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8화 예능에서 (5)
머리카락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 있던, 배가 오동통한 진드기.
물 건너온 놈이다 보니 후속 처리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보고할 곳도 있고 이놈 자체도 잘 처리해야 했다.
뭐, 그런 건 수혁이 직접 할 일은 아니다 보니 상관은 없었다.
“이거 인서트 따도 괜찮을까요?”
왕작가는 말 그대로 왕고이지 않나.
피디가 멀쩡할 때야 이런 식으로 나서는 것이 월권이다 보니 가만히 있었겠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이놈이었으면 반드시 이랬을 거야.’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사이다 보니 척척 알아서 움직였다.
촬영 감독을 비롯한 다른 스태프들 또한 왕작가의 말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인서트요?”
“아…… 얘만 딱 잡아서 보내 보려고요.”
“아, 방송에? 아, 맞네. 나 녹화 중이었지…….”
수혁은 그런 촬영팀을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가운 앞주머니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기막힌 소리였다.
‘대체 얼마나 집중력이 좋으면…… 이런 상황에서 녹화 중이었다는 걸 까먹지? 혹시 콘셉트……? 아냐. 아냐…… 이 사람은 찐이다, 찐.’
왕작가는 그런 수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믹으로 여겼을 테지만, 이젠 아니었다.
수혁이 진단하는 과정을 봤으니까.
이 사람은 진짜 그냥 진료하는 게 좋은 거다.
얼핏 봐서는 이해가 잘 가진 않았다.
‘뭐…… 방송가에는 자기 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방송일은 객관적으로 봐도 재밌는 일인 경우가 많지 않나.
막상 연기자나 가수 또는 예능인이 이 말을 듣는다면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글쎄…….
진료가 재밌을지 방송일이 재밌을지 묻는다면 아마 백이면 백 방송일을 꼽지 않겠나.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런 사람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방송 작가 짬밥을 오래도록 먹다 보니 경험도 많았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않나.
‘어떻게 나오려나. 무조건 1등 먹을 거 같은데…….’
딱 봐도 그림 나왔다.
이 미친 의사 덕에, 한퀴즈는 한 번 더 도약할 게 뻔했다.
VVIP인 태화 그룹의 요구 사항 또한 넘치도록 채워 줄 수 있을 테고.
“내일모레면 퇴근, 아니, 퇴원할 수 있겠죠?”
그러려면 피디가 깨서 제정신으로 후편집에 관여해야 했다.
감각이 워낙 좋은 사람이지 않나.
퇴원만 하면 되었다.
제때.
“네, 아마. 체격도 좋은 편이고 나이도 젊어서 그럴 겁니다. 일단 독소의 농도 자체가 팍팍 떨어질 거예요. 저희가 수액도 주고 있으니 더 그럴 거고요.”
“네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뇨, 뭐. 하하.”
수혁은 그렇게 웃으며 환자를 돌아보았다.
정말이지 기분 좋은 웃음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쉽지도 않았어. 하지만 예후는 엄청 좋아지겠지. 이런 케이스만 맨날 보면 좋겠는데…….’
[욕심입니다, 수혁. 이런 케이스를 대체 어디서 또 보겠습니까.]
‘그러니까. 호주를 갈까.’
[음. 호주라…… 남쪽에 있는 거죠?]
‘그렇지. 작은 나라도 아닌데 호주 사람은 본 기억도 없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만한 케이스는 수혁으로서도 오랜만이었으니.
말마따나 희귀하면서 어려운데 해결 후에 예후가 아주 좋은 케이스가 뭐 얼마나 있겠나.
보통 희귀하고 어려우면, 예후가 안 좋기 마련이었다.
예후가 아주 좋은 케이스라면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진짜 좋아하는구나…….’
촬영 감독은 그런 수혁을 보며 저도 모르게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그럴 만큼이나 보기 좋은 미소였다.
“이거,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상황이 좀 정리되고 나자, 그러니까 진드기도 처리되고 머리가 반만 밀린 피디도 온전한 휴식에 들어가고 또 나머지 스태프들도 뒤로 물러나자 비로소 한재석이 다가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 침착한 얼굴에 이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일까 하는 의문이 진하게 묻어 있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눈앞에서 기적을 목도하지 않았나.
