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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041화 (1,041/1,303)

1041화 다시 시작 (7)

“환자 머리를 보시면…….”

수혁은 환자의 두피에 발생한 피부가 접히는 증상, 즉 Verticis Gyrata를 비롯해 사자 얼굴 및 손과 손가락의 확장, 발가락에서도 관찰되는 곤봉지 및 태화 뉴욕 센터에서 시행한 하지의 엑스레이에서 긴 뼈를 따라 관찰되었던 골막 등을 언급했다.

꽤 자세히 말했지만 여전히 주변을 지키고 선 의사들의 얼굴에는 그래서 뭐? 라는 표정만이 진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질환이 드물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증상을 다 종합하여 사고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그랬다.

‘뭐…… 아까는 좀 시간이 없었지?’

[부릉부릉.]

괜찮았다.

수혁은 상대가 모르면, 그 상대가 제자라거나 하여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아니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신이 나는 사람이니까.

뭐가 되었건 간에 마구잡이로 떠들 수 있잖아.

말이 마구잡이지 사실상 잘난 척으로 무장된 일종의 연설이나 강연이라고 보면 되었다.

“병리 또는 발병 기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귀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를 좀 더 자세히 볼까요.”

“어…… 네.”

스튜피드 아니, 닥터 스튜어드는 이미 반쯤 넋이 나가 버린 상황이었다.

아까부터 어버버하는 것이 풍이 오셨나 싶을 지경이랄까?

해서 방금 답을 해낸 것은 엉뚱하게도 피부과 의사였다.

올 때부터 나는 여기 왜 가는 걸까 하면서 왔는데, 이제는 숫제 통화 담당이 되어 버렸다.

보통 이럴 때면 늘 나서던 사람이 맛이 가 버린 데다 감염내과, 류마티스내과가 뒤로 숨어 버려서 그랬다.

“귀 병원에서…… 이거 사실 필수 검사는 아닌 거 같은데 했네요? brain MRI를 찍으셨어요. 이유가 있기는 했을 텐데,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드신 거 같으니까 당장 묻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사진을 보면 부비동 쪽 보이십니까.”

“아…… 네.”

부비동.

말 그대로 코 옆에 있는 빈 공간을 뜻했다.

여기까지 다 뼈가 꽉 차 있으면 머리가 너무 무거운 데다가, 외부에서 들어온 공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가습시키는 등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해부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라 이건데…….

아쉽게도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부비동은 너무 낯선 기관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딱 보는 것만으로는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못했다.

“음. 보고 계시죠?”

“아, 네.”

“근데 아무 반응이 없네요?”

“네?”

“아.”

수혁은 그제야 상대는 이걸 모른다는 걸 확인하고는 후후 웃었다.

[히히.]

바루다는 히히 웃었고.

“잘 보시면 부비동이 확장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병리 소견 중 하나입니다. 정상 소견은 아니에요. 이 환자분의 질환에 의한 것이죠. 또…… 흉부, 복부, 골반 CT를 찍으셨죠. 그것도 보면…… 추간판 공간과 구멍이 협착되어 있습니다. 인대의 골화도 약간 진행 중이에요.”

왜냐?

이런 식으로 잘난 척을 쭉쭉 이어 나갈 수 있어서 그랬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너무 몰라서 지금 수혁이 짚어 내는 소견의 중요성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여기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의사가 있었다면, 혹 영상의학과 의사라도 있었다면 수혁이 이토록 조그마한 변화까지 잡아낼 수 있다는 데 감탄을 금치 못했을 터였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렇죠.]

수혁은 아쉬움을 고개 한 번 젓는 것으로 훅 털어 내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환자 소견에 더해 방금 제가 말씀드린 증상을 비슷하게나마 나타낼 수 있는 질환들이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세요? 이건 알아야 할 텐데.”

“어…….”

수혁의 말은 꽤 도발적이었다.

아니, 실제로 도발이었다.

아는 게 있으면 뭐라도 좋으니 말해라 이것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스튜어드가 입을 열었다.

“말단비대증…….”

“호르몬 검사에서 이상이 없고, 무엇보다 brain MRI에서도 이상이 없었죠. 그런 말단비대증은 세상에 없습니다.”

“으읏.”

그리고 바로 침몰했다.

학회에서 겪었던 수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미 HP가 1인 스튜어드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매독성 골막염에서도…….”

그에 따라 뒤에 엉거주춤 서 있던 감염내과 의사가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마운트 사이나이고 지금 여기 나선 이들이 그 간판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추는 될 터인데 이렇게 무너지는 건 안 된단 생각에서였다.

“매독이요?”

“그…….”

“골막염이 오려면 적어도 2차까지 진행했다는 건데……. 환자 외관상 어디에서 그런 특징을 찾을 수 있죠?”

“그…….”

“무엇보다 환자는 VDRL 음성입니다. 이미 태화에서 시행했죠.”

“읏.”

감염내과 의사도 스튜어드 옆에 자리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스튜어드처럼 무릎까지 꿇은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냥 옆에 찌그러졌다.

“다른 분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수혁은 쉬지 않고 물었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다면 바로 쭈그러졌을 텐데, 이곳은 마운트 사이나였다.

세계 최고를 논할 때 잘 언급은 되지 않지만, 그 임상적인 능력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실제로 연봉만 따지고 보면 메이요나 메사츄세츠마저 따라오지 못할 터였다.

