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43화 (1,043/1,303)

1043화 우하윤 (2)

달그닥

수혁은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향했다.

한때 코비드 때문에 북적이다 못해 혼란스럽기까지 했던 응급실은 이제 많이 정상화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소아 응급실로 쓰던 곳을 코비드 의심 환자를 진료하는 곳으로 할애한 덕이고 그 때문에 성인 응급실에 소아들도 오게 되긴 했지만…….

모두가 이용에 적어도 한 시간 가까이 지연이 되었던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다고 볼 수 있었다.

‘삼촌이 발 빠르게 움직였지……. 김다현 이사장님도 힘 실어 주었고.’

[아마 지금 이만큼이나마 돌아가고 있는 응급실도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수혁은 안대훈이 열어 준 문을 통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시끌했다.

서울 시내 환자들 중 절반 정도가 다 와서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단순 과장은 아닐 터였다.

안 돌아가는 곳도 많으니까.

“휘유…….”

수혁은 안으로 들어오면서 한숨을 쉬었다.

말이 한숨이지 수혁을 잘 아는 사람은 환호라 생각할 것이 뻔한 소리였다.

‘교수님 눈 돌아간다.’

쇼핑 좋아하는 사람들이 백화점 행사 기간에 가면 신나서 돌아다니지 않던가?

이걸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이 맞나 싶을 수도 있는데…….

‘교수님한테는 맞아.’

안대훈은 후후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한눈팔지 말자…….’

[네, 일단 왔다는 환자한테 가자구요.]

‘그래.’

수혁은 눈을 좌우로 돌리지 않는데 신경 쓰면서 방금 전원 왔다는 환자에게로 곧장 향했다.

‘그래도, 이따가는 괜찮지?’

[그럼요. 환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바루다의 눈길을 따라 수혁은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코비드 사태가 한창일 때는 무슨 수도승 같은 몰골을 하고 돌아다니더니만, 이젠 도로 번쩍이는 머리로 돌아온 지 한참이었다.

[우리 머리 얘기하려는 게 아닌데요?]

‘아, 그래. 대훈이 실력이 많이 늘었지.’

[그럼요. 사실상 에이스입니다.]

‘그래. 우리의 미래지.’

말 그대로 번쩍이는 미래…….

수혁은 저 번쩍이는 녀석이 보여 주었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떠올렸다.

원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코비드 사태는 사태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상황이지 않았나.

자의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도 몰아붙여지는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 이 말이었다.

그 결과, 안대훈은 그야말로 미친 듯한 성장을 해 왔다.

‘어지간한 환자면 가이드라인만 잡아 줘도 알아서 할 거야.’

[네. 근데 너무 응급실 환자 보고 싶어서 대충 넘기진 말고요.]

‘어어. 내가 애냐, 무슨.’

수혁은 속으로 남들은 절대 생각하지 못할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하윤과 신현태 일당의 눈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하윤이야 일이니까 카메라로 찍고 있을 뿐이다 보니 별다른 감상이 없었지만…….

“저놈……. 왜 응급실만 오면 변태 같은 눈이 되지?”

누구보다 수혁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인 이현종부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한 아들인데, 지금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울 거 같은 아들이 되어 있었다.

나만 그런가 하고 신현태를 돌아보았더니 신현태는 숫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몰라……. 형 아들이잖아. 난 못 보겠다……. 군침은 왜 다시는 거야…….”

“저는 저런 수혁이도 귀엽습니다만.”

조태진만이 악으로 깡으로 귀엽다고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솔직했다.

“인상 쓰면서 그런 소리 해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거든?”

“제가요?”

“거울.”

“윽.”

그렇게 극렬 수혁 빠돌이조차 절레절레하게 된 상황을 초래한 수혁은 여전히 후후 웃으면서 아니, 간신히 웃음을 지워 가면서 환자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환자 앞에서 실실 웃을 정도로 정신이 나간 건 아니어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환자분, 다리가 저리세요?”

