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54화 (1,054/1,303)

1054화 예능에서 (1)

“아, 교수님.”

홍보팀 직원은 다소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인과 촬영이 덜컥 잡혀 버리지 않았나.

제아무리 태화의 일원이라고 해도, 또 그 길에서 여러 난관을 헤쳐 나온 몸이라고는 해도 오늘만은 너무 떨렸다.

“네.”

그에 반해 수혁은 너무 편안해 보였다.

강심장인 탓도 있기야 하겠지만…….

‘오늘 누구라고?’

[한재석이요.]

‘유명하지?’

[모르죠, 나야. 수혁도 얼굴하고 이름을 알 정도면, 대단히 유명한 거 아니겠습니까?]

일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보니, 또 그렇게 되기 전에는 원체 생활 자체에 치여 살던 인간이다 보니 아는 게 없어서 그랬다.

그렇다 보니 오늘 프로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여기 한번 나오면 막 여기저기서 화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겠나?

여기저기라고 표현한 커뮤니티도 모르는데?

“뭐, 어디 나가는 거래?”

“뭔 퀴즈요.”

“아. 수혁이 퀴즈 잘 풀 텐데.”

“제가 알기론 퀴즈 푸는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말이 되냐? 이름이 퀴즈라며. 그럼 퀴즈 프로그램이지. 나도 소싯적에 한 퀴즈 했었는데 말이야.”

그런 수혁을 바라보고 있는 이현종과 안대훈도 그리 종자가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또…….

맞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퀴즈를 한번 내기는 하지 않던가?

‘그런가……?’

‘하긴 우리 교수님이 괜한 소리를 할 리가 없지.’

‘그래, 우리 교수님이 틀릴 리가 없지.’

레지던트들은 그런 교수와 펠로우를 보면서 한심해하다가 돌연 이름만으로 내용을 얼마간 유추해 내는 그 추론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물론 멀리서 보면 다 그냥 미친놈들이었다.

특히 한재석의 팬임을 자처하는 신현태가 보기엔 더더욱 그랬다.

“아휴. 뭔 퀴즈야. 기본적으로 인터뷰야, 인터뷰.”

“또또 젊은 척하네. 인마, 뭐 또 어디. 나무위키 봤어?”

“아호, 답답해……. 아니, 한재석이 우리나라 원탑이잖아. 저거 안 봐?”

“안 봐.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보냐.”

“형……. 그리고 대훈아. 원장이 돼 가지고 이런 말 하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병원에만 매여 있지 말고 좀 바깥 생활이라는 것도 하고 그래라.”

태화 의료원의 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병원에 산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현종처럼 압도적인 명성과 실력으로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신현태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다들 그냥 거기서 거기라는 건데…….

“아, 오신다고 합니다. 정문 통과했대요.”

“그렇게까지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하여간 의사들끼리 수군대는 사이에 피디와 스태프들은 촬영 준비를 완전히 마쳤다.

수혁 또한 가벼운 헤어 메이크업을 했는데 평소 방송 나가는 것처럼 빡세게 한 게 아니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둔 상황이었다.

-흉하지 않되, 고생하는 것처럼.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면 더 좋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태화에서 예약했다.

김다현 회장의 명대로 딱 알맞게 꾸미기 위함이었다.

감염 학회나 의협 또는 관련 학회에서야 당연히 수혁을 알리면서 동시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게 제일 중요하겠지만…….

김다현에게는 그런 게 알 게 뭐란 말인가.

섭외가 어려운 프로에 나가게 되었으면 그만큼 광고 효과가 있어야 했다.

물론 의료법상 소속을 밝히진 않겠지만, 괜찮았다.

앞으로 며칠간은 한퀴즈만 써도 옆에 태화 의료원 이수혁 또는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뜰 테니까.

“로비 도착하셨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된다니까.”

