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49화 (1,049/1,303)

1049화 개인 교습 (3)

기질적인 원인이 있을 때 이를 무시하고 다른 치료를 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치료가 안 되었다.

문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경우엔, 스스로 돌이키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보니 더한 치료를 하게 될 뿐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진단명부터 의심하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 죽지.’

[죽을 수 있죠. 특히 이 증상이 만약…… 기질적 질환에 의한 것이라면, 머리 쪽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지.’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공의에게 다가갔다.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으니 기껏해야 2년 차일 터였다.

정신과적인 지식과 경험만 놓고서라도 수혁에게 비할 바는 아니란 얘기였다.

물론 이런 얘기를 대놓고 했다가는 정신건강의학과 학회의 지탄을 피할 수 없겠지만…….

“아, 교수님. 지금 신동숙 님 오셨습니다.”

“신동숙 님? 아, 조증 삽화 환자. 왜? 더 심해졌어?”

전공의는 통화 중이었다.

교수랑인데, 목소리를 들어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오진승…….’

[나름 이쪽으로 일가견이 있죠.]

‘그렇지. 책도 쓰고. 유튜브도 하고.’

[아니, 환자를 잘 보는 편이라고요.]

‘어어, 그것도 있지.’

여러모로 유명한 사람인데, 제일 널리 알려진 사실이 있다면 착하다는 것이었다.

“네, 더 심해져서……. 아무래도 입원해야 할 거 같습니다. 입원장 낼까요? 지금 많이 이리터블한 상태입니다.”

“아……. 일단 내가 갈게. 나 아직 병원이라.”

“아, 네. 교수님.”

뭐, 교수가 원래 자기가 보던 환자가 안 좋아졌을 때 보러 오는 게 딱히 착해서는 아니긴 하지만.

하여간, 오진승 교수는 부리나케 밑으로 달려 내려왔다.

그러곤 환자가 아니라 수혁을 발견했다.

“어…….”

수혁.

이현종이 이상해지면 바로 진료 볼 수 있도록 안배해 둔 아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이상한 편견이 쌓여 있었다.

‘천재지. 하지만 천재와 미친놈은 한 끗 차이…….’

그냥저냥한 천재면 모르겠는데, 이 사람은 정도를 넘어간 천재 아닌가.

말 그대로 미친…… 미친 수준의 천재라 이 말이었다.

“아, 교수님.”

그에 비해 수혁은 편견이랄 게 없는 사람이었다.

아픈가 아닌가 정도가 사람을 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지 않나.

물론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그리고 안대훈까지 가면 좀 달라지긴 하겠지만, 하여간, 보통은 그랬다.

“네, 이수혁 교수님. 오랜, 오랜만입니다. 여긴 어쩐 일이신지.”

“아……. 이 환자분 때문에요.”

“이 환자분……. 신동숙 님이요?”

“네.”

응?

우리 환자를 왜 보셔?

‘통합진료센터가 다 보는 건 맞긴 한데……. 그래도 정신과 질환은 아니었잖아?’

정신과는 그 특성 때문에라도 다른 과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동시에 정신과에서조차 신체적, 기질적 질환의 가능성을 들여다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마음이라는 건 해석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었다.

언젠가는 그조차 수치로 볼 수 있는 날이 올는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 조증 환자를 어떻게 보시려고요……?”

“조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라니요.”

오진승 교수는 환자를 돌아보았다.

누가 봐도 조증 그 자체였다.

밥을 먹지 않아 퀭한 눈, 그러나 눈빛만은 반짝이는 것이 숫제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그리고 저 몸짓, 발짓.

또 말.

즉 말의 내용.

전형적이었다.

“조증 맞습니다, 교수님.”

“아닐 가능성도 있어요. 일단 약을 먹었는데 전혀 반응이 없지 않습니까.”

해서 조증이 맞는다는데 자꾸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짜증이 슬슬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현종 때문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아들 자랑만 하는 이현종이지만, 딱 한 명 오진승에게만은 약점을 말해 와서 그랬다.

‘지금도 딴 데 이상한 거 보는 거 같은데…….’

병리적인 현상이라고, 오진승은 확신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 머리통에 몇 년 전 박살 난 바루다가 들어가 있을 거라는 건 생각이나 할 수 있겠나.

“약에 잘 듣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건 그렇죠. 잘 안 듣는 경우엔 약을 바꾸기도 한다죠. 들어 보니 중간에 외래도 오셨던 거 같은데…….”

“네, 일주일간 약을 드셨는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을 바꿨습니다.”

“카르바마제핀에 리스페리돈……. 사실상 입원 치료 아닌가요.”

“입원 권유했는데 도망가셔서.”

“그랬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는 얘기가 되는데요.”

카르바마제핀에 리스페리돈까지 썼으면 사실 어지간한 조증은 조절이 되어야 정상이었다.

이 환자가 오래전부터 조증을 앓아 왔던 환자라면 또 모르겠지만…….

“게다가 이 환자분, 이번이 첫 번째 삽화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심하게, 약도 안 듣는 경우가 흔합니까?”

“그…….”

오진승은 자신도 모르게 수혁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눈이 어디라고 딱 짚기 어려운 부분과 자신의 눈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허나 이상한 점은 그뿐이었다.

물어 오는 질문 자체는 날카롭다 못해 비수 같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문외한이 까불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면 지금은 동급 혹은 하나 위의 교수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아뇨,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환자에 있어 나타나고 있는 이 증상이 혹 뇌의 기질적인 병변으로 인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합니다.”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납득이 되진 않았다.

