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7화 예능에서 (4)
바리깡?
갑자기?
피디야 잠들어 있었으니 별 반응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특히 피디랑 동고동락한 지 수년이 지나, 피디가 자신의 장발을 아주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을 지경이었다.
“아, 안 돼!”
“네? 안 됩니까?”
바리깡이 병동에 그냥 있겠나.
머리 밀 일이 있는 병동이 아니다 보니 기다리는 중이었다.
신경외과 아니면 귀 수술 때문에 귀를 밀어야 하는 이비인후과 병동까지 다녀와야 했다.
아무튼, 시간이 있다는 얘기였다.
해서 수혁은 이미 속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머리를 싹 밀어 버리겠다고 마음먹은 주제에 여유로운 얼굴로 작가를 바라보았다.
[능청은…….]
‘가만있어 봐. 설명 더 할 수 있을 테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제자가 잘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제는 그랬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무슨 뜻이에요?]
‘그냥 하는 소리야.’
개소리란 뜻이었다.
“그, 머리를. 머리를 왜…….”
작가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수혁은 말을 이었다.
“진드기 아시죠?”
“어…… 네. 알긴 알죠. 개미가 진드기 똥구멍에서 밥 먹지 않아요?”
“그건 진딧물입니다.”
“아.”
“헷갈리는 분 많아요. 진딧물은 해충이긴 하지만 사람한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못하거든요? 근데 이 오해로 인해 부모님들이 아이들 노는 데 훼방 놓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
수혁은 습관처럼 아는 척을 한 후에,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진드기는 좀 다른데…… 가끔 뉴스에서 보시지 않습니까? 야외 나가서 물려서 종아리에 가피 잡히고, 열나고 하는.”
“아…… 봤어요. 츠츠가무시?”
“아시네. 역시 방송 작가님이라 다른가.”
“그럼…… 우리 이 피디가 츠츠가무시예요?”
“아뇨. 우리나라 진드기들은 대개 풀에서 서식하고, 따라서 종아리를 뭅니다. 그걸 의심했다면 머리를 밀진 않겠죠.”
“아, 맞네. 근데 우리 이 피디…… 종아리 털도 부숭부숭하긴 한데…….”
방송 작가이기 전에 예능 작가라서 그럴까?
살짝 개그도 쳤다.
물론 수혁은 딱히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츠츠가무시는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 또는 중국 일부 지역에서 호발하는 병입니다. 호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아…….”
왜냐.
지금은 웃을 시간이 아니라 잘난 척할 시간이거든.
해서 수혁은 부리나케 자기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 나갔다.
“호주에서 호발하는 진드기는 굉장히 많습니다. 가 보셔서 아시겠지만 거기가 자연이 장난이 아니죠?”
“아, 네. 가 보셨어요?”
“아뇨. 유튜브로 봤습니다.”
“아.”
작가는 수혁의 뻔뻔한 얼굴을 마주하다가 이내 촬영 감독을 돌아보았다.
이거 잡고 있냐는 뜻이었고, 촬영 감독은 자기 짬밥이 얼만데 이걸 안 잡고 있겠냐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캐릭터 확실하시네, 우리 교수님…… 욕심나는데…….’
똑똑하다.
그건 확실한데…… 좀 이상했다.
불쾌한 쪽이 아니라 살짝 귀여운 쪽으로?
근데 교수다.
이런 갭 차이에서 오는 매력을 대중들은 참 좋아하지 않던가.
‘예능…… 하자고 하면 안 하겠지.’
아쉬운 것은, 인터뷰 도중에도 이렇게 신이 나서 환자를 보는데 방송을 하겠냐는 점이었다.
딱히 자제하려는 마음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작가는 저렇게까지 두근거리는 얼굴로 환자 보는 사람은 난생처음이었다.
아무리 카메라가 모든 것을 담아 전달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해도…….
‘다음 주 난리 나겠어.’
작가가 영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수혁은 여전히 일관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진드기가 진짜 많은데…… 지금 이 환자분처럼 마비 증세를 일으킬 수 있는 진드기만 해도 대략 70종입니다.”
“허…… 70종이요? 진드기 무서운 거구나…….”
“지역마다 다르긴 합니다. 사실 제일 흔한 건 북미예요. 캐나다와 미국. 그쪽에 많은 놈은 Dermacentor andersoni라는 놈인데, 우리말로 하면 로키산목 진드기 정도가 될 겁니다. 미국 남동부로 내려오면 Dermacentor variabilis고요.”
“우, 우리 이 피디는요?”
작가의 말에 수혁은 살짝 실망했다.
‘일반인이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지식인지 모르는구나.’
[그러니까요. 진드기 마비(tick paralysis. TP)가 얼마나 드문 건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에게 발생한 경우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최근 케이스 리포트에는 없었지.’
[그러니까요. 뭐, 뒤에 있는 의료진들은 다 놀라긴 했습니다.]
반응이 약해서였는데, 수혁은 마치 방어기제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고 있는 의료진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늘 그러는 놈들이긴 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더 놀란 티가 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진드기 마비라……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근데 저놈은 왜 저런 걸 다 알고 있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역시 천재…….’
‘천재가 아니라, 그냥 괴물 아니냐, 저건?’
‘교수님 아드님이십니다.’
‘어, 그러니까.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왔을까.’
이현종마저도 살짝 의아함이 들 정도의 지식을 털어놓고 있지 않나.
구체적인 지식을 들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저렇게 지엽적인 부분까지 공부하고 있다는 점은 신기함을 넘어 살짝 두려움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혹시 조태진이나 안대훈의 말대로 사람의 아들이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말인즉슨 곧 신의 사자라는 건데…….
‘아니지, 아냐. 미쳤나, 내가.’
