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2화 우하윤 (1)
“교수님 오신답니다!”
하윤은 안대훈에게서 도착한 문자를 보고는 외쳤다.
의국장인 데다가, 누가 봐도 성적도 좋고 또 교수들에게 신임을 얻고 있는 동시에 애초에 로열이지 않나?
심지어 지금 온다는 교수가 다름 아닌 이수혁이었다.
달그락
쉬어야 하는 기간에도 코비드 사태 때문에 업무에서 빠지지 못했던 것이 이번 3년 차들이다 보니 수혁의 강의는 필수라 해도 좋았다.
더럽게 어려운 케이스만 잘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알아야 하는 케이스나 지식도 잘 풀어낸다는 것은, 이제 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었다.
특히 수혁의 제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달칵
멀리서, 복도를 따라 수혁 특유의 지팡이 짚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교수님, 저쪽입니다.”
“어. 근데 너네는 시간이 괜찮은 거야?”
“오전에 교수님이 싹 정리 해 주셔 가지고요. 신환이 오긴 할 텐데……. 한 40분 정도 괜찮습니다.”
“너도 분 단위로 사는구나.”
“정진하고 있습죠.”
그리고 안대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 뒤로 우르르 발걸음 소리도 들렸는데 아마도 센터 사람들일 터였다.
다들 의학에 미치기라도 했는데 시간이 나면 쉬어야 할 펠로우, 임상 강사들임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거리만 있다고 하면 달려오지 않던가.
그들을 보는 레지던트들은 절로 두 부류로 갈렸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치열하게 살아야지.’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할까.’
당연하게도 전자는 적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저렇게까지 하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 와중이니까.
저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넘어선 무엇의 경지였다.
일례로 안대훈의 머리를 보라.
아니, 김성진을 보라.
‘저 선생님도 슬슬…….’
안대훈과 죽이 딱딱 맞아서 돌아간다더니 머리통도 맞아 돌아가는 건지 뭔지 뭔가 날아가고 있었다.
“와, 다 와 있네? 이제 병원일 손 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오가는 와중에 수혁이 들어섰다.
말이 강의실이지, 내과 3년 차만을 위한 강의다 보니 일종의 컨퍼런스 룸을 빌려 둔 참이었다.
거기에 레지던트들이나 펠로우들까지 들어와 있다 보니 북적북적한 것을 넘어서 뭔가 꽉 찬 느낌마저 들었다.
답답하다고 해야 하나?
“교수님 강의가 워낙에 명강의 아닙니까.”
의문을 표하는 수혁을 향해 안대훈이 딸랑거렸다.
“무슨…… 너네 협박한 건 아니지?”
“하늘에 맹세코 아닙니다.”
“맹세 그거 함부로 하는 거 아닌데.”
“교수님 이름도 아니고 하늘에 대고 하는 건데요, 뭐.”
“하.”
수혁은 그런 안대훈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대훈은 그런 수혁의 한숨을 느끼며 옆에 있는 김성진을 바라보았다.
‘좋아하시죠?’
‘응. 입가는 웃으셨어.’
하루 이틀 보나.
수혁이 아닌 척하면서도 아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적어도 센터 내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걸 굳이 밖에서 나불대지 않는 건, 수혁의 위신을 생각해서였다.
하여간 수혁은 그렇게 앞으로 나서서 강의를 시작했다.
“제일 어려운 부분이 어디냐고 했더니 역시 심전도더라고.”
분과별로 난이도가 좀 차이가 나는 편이었다.
깊이 들이파다 보면 뭐 다 어렵지만 적어도 전문의 시험 수준에서는 그렇다 이 말이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심전도였다.
신장의 생리 작용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역시 전기와 관련된 심전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으음.”
“으으음.”
이게 비단 레지던트들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보니 컨퍼런스 룸에는 학생들도 들어와 있었다.
전문의 시험 좀 전에 의사 고시도 있지 않나.
원래 같으면 당연히 의사 고시를 위한 강의가 따로 있어야겠지만 오히려 그건 또 없었다.
떨어지면 좀 이상한 애고 붙는 게 당연한 거란 인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화 의과 대학 정도쯤 되면 따로 그런 거 안 해도 다 붙어야 한다는 다분히 꼰대스러운 인식 때문이었다.
‘아니…… 그래도 이런 양질의 강의는 학생들한테도 줘야지…….’
그러나 태화 의과 대학생이라고 해서 뭐 심전도가 절로 이해가 되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4를 대표해서 3명이 들어와 있었다.
녹화 및 녹음 장비를 가지고서였는데, 레지던트들도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허용을 해 주었다.
수혁이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일거수일투족이 영상이나 사진으로 뿌려지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별 저항감도 없었다.
“심방과 심실의 전기 신호를 일단 구분하는 것이 중요해요. 잘 봐요. 이렇게…… 이렇게 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기 그지없이 강연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편히 앉아 있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하윤이 그랬다.
명색이 홈마이지 않나.
어쩐지 찍은 사진 중 태반은 쓰이지 않고 있긴 한데…….
그럼에도 주어진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니만큼, 홈마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찰칵
그렇게 렌즈를 통해 수혁의 모습을 남기다 보면 뭔가 다른 감정이 싹틀 것이라는 게 신현태의 생각이지 않았나.
아니, 그만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수혁의 심복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흐음…….’
딱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윤이 이 일을 하면서 수혁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확실히 교수님은…… 천재다. 강연하는데 어떻게 아예 저는 대사가 하나도 없지?’
지금 강의하는 수준이 교수급에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 건 맞았다.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강의하는 게 당연하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지 않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 일단…… 이번 시간 심전도는 이렇게 정리할까. 좀 알겠어요, 이제?”
“네, 교수님!”
