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화 클라스 (2)
‘아까 미리 봤지.’
[네, 그렇죠. 사실…… 치료 진행 중에도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죠.]
‘어디……. 우리 대훈이는 어떤가 볼까.’
수혁은 함정을 판 사냥꾼이 된 심정으로 대훈을 바라보았다.
물론 심정만 그랬을 뿐이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수혁의 연기 실력은 날이 가면 갈수록 늘기만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환자는 만니톨과 클루코코르티코이드로 매니지 중입니다. 어제 입원하자마자 CSF 검사 나갔고, 금일 새벽 보고된 바에 따르면 딱히 이상은 없었습니다.”
“좋아. 잘했어. 환자의 증상은?”
“증상이…… 이게 좀 이상합니다. 분명 제대로 된 처치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급성 횡단성 척수염이라는 병에서 이런 경과가 흔한가?”
“드뭅니다. 그리고…… 너무 빠른 것도 이상합니다. 감염에 의한 것이라면 이해가 되겠지만 뇌척수액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니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뭘 해야 하지?”
수혁의 눈이 반짝였다.
다른 레지던트들이나 펠로우들은 딱히 이 시점에서 뭘 느끼거나 하진 못했다.
원래 수혁은 환자 회진을 돌기 전에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니까.
뭘 몰라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내길 원하는 마음에서였고, 그게 다 티칭 마인드의 일환이라는 것 또한 다들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늘상 있는 일의 연속이라는 얘기였다.
‘이거…… 이거 아니구나.’
하지만 안대훈은 뭔가 다르다는 걸 캐치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수혁의 충신이자 가신이지 않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이건데…….
오직 그런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법이었다.
‘다행히…… 나도 뭔가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긴 했어. 뭐 그거보단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가 궁금해서 낸 거긴 하지만…….’
동시에 아직 안대훈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따라다니는 사람이 수혁이니만큼 실력도 늘 수밖에 없었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따르는 사람을 닮아 가는 법이니.
“MRI를 처방했습니다. 혹시 다른 원인일 가능성도 있어서입니다. 또는 비정형적인 경과를 밟는 급성 횡단성 척수염일 가능성도 있고요.”
“그래? MRI를 냈어?”
수혁도 조금 놀랐을 정도였다.
분명 30분 전까지만 해도 뭐가 없었으니까.
‘안대훈이 거짓말할 놈은 아니지.’
[그렇죠. 아니, 할 수도 있긴 한데 수혁에게는 그럴 위인이 아닙니다.]
‘그래, 그러니까……. 확실히 얘가 엄청 늘긴 늘었어.’
[늘었다기보다는 실력이 늘었는데도 조심성이 남아 있다는 게 옳은 표현 같습니다. 둘 다 좋은 거니 넘어가죠.]
괄목상대라고 하던가.
사흘만 지나도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의 성장을 이루어 낸다고 하는…….
안대훈은 사실상 그보다도 더한 놈이라고 봐야 했다.
얘를 사흘씩이나 안 본 적은 없으니까.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떠올렸다고 하는데, 뭐가 있을까?”
“네……. 그.”
안대훈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였냐고 하면 다른 사람도 그의 머리가 굴러가고 있다는 걸 다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광까지 낸 그의 머리에 핏줄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저러다 저거 터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빨개지고 있기도 했다.
아마 이전 같았으면 수혁부터가 이런 안대훈을 말렸을 텐데, 이제는 모두가 그저 안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빨간 머리 안대훈이군.’
[보랏빛이 되기 전까지는 안전합니다.]
‘그래, 오히려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지.’
[그런 보고가 있죠. 일부 직접 확인하기도 했고요.]
빨간 머리 안대훈.
이 모드의 안대훈은 평소의 안대훈보다 조금 흉악한 모습이 되지만, 오히려 평소의 안대훈보다 더 조용해진다.
동시에 보다 뛰어난 추론을 한다.
뭐 이런 보고가 있었다.
“우선…… 부상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상이라면……? 경과가 전혀 다를 텐데?”
“지연성 출혈이 발생했다면…… 점차 커지는 혈종에 의해 신경 부분이 눌리고 그로 인해 증상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 있습니다. 압력에 의해 증상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만니톨이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치료에 일부 반응이 있을 수 있고요.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치료 효과는 떨어질 겁니다.”
오.
수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확실히 이 지연성 출혈로 인한 혈종은 가능성이 꽤 높은 진단명이기에 그랬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환자에게 전혀 부상의 병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추론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주장이되 정답은 절대로 아니란 말이었다.
“환자가 다친 적이 있나?”
“기억하기론 없습니다만…… 음주나 기타 원인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사고라면 오히려 더 혈종의 위험이 높을 겁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
“가르침을 주십쇼.”
빨간 머리 안대훈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머리 주변을 지나는 혈관들이 더더욱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살짝 무서웠다.
하지만 상대는 안대훈이지 않나.
수혁은 자신의 수제자를 향해, 그가 원하는 대로 가르침을 내렸다.
“기억은 조작될 수 있어. 특히 다치거나 하여간, 신체적인 변화가 수반되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신체에 남는 증거는 조작이 불가능해.”
“그 말은……?”
“난 이미 어제 응급실에서 환자가 왔을 때부터 환자의 등을 봤단다.”
“아.”
그때 이미 등짝을 보셨구나…….
만약 부상의 징후가 보였다면 그에 따른 지시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지시가 없었다는 건 환자의 진술처럼 부상은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자신의 추론은 그럴싸할지언정 틀렸다.
“아.”
안대훈은 다시 한번 탄식을 터뜨린 후,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사실 회심의 일격이라 해도 좋을 만큼이나 훌륭한 추론을 이미 한차례 해낸 참이지 않나.