다행히 이현종은 증명이 되지 않는 일을 무턱대고 믿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확고한 신념에 차서 살아가는 이들은 드물 수밖에 없는 만큼, 다른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심을 품게 되었다.
이미 끝까지 가 버린 놈들, 즉 안대훈 같은 놈들은 성호를 긋고 있었다.
저게 사실 천주교에서 하는 의식이라는 걸 벌써 여러 차례 설명했음에도 별 소용은 없었다.
‘하긴…… 이단들 보면 다 원래 있던 종교랑 크게 다르지 않지.’
인간들의 상상력이 뭐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막말로 이단 만드는 놈들이 아주 뛰어난 지성인일 가능성도 적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피디님은 호주에서 물렸죠. 그렇다면 Ixodes holocyclus일 겁니다. 유대류 진드기인데…… 이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꽤 흔합니다. 호주에서는 실제로 이거 때문에 사망하는 케이스가 매년 보고되고 있을 정도예요.”
“아니, 그럼 어떡해요? 우리 이 피디…… 장가가야 하는데.”
“진드기를 일단 제거해야 합니다.”
“네? 진드기가 지금도 있다고요?”
“네. 지금 보시면.”
수혁은 이제야 인턴이 들고 온 바리깡을 들고, 이제 작가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지금부터는 잘난 척도 잘난 척이지만 가르침이 주가 되어야 할 시점이라서 그랬다.
이현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이현종도 배우는 마음으로 수혁을 바라볼 터였다.
그는 학자이니만큼 평생을 배움에 쓰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런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좋아할 사람이란 얘기였다.
“환자는 치료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증상이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죠.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
“하나는 진드기에 물린 상황, 즉 감염 상태이죠.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독소를 분비하는 기생충 감염이라고 봐야 할 텐데…… 지금 우리가 의심하던 질환은 길랑바레다 보니, 처음에 이를 억제하기 위한 약이 들어갔습니다. 이 약은 딱히 독소 해독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진드기로 인한 2차 감염 가능성만 올릴 수 있습니다.”
길랑바레 신드롬이라는 건 면역 반응으로 인한 신경 마비를 뜻한다고 보면 되었다.
따라서 치료의 방향은 이 면역 반응을 떨어뜨리는, 즉 억제하는 약을 쓰게 되어 있었다.
감염 상태에서 면역을 떨어뜨린다면……
부작용만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또 다른 하나는 진드기가 붙어서 지속적으로 피를 빨면서 독소를 퍼뜨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진드기들도, 특히 동물을 무는 놈들은 이런 성향을 보이죠? 그냥 딱 물고 떨어지는 대신, 문 자리에 붙어서 지속적으로 피를 빱니다.”
“아…… 맞아요. 강아지 산책시키고 나면 그거 조심해야 한다는 말 들어 본 적이 있어요.”
“네, 하지만 츠츠가무시를 일으키는 놈들은 대개는 그러지 않습니다. 성향이 그렇다 해도 사람은 손이 있어서 대개 떨어뜨리는데…… 이 Ixodes holocyclus란 놈은 감각을 마비시켜서 잘 몰라요.”
“아…….”
“이놈을 제거하지 않으면 치료가 되질 않습니다. 반드시 찾아서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니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겠습니다. 이 안에 진드기가 있어요.”
“아…… 네…….”
빡빡이 이 피디가 된다, 이 말인가.
작가는 차마 못 보겠는지 고개를 숙였다.
피디가 자신의 풍성한 머리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잘 알아서 그랬다.
또 중년의 위기를 맞이한 남성들 중 일부가 장발을 고집하게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어쩌겠냐…….’
그렇다고 해서 아까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진드기가 있다지 않나.
그놈이 계속 있으면 치료가 안 된다는데 그럼 어째.
위이이잉
수혁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어쩐지 숙연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정작 바리깡을 집어 든 수혁은 별 망설임 없이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몇 년은 족히 길렀을 법한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여긴 아니고.”
수혁이 미용사가 아니지 않나.
물론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참으로 섬세한 머리 밀기가 가능하긴 했지만, 미학적인 고려 따위는 전혀 없었다.
고속도로가 뚫렸다.
“허이고.”
“어쩌나.”
이제 피디를 원래 알지도 못했던 의료진들도 탄식을 내뱉기 시작했다.
“야…… 밥이라도 사 줘야겠다.”
본래 스태프들과 잘 지내기로 유명한 한재석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후두둑
그렇게 세 번인가 바리깡이 머리를 밀었을 때, 그러니까 머리카락 중앙만 다 날아갔을 때, 수혁이 손을 멈추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저렇게 남길 거면 다 밀어’라고 외칠 만한 순간에, 수혁은 바리깡을 내려 두고 손을 내밀었다.
“핀셋.”
“아, 네.”
“꽤 크네. 하긴, 피를 빨았으니까…… 이럴 거면 그냥 안 밀고 만졌어도 찾았겠다.”
“네?”
“아니, 아냐. 나도 처음이라 원래 Ixodes holocyclus 크기만 생각했네.”
“아니…….”
진드기를 발견해서 그랬다.
말마따나 진드기는 작지 않았다.
피를 세차게 빨아서 그런가 빵빵했는데, 5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었다.
‘진짜 머리 안 밀었어도 되었겠는데?’
옆에서 보조하던 안대훈이 조심스레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수혁은 핀셋으로 진드기를 똑 떼서 트레이 위에 올려 두었다.
다리는 버둥거리는데 배가 너무 빵빵해서 그 자리에 고대로 있었다.
“이거 사진 찍고 검체실로 보내자.”
“환자분은요?”
“그냥 이대로 버티면 좋아질 거야. 독소가 안 나오면 끝이지.”
“얼마나 버텨야 할지…….”
“길어야 이틀? 그럼 퇴원 가능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