“아……. 네. 이상해요. 저 진짜 큰일…… 큰일 난 거 같은데.”

말이 전원이지, 태화 의료원 신경외과에서 입원 치료하다가 퇴원시킨 후 증상이 다시 생겨서 로컬에서 보내온 참이었다.

다시 말해 원래도 태화 병원 환자라는 얘기였다.

그 말은 곧 이쪽에서 오진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태화에서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나.

수혁을 전면에 내세운 상태로 홍보를 해 와서 더 그렇게 된 참이었다.

이제 태화는 적어도 절박한 환자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신뢰의 아이콘이었다.

“흐음…….”

수혁이 턱을 짚자, 안대훈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26세 남환, 열흘 전부터 발생한 양쪽 하지의 저림 및 진행하는 마비를 주소로 본원 신경외과 외래 내원하여 입원하였습니다. 당시 시행한 MRI에서 척수에 고강도 신호가 보여서 척수염으로 진단 후 이에 대해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치료에 대해 호전을 보이고, 또 환자가 원해서 집 근처 병원으로 전원 조치하였으나 치료 종결 후 바로 증상 재발하여 응급실 통해 내원하였습니다.”

깔끔하면서도 필요한 정보는 다 들어가 있는 노티였다.

과연 안대훈이었다.

아니, 이 정도는 해 줘야 했다.

통합진료센터가 후루꾸로 돌아가는 센터는 아니지 않나.

“흠. 그때 척수염으로 생각을 했다, 이거지.”

“네.”

“척수염이라……. 일단 환자 검사해 볼까?”

“네네.”

수혁의 말에 안대훈이 나섰다.

수혁은 그런 안대훈과 환자를 면밀히 살폈다.

‘척수염이 맞는다면……. 골치는 아파도 그렇게 응급한 상태는 아니지.’

[아니라면…….]

‘아니라면 종양이나 외상에 의한 변화일 텐데, 영상을 찍었잖아. 영상에서 보일 수 있는 질환에서 실수가 있었을까?’

[생각하기 어렵군요. 재발 또는 불완전한 치료로 인한 증상의 재현으로 판단하는 편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그렇지.’

이렇게 뒤로 살짝 빠질 수 있는 근거는 당연히 환자 상태에 있었다.

일단 바이털도 지극히 안정적이지 않나.

게다가…….

수혁이 뒤로 물러났다고 해서 환자를 내깔기는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안대훈의 실력 또한 만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환자분……. 신경학적인 검사를 시행하겠습니다.”

“네네. 제발…….”

안대훈은 침착하게 신경학적인 검사를 이어 나갔다.

모터 기능부터 해서 비정상적인 반사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 결과 모터 즉 완력은 5전 만점에 3점이 나왔다.

“바빈스키, 오펜하임 검사에서 양성입니다.”

“흐음. 내가 봐도 그래.”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만한 검사였다.

그리고 동시에 여전히 환자의 검사는 척수 횡단염을 가리키고 있었다.

‘흐음…….’

[으음…….]

‘역시 그건가?’

[다른 질환을 의심할 만한 소견은 아직 없습니다. 우선은 원래 진행했던 치료를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이럴 때도 있는 것이지.

모든 케이스가 어찌 희귀한 케이스일 수 있겠나.

사실 단순한 케이스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맞았다.

“안대훈 선생?”

“네.”

“인사이트는?”

“급성 횡단성 척수염입니다.”

“그에 대해 치료하다가 증상이 재발했는데?”

“종결 처리를 하고 재발했고, 증상과 검사 소견 모두 척수염을 시사합니다. 동시에 MRI에서도 척수염을 시사하는 소견을 보였습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열어 두기는 해야겠지만 지금 다른 질환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적다고 생각합니다.”

캬.

다소 평범해 보이는 케이스에 실망했던 수혁의 얼굴에 즐거운 파동이 천천히 번져 나가고 있었다.