세상에 진드기가 사람을 물었는데 그거 때문에 마비가 되다니.
뭐 의학에 문외한이다 보니 아예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으로 놀랐다.
“아…… 아닙니다. 아파 보였거든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그냥 두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집에 갔으면요?”
“네.”
“아마…….”
호흡곤란이 진행되는가 싶더니 이내 인투베이션이 필요할 정도로 나빠지지 않았나.
그때 병원이 아니라 딴 데 있었다면…….
“돌아가셨겠죠.”
“허.”
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인 불명 처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이대와 직업을 고려해 보면 과로사 정도로 잡히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40대의 급사 원인 중 사고와 자살을 제외하면 과로사가 제일 많으니까.
슬픈 현실인데, 어쩌겠나.
실제로 그런 것을.
“제가 이 은혜는 따로 한번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뇨, 뭐…… 저는 괜찮은데.”
“아뇨. 언제든 한번 불러 주시면 제가 만사 제쳐 놓고 올게요.”
“아니, 꼭 그럴…….”
이러거나 저러거나 수혁은 케이스만 되새기고 있었다.
이런 케이스를 보려면 호주에 가야 하나부터 해서 다시 보게 되면 더 빨리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등등.
때문에 천하의 한재석이 꼭 오겠다는데도 시큰둥했다.
가까이 있던 의료진, 즉 안대훈과 이현종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연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신현태.
그는 실로 오랜만에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즉각 나섰다.
“수, 수혁아! 그럴 필요가 왜 없겠니.”
“잉.”
“아, 실례가 많습니다. 저는 태화 의료원 원장 신현태입니다.”
“아…… 원장님.”
신현태는 잉 따위 소리를 내며 어물쩍거리고 있는 수혁을 저리 밀어 두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수혁이가…… 보셔서 아시겠지만, 맨날 공부하고 일만 하느라 세상 물정을 잘 모릅니다.”
“아, 그래 보이긴 합니다.”
“제가 이 녀석 삼촌이거든요.”
“난 아빱니다.”
“전 수제자!”
“여기 형도 있습니다.”
“음…….”
한재석은 다시 아까 그 얼굴로…….
이 사람은 대체 뭐지 하는 얼굴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그래, 삼촌까지는 뭐 용납할 수 있었다.
가족 기업들 있지 않나.
신씨와 이씨는 아무 연관이 없고, 얼굴도 하나도 안 닮았지만…….
‘아빠도 있고, 수제자도 있고…… 형이라는 사람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형, 그러니까 조태진은 수혁이 뭔가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나는 듯 뛰어온 참이었다.
그랬다가 신현태를 확인하고서는 숨어 있었다.
통합진료센터 사람도 아닌데 일도 안 하고 구경 왔다는 걸 들키면 안 될 거 같아서였다.
해서 기둥 뒤에 서 있었는데, 뭔가 다들 어필하는 분위기다 보니 휩쓸렸다.
“아무튼, 네, 뭐…… 우리 수혁이 대신해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제 한번 꼭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네네. 그…… 그러시죠.”
유종의 미는 뜨뜻미지근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에서 거두어졌다.
이걸 더 이상 미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의문의 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위기였다.
-한퀴즈 다음화 예고 봄?
-미쳤던데? 그거 리얼임?
-막장 프로그램도 아니고…… 구라 칠 거 같진 않은데.
-나 아는 사람이 태화에 있는데 피디 진짜 입원했고 퇴원했다카더라.
-그 선생님 미친 사람으로 유명하다던데?
그래, 그날의 분위기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영상으로 잘 다듬어진 마지막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이게 재밌을까 싶은 주제조차 무해하지만 자극적으로 다듬어서 방송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 바로 한퀴즈 피디 아니던가.
그 맛을 최대한 살려 주는 게 게스트 양옆에 앉는 한재석과 전세호고.
근데 이번 일은 솔직히 말해서 썩은 손으로 편집해도 터질 만큼의 대어였다.
그걸 그냥 두었을까?
-돌았…….
-방송 중에 갑자기 어디 아프냐니…… 의사만 아니었으면 개무례한 거 아니냐?