“대답은 잘하는데……. 나중에 만나면 물어볼 거야.”
“지금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하여간, 수혁은 대략 40분 동안 심전도의 기초부터 실전 응용 및 판독에 대해 떠들어 댄 후 마이크에서 입을 뗐다.
그러곤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신환 본다고 했지? 40분 뒤에.”
“아…… 소인의 작은 말을 어찌.”
“40분 맞아, 안 맞아.”
“맞습니다. 마침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럼 갈까?”
“신명을 다해 뫼시겠나이다.”
“하.”
컴퓨터로 계산한 것처럼 정확한 시간에 강의를 끝낸 참이었다.
다른 레지던트 3년 차들이야 방금 들었던 내용을 곱씹거나,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어 이어지는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하윤은 예외였다.
-저는 그럼 어쩌죠?
심전도를 완전히 잘해서는 아니었다.
-넌 따로 해 달라고 하자.
-네? 그건 너무 민폐 아닐까요?
신현태, 이현종 그리고 조태진 등의 계략 때문이었다.
-민폐가 아니라…… 옳지. 걔 강의가 워낙에 좋잖냐.
-그렇죠. 좋죠, 그래서 제가 그 시간을…….
-따로 아예 영상을 찍어 두려고 해. 현장 강의가 가능하면 당연히 현장에서 들어야겠지만, 웹에 올려놓으면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겠지.
-아……?
-그거 찍을 때 가서 들어. 아무래도 듣는 사람이 있어야 수혁이도 신나서 하지.
-아…… 네.
신현태는 자신의 계략대로 따로 움직이고 있는 하윤을 보고 있었다.
명색이 원장임에도 불구하고 벽에 숨어서였다.
“원장님, 이게 좀 체신머리 없어 보이는데요?”
그 뒤에는 조태진이 있었다.
“체신머리가 뭐가 중요해. 수혁이 장가 안 보낼 거야?”
“보내긴 해야죠. 근데 장가가면 안 그래도 바쁜데 우리랑 더 안 놀아 주는 거 아니에요?”
“어……? 그런가……?”
“그러니까요. 쟤가 꼭 연애를 해야 하나? 뭐 그런 의문이 있습니다, 저는.”
둘은 기껏 계략을 펼친 주제에 내적 갈등에 의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미친 소리 그만해! 지들은 멀쩡히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잘 살면서.”
다행한 일은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이현종이 제일 제정신이라는 점이었다.
“이 새끼들이 말야, 어? 간신히 하윤이가 수혁이한테 관심이 생긴 거 같은데. 꼭 연애를 해야 하냐고? 너네 인마 독수공방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어?”
물론 개인적인 경험 때문도 있었다.
말 그대로 이현종은 독수공방을 수십 년간 해 온 사람 아닌가.
그때야 공부하고 환자보고 또 연구하느라 외로운 줄도 모르는 줄 알고 살았다지만…….
막상 이기자 교수와 같이 살아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뭐…….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이현종이 그렇게 살았으니까.
“우리 수혁이…… 연애하고 싶다잖아…….”
하지만 수혁이는 암만 봐도 연애를 원하고 있었다.
원하는데 안 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겠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그냥 두겠는데…….
저 미친놈이 자꾸 부딪친 다음에 연애를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큰 문제였다.
“아, 알았어. 사실 이 계획 내가 짠 거 알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인마. 사귄다고 결혼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있어? 너네 수혁이랑 대화 해 봤으면 알잖아. 쟤가…… 좀 깨는 면이 있다구.”
“그건…… 그건 부정하기 어렵지.”
“의학에 미쳐 버려서 그런 거 아닙니까?”
“게다가 상대는 우하윤이다. 우리 기수에 이기자가 있었다면 지금은 우하윤이 있지.”
조태진과 신현태는 이현종의 말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암만 봐도 이기자 교수보다는 우하윤의 위상이 높아서 그랬다.
다만 둘 다 이런 얘기를 굳이 미친 사람의 일종인 이현종 앞에서 떠들 만큼 정신없는 사람들은 아니다 보니 입을 다물었다.
“어어, 간다.”
“따라가자.”
“네네.”
그렇게 떠들고 있으려니 수혁이 어느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하윤도 따라 탔는데, 카메라는 두고서였다.
너무 근접 샷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칼같이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 앞으로 세 명의 교수가 누가 봐도 수상쩍게 몸을 숙인 채로 접근했다.
“교수님들 뭐 하시는 거야?”
“몰라, 저분들은 참 좋겠어. 병원이 놀이터야.”
“실력도 좋은데 놀기도 잘하고…… 근데 숨바꼭질하시나?”
학생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셋은 몸을 더 웅크린 채로 시설팀에 전화를 걸었다.
“어, 방금 본관 쪽 엘리베이터 CCTV 좀 보지.”
“네?”
“이수혁 교수 몇 층에서 내리는지만 알려 줘.”
“아아. 원장님이시구나. 네네. 알겠습니다.”
이 또한 범상한 통화는 아니었지만, 시설팀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층입니다. 응급실 가시나 본데요?”
“어떻게 확신하지?”
“발걸음이 가벼우세요. 응급실 환자 보시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지. 그게 우리 수혁이지.”
이번 원장단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는 또라이라는 걸 이미 익히 알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원장님?”
“네.”
“그분은 좋겠어. 동화 속에 사나 봐.”
“그 정도로 병원을 즐겨야 원장까지 올라가는 모양입니다.”
“뭐…… 일도 잘하시니까, 우리는 잘됐지.”
“그러니까요.”
신현태는 본인에 대한 소문이 요즘 들어 이현종의 그것을 넘어 서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1층 응급실로 향했다.
수혁을 아니, 정확히 말해 수혁과 하윤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