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9화 뉴욕으로 (1)
닥터 스튜어드.
비록 수혁에게는 바보 취급을 받고 있고, 또 학회에 있던 이들에게도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는, 어쩐지 불쌍한 사람이지만.
“와서 진료를 보고 싶다고?”
“네.”
“이런 건방진…….”
심지어 태화 뉴욕 센터에서 봤던 환자 내역을 개무시했는데 알고 보니 태화가 맞는 바람에 자기 병원에서 한 번 더 털리긴 했지만.
그 이유들이 한데 모인 데다가, 당시 환자의 어머니, 즉 막대한 금융 자본을 움직이는 집안의 미움을 사게 된 탓에 병원 내 입지도 흔들리게 된 마당이지만…….
“와서 보라고 해.”
“네? 닥터 스튜어드, 하지만…….”
“뭐, 뭐가 불만이야. 와서 개망신당하고 싶다는데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그…… 법적으로…….”
“임시로 발급해 줘. 우리 그 정도 권한은 있잖아.”
“네? 그 정도로요?”
“아, 좀 하라면 해!”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은 지니고 있었다.
이상히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스튜어드가 지금껏 학회 내에서 또 병원 내에서 쌓아 온 명성은 실로 대단해서, 몇 번의 개망신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는 무리가 있었다.
‘이수혁 교수…… 꽤 유명해졌지?’
하여간, 스튜어드의 명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는 그 밑에서 배우고 있는 조수이자 그 나름대로 명성을 쌓아 나가고 있는 닥터 웰링턴이었다.
애초에 마운스 사이나 병원으로 들어오려면 연줄이나 학벌 이전에 실력이 있어야 하는 만큼 어느 정도 증명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웰링턴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닥터 리에 대해 떠올렸다.
‘이번에 WHO에서 내린 초기 진료 지침 작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애초에 그 모든 진료 내역과 지침에 대한 의견 등을 논문으로 쓰지 않았나.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혁의 논문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WHO 진료 지침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은 수혁이 초창기에 진료 지침을 쏟아 낼 때 정작 대한민국은 딱히 코비드가 번지지 않았던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그에 반해 수혁이 쏟아 낸 지침은 꽤 상세했고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진료 경험이 수반되어야 만들어 낼 수 있던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태화 그룹에서 의도적으로 띄우고 있다…… 이런 얘기가 있지?’
내막을 아는 사람이라면 백강혁이라는 불세출의 거인을 떠올릴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루트로 우한시에 들어가 거기 있는 의료진 사이에 섞여 진료를 봤고, 심지어 그 내역을 일부 빼내서 보내 주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 주제에 별일 아니라는 듯 얼마 전부터는 우크라이나에 갔더랬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에 의사가 없다면, 당연히 자신이 가야 한다는 듯.
허나 이러한 일을 어찌 일반인이 알 수 있을까?
아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유명한 CIA조차 최근 백강혁의 종적을 따라가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하긴…… 상식적으로 그 어린 친구가 이런 일을 다 했다고 하는 건…… 믿기 어렵지.’
그 덕에 수혁은 오해를 잔뜩 사고 있었다.
그 이면에는 나이 어린 동양인 의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박혀 있기도 했다.
아니, 동양인이라는 것보다는 한국의 의사라는 게 제일 큰 이유라고 보면 되었다.
최근 들어 가파르게 따라잡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보면 변방에 불과한 한국에서 세계적인 의사가, 그것도 저렇게 젊은 의사가 탄생한다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근데 어쩌자고 이런 요청을 했지……? 그냥 강연이나 하고 질문에 작은 망신이나 당하고 갈 일이지…… 태화 그룹에서 애써 만든 이미지 다 박살 나게 생겼네.’
웰링턴은 부득부득 이를 갈고 있는 스튜어드를 힐끔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맛탱이가 갔다는 소문이 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으로 모실 만한 사람이었다.
인성이나 이런 것 때문은 아니었다.
세상에 마냥 착하기만 한 잘난 의사가 몇이나 된다고.
딱히 저 인간이 지금껏 이룩한 학문적 성취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었다.
여전한 학계에 대한 영향력과 뉴욕의 각 유지들과의 연관성만 따져도 일단은 잘 보이는 게 좋았다.
“보냈습니다.”
“된다고 한 거지?”
“네.”
“좋아…….”
“저, 근데.”
“뭐.”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 거예요?”
웰링턴은 한국에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욕심쟁이 스튜어드가 한국 학회에서 보내온 돈과 여비 등을 혼자 다 먹어서 그랬다.
게다가 당시 학회장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스튜어드가 뿌린 돈과 협박, 회유가 적지 않다 보니 자세한 연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전후로 사람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뭔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후.”
그런 웰링턴의 말에 스튜어드는 그저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기억이 온전치가 않았다.
뭔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옆에다 대고 속삭이던 내과 학회장의 말은 똑똑히 기억났다.
-다, 닥터 스튜어드! 여기서 싸면 진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약이라도 먹였나?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처럼 우수한 의사가 거기까지 가서 그만한 수모를 겪을 일이 있을까?
“비겁한 놈이야.”
“비겁이요……?”
“알지? 그놈 태화 그룹 소속인 거.”
“알죠. 그거야. 애플이랑 싸우는 유일한 기업이잖아요.”
“그 거대 기업이 날 어떻게든 쓰러뜨리려고…….”
“아…….”
그렇게 말하는 스튜어드의 눈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우로 빠르게 떨리고 있었다.
