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46화 (1,046/1,303)

1046화 우하윤 (5)

하윤도 눈이 있었다.

동시에 통합진료센터를 꿈꾸는 인재이니만큼 환자가 있으면 그 환자를 집중해서 보는 습관이 생긴 지 오래였다.

그 환자가 내 환자냐 아니냐 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려운가, 그렇지 않은가.

오직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아……. 저건…… 말기…….’

그래 봐야 거리가 있다 보니 대강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환자 상태는 최악이었다.

고칠 수 있냐가 아니라 얼마나 남았냐를 먼저 떠올려야 할 정도로.

“아…….”

안에 있던 오형석 교수 또한 넘어온 영상을 보자마자 탄식부터 내뱉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숫제 넘어질 뻔했다.

그럴 만도 한 상황이었다.

부신의 암은 예후가 그렇지 않아도 별로 좋지 못했으니까.

근데 국소 종양 크기도 크고 다른 곳으로 마구마구 전이가 되어 있지 않나.

“이거……. 이걸 어찌……. 어떻게 말씀을…….”

그러곤 탄식 어린 얼굴을 한 채 이제 막 원래 있던 곳으로 이송되고 있는 이모를 바라보았다.

말이 이모지, 엄마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보니 그야말로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었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사무치는 순간이었다.

거기에 더해 죄책감이 오형석 교수의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기실 대학 병원, 그중에서도 태화 의료원에서 일하다 보면 흔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살려 오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이 죽어 나가는 곳이니까.

“아니, 잠시만요.”

수혁은 그런 오형석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거의 정반대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네…….”

물론 오 교수는 수혁의 얼굴을 확인할 경황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아예 없네.]

‘그럴 만하지. 나도…… 우리 보육원장님, 사모님 아프시다고 했을 때 정신없었잖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뭐…… 수혁이 인간성이 아주 대단하진 않으니까 당연한가.]

‘뭔…… 뭔 소리야.’

[아무튼, 지금 오 교수가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고자 했던 말 하시죠.]

‘아, 그래. 그래야겠다.’

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수혁이 딱히 말을 안 하자, 이상해서 수혁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닌가.

적어도 병원에서는 그랬다.

“환자분 암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러는 거죠?”

“네?”

해서 보고 있으려니 수혁이 이상한 말을 꺼냈다.

아니, 당연한 거 아닌가.

환자는 고령이고, 10kg이 이유 없이 빠졌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대부분의 의사들은 암을 떠올릴 터였다.

나이별로 호발하는 질환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70대에서는 아무래도 암이 흔하기에 그랬다.

“아니…….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환자의 영상을 잘 보시죠.”

“그…… 네.”

이제 환자는 아까 있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홀로 응급실에 남게 된 환자들이 보통 그러하듯 천장을 먼눈을 하고 바라보는 중이었다.

무슨 생각이 오가고 있을까.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버킷 리스트는 이루고 싶다?

아니면, 그저 남겨질 이들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었다.

오형석 교수는 그런 환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수혁의 말에 따라 영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암이…… 아니라고? 이게?’

수혁은 천재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진짜 천재.

이제 와서 그의 천재성을 의심한다면, 그건 미친놈이거나 뭣도 모르는 놈일 터였다.

적어도 태화에서 교수질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코비드…… 이 사람 아니었으면 1년은 더 길어졌을걸…….’

전 세계를 덮친 감염병에서 한 사람의 위력이 뭐 그렇게까지나 되겠냐는 말들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태 초창기부터 질환의 성질과 경과 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치료 지침을 수립해 냈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위업이었다.

아마 외국에서도 알 만한 놈들은 다 알지 않을까?

하지만, 이 영상은 아무리 봐도 암이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오형석 교수 본인이 혈액종양내과 교수이기에 오히려 이 생각이 좀체 지워지질 않았다.

“우측 부신에 6cm가 넘어가는 종괴가 있습니다. 보이시죠?”

“아, 네.”

수혁은 그런 오형석을 보면서 일부러 종양이 아니라 종괴라 했다.

그러곤 방금 언급한 종괴에 동그라미를 켰다.

“이게 악성 종양이라면 주변부 부신을 부수면서…… 두 가지, 전혀 상반된 증상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하나는 급작스러운 파괴로 인한 아드레날린 폭풍이죠. 이건 넘어가겠습니다. 만약 발생했다면 이미 사망하셨을 테니까요.”

“아. 아아…… 그렇죠. 그렇습니다.”

부신은 신장 천장에 들러붙은 아주 작은 장기였다.

방금 언급한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각종 코티졸 등의 스트레스성 호르몬들을 분비하는, 우리의 생존에 있어 아주 필수적인 장기다.

근데 이게 갑자기 파괴되면서 안에 이미 만들어져 있던 이러한 물질들이 피로 흘러 나가게 된다면 어찌 될까.

과도한 혈압 상승 등을 이유로 급사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게 악성 종양이라고 보면 이 상황이 훨씬 흔하겠죠? 천천히 자라면서 부신의 기능을 파괴했다고 봅시다.”

“아…… 그럼…….”

“스테로이드가 부족한 상황이 되었을 겁니다. 힘이 없다거나 하는 증상이 꽤 오랫동안 지속이 되었겠죠. 이 정도면 본격적으로 파괴가 시작된 지도 최소 반년 내지 1년은 되었을 테니까요. 물론 종양마다 활성도가 다르기 때문에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만, 보통은 그렇단 얘기입니다.”