“음.”

“몰라요?”

류마티스내과 의사는 몰라요? 라는 말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 나섰다.

“반…… 반 부캠 병…….”

“오.”

그의 말에 수혁은 흥미를 보였다.

확실히 지금까지 말했던 것 중에서는 얘가 제일 그럴싸했다.

그러니까…….

영상 소견만 보면 그랬다.

반 부캠 병은 쉽게 말해 전신의 뼈가 두꺼워지는 병이라고 보면 되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피부는요?”

“아.”

“뼈에 대해서만 고려한다면 상당히 그럴싸한 진단명이지만 피부에 대한 고려가 없었군요.”

“크…….”

류마티스내과도 스튜어드 옆으로 갔다.

그래도 그럴싸하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완전 침울한 얼굴이 되지는 않았다.

그나마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었다.

“피부과 선생님은요?”

마지막 타깃이 된 것은 전화기를 마주하고 있던 피부과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과 지식수준 그리고 저쪽으로 쫓겨난 세 명의 걸출한 의사들을 가늠해 보았다.

‘걍 존나 가만히 있어야 할 듯?’

괜히 떠들어서 저렇게 되는 것보다는 그냥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빠르게 결론을 도출해 낸 그는 비굴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아, 네.”

수혁은 김샜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어차피 귀는 다 뚫려 있으니까.

게다가 지금 이 통화 내용을 듣고 있는 이들이 이 넷뿐인 것도 아니지 않나?

퇴원 수속 때문에 모여들어 있던 간호사들도 다 듣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흘러가는 분위기만 봐도 우열을 알 수 있을 텐데, 같은 의료인인 간호사들은 어떻겠나?

이미 못 볼 꼴 보고 있다는 식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이들도 적진 않았다.

“이 외에 가능한 질환이 있다면 이차성 비대성 골관절병증, 갑상선 호르몬이 증가하는 질환, 골간 이형성증 등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부 환자의 소견과 정확히 들어맞는 질환은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진단명은 단 하나입니다.”

수혁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모두는 그저 마른침만 꼴깍이고 있었다.

뭔가 유려하게 이어지고 있고, 사고가 진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들리긴 하는데 어째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랬다.

배경지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격차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마어마한 차이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느끼고 있었다.

“TSG 증후군. 혹시 낯선 질환입니까?”

“음.”

“으음.”

“으으으음.”

“아.”

셋은 고개를 끄덕였고, 하나만 입을 벌렸다.

스튜어드였다.

“닥터 스튜어드, 뭘 알아서 그러는 거예요? 설명 가능합니까?”

“아…….”

습관처럼 괜히 아는 척하려던 스튜어드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지적에 그대로 ‘아’를 이어 나가며 목 안에 뭔가 끼었다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부끄럽다…….’

‘참으로 부끄럽도다…….’

그렇게 감염, 류마티스내과 의사 둘도 스튜어드에게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제가 하죠. 이 질환은…… 희귀 질환입니다. 발병률조차 정확히 잡히지 않을 정도로 희귀 질환이니만큼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진단하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진 않아도 됩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큼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도 드물 터였다.

특히 의사가 의학적인 내용을 모르는 가운데 같은 의사에게 듣는 상황이라면 아예 제일 부끄러운 상황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제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가 불과 수십 케이스밖에 안 되긴 하지만,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면 남자가 대략 70%에서 80%입니다. 환자도 그렇죠. 검사를 해 보시면 스테로이드 수용체 농도가 증가해 있을 텐데, 이것이 성호르몬 자체의 증가 없이 민감도의 증가를 야기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개 청소년기부터 증상이 발생하는데 이 환자는 그보다 훨씬 늦게 발병했기 때문에 보다 나은 표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는…… 흠.”

수혁은 그렇게 늘 하듯 수려하게 말을 이어 나가다가 침음을 흘렸다.

‘잘난 척은 좋은데 말이지.’

[이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안 되지……. 이건 질환을 완전히 이해한 상황에서 처방을 이어 나가야 해.’

유전 질환.

이게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 가장 중요한 특색을 뽑자면, 치료의 불완전성이었다.

나중에 의학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유전 질환조차 완치가 가능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불성설이었다.

당연하게도 치료의 방향성이 관리로 갈 수밖에 없는데 원래 이런 게 제일 어려웠다.

당장 당뇨만 해도 그렇지 않나?

아마 로컬에서 시행되고 있는 당료 관리 중 제대로 된 건 절반이 채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중론이었다.

“치료는 어차피 여기서 할 게 아니니 설명은 불필요하겠군요. 자, 보호자분 그리고 환자분.”

해서 수혁은 의료진이 아니라 보호자를 불렀다.

“네, 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이제 보호자도 우열을 확실히 느낀 지 오래였다.

여전히 마운트 사이나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아니…… 이 사람은 괴물인가.’

말발로 이 듬직했던 사람들을 조진 이수혁이라는 의사는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화 뉴욕 센터로 다니시죠. 제가 모든 치료에 관여할 겁니다. 또…… 아마 내년 초쯤엔 피부 외에 다른 과들도 진료를 시작할 거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나.

결국, 보호자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저, 교수님?”

“응?”

“레지던트 강의입니다.”

그때 마침 안대훈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말마따나 곧 전문의 시험이 있지 않나.

이를 대비한 강의가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 버린 시대다 보니, 수혁이 갈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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