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56화 (1,056/1,303)

1056화 예능에서 (3)

“어, 어!”

“이거 대체!”

“야, 야!”

스태프뿐만 아니라, 침착하기로 소문난 한재석까지 달려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디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면서 뒤로 쓰러져서 그랬다.

물론 당황한 것은 일반인들뿐이었다.

수혁을 비롯한 의료진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갈빗대 사이의 근육, 즉 늑간근(Intercostal muscle)이 움직일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어서 그랬다.

“인투 준비하고, 산소.”

수혁은 피디를 내려다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안대훈은 벌써 넘어간 피디를 부축하고 있었다.

이현종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참, 진행이 엄청 빠른데? 길랑바레 같은 건가? 아니면 비행기 타서?”

“아직 모르겠어요.”

“네가?”

“네.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급하다는 건 알겠어요.”

“그래, 그건 다른 사람들도 다 알지.”

그 또한 제일 가까이 있던 의료진 중 하나였던 만큼 즉시 달려와 환자를 살폈다.

“풀로.”

“네.”

수혁은 다른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산소를 주었다.

“흐음…….”

용량은 말했던 대로 풀.

즉 꽉 차게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호흡곤란은 딱히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드르륵

다행히, 이곳은 태화 의료원이었다.

비록 촬영을 위해 병동이 아니라 외딴곳에 떨어진 회의실을 잡아 두었다고는 해도 병원이다 이 말이었다.

게다가 구경하겠답시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 태반이 우수하다 못해 진료에 인생을 건 의사들이었다 보니 조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빨랐다.

침대가 바로 들어오고, 끌고 들어온 이송 요원이 안대훈을 비롯한 여러 의료진과 합세해 이제 환자가 된 피디를 침대로 옮겼다.

그사이 수혁은 아주 자연스레 환자의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후두경 주실까요?”

“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물 흐르듯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진짜 잘한다더니…… 장난 아니구나.’

가까이 있던 병동에서 차출된 간호사는 이수혁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뭐 촬영한다길래 기웃거리다 끌려왔으니 경황이 없어야 정상인데 수혁이 너무 침착하다 보니 덩달아 침착할 수 있었다.

“자, 튜브.”

“네.”

수혁은 후두경으로 피디의 혀를 꾹 누르곤, 바로 튜브를 꽂아 넣었다.

덩치가 좀 있는 편이긴 한데 상대적으로 젊다 보니 삽관 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더욱이 수혁은 바루다의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몸이다 보니 순식간에 튜브를 넣을 수 있었다.

“앰부 짜 줄 사람?”

“저에게 맡겨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래…….”

안대훈은 그 튜브에 앰부를 연결해 쥐어짜기 시작했다.

“환자분, 많이 불편하죠? 일단 재워 드릴게요.”

근 이완은 되어 있었다.

이완이라기보다는 쇠약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수혁이나 다른 의료진들이 너무 빨리 대응한 탓 아니, 덕에 산소 공급이 끊이지는 않아서 그랬다.

그렇다 보니 목에 꽂힌 관이 너무 불편했다.

수혁은 그런 피디의 눈에 맺힌 눈물을 슬쩍 닦아 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에 맞춰서 벌써 환자 팔에 라인을 잡고 있던 간호사가 다른 간호사가 들고 온 레미펜타닐을 주었다.

‘어…….’

그것이 피디의 의식이 꺼지는 순간이었다.

레미펜타닐이 진정 수면보다는 진통 효과가 더 크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면 효과가 없는 건 또 아니라서 그랬다.

다시 말해 환자는 이제 자고 있었다.

의료진이야 당연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 병실 있나?”

“아, 아뇨. 통합진료센터 내 병실로 잡았습니다.”

수혁의 말에 답한 것은 김인수였다.

그 또한 구경하러 왔다가 끼어들게 된 마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상황이 좀 갑작스럽긴 한데, 어차피 뭐 맨날 보는 광경 아닌가.

대학 병원 내과 의사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이런 일은 평생 곁에 두고 살아야 할 일이었다.

“잘했어요. 그럼 갈까요. 가면서 좀 더 생각을 해 보도록 하죠.”