‘교수님……. 정신과는 좀 어려운데.’

백날 천날 따라다니는 하윤조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지경이니 무리한 일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조증인데 아닐 수도 있다니.

그럼 대체 뭔 검사를 해야 하나.

아니, 어떤 질환을 의심해야 하나.

아무것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물론 뇌는 굉장히 중요한 곳이니만큼 어느 한 군데가 망가질 경우 저런 증상이 나타날 수는 있었다.

출혈이나 경색 또는 종양 등에 의해서도.

허나 이 정도로 사람이 변하려면 범위가 넓어야 했고, 그럼 보통은 바이털을 비롯한 여러 곳이 망가져야 했다.

‘그건 아니잖아……?’

하윤은 수혁의 뒤에 숨은 듯 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혁은 하윤이 아니라 오진승 교수 그리고 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원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여전히 서 있었다.

아니,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 모습을 계속에서 두 눈에 담고 있었다.

[확실히…… 경미한 수준의 운동 실조 증상이 관찰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해석도 하고 있었다.

바루다와 그가 지금껏 쌓아 올려 온 방대한 지식을 이용해서.

“환자를 보세요.”

“아까부터 보고 있어요.”

“그냥 보지만 말고…… 관찰을 하세요.”

“그…….”

그게 의사의 일입니다만.

따위의 말이 입 안을 맴돌았다.

맴돌기만 할 뿐 실제로 튀어 나가진 못한 건, 순전히 수혁 때문이었다.

수혁의 눈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저 사람은 환자에게서 뭔가 다른 걸 보고 있단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환자를 잘 보세요. 특히 발을 디딜 때.”

“발…… 발요?”

“네, 발.”

정신과 의사로 살아오면서 환자를 유심히 바라본 적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과보다도 환자 자체를 들여다봐야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과니까.

심지어 여전히 대다수의 진단을 검사가 아니라 설문과 대화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그 과정이 어렵기까지 했다.

허나 발을 본 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발 디디는 장면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발 디딜 때 어색하죠.”

“아…… 네, 조금?”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바닥의 높이가 실제 높이와 다를 때 저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수혁이 환자를 ‘본다’라고 표현할 때, 그 ‘본다’ 안에 들어가는 범위가 남들과는 아무래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바루다의 도움이 있기 전부터도 그랬다.

수혁의 관찰력은 애초부터 비상한 것이었다.

그걸 비상함을 넘어 이상한 수준까지 이끌어 낸 것은 바루다였지만.

“소뇌의 이상을 시사하죠. 그 외에도 대화 내용과 움직이는 걸 잘 들어 보면……. 환자는 방향 감각을 상실했거나 적어도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보호자분, 못 느끼셨나요?”

“어…… 그러고 보니. 자꾸 왼쪽으로 간다고 하고 이쪽으로. 벽으로 가려고 하고요.”

“조증이 왔을 때, 정신 운동성이 극대화되면서 신체가 이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방향 감각 상실이나 운동 실조 증상은 드물다 못해 거의 없죠. 맞나요?”

보호자에게 질문을 던졌던 수혁은 이제 오진승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 오진승은 그저 환자의 발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처음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환자만 그런 건지는 좀 헷갈렸지만.

“그, 그렇군요. 아니, 그렇습니다. 드물죠.”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MRI만 찍어 봐도 됩니다.”

“하지만 환자 상태가…….”

“안정제, 투입 안 할 겁니까? 어차피 드릴 거 아니었어요?”

안정제.

주로 정신과적 응급 시에 쓰이는 것인데, 지금 환자 상태가 딱 저랬다.

당최 앞으로 무슨 짓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겠지만, 일단 잠을 안 자고 계속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하지 않겠나.

저러다 죽거나 다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드리…… 드리긴 해야죠. 하지만 MRI가 이게 싼 검사도 아니고…….”

“이상이 나오면 보험 처리가 되죠. 혹 안 되면 제가 내겠습니다.”

“그…… 음.”

확실히 수혁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환자 보는 데 있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심이랄까?

하여간, 그러한 연고로 인해 일반인으로는 도저히 대응이 안 되기 마련이었다.

“제가 냅니다. 가죠.”

“그…… 아니, 이게. 잉? 벌써 예약이?”

“네. 아까 전화했어요.”

“아니…… 제가 반대하면 어쩌려고요? 제가 지정의인데.”

“반대……하실 거예요?”

“그건…… 그건 아닌데.”

막무가내.

하지만 그 사이엔 어마어마한 논리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적어도 오진승과 같은 정신과 의사가 혹시 이거 내가 생각하던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될 정도는 되었다.

드르륵

그렇다 보니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MRI실 앞에 와 있었다.

방사선사는 예약한 사람이 이수혁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질문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말도 없이 환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사이 안정제가 투여된 덕에 환자는 조용했다.

물론 그러다가 정신 들면 언제든 난리칠 수 있고, 그러다 MRI 기기 안에서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에는 전공의가 같이 따라 들어갔다.

‘아.’

아니면 두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못내 저 사람, 그러니까 이수혁의 말이 맞을 거 같단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보죠, 그럼.”

“어…… 네.”

“하윤아, 너도 잘 봐. 주소. 즉 주된 호소 증상이 중요하긴 해. 하지만 거기에 사로잡혀서 다른 증상을 보지 못하면 실수를 하게 돼.”

“아, 네. 교수님!”

그렇게 전공의 하나를 안에 밀어 넣은 채 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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