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7화 개인 교습 (1)
수혁은 환자의 치료에 대해 어느 정도 가이드를 잡아 놓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배고프네.’
[간짜장?]
‘그거 코비드 때 너무 먹어서 좀 물리는데…… 더 비싼 거 먹고 싶다.’
[비싼 거……? 스시?]
‘그게 이렇게 막 먹을 수 있는 건가……?’
[인맥 쩔잖아요. 아 빨리. 나 생각나니까 뒤질 거 같어…….]
간짜장에서 스시로 튀다니.
급발진 수준도 정도가 있는 법 아닌가.
“어, 아빠. 나 스시 먹고 싶은데요.”
“어어. 우리 수혁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어야지.”
“근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울리지? 가까이에 있나? 오늘 퇴근 일찍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어. 그렇게 들려? 이상하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와 영향을 주고받은 지도 이제 한참이나 지난 상황 아니던가.
그렇다 보니 별생각 없이 스시를 주문했다.
범상치 않은 사람답게 배달 앱을 여는 대신 이현종을 동원했다.
“아무튼, 좀만 기다려 봐. 기깔 나는 것으로 대령할게. 근데 혼자 먹니?”
“응? 혼자지. 센터 사람 없으면 혼자지. 뭔 소리예요?”
“어……. 어어, 그렇지, 보통은……?”
이현종은 부리나케 응급실 스테이션을 벗어나면서 말을 이었다.
수혁이가 이상한 데서 또 예민하지 않던가.
걸리면 이거 참 뭐라도 변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현종은 뒤를 힐끔거렸다.
거기엔 우하윤이 있었다.
“그래도 한번 주변을 봐 봐. 응? 아는 사람 있으면 같이 먹어.”
“왜……?”
“그.”
왜냐고?
사람이, 아빠가 자식한테 응? 혼밥하지 말라는데 왜냐니…….
그게 할 법한 소리니, 수혁아…….
이현종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 점 또한 수혁을 애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 어쩌겠냐.
“그래. 혼자 먹다 보면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게 되겠지? 그럼 어떻게 돼?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더 먹게 된다고. 대사 질환이 생겨요. 너 안 그래도 나이에 비하면 약간……. 그 뭐냐. 수치가 안 좋잖아.”
“아하. 그건 설득력이 있네요. 그래요. 어디 보자……. 어? 하윤이가 여기 왜 와 있지?”
상대에 맞춰야 했다.
즉 의학적으로 풀어내면 된다, 이 말이었다.
확실히 잘 먹혀들어 갔다.
‘오……? 역시 아빠는 다른데.’
‘근데 수혁이가 왜 반존대를 쓰지? 너무 친해 보이네.’
신현태와 조태진은 그런 이현종을 보며 놀랐다.
약간 포인트가 서로 다르긴 했는데…….
하여간, 둘의 질시 어린 얼굴을 보면서, 이현종은 재빨리 입을 놀렸다.
“어어, 하윤이랑 먹어라. 걔 내년에 우리 센터 들어와야지.”
“아…… 그렇죠. 들어오기로 했죠.”
“응, 그러니까 미리미리 잘해 주라고.”
“저 잘해 주는데.”
“이…….”
이 새꺄…….
라는 말을 이현종은 간신히 씹어 삼켰다.
아니, 대체 떠먹여다 줘도…….
‘수혁이 실은 연애 따위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걔 최근에 구독 피드 본 적 있어요?’
‘아니……? 그걸 본 적이 있으면 이상한 거 아냐? 너…….’
‘스토킹한 거 아니고요. 홈마 노릇 하다가 우연히 본 겁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신현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내심 좀 궁금하긴 했다.
‘근데 뭐 보는데?’
해서 물었고, 조태진은 역시 원장님도 다 같은 종류의 인간 그러니까 미친 인간이라는 걸 확인했다는 얼굴로 답했다.
‘화려해요……. 모솔 벗어나는 법. 이 방법대로만 하면 무조건 여친 사귈 수 있습니다 등등. 아니 주야장천 그런 걸 보더라니까요?’
‘아휴, 우리 수혁이…… 근데 왜 저러는 거야?’