여기서 또 한 번 도약을 해야 한다는 게 쉬울 리가 있나?
‘음…… 아까보다 거뭇해진다.’
[좀 더 밀어붙이면 보라돌이 안대훈이 되겠군요.]
보라돌이 안대훈.
사실상 마지막 페이즈의 안대훈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때의 안대훈은 이따금 신음을 내고 또 가까스로 추론을 해낼 수 있었다.
여기서 더 까맣게 되면 그땐 말려야 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통합진료센터 인원들은 슬금슬금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혁 또한 지팡이를 짚은 채, 여차하면 뭐라도 할 채비를 마쳤다.
‘감염도 아니고…… 혈종도 아니다……. 그렇다면 종양? 아니, 종양 중에 이렇게 빨리 자라는 놈이 어딨나……. 으읏.’
그사이 안대훈의 머리는 터질 듯이 팽창하고 있었다.
지금껏 쌓아 왔던 수많은 지식과 수혁에게서 배워 온 추론 방식 등이 이리저리 휘갈겨지면서, 무언가 잡힐 듯 잡힐 듯 다가오고 있었다.
허나 의미 있는 추론보다 먼저 다가온 것이 있었으니, 어둠이었다.
“어, 얘 기절한다!”
그 누구보다 신체 징후 관찰에 능한 수혁의 말에 이미 대기 중이던 김인수와 장종우가 달려들었다.
그러곤 좌우에서 팔짱을 끼고 붙들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수혁이 대훈의 명치를 위로 밀었다.
즉 횡격막을 위로 밀었는데, 이것으로 쌓여 있던 공기가 후- 하고 새어 나왔다.
“켁.”
기질적인 원인으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곧 안대훈은 정신을 차렸다.
‘주화입마였나.’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면 영문을 몰랐을 텐데.
안대훈은 수혁의 앞에서만 벌써 이번이 세 번째였기 때문에 상황 파악이 빨랐다.
그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수혁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머리는 하얘져 있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표정은 온화했다.
세상의 번뇌를 떨쳐 버린 듯했다.
아까 그렇게까지 고뇌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수혁은 그런 안대훈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말을 이었다.
“부담 갖지 말고, 아까 머릿속에 떠올렸던 가능성 다 말해 봐.”
“네?”
“또 빨개지지 말고. 너 그러다 죽어, 인마. 그냥 말만 해 봐.”
“받들겠습니다.”
대훈은 심호흡과 함께 다시 쌓여 오던 번뇌를 털어 버리곤, 입을 열었다.
“감염도 혈종도 아니니 종양이 아닌가 했습니다. 근데 종양은 이렇게까지 빨리 자라지 않으니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 종양.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가능성이지.”
“네?”
“종양이 다 천천히 자란다는 것도 편견이야. 뭐 엄밀히 말하면…… 종양은 아니고, 종괴 병변이라고 해야겠지만. 덩어리를 형성하는 종류의 질환 중에서는 아주 빠르게 그 덩어리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질환이 있지.”
“어…….”
종양?
아니, 종괴 병변을 형성하는 질환이라고?
안대훈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분명 설명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뭔 소리야?
‘자식들.’
[근데 이건 진짜 생각해 내기 어려운 거 아닙니까? 우리조차도 100% 확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요?]
‘그렇긴 하지. 증거가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질환들이 모조리 배제됐어. 그렇다면 이것밖에 없지.’
[그러니까…… 이런 식의 추론이 가능하려면 배경지식이 완전해야 하지 않습니까. 현시점에서 이게 가능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수혁조차도 제가 없으면 불가능할 텐데요?]
‘있는데 그런 가정은 불필요하지 않나?’
[오…… 약간 로맨틱했다, 그 멘트.]
수혁은 후후 웃으며 환자가 있던 병실을 가리켰다.
안대훈이 일찌감치 처방을 내린 것도 있거니와 통합진료센터에서 내리는 처방에 우선권이 있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환자는 MRI실로 이동한 후였다.
“곧 영상 올라올 테니, 보면서 설명하도록 하지.”
[와……. 은근슬쩍 영상 보면서 그때그때 해석하면서 설명하려고?]
‘이렇게 말해 놓고 틀리면 쪽팔리잖아.’
[와…….]
‘얘네들 앞에서 난 틀리면 안 돼. 절대적으로 옳아야 한다고.’
[와…….]
수혁의 시커먼 속내를 알아본 것은 바루다뿐이었다.
사실 안대훈도 알아보려면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바루다와는 달리 수혁을 실제로 신격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시점으로 보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모두를 속여 버린 수혁은 일단 병동을 한 바퀴 돌았다.
이미 레지던트나 펠로우들이 알아야 할 내용은 방금의 문답으로 다 전달했기 때문에, 정작 회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좋아진 환자에게는 좋아졌다는 말을, 그러지 못한 환자에게는 위로의 말과 앞으로의 경과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교수님, 영상 올라왔습니다.”
“아, 그래. 볼까.”
과연 자신이 예상한 질환이 맞을까?
수혁은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채, 의자에 앉았다.
다른 이들도 우르르 따라와 뒤에 섰다.
달칵
그렇게 열린 환자의 MRI엔 병변이 딱 떠 있었다.
MRI 판독에 익숙한 의사라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 만한 종괴였다.
“좋아. C7번부터 T2까지 방추형 종괴가 있어. 이게 뭘까?”
[예상이 맞긴 했네요.]
‘난 천재니까.’
[와…….]
종괴인 것은 확실하지만 뭔지 알아내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만큼은 영상의학과 의사를 데려다 놔도 그럴 것이었다.
오직 하나, 수혁만이 알고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수혁은 잠깐이라도 잘난 척을 좀 이어 나갈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