“그렇죠. 어…… 근데 제가 전에 찾아뵌 게 반년 전인가 그런데……. 그때는 딱히 잘 몰랐습니다. 체중 감소는 상당히 최근에 일어난…….”

혈액종양내과 의사로서 완고한 정의를 내리고 있던 오형석의 생각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된 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는 걸 감안해 보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만큼 수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힘이 있었다.

“네, 그렇죠. 기간이 짧을 거란 얘기가 됩니다. 그리고,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부신의 파괴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을 거란 가설을 세울 수 있죠.”

“이게…… 그럼 양성……? 아닌데. 양성의 모양은 전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아니죠. 확실히 전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양성 종양은 절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죠.”

“그럼 역시…….”

“아뇨. 확진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또 들여다봐야 할 증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 증상이죠?”

오형석 교수는 원래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더랬다.

거기에 더해 영상을 보자마자 맛이 갔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 되었었는데, 수혁 덕에 간신히 회복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 말은 곧 아직 제정신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주 중요한 증상을 놓치고 있었다.

아니, 제정신이었다고 해도 놓칠 수는 있는 종류의 증상이긴 했다.

사실 환자가 거의 암이라는 답지를 들고 달려온 수준이었다 보니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

“발열.”

“열……. 하지만 이 정도 암에서는, 게다가 부신이지 않습니까”

“만약 호르몬이 관련되어 있다면 발열에 더해 혈압도 떠야 할 겁니다. 근데 환자 혈압은 정상보다도 낮아요.”

“아……. 그럼 이 열이 왜?”

“보통 열이 왜 나죠?”

수혁은 천천히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가면서 말을 이어 가는 와중이었다.

그게 아무리 ‘천천히’라고 해 봐야 거리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어느새 환자가 있던 곳 근방에 와 있었다.

당연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주변에 있던 의료진들 일부가 모여 있었다.

‘이수혁 교수님이다…….’

‘코비드 때 거의 안 내려오셔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배움의 장이다, 이놈들아.’

수혁의 진료, 그중에서도 이러한 팝업 진료의 위력은 이미 유명해서 그랬다.

“열은…….”

“열은 감염에서 나죠.”

“감염……. 암 환자에서 2차 감염은 흔하죠.”

하여간, 수혁의 말에 오형석 교수는 여전히 죽을 거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암이라는 진단명이 너무 짙게 자리해 버려서 그런가 계속 암과 연관해서만 생각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환자의 손을 떠올려 보시죠.”

“손이요?”

오형석 교수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이모의 손을 생각해 보니, 그 울퉁불퉁해진 손을 떠올려 보니, 험악했을 인생이 떠올라서 그랬다.

‘너무 감성적이신데.’

[수혁이 너무 이성적이라는 생각은 안 듭니까?]

‘의사는 이성적이어야지. 그래야 환자를 살리지.’

[그렇긴 한데…….]

‘이러한 이유로 가족은 치료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말을 바루다가 집어삼켰다.

아무튼, 이대로 감성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응급실에는 환자가 많았으니.

그것도 처치 곤란일 정도로 많았다.

뭔가 빨리빨리 해 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류마티스 질환이 있었죠. 약을 드시고 있었고요.”

“아.”

“지금 받아 보니……. 스테로이드를 드시고 있었네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작지 않은 용량으로.”

“그 말은…….”

“감염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 환자를 볼까요.”

“음.”

오형석 교수가 조용해지자, 다들 조용해졌다.

아무 말 없이 수혁의 말만 기다리고 있단 얘기였다.

“환자는 발열과 낮은 혈압…… 그리고 부신의 종괴가 있습니다. 이걸 감염이라고 생각해 보죠. 감염에 취약한 상황이니까요.”

“아.”

“이렇게 보면 기간도 더 잘 들어맞습니다. 왜냐. 감염은 더 급작스럽게 체중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까요. 발열 외에 다른 증상이 없는 건, 환자의 나이와 오랜 기간 처방받은, 심지어 지금도 복용 중인 스테로이드를 떠올리면 해석이 쉬울 겁니다.”

“아…….”

수혁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여기저기서 ‘아’만 튀어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이렇게 들으니까 암보다는 감염병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말이 되나 싶은 수준이었던 질환이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교수님, 검사 결과입니다.”

그때 신도 간호사가 결과가 나왔음을 알렸다.

열어 보니 아까 나갔던 혈액 검사 결과가 떠 있었다.

다는 아니었다.

허나 수혁이 확인하고 싶었던 건 다 떠 있었다.

“역시. 백혈구 수치가 떴군요. crp도 10.6입니다. 급성 감염을 시사하는 소견이죠. 물론 암에서도 뜰 수 있겠지만……. 아직도 암을 1번 진단으로 두고 계시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뭘…….”

“배양 검사부터 나가야겠죠. 일단 경험적 항생제 때려 붓고요. PET CT는 우선 취소하시죠. 지금 당장은 고생만 하고 딱히 효용이 없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아, 아! 네! 감사…… 감사합니다!”

결국, 진료의 끝은 언제나 그러하듯 감사로 끝났다.

사실 암일 가능성이 완전히 소거된 것은 아니었지만…….

의학에 절대란 없는 법이었지만, 하여간, 오늘도 그랬다.

‘이럴 땐……. 진짜 멋있단 말이지.’

추종자 곁에 끼어 있던 하윤은 저도 모르게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하윤을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들도 그랬다.

‘진짜 되는 거 아니냐?’

‘그럼 대박인데…….’

‘근데 우창윤 교수도 우리가 이러는 거 알아요?’

‘알았으면 달려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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