“네, 교수님!”

이송 요원과 더불어 김인수가 침대를 끌었다.

안대훈도 앰부를 짜면서 그 뒤를 따랐다.

자연스럽게 수혁 옆으로는 이현종과 신현태가 붙었다.

여느 때 같으면 둘 다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개진했을 텐데 지금은 그저 조용했다.

수혁도 감이 아직 안 잡히는데 둘이 어찌 그럴 수 있겠나.

경험을 뛰어넘는 추론 능력과 바루다 덕에 습득한 배경 지식의 양은 이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 되어 버렸다.

“아, 혹시…… 해외에서 이 피디님이 뭐 했는지 아시는 분 계시나요?”

바루다와 대화를 하다가, 일단 지금은 추론보다는 추론에 필요한 정보부터 습득하자는 결론에 다다른 수혁은 스태프들을 향해 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스태프고 한재석이고 전세호고 다 경황이 없는 얼굴로 마냥 따라오는 중이었다.

그중 손을 든 것은 왕작가였다.

“저, 저요.”

아까까지만 해도 재밌는 그림 나오겠다고 좋아하던 사람은 이제 간 곳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같이 동거동락한 지도 벌써 몇 년인가.

그런 사람이 좀 아픈 수준이 아니라 쓰러졌다.

입에는 뭔가 위험해 보이는, 중환자실에서나 볼 법한 걸 꽂았고.

실제로 의사들이 아까 중환자실 어쩌고 하지 않았나.

“아, 작가님?”

“네네. 제가 압니다.”

“어디 다녀오신 거죠?”

“호주요.”

“호주……?”

“네. 갑자기 그런 건 아니고 저번 달에 저희 시청률이 잘 나와서 휴가받았거든요. 피디님이 작가진이랑 스태프 몇 명 데리고 놀러 갔다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수혁은 몇몇 스태프들의 뒷목에 그을린 자국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완연한 겨울에 접어든 한국에서는 저만한 햇볕 받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저 작가도 그을렸군요.]

‘그래, 그렇군. 그을린 정도가 유난히 심해 보이는 사람이 넷 있네.’

촬영 감독 둘에 작가 하나 그리고 방금 쓰러진 피디.

이렇게 넷은 뒷목이 다른 곳의 피부 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 이렇게 네 분은 뭔가 다른 활동을 하신 건가요?”

추론은 의미가 없을 거 같았다.

어차피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니, 질문이 빠르지 않겠나.

해서 물었더니만 바로 답이 나오진 않았다.

좀 우물쭈물하는 느낌이랄까.

그때 입을 연 것은 이현종이었다.

“골프 치셨구만.”

“네?”

“네 명이 호주까지 가서 저렇게 손등하고 뒷목 탈 만큼 같이 돌아다니려면 골프밖에 없지.”

“아…….”

그래.

수혁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치지 못한다고 해야 할 테지만, 하여간.

허나 이현종은 어떤가.

먹는 거 말고는 거의 유일한 취미가 골프일 정도로 미쳐 사는 사람이었다.

휴가도 늘 골프를 염두에 두고 가는 사람의 말이니만큼 신빙성이 있었다.

[확실하네요. 반응이.]

‘골프 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러게요. 왜 저러지?]

숨길 일은 아닐 텐데.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골프 친 거 맞습니까?”

“아…… 네. 그…… 맞습니다.”

“골프라.”

대표적인 야외 스포츠 중 하나였다.

국내가 아니라 호주에서 했다면, 관련한 질환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다.

해서 수혁은 머리를 굴려 가면서 질문을 정했다.

“골프는 잔디밭에서 하죠?”

“네네.”

“뭔가에 물린 적은 없나요?”

제일 흔한 것이 있다면 역시 감염 질환이었다.

애초에 길랑바레 증후군도 감염이 야기하는 경우가 많기도 했고.

남반구에 있는 국가이니만큼 지금 여름일 테니, 뭐에라도 물릴 구석은 꽤 있었을 터였다.

“아, 아뇨.”