-근데 실제로 아팠고요.
-그냥 두었으면 죽었고요.
-진드기……?
-이게 대체 뭐야? 이런 병이 있어? 진드기에 물려서 사람이 죽어……?
-츠츠가무시라는 병도 있긴 한데, 저런 건 처음 보네. 아, 참고로 나 내과 의사.
-응, 난 내과 원장.
예고편만으로도 각종 커뮤니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가 싶더니, 본편으로는 아예 뒤집어 놓으셔 버렸다.
인기 글이니 화제 글이니 아무튼, 각 사이트의 메인에 이번 회차 관련한 것들이 쫙쫙 올라갔다.
놀라운 건 대부분이 딴 데서 퍼 온 글이 아니라 다 그 사이트에서 자체 생산된 것들이란 점이었다.
물론 대부분일 따름이었다.
-이수혁 교수의 충격적인 과거…….
이런 글도 올라가고 있었다.
막상 눌러 보면 진짜 미친 의사의 미담만 가득한 썰인데, 이걸 풀어 대고 있는 건 태화 의료원의 홍보팀이었다.
-이번 일 잘 부탁합니다?
김다현 회장의 버프 아닌 버프를 받은 홍보팀 직원들은 그야말로 손가락과 뇌를 갈아 넣을 생각으로 바이럴 홍보에 나섰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홍보의 의도를 숨기면서도 홍보가 되어야 하는 문서를 작성한다는 게 쉽겠나.
다행인 것은 수혁에 관한 일화들이 대부분 진짜라는 점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을 만큼 희한한 일들조차 그랬다.
-와…… 미친.
-진짜냐, 이거?
-태화? 아프면 저기 가야겠네. 저 정도로 환자한테 미친 사람이면 믿을 만하지.
수혁 개인만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피디와 왕작가의 의도대로 1편을 본 사람은 2편을 볼 수밖에 없게 되었고, 사실 2편은 기후 위기를 다룬 내용이다 보니 한퀴즈로서는 평균적인 재미만을 뽑아낸 편이었다.
허나 원래 말이라는 게 어떤 말인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말을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겠나.
모든 것이 빠르게 휘발되는 세상이니만큼, 한 달 뒤도 장담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당장은 수혁만큼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도 적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짜 기후가 중요하긴 하네.
-코비드도 힘들었는데 또 그런 게…… 더 무서운 게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암담한데…….
-제발 환경 생각하자.
-맨날 어그로 끄는 환경단체보다 이렇게 진정성 있게 말하는 게 훨씬 와닿네. 나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겠어.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넘치게 잡은 방송을, 정작 수혁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수혁아.”
“네.”
“뉴욕 갈래?.”
“왜요?”
“마운트 사이나에서 초청이 왔어. 뭐…… 이런저런 일로 갈등이 있었잖아? 그거 때문인 거 같은데…… 내키지 않으면 안 가도 돼.”
“거기랑 제가 갈등이 있어요?”
“어…….”
신현태는 병원 단위로 온 초청 메일을 보다가, 이내 수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기억이 안 나니?’
해외 초청연자를 무릎까지 꿇리고 울렸잖아.
내과 학회뿐만 아니라 다른 학회에서도 회자될 만큼이나 유명한 일이었다.
근데 정작 당사자는 잊다니.
황당해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아아 하면서 입을 열었다.
“닥터 스튜피드가 거기 있던가.”
“스……튜어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 아뇨. 근데 좀 바보 같긴 해서. 근데, 뉴욕은 멀잖아요.”
“그렇지.”
“비행기 타는 동안엔 환자도 못 보고…….”
“어…….”
그게 문제구나, 우리 수혁이.
환자 보는 데 미쳐 버린 우리 조카…….
“가서 강연도 강연인데, 환자도 보게 해 주면 가겠다고 해 주세요.”
“어…… 거기 환자를?”
“네. 저 원래 다른 병원 가면 거기 환자 보는 거 좋아해요.”
응, 원래 그거 불법이야…….
신현태는 그런 말을 하려다,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걸 알기에 말았다.
대신 답 메일을 보냈다.
아마 빠꾸 먹을 거란 예상을 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