그룹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홍보팀 직원으로서는 팀장에게 회장이 직접 전화를 했고 또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시점에서부터 이미 사활을 걸 수밖에 없게 된 지 오래였다.

오히려 피디가 말리는 데도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있어도 돼요?”

“소리만 안 내시면 됩니다. 아, 조명…… 조명은 가리시면 안 되죠.”

“조명? 아, 이거. 이게 아, 그렇구나.”

그에 비해 의료진들은 나이브하기 짝이 없었다.

아는 게 없다 보니 더 그랬다.

하여간, 이현종이 조명을 피해 옆으로 비켜서자 곧 복도를 통해 한재석과 전세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현태는 역시 저것이 1등의 후광인가 하고 있었다.

전세호도 전세호지만 한재석의 커리어는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지 않나?

대체 언제 적 1등인데 아직도 1등인가.

“이수혁 교수님만 한 인재는 없군요.”

“그걸 넌 말이라고 하냐. 뭐……. 이 주일 정도면 내가 또 모르겠다만, 에잉.”

한편 이현종과 안대훈은 여전히 미친 소리 중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너무 미친 소리라서 그 누구도 귀담아듣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그럴싸했다면 원장으로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텐데…….

“교수님을 엄청 존경하나 보다.”

“대단하긴 하대.”

“그래, 뭐…….”

그냥저냥 넘어가 주는 분위기지 않나.

‘수혁아, 잘하자……. 너까지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

아무튼, 신현태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녹화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김다현에게 당부의 전화를 받아서 그랬다.

추궁의 뜻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코비드 사태로 인해 태화 의료원의 위상이 그야말로 미친 듯이 올라가지 않았나.

심지어 뉴욕에 새로 개설한 센터도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도 더 빨리 정식 오픈할 수 있게 된 참이었다.

-그냥 너무 이상한 소리만 안 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TVM에 주는 광고가 한두 개가 아니라……. 저희 홍보팀에서 최종 편집본까지 확인하긴 할 거예요.

너무 이상한 소리만 안 하면 된다.

그러니까 출연진이나 스태프의 기분을 상하게만 안 하면 된다, 이 말이었다.

뭐, 한재석이야 인격자이니만큼 어지간해서는 넘어가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런 인격자조차 화가 나게 만든다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큰일이라고 해 봐야 커뮤니티에서나 욕먹고 끝나긴 할 터였다.

수혁은 의학계의 보석이니까.

‘수혁아, 잘하자.’

그렇다고 해서 보석이 욕먹는 게 좋을 리는 없다 보니 신현태는 여전히 기도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예습하길 잘했군요.]

‘그래. 조회수 높은 순으로 보고 나왔더니, 입이 막 술술 열리네.’

결과적으로 신현태의 기도는 하등 쓸데없는 짓이었다.

“교수님……. 멘트 좋은데?”

“툭툭 던지는데, 좋아.”

이수혁이 누군가.

딥러닝의 화신 바루다를 데리고 다니는 인간 아닌가.

“아니, 그럼 교수님은 공부가 그렇게 좋으세요?”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 교수가 되면 안 되죠.”

“와아…….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는데에……?”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세요?”

“쉬는 시간에는 안 하죠.”

“역시 그렇죠?”

“쉬는 시간에는 진료를 봅니다.”

“네?”

“응급실에는 아무도 건들지 않은…… 새 환자들이 오거든요?”

아니, 이건 멘트가 좋다기보다는 그냥 사람이 미친 사람이었다.

나쁜 방향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맑은 눈의 광인이랄까?

“새…… 환자요?”

“네. 이게 외래로 오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1차 진료 기관에서 본 환자분들이 많아요.”

“아……. 그렇죠. 의뢰를 해야 오니까. 아니, 저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그렇더라고요?”

“그것도 재미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아무 정보 없이 딱 보고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응급실 진료가 재밌죠.”

“아…… 재미……. 실례지만 혹시 미쳤다 라는 말 가끔 듣지 않으세요?”