“수혁아. 골프장에 있는 잔디는 매일 깎아. 엄청 짧아.”

“아…… 그렇군요.”

하지만 작가의 반응도 그렇거니와, 이현종의 말도 들어 보니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서 골프장에 가 본 적도 있지 않나.

확실히 뭔가 물 만한 것들이 서식할 정도의 잔디 길이는 아니었다.

[농약도 엄청 치겠죠.]

‘하긴…… 뭐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지?’

[근데, 잔디 매일 깎는다는 말을 했을 때 작가의 반응이 좀 이상했습니다.]

‘어디 봐 봐.’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아까 봤던 모습을 재생해 주었다.

특이점을 딱딱 짚어 주면서였다.

그걸 보니 뭔가 켕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틸레이터 연결합니다.”

해서 물으려는데, 안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통합진료센터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문진도 급하긴 하지만 이게 더 급했다.

“아, 그래. 모드는…… 그래, 그렇게. 알아서 잘하네.”

“과찬이십니다.”

“그래. 열은…… 열은 없네. 흐음.”

“근데 교수님.”

“어.”

“제가 앰부 짜면서 오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러면서 보니까 경부 경직도도 굉장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 아, 그렇네.”

근 이완제는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헌데 경부 즉, 목의 근육도 힘이 빠져 있다는 건…….

“배도 그래. 전신이 다 힘이 없어.”

“길랑바레일까요?”

“가능성은 있지. 하지만 너무 급해. 그리고 너무 심하지.”

“그렇긴 합니다. 근데 그것 말고는 달리……”

안대훈의 말에 다급히 나선 수혁은 배를 비롯한 체간 부위를 확인했다.

레미펜타닐이 들어갔으니, 그전에 비한다면 당연히 힘이 떨어지는 게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모든 부위에서 힘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떨어져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빠른 진행이었다.

안대훈을 비롯한 모두가 이제는 당황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빨라도 너무 빠르니까.

누가 지금 막 독소라도 찔러 넣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

[네, 그렇죠.]

‘쥐 잡듯이 뒤지기 전에 하나 확인할까.’

[네.]

허나 수혁은 예외였다.

그는 언젠가 이 비슷한 케이스를 본 적이 있어서 그랬다.

일단 벤틸레이터도 달았겠다, 지금 당장은 잘못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면 되었다.

감도 잡았겠다, 넘어갈 가능성도 소거했겠다 이래저래 여유를 되찾은 수혁은 작가를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안대훈과 이현종의 표정도 변했다.

‘뭐지?’

‘이 타이밍에 뭔가 알겠다는 표정이 나왔어?’

‘전혀…… 그럴 만한 게 없었는데?’

‘뭐야, 이거.’

단서가 더 나온 거라고는 진행이 빠르다는 것뿐이지 않나?

말이 단서지 어떻게 보면 그냥 나쁜 일일 뿐이었다.

여유로워질 일이 아니라 당황하거나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닌가……?

뭐 이런 생각과 함께 둘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작가님.”

“어, 네.”

그 상황에서 수혁은 다시 작가를 바라보았다.

“골프장 말인데, 잔디가 짧았나요?”

“아, 네. 짧았습니다.”

“골프장에 뭐 언덕이나 이런 데 있지 않았어요? 전에 보니까 있기도 하고 선수들 막 들어가던데.”

수혁은 제주도를 떠올렸다.

거기 지형도 험했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막 맨발로 물가에 들어가고 그랬더랬다.

해서 물었더니, 이현종이 나섰다.

“아아, 수혁아. 그건 경기잖아. 친목 도모에서 그렇게까지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어째 작가 반응이 이상했다.

“그렇게까지 해요? 아, 내기했구나.”

“그…… 네. 피디님이 또 승부욕이 장난이 아니라…….”

아까 민망해했던 이유를 알았다.

이현종의 추론은 딱 거기까지였다.

허나 수혁은 이제 아까보다 더더욱 확신을 가진 얼굴이 되어 물었다.

“피디님, 산 탔죠?”

“아…… 네.”

“대훈아.”

“네?”

“바리깡 들고 와 봐라.”

“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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