만 태반은 강도 높은 처벌 때문이었다.

끼이익

환자가 탄 차량은 그렇게 앰뷸런스 옆에 잠시 섰다.

“다녀오십쇼.”

“네네.”

그러곤 주차장을 향해 갔고, 어머니는 환자를 데리고 병원 안으로 향했다.

지갑 안에 낀 VIP 카드를 보이면서였기 때문에, 즉시 VIP 전용 외래 진료실로 향할 수 있었다.

또각또각

아마 VIP 카드를 깜박하고 왔다 해도 별문제는 없었을 터였다.

누가 보더라도 보호자가 걸친 옷이나 물건 또 주얼리는 뉴욕에서조차 흔히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그랬다.

“이쪽입니다.”

“얘, 어서.”

“네.”

그렇게 도착한 VIP 외래 진료실엔 여러 의료진들이 대기 중이었다.

‘피부과에 갔었다고 했지?’

일단 피부과 의사가 와 있었다.

그게 아닌 거 같아 큰 병원으로 온다는 얘기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잖아?

일 년에 수억씩 쏘는 거물인 데다가 딱히 그걸 디파짓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진료비는 또 따로 주는 사람이다 보니 잘하는 게 맞았다.

‘감염……? 감염 가능성도 있기야 하겠지?’

감염내과 의사도 와 있었다.

실제로 피부의 변화를 일으키는 감염병이 꽤 많아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항생제나 소염제를 쓰다가 부작용으로 뒤집어지는 경우는 더더욱 많았고.

‘흐음. 자가 면역 가능성도 있지.’

류마티스내과 의사도 와 있었다.

‘이런 자리에 내가 빠져서야 되겠나…….’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거물이라 할 수 있는 닥터 스튜어드도 와 있었다.

내분비내과 전문의이자 각종 괴질 진단에 능한 그가 어찌 VIP 괴질 진료에 빠지겠나.

“휴.”

보호자는 사방에 늘어선 교수 넷과 뒤에 기립하고 선 펠로우 또는 레지던트들을 보면서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이래야 병원이지.

아까 거긴…….

‘전화로 진단을 하다니.’

그게 말인가 방구인가.

최근에 코비드 진료도 돕고 했다고 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을 진료할 때의 일이었다.

본인이나 가족은 절대 그런 근본 없는 병원에 보낼 생각이 없었다.

“얘, 보여 드려.”

“아, 네. 어머니.”

한결 누그러진 보호자의 말을 들으며, 아들은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쓰고 있던 후드티의 모자를 내렸다.

사실 그전부터 이 자리에 있던 의료진들은 다들 그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었더랬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미 들은 얘기가 있는데.

허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피부과 단독의 문제는 아니다…….’

피부과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에 반해 감염내과 의사는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설마…… 나병? 나병이라고?’

나병?

한때, 인류를 공포에 밀어 넣었던 질병이었다.

아마도 여러 질환들이 한데 뒤섞여 오해를 낳기는 했을 거 같긴 하지만, 하여간 나병은 대표적인 신의 저주로 인류를 괴롭혀 왔다.

허나 그것도 옛말이었다.

이제는 유병률 0.01% 밑으로 내려간 희귀병이 되어 있었다.

항생제 치료로 효과적으로 또 빠르게 치료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가 면역…… 아닌 거 같은데……?’

류마티스내과 의사는 그 자리에 붙박이장처럼 서 있었다.

긴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다.

류마티스 질환이라는 게 워낙에 괴질이 많다 보니 아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맞다고 하기도 어렵고…….

“흐음.”

하여간, 의료진들은 저마다 갈팡질팡하면서 서 있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입을 연 것은 닥터 스튜어드였다.

‘내분비질환은 가능하지.’

성장호르몬이나 갑상선 호르몬 등이 관여했다면…….

그렇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뭐 그렇다고 저런 식으로 얼굴이 변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겠지만…….

“일단 검사를 좀 해 보죠. 혈액 검사랑 엑스레이부터요. 거기서 뭐가 나오면 CT와 MRI도 의미가 있겠습니다. 음? 이게 뭡니까?”

하여간, 오직 나만이 이 질환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선 스튜어드에게 환자가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아까 태화 뉴욕 센터를 떠나올 때, 닥터 장이 반강제로 쥐여다 준 자료였다.

-아무래도 어머님께서 얘기를 안 할 거 같아서요.

진료가 끝나기 전에 갑자기 부리나케 움직이길래 뭐 하나 했더니만 서류를 뽑고 있었다.

여느 병원에서 나눠 주는 것처럼 차트를 그대로 뽑은 것도 아니었다.

나름 성의 있게 아까 수혁이 말했던 주요 검사 결과들과 그 멘트들 위주로 쓰여 있는,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따로 적은 일종의 소견서였다.

소견서치고는 지나치게 자세하긴 했지만.

“그 병원에서도 이런저런 검사를 했었거든요.”

환자는 정성 가득한 소견서를 건네며 말했다.

스튜어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소견서 제일 위에 적힌 병원 이름이 그의 좋지 못한 기억을 들추어내고 있어서 그랬다.

“네네. 알겠습니다. 일단 검사를 해 보죠.”

“해 본 검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들여다만 봤으면 지금 본인이 말했던 검사 정도는 다 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터였다.

허나 스튜어드는 태화라고 하면 발작하게 된 사람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네네. 뭐……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경험이 적을 테니까요. 공부도 적게 할 테고요.”

“그런……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하하. 마운트 사이나와 비할 바는 아니죠. 설령 검사를 했다고 해도 신뢰가 어렵습니다. 설비나 이런 것의 차이가 있어서요.”

“그…… 알겠습니다.”

환자는 더 뭐라 하려다, 어머니가 고개를 젓고 있어서 일단 끄덕였다.

그러곤 피를 잔뜩 뽑힌 다음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거기서 알았다.

‘아니…… 완전 똑같은…… 심지어 전에 했던 검사잖아.’

이수혁이라는 의사가, 얼굴도 잘 모르겠는 의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