“저요? 그냥 다들 좋아하는데. 저 인기 많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뻔뻔하시네.”

다른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거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지르고 있었다.

피디야 신났다.

악마의 편집도 필요 없으니까.

애초에 그런 류의 프로그램도 아니지 않나.

다만 바른 방향의 의도를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니만큼 자극적인 편집이 어려운데, 저렇게 미친 멘트를 치는 게스트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취미 생활마저 환자 보는 건데……. 다 좋게 보겠지?’

광고주.

아니, 최대 광고주인 태화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어떻게 뽑아도 마음에 들어 할 거 같았으니까.

비단 피디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다들 푸근해진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참, 공부를 얼마나 잘하셨습니까?”

“제일 잘했죠.”

“제일? 저희가 공부랑은 좀 거리가 먼 삶이라 언뜻 이해가 안 가는데……. 혹시 1등이란 뜻이신지……?”

“그렇죠. 다 만점이죠.”

“와…….”

“시험이 다 너무 쉬워서요. 변별력이 없어서 그래요.”

“이거 수험생분들이 보면 난리 나겠는데…….”

조금 불안해진 것은 공부 얘기가 나올 때쯤이었는데, 피디에게는 한재석이 있지 않나.

제일 민감하게 공기를 감지한 후 화제를 돌렸다.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저, 교수님.”

“네.”

“실례지만 다른…… 생각하시나요?”

“아…….”

“아까부터 자꾸 저희 말고 다른 곳을 바라보시는데…….”

당연하다고 하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수혁 때문이었다.

[암만 봐도 이상하죠?]

‘어. 이상해. 아픈 거 같은데.’

[촬영 끝나고 갈까요?]

‘그래야 할 거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간 수혁도 좀 자랐다는 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떡 일어나서 대뜸 어디 아파요? 했을 텐데 지금은 무려 10분간이나 참고 있었다.

물론 그나마 다행이라는 거지 좋다는 건 아니었다.

“그게.”

“네. 말씀하시죠.”

“아픈 사람이 있는 거 같아서요.”

“어…….”

한재석은 이건 또 무슨 콘셉트지 싶었다.

‘의사지……? 무당 아니시지?’

무속인들 중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의도적으로 눈알 이리저리 돌려 가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

하지만 여긴 병원이고, 눈앞의 사람은 대단히 유명한 의사였다.

지인이 이수혁 교수에게 진료받고 싶어서 무던히 애를 썼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근데…… 진짜 이상하긴 한데?’

최근 들어 기믹이 있는 아이돌이 뜬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설마하니 그게 의료계에도 번졌나 싶었다.

신기 있어 보이는 의사가 뜬다든지…….

“아, 못 참겠다.”

그때 돌연 수혁이 이따위 말을 하더니 피디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까부터 자꾸 눈이 마주치고 있었기 때문에 피디는 재깍 반응할 수 있었다.

“뭘……. 못 참는…….저희가 무례한 짓이라도……?”

“아뇨. 분량은 충분하죠? 기후 위기도 아까 말씀드린 거 같은데.”

“아, 네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아직 마무리가.”

“어디 아프죠?”

“네?”

화났나……?

혹시 나 때문인가……?

전세호는 특유의 억울해하는 표정으로 사방을 바라보았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고개를 흔들어 주었다.

적어도 네 잘못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말이 이상하게 들릴 텐데. 우리 피디님…… 몸이 아파요.”

“네? 아니, 좀 지나치게 마르긴 했는데…….”

“마른 건 한재석 님이죠. 저분은 아파요.”

“그…….”

천하의 한재석조차 당황하게 된 순간, 멀쩡한 얼굴인 것은 단 셋뿐이었다.

이수혁, 이현종 그리고 안대훈.

나머지 병원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아니, 도망간 사람들도 있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교수가 오늘만은 예외로 굴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