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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048화 (1,048/1,303)

1048화 개인 교습 (2)

데이트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하여간 둘의 분위기를 더더욱 풀어 준 것은 이현종이 시켜 준 도시락이었다.

“와…….”

“이게 뭐야.”

[미친. 이게 배달이 된다고?]

강남에서도 하이엔드 급으로 대우받는 스시야의 오너 셰프가 생명의 은인에게 보은하는 기분으로 싼 도시락이지 않나.

더욱이 송 셰프는 한식에도 일가견이 있다 보니 퓨전 요리를 곧잘 하곤 했는데, 도시락에서 그 모든 기예를 풀어냈는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와.”

“진짜 맛있어요. 와…….”

[입 좀 다물라고 해 주시죠. 저는 이 감각을 박제하고 싶습니다……. 아, 왜 미각에 대한 데이터는 불완전하냐고…….]

비단 수혁이나 하윤 또는 바루다만 호들갑을 떨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여러 아저씨들도 회의실 옆에 마련되어 있는 골방 비슷한 곳에 들어가서 도시락을 음미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이 맛에 살지.”

“와…… 이게……. 전에 형이랑 갔을 때 이런 거 없었잖아?”

“두 분이서는 가셨어요? 저 섭섭한데요?”

“내가 인마 생명의 은인 아니냐. 가끔 보내 줘, 이런 식으로. 오늘은 특별히 힘을 더 준 거 같네.”

“나도 셰프님 하나 살려 드려야겠네.”

“저도요.”

어찌나 보는 즐거움도 있고 또 맛도 있는지 다들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의사 입장에서 살려 준다는 말이야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일단 신현태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태화 의료원에 와야 할 만큼 심각한 감염 질환을 앓아야 하지 않나.

조태진 같은 경우엔 숫제 혈액암에 걸려야 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둘도 없을 만한 저주라 이건데…….

이현종도 사실 정신이 없어서 그냥 먹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행복…….]

그렇게 삼십여 분간의 행복한 시간이 흘러가고, 바루다는 나른한 얼굴이 되어 드러누웠다.

인공지능 주제에 별 이상한 걸 다 구현한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수혁은 그따위 것을 인지하기엔 지금 너무 바빴다.

맛있는 밥을 하윤이와 먹은 데다가 이제 응급실로 갈 시간이지 않나.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순간일 수도 있는데, 수혁에게는 그야말로 행복사 해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응? 아냐. 아빠, 아니. 이현종 교수님이 시켜 준 건데 뭐.”

“아들이 부탁하니까 해 주시는 거 아니에요? 원래는 피자 같은 거밖에 안 쏘세요.”

“아……. 그렇긴 하지. 이기자 교수님하고 어디더라. 몰디브? 아, 맞네. 거기 신혼여행 가려고 돈 모으는 중이거든. 오늘 좀 타격이 있었을 거 같네.”

“아……. 신행도 가세요?”

“응? 그렇지, 뭐. 두 분은 신혼부부니까. 엄청 달달해. 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혁은 언젠가 암어 하트 브레이커 운운하면서 이기자 교수 앞에서 재롱떨던 이현종을 떠올렸다.

‘어후.’

[맛있는 거 먹고 밥맛 떨어지게…….]

수혁은 물론이거니와 바루다도 질색할 법한, 그런 장면이었다.

“아무튼, 갈까.”

“아, 네.”

“피곤하면 가서 쉬어도 돼.”

수혁은 기분 전환을 위해 응급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전 같았으면 그대로 쭉 갔을 텐데 수혁도 인간적인 성장을 이어 나가고 있는 마당이었다.

모두가 다 자기나 이현종처럼 환자 보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마침내 머리뿐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납득했다, 이 말이었다.

“아, 아뇨. 아직 7시도 안 됐는데요.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가자. 너도 잘 보다가 눈에 띄는 환자 있으면 말해 줘.”

“네, 교수님! 맡겨 주십쇼.”

하여간, 둘은 그렇게 응급실로 향했다.

회의실이라고 해 봐야 응급의학과 주최로 이루어지는 케이스 컨퍼런스가 주로 있는 곳이다 보니 사실상 응급실 안에 있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덕분에 둘은 곧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응급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호화스럽게 치장된 음식을 먹다가 와서 그런지 잠시 이세계로 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여기 산소!”

“야, 야! 더 세게 안 누르냐!”

“물 부어, 물! 안 보이잖아!”

그도 그럴 것이 죽어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여기서 불과 10분만 나가면 코엑스도 있고 한데, 이곳은…….

항상 이랬다.

‘통합진료센터로 가게 되면 이것보다 더하지…….’

하윤은 수혁의 뒤에 선 채,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물론 지금의 통합진료센터에는 수혁도 있고 이현종도 있다 보니 평온한 느낌이 더 들긴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보다 오히려 더 중한 환자들이 많지 않은가.

“어디…….”

그 와중에 수혁은 매의 눈을 하고서 응급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흠…….]

‘오늘따라 환자가 더 많네?’

[아뇨, 요새 계속 많긴 합니다. 코비드 막바지라곤 해도 아직 환자가 있다 보니…….]

‘하긴, 그쪽으로 여전히 인력이 좀 가 있지? 우리야 갈라놨으니 이만큼이라도 굴러가는 거고.’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더 둘러보시죠.]

‘오케이.’

중간에 잠시 딴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곧 침착을 되찾았다.

혹자는 그냥 이렇게 둘러보는 것만으로 뭘 알아낼 수 있냐고들 하겠지만.