‘저도 모르죠. 아, 설마.’
‘설마 뭐.’
‘저게 밀어내기인가. 그 왜 있잖아요. 매력적으로 느껴지려면 당기기만 하면 안 된다고…….’
‘이런 미친. 상대가 뭔가 알게는 해야지.’
둘은 이내 낙담한 얼굴이 되어 한숨부터 내쉬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둘 다 그렇게 연애를 잘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긴 했다.
막말로 백날 천날 공부나 하고 진료나 했던 사람들이 대체 어찌 잘하겠나.
하지만 보통은 되었다.
보통은.
그게 중요했다.
“더 잘해 줘……. 하윤이가 에이스야. 하여간 내가 알아서 시켜 둘 테니까. 너는 그냥 하윤이랑 회의실이라도 가 있어. 응? 제발 그래라.”
“어, 알았어요. 네네.”
“그래……. 진짜 맛있는 거로 보낼게.”
이현종은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전화를 끊고는 부리나케 전화번호부를 뒤진 다음에 전화를 걸었다.
“어, 송 셰프.”
“네, 교수님. 어쩐 일이세요?”
대학 병원 교수로 살아가다 보면, 그중에서도 이현종처럼 대한민국에서 제일 심장을 잘 보는 의사로 살아가다 보면 은혜 갚을 사람들이 매일같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중엔 이런 식으로 원래 알던 사람도 있었다.
“배달…… 하나만 해 줄 수 있나……? 이런 부탁하는 거 셰프한테 못 할 짓이라는 거 아는데…….”
“배달이요? 그냥 오시죠. 아시잖습니까. 제 요리는 배달하면 맛이 떨어져서.”
“알지, 내 알지.”
송 셰프.
호텔 주방장 출신이면서 동시에 여는 가게마다 대박을 친, 말 그대로 강남 일대 스시 집에서 이 사람 모르면 간첩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걸출한 사람이었다.
‘뭐야, 이 사람도 알어?’
‘심장이 확실히…….’
둘의 질시 어린 눈을 애써 씹으면서, 이현종이 말했다.
‘만만한 사람 아니지…….’
어지간하면 내가 응? 생명의 은인인데 라는 식으로 뭉개겠지만, 그런 게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 아니겠나.
송 셰프가 그랬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도 될 만큼 실력도 있었고.
“내가 아들 얘기를 했던가……?”
“네? 아유, 요새 오시면 맨날 아들 얘기만 하시잖아요.”
“어, 그래.”
“정말 대단하다고……. 완전 천재라고.”
“어,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큰 문제지…….”
“네, 어떤?”
“애가 연애 고자야……. 내가 어떤 식으로든 엮어 주려는데 너무 어렵네. 이번 일이 그거 도와주려는 건데 어떻게 안 되나……?”
“아……. 음. 연애 고자라……. 이것. 옛 생각이 나는군요.”
“옛 생각?”
“아무튼, 알겠습니다. 아들 구해 주는 셈 치고 제가 진짜 멋진 도시락 바로 싸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오. 보내는 김에 5개 보내면 안 되…… 안 되나?”
“교수님…….”
“부탁이네.”
“알겠습니다.”
멋진 도시락이라는 말에 잠깐 눈알이 돌았던 이현종은 말도 안 되는 부탁에 또 다른 부탁을 얹고야 말았다.
다행히 송 셰프는 그런 부탁을 들어주었다.
“야, 어디로 갔어, 수혁이.”
“어……. 회의실요.”
“좀 으슥한 데로 가지…….”
“그게 아들한테 할 말입니까……? 하윤이도 제잔데.”
“그런다고 별일 생길 거 같으면 나도 안 이래.”
“하긴, 그건 그래.”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에게 수혁이 하윤을 데리고 들어간 회의실을 가리켰다.
정말로 회의실이었다.
한 20명 정도는 족히 들어갈 만한 회의실.
“그나저나 안에서 뭐 대화는 나누겠지?”
“생각보다 수혁이 말은 잘해요.”
“환자 보는 얘기?”
“그렇긴 하지.”
“그게 문제야, 인마.”
“왜……. 왜 가요. 엿듣게? 그러다 들키면?”