‘이 새끼 똑 부러지는 거 봐라.’

[진짜 머리 광나는 만큼 뇌도 빛나게 되는 걸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답변은 나와 동급이야.’

[맞습니다. 보시죠, 뒤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감복했습니다.]

‘좋군. 좋아.’

청출어람까지는 아무래도 어렵긴 할 터였다.

타고난 자질은 어떨지 몰라도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있었으니까.

일반적인 상황에서 바루다가 있고 없고는 과연 절대적일 수밖에 없지 않던가.

허나…….

확실히 안대훈은 키울 맛이 나는 제자라 할 수 있었다.

‘교수님……. 안대훈 선배를 진짜 좋아하시네……. 참 특이하시다니까.’

이 지점에서는 우하윤도 사진 찍는 데만 집중하기는 아무래도 좀 어려웠다.

대화가 잘 들리지 않는 위치에 있다 보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보기엔 젊은 교수가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제자를 대견해하다 못해 애정하는 모습이었으니까.

“저놈 저거…….”

“안대훈이 여자였어야 해.”

“그러니까요. 대훈이가 수혁이 취향인 거 같기도 하고요.”

“야…… 아무리 그래도.”

“아니, 형 보라고. 저건 사랑이야.”

“저도 동의합니다. 사랑이에요.”

“하아.”

이현종의 한숨이 응급실을 채워 나가는 동안, 수혁은 웃는 것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치료는?”

“일단 만니톨과 글루코코르티코이드로 치료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관찰은?”

“방금 시행했던 검사를 매일 오전 오후로 시행하면서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 변화 추이까지 고려해 증상 호전 여부를 봐야 합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네, 교수님!”

교수 수준.

아니, 대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잔뼈가 굵은 사람 수준은 되는 답이었다.

그에 더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성실한 놈이지 않나?

수혁은 이제 안대훈이 실수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럼…….’

[다른 환자를 좀 볼까요?]

‘좋지.’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급실을 돌아보았다.

환자와 안대훈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잠시 잊게 되었을 뿐, 안은 여전히 혼잡스럽기 그지없었다.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이기도 했고, 또 수혁과 홍보팀 때문에라도 어려운 환자가 몰려오고 있어서 그랬다.

“저거 또 웃네.”

“다른 환자 보겠지.”

“뻔하죠. 응급실까지 왔는데……. 어떻게 그냥 가겠어요.”

“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건 형도 그런데? 그래서 연애 못 했잖아. 나름 엘리트였는데…….”

“저도 들었습니다. 진짜 이상하셨다고. 지금 수혁이는 댈 것도 아니었다면서요.”

이현종은 변태처럼 웃으며 응급실을 돌아보고 있는 수혁과 자신을 저거보다 더 이상했다고 비난하고 있는 두 놈을 돌아보았다.

“뭔 소리야?”

“성질 더러운 수혁이가 딱 형이었지.”

“와……. 거기에 얼굴도 좀 더 못났어. 쉴드의 여지…… 으악.”

“소리 지르지 마, 걸리면 어쩌려고.”

“때리질 마!”

“그러니까요.”

그들이 때리고 맞고를 주고받는 사이, 수혁의 눈에 한 사람의 환자가 포착되었다.

딱 봐도 많이 아파 보였다.

옆에 의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있긴 있었다.

쩔쩔매는 얼굴로.

‘교수지?’

[네,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얼굴입니다.]

‘근데 저런 얼굴이라는 건…….’

[어려운 환자다 이 말이죠.]

‘가자. 별거 아니더라도, 저 양반이 모르는 거 해결해 줄 수 있으면 의미가 있지.’

[이를 말입니까. 잘난 척이라도 할 수 있겠죠.]

‘환자도 고치고, 잘난 척도 하고. 일석이조네.’

수혁은 그런 둘을 향해 교수와는 정반대되는 얼굴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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