환자의 생김새, 증세, 나이, 성별 그리고 그 환자를 대면하고 있는 의료진의 태도 및 얼굴 표정 등등…….

의외로 볼 게 많았다.

비단 바루다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환자를 보는 사람들은 병원마다 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수없이 많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넘어가.’

물론 수혁이나 이현종처럼 다른 병원에까지 가서 야단법석을 피우는 경우는 없겠지만…….

“내가! 내가 봤다고!”

그때 응급실 한구석에서 커다란 괴성이 울렸다.

응급실이라는 곳 자체가 워낙에 시끄러운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만한 고성이 오가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니기에 모두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과 그 옆을 지키고 선 남성 보호자 그리고 마주 선 의사 하나가 서 있었다.

“어, 어떻게 좀…….”

“네네. 약은 잘 드신 거죠?”

“네? 먹은 거 같은데…… 확실하진 않아요. 아무튼, 지금 좀.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이게.”

남성 보호자는 쩔쩔맨다는 말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듯,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환자를 붙잡은 채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문제는 의사도 쩔쩔매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신과……인가?’

[그런 거 같습니다. 보호자의 반응을 보면 유추할 수 있죠.]

응급실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소리치는 경우가 어디 드물던가.

특히 술에 취해서 오는 사람들은 머리 깨져서 피가 철철 나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간호사에게 시비를 걸거나 심지어 주먹질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왜 나는 안 봐 주냐는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응급한 질환을 보는 곳인데, 그냥 응급하게 봐 주는 곳이라는 오해가 쌓여서 생기는 일이라고 응급의학과 학회에서 하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어…… 정신과는 잘 모르잖아요?]

‘보니까 약이 안 듣는 모양인데.’

[정신과 질환 중에 약 안 듣는 질환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하아. 이것도 병이다, 병.]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중이었다.

어렴풋이 들려오던 대화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아까보다는 더 확실히 환자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내가 봤다니까! 그건 계시야. 내가 할 수 있어. 진짜로!”

“어어, 알았으니까. 여보……. 일단 좀 앉자.”

“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나는 계시를 받았어!”

“밥, 밥이라도 먹어야지!”

“배가 하나도 안 고픈데!”

우선 환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몸을 막 부산스럽게 움직이는데, 말 그대로 에너제틱했다.

마치 너덧 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기운이 뻗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조증 삽화 같은데…….’

[그러니까요. 다른 환자 보죠. 정신과는 공부만 했지, 정작 케이스는 안 봤잖아요!]

‘다른 질환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서 열심히 한 거잖아. 이 환자 정신과 질환이 아니라면 어쩌려고?’

[정신과 질환이면 어쩌려고요.]

평소와 달리, 환자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루다는 소극적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튀고 싶어 했다.

왜냐.

어떻게 봐도 수혁은 정신질환 진단에는 적합지가 않아서 그랬다.

명확한 증거만으로 움직이는 그에게 정신과 관련 증상은…… 아무래도 좀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직설적인 문답 또한 문제였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가 있었다.

“저기.”

“어…… 앗, 교수님.”

다행히 그러한 사실은 이미 수혁도 알고 있었다.

궁금해서 묻는 것인데 어쩐지 속상해하는 모습을, 그는 이미 여러 차례 본 바 있었다.

“환자 전에도 왔었나요?”

“아, 네. 2주 전쯤……. 그때는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습니다.”

“약은 뭘 썼죠?”

“기분 안정제, 발프로산나트륨하고 올란자핀 등을 처방했습니다.”

“근데 더 심해졌다는 거죠?”

“네.”

“흠.”

약은 꽤 세게 쓴 편이었다.

근데 증상이 더 심해졌다…….

“이 정도면 입원 인디케이션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보호자분 말이 벌써 3일가량 밥도 거의 안 먹었다고 합니다.”

“허. 3일.”

“네네.”

수혁은 3일이란 말에 환자를 다시 돌아보았다.

도저히 3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환자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나 가야 해!”

“아, 자꾸 어딜 가! 그리고 거긴 벽이야!”

“어? 어어. 그렇네. 그렇지. 이쪽!”

“아니, 거기도 벽이야! 자기야, 제발!”

그동안에도 한시도 가만히 서 있질 못했다.

계속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아주 격양된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아…… 가자고. 밖에 환자 많다니까.]

‘왜 너까지 가자고 해.’

[아니, 나는!]

‘농담이고. 잘 봐 봐.’

[뭘 봐요. 조증 삽화잖아요. 100% 조증인데. 약이 안 듣는 조증도 있기 마련 아닙니까. 전기 치료 같은 게 왜 있겠냐고…….]

‘아니, 잘 봐 봐.’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도 고개를 저어 가면서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가리켰다.

[뭘 봐…….]

바루다도 투덜거리긴 했지만, 하여간, 수혁이 괜히 이럴 놈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일단 들여다보긴 했다.

수혁은 그저 그렇게 가리키고만 있진 않았다.

‘방향성이 상실된 거처럼 보이지 않냐?’

[너무 격양되면 그럴 수 있죠.]

‘저 정도로? 방향 감각이 상실된 것처럼 보이잖아. 방금 보호자분이 우측이라고 했는데 반대쪽으로 갔어.’

[어……. 그렇긴 하네.]

‘뭐, 이것만으로 확신하는 건 어렵긴 해.’

조증이나 우울증과 같이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경우, 지능을 비롯한 여러 인지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건 이제 두말할 필요 없는 일이지 않나.

[하지만…… 저건 기질적 질환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허나 바루다의 말대로였다.

의학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법이니까.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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