이현종은 홀린 듯 그 회의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겼다.
신현태와 조태진도 그를 말로만 말릴 뿐, 결과적으로는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주책바가지 아저씨들은 회의실 벽에 붙게 되었다.
“핑계는?”
“회진. 응급실.”
“음…….”
“그거 말고 뭐가 있어, 인마.”
“그래, 그렇게 가자.”
“오케이”
핑곗거리라고 생각해 낸 건 개판이었다.
하여간, 셋은 그렇게 귀를 기울였고 점차 안에서 새어 나오는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윤아.”
“네, 교수님.”
“공부는 잘되어 가니?”
“아…… 네.”
그와 동시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수혁아…….
네가 교수인 것은 맞지만, 나이 차는 딱 두 살 차이 아니니?
근데 왜 아득히 높은 교수나 할 법한 말을 꺼낸단 말이니.
“일등 해야지.”
“아,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아득히 높은 교수도 저따위 말은 안 한다.
이현종이나 되어야 가능할까?
‘뭐야, 왜 날 째려봐.’
어쩐지 이현종이 사람 하나 망가뜨렸단 느낌이 든 둘이 그를 노려보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근데 일등 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서 어째.”
“그러게 말이에요. 공부해야 하는데.”
혼내고 있었다.
기껏 이어 주려고 했더니. 혼를 내?
‘어어, 형 참아.’
‘참게 생겼어? 내가 지금 누구한테 어떤 부탁을.’
이현종이 어이가 없어서 달려들려는 찰나 수혁의 말이 이어졌다.
“너한테 워낙 기대가 많다 보니 이런저런 일 많이 내려오지?”
“어…… 네. 그렇죠. 사실 논문도 쓰고…… 교과서 집필도 하고요.”
“절대적으로 시간이 없을 때, 공부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거 알아?”
“어떤…… 공부요?”
빌드 업이었나 싶을 정도로 유려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공부지?’
‘형은 이 와중에 그게 궁금하냐?’
‘어째 잘하는데요? 유튜브 뭐 보더라?’
‘너는…… 이제 와서 그걸 왜 궁금해해.’
‘와이프 또 꼬시려고.’
‘미친…….’
세 아저씨들도 집중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하윤도 당연하게도 수혁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수혁이 공부 얘기를 꺼낸다면 이게 맞지 않겠나.
천재…….
아니, 천재들의 천재가 바로 수혁이니.
게다가 하윤은 신현태의 기대대로 점차 수혁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고 있는 마당이었다.
그 호감의 종류가 기대와 좀 다르다는 게 문제긴 했는데, 어차피 그 누구도 거기까지 바라진 않았으니 그저 흡족해해도 좋을 터였다.
“강의를 듣는 것도 방법이지. 근데 네가 의국장이라 녹화한다고 제대로 못 듣던데……. 어때. 어차피 나 제대로 녹화할 때 올 거라며. 그때 시간 낼 테니까 따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개인 교습해 줄게.”
“오……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럼. 넌 우리 에이스잖아. 키워야지.”
오호.
‘미친. 이 얘기하려고 이랬나?’
‘얘 생각보다 꾼인데요?’
‘알고 보니까 응? 바람둥이 아냐? 우리 수혁이?’
그냥 할 수 있는 소리를 한 것뿐일 텐데.
수혁에 대한 기대가 워낙에 낮아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세 아저씨도 같은 수준이라서 그럴까.
회의실 벽에 붙은 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야야, 쳐다보지 마. 옮는다.’
‘저게 무슨 병인데요?’
‘몰라. 근데 걸리고 싶진 않은데.’
그 모양새가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다 보니 은근히 지나던 이들이 다들 멀어지고 있었다.
“와,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
“글쎄. 일단 오늘은 내가 좀 바쁠 거 같아.”
“아, 응급실 다시 가시려고요?”
“그렇지. 요새 이런 시간이 좀 부족했어.”
“저도 같이 가도 돼요?”
“같이? 너 공부해야지.”
“케이스 공부도 좋죠.”
“좋아, 그럼. 밥 먹고 가자. 이것도 개인 교습이라고 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