의학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 새끼 좀 이상한데 싶을 만한 모양이었다.
웰링턴이야 의사 중에서도 퍽 뛰어난 사람이었다 보니 약이라도 빨았나 싶어졌다.
보이는 것만 이상한 게 아니라, 하는 말도 너무 이상하지 않나.
막말로 그 거대한 기업에서 무슨 유익이 있어서 스튜어드를 쓰러뜨리나.
설령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말이 안 됐다.
원했다면, 지금쯤 스튜어드는 이 자리에 없을 테니까.
‘어쩌면 오래 밑에 있으면 안 될지도……?’
하여간,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입장이다 보니 웰링턴은 대강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피했다.
메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태화 의료원 공식 계정으로 도달했다.
“어, 왔다.”
신현태는 안 된다는 말을 예상하며 메일을 열었다.
“거봐 수혁아 안 된…… 안 된…… 아니, 이게 뭐야?”
허나 안의 내용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허락을 한다고 해도, 진료 협조 정도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숫제 임시로 단독 치료를 허락하겠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심지어 아주 어려운 케이스들을 부탁함으로써 마운트 사이나와 태화 의료원 사이의 임상 진료 능력을 비교하고 더 나아가 상호 협조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말까지 쓰여 있었다.
말이 상호 협조지, 올 테면 와 봐라 발라 주마 뭐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스튜어드…… 그 인간이 진짜 원한이 장난이 아닌가 본데……?”
이쯤 되니 신현태는 살짝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수혁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우수한 놈 아닌가.
하지만……
‘인간의 악의는…… 때론 상상을 뛰어넘지.’
그 악의에 당했던 이들이 바로 유태인들 아니었던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반세기 조금 더 전에, 나치는 유태인이라는 인종 전체를 말살하기 위해 애썼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놈들은 연합군에 패해 도주하는 와중에도 한 명의 유태인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애썼다.
‘그 정도까지 할 리야 없겠다만…….’
신현태는 걱정 그득한 눈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그저 후후 웃고 있을 뿐이었다.
스튜어드?
원한?
이따위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마운트 사이나면 큰 병원이지?’
[그렇죠. 꽤 유명하기도 하죠. 임상 쪽으로는 뭐…… 비교 대상이 별로 없을걸요?]
‘그런 병원에서 어렵다고 판명 난 케이스면 어렵겠지, 실제로.’
[네, 기대가 됩니다. 과연 어떤 케이스들이…….]
‘게다가 북미 동부라면 우리랑 완전히 다른 질환들이 호발할 거야, 그렇지?’
[후후후후후.]
수혁은 바루다와 더불어 그저 희귀 질환을 볼 생각에 들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신현태는 살짝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수혁을 목도할 수 있었다.
“저기, 수혁아. 왜 그렇게 웃니.”
“네? 아, 네. 진료 본다니까 좋아서요.”
“아니…… 지금 한판 붙자고 하는 건데…….”
“진료 대결이요?”
“뭐…… 그런 셈이지?”
“그것도 좋은데요? 어떤 의견을 내는가…… 그게 틀렸다 해도 근거가 탄탄하다면 공부가 될 겁니다.”
“아.”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신현태는 자신의 그릇이 작디작음을 깨달았다.
정작 수혁은 그냥 진료에 미친 사람일 뿐이지만, 사람 됨됨이가 남다른 신현태로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 의사가 환자 보는 데 진심이어야지…… 악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수혁이한테 또 배운다…… 하아.’
그렇게 작은 오해가 중첩되어 가는 가운데, 수혁의 뉴욕행이 확정되었다.
벌써 여러 차례 외국에 나갔던 수혁이지만 이번만큼은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신현태는 원장일 하느라 바쁘고, 이현종은 센터장인 주제에 벌써 여러 번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더 이상 비웠다가는 김다현에게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상태였다.
조태진?
한창 학회 일로 바쁠 나이다 보니 말할 것도 없었다.
“교수님…… 후후.”
“그렇게 좋냐?”
“좋지요. 암, 좋고 말고요.”
덕분에 수혁은 수행원 아니, 펠로우인 안대훈만 하나 달랑 달고서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수혁이야 모르고 있는 일이지만, 아래서는 꽤 치열한 경쟁이 있었더랬다.
뉴욕이다, 뉴욕.
코비드 사태 때문에 근 1년간 혹사당한 센터 입장에서 이 기회는 그야말로 구명줄처럼 느껴졌다.
-내가 진짜……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임상 강사인 내가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김성진도.
-나 군의관 하느라 너네 학회 갈 때 못 갔어……. 뉴욕…… 가 보고 싶다.
김인수도.
그 외에 펠로우들 모두 욕심을 냈다.
-모두 스탑! 다들 사탄 들렸네, 사탄 들렸어! 뉴욕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수혁 교수님과 함께라면 뉴욕 아니라 지옥 길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거늘! 양심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이 안대훈이보다 이수혁 교수님을 빈틈없이 보좌할 사람이 어디 있는지!
욕심은…….
광기 앞에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머지는 깨닫게 되었다.
눈알이 돌아간 채로 뉴욕행 티켓을 거머쥔 안대훈은 그야말로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시죠.”
“어, 그래. 비지니스 끊었으니까 가면서 공부하자.”
“여부가 있겠나이까.”
“습니까로 하면 안 돼?”
“노력해 보겠나이다.”
“아.”
수혁?
수혁은 그저 무슨 환자가 있을까 기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제도 하루 종일 공부하다가 잤고, 가는 길에도 공부만 